177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자료 다 찾아놨어요! 작가님!”
“아! 네!”
유지아 작가는 차기작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 전에 들인 보조 작가에게 자료 조사를 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동안 아이돌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다가 최민희 작가의 드라마가 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차기작을 준비했다.
‘솔직히 섭섭하긴 해.’
수한에게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섭섭한 마음이 컸다. 최민희 작가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했는지 다 봤으면서도 최민희 작가와 손을 잡았으니 말이다. 일할 때 사적인 감정을 담아서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랬다.
‘그래서 그 드라마도 일부러 안 보려고 했는데…….’
워낙 반응이 좋아서 궁금해서 재방송으로 하는 걸 봤다. 유지아 작가의 작품을 훔쳐 가서 더 재미있게 만들 만큼 최민희 작가는 각색에 재능이 있기는 했다. 물론 이 작품은 훔친 작품이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작가님 괜찮으세요?”
이쪽 일을 한다면 표절에 더 민감해야 하기에 새로 들인 보조 작가도 유지아 작가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순하디순한 유지아 작가의 성격을 이미 파악했는지 걱정스러운 눈으로 봐서 유지아 작가는 괜찮다는 듯이 웃었다.
“네. 물론이죠.”
말과 다르게 표정은 이미 울상을 지었지만, 설사 섭섭하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TV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확실히 케이블이랑 공중파가 차이가 있기는 하죠?”
“그러게요.”
시청률은 신경 안 쓰고 싶어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커다란 지표였다. 특히나 중요한 게 2040 시청률이다. 실질적으로 지갑을 여는 나이대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고를 넣는 사람들이 신경 쓰는 게 2040 시청률이었다.
정지원 작가와 더불어 유지아 작가의 작품까지 성공하여 케이블의 위상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공중파는 공중파였다.
“시청률이 벌써 20%가 넘었대요.”
아직 10화도 안 넘어갔는데 파급력이 달랐다. 그로 인해 주연진들에 대한 평들도 바뀌었다. 엘 엔터테인먼트 출신들이기에 이제야 빛을 봐서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엘 엔터테인먼트가 오랜만에 홈런을 쳤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마음에 안 들어.’
유지영이 느꼈던 것처럼 아무리 수한이 참여한 프로젝트라고 해도 망했으면 하는 마음이 반이긴 했다. 하지만 결국 수한이 손대서 성공 못 하는 게 없었다. 이 드라마도 끝까지 잘될 거라는 생각에 유지아 작가는 조금 우울해졌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도 문제가 있기는 한 것 같아요.”
“문제요? 무슨 문제요?”
유지아 작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보조 작가가 노트북을 통해 한 글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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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서 많이 본 내용 같지 않음? 표절 전적이 있어서 괜히 의심되네.
ㄴ무슨 작품인데 그래?
ㄴ웹툰 중에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있던 것 같아서.
ㄴ웹툰? 무슨 웹툰?
ㄴ이거임. 보고 판단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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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래로 달린 웹툰 링크에 유지아 작가가 어서 눌러보라고 눈짓을 주니 보조 작가가 마우스를 움직여서 링크를 클릭했다. 그러자 유료 웹툰으로 페이지가 넘어갔다.
사이트를 자세히 살펴보니 대형 포탈에서 만든 웹툰 사이트는 아니었고, 소소하게 19세 전용으로 운영되는 사이트였다.
“크흠.”
살색의 향연 가운데 보이는 웹툰은 유일하게 전 연령으로 볼 수 있는 웹툰이었다. 사이트와 너무 안 어울리는 내용이라서 과연 팔릴까? 의심되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상위권이었다. 처음 부분은 무료 부분이기에 클릭해서 보니 확실히 의심되기는 했다.
“소재가 같죠?”
“네. 그리고 첫 만남 부분도 비슷해요.”
유지아 작가는 팔 위로 소름이 오소소 돋는 걸 느꼈다. 역시 한번 표절한 사람은 두 번도 못 할 게 없었다. 하지만 소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너무 겹쳤다.
“이거 알려 줘야겠네요.”
“그 마루 엔터테인먼트 사장님한테요?”
“네? 네.”
잘 아는 사이이니 더욱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겹치면 나중에 뒤처리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더불어 표절당하는 작가가 느껴야 하는 고통도 심해지므로 되도록 초기에 해결 보는 게 좋았다.
유지아 작가는 곧장 핸드폰을 들어 수한에게 연락했지만, 바쁜 모양인지 수한이 전화를 받지 않아 결국 메시지로 내용을 남겼다. 그만큼 작가들에게 있어 표절 문제는 매우 큰 문제이므로 유지아 작가의 마음이 더욱더 급해졌다.
***
“간이 크네.”
처음 소소하게 나왔던 표절 문제는 시청률이 상승할수록 더 큰 파급력이 생겼다. 하지만 나이수는 그 현장을 이 눈으로 직접 보고 있어도 별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다.
“표절해도 뭐 어때. 성공만 하면 되지.”
실제로 시청률과 화제성이 그를 말하고 있었다. 나이수는 자신이 아는데 수한이 모를 리가 없다고 여겼다. 그 수한이 가만히 있는데 나이수가 괜히 먼저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로 겹쳤는지는 확인 안 해도 되겠습니까?”
“심하게 겹쳤다면 어떻게서든 해결해보려고 움직일 거야.”
나이수의 비서는 여유 있는 나이수의 태도가 이해가 되면서도 걱정은 되었다. 수한이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서였다. 반대로 수한이 나이수에게 물 먹이려고 안 움직이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표절이 그리 쉽게 인정이 되는 줄 아나?”
“하긴 그렇습니다.”
최민희 작가의 전작이 표절로 인정된 건 최민희 작가의 태도 때문이었다. 엘 엔터테인먼트의 입맛대로 마음대로 바꿨기 때문에 사실 작품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지아 작가의 작품과 크게 비슷한 것은 없었다.
게다가 그 당시 유지아 작가는 법으로 해결을 보지도 않았다. 최민희 작가가 알아서 자멸했고, 그로 인해 이득을 본 게 없으니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의심은 해도 표절 작가로 땅땅 두드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김 대표한테 말은 해 둘까요?”
“아니야. 그럴 필요 없다니까. 아! 그렇지! 오히려 작품 홍보하려고 한다고 물타기 정도는 해 두면 좋겠어.”
“그러다가 나중에 여론이 뒤집히면 어떻게 하려고요?”
“우리가 그동안 봐 오던 게 있는데 설마 그렇겠어?”
비서는 나이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고는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가끔 보면 드라마 팬과 아이돌 팬이 크게 다른 것 같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드라마를 욕하는 걸 드라마 좋아하는 자신을 욕하는 거로 착각할 때가 있단 말이야.’
사실 법정에서 표절이라고 인정하지만 않으면 이렇게 초조해할 이유가 없었다. 알아서 방어벽을 쳐 줄 드라마 팬이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양심은 쿡쿡 찔려서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회장님의 말씀대로 김 대표가 문제가 있다면 알아서 나서겠지.’
***
나이수가 예상한 것과 다르게 수한은 ‘더 블랙’의 일로 바빴다. 팬 미팅을 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초기해도 되나 싶지만, 멤버들이 원하니 들어주기로 했다. 팬 미팅 장소는 주혁이 했던 소극장이 아니라 대학교에 규모가 있는 강당을 빌리기로 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웬만해서는 오겠지.”
“그렇죠.”
주혁의 팬 미팅 때 사람을 보냈던 남일을 기억하기에 수한은 혹시 몰라 성민을 통해 확인했다. 성민은 남일은 다른 쪽에 관심을 두고 있어 수한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쪽이요?”
“그래. 요즘에 엘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수한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으나, 수상하게 보는 성민 때문에 모른 척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최민희 작가의 드라마에 표절 의혹이 생긴 걸 성민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언급을 안 하는 건 수한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일 터진 후에 해외로 도피라도 할 거야?”
“요즘 몸 단련 중입니다.”
수한의 말에 성민이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수한은 옆에 경호원도 끼고 다닐 거라 말했다.
“아휴.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만약에 제게 문제가 생기면 실장님께서 저 대신 회사 좀 잘 보살펴 주세요.”
수한은 농담으로 말했으나, 성민은 대놓고 정색했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이야기는 듣기 싫은 탓이었다. 수한은 결국 성민의 잔소리를 피해 아래 연습실로 도망가기로 했다.
‘오. 열심히들 하네.’
그린 콘서트에 선 이후로 더 열심히 하는 게 보였다. 팬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 신날 수밖에 없었다. 수한이 연습실 밖에서 그들을 지켜보니 어느새 뒤로 다가온 안무 디렉터가 와서 말을 건넸다.
“애들. 갈수록 더 열심히 해요.”
“네. 그런 것 같네요.”
“잘은 모르겠지만, 이 애들이라면 확실히 더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한이 당연하다는 듯이 웃자 안무 디렉터는 신곡 안 내냐는 말로 조용히 ‘더 블랙’에 대한 계획을 물었다.
“일단 건우가 예능 프로그램 나가면서 인지도를 얻고 있잖아요.”
“네! 그렇죠.”
“다른 멤버들도 대중의 눈에 익숙하게 그럴 생각입니다.”
물론 단점으로 인물이 더 돋보여서 그룹이 죽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수한이 이들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한 명만 스타성이 있으면 모를까 모두에게 스타성이 있었다.
“곡은 1년에 두 번 주기로 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 더 남은 셈이었다. 안 그래도 지훈과 다음 앨범 곡을 계획 중이기에 수한은 자신 있게 다음 곡도 대박이 날 거라 자신했다.
“다른 아이돌에 비하면 너무 자주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신인이라서 그런 거겠죠?”
“네. 앨범도 정규 앨범이 있고, 미니 앨범이 있고. 종류는 다양하잖아요.”
“다른 가수와 콜라보해서 내는 것도 좋겠네요.”
“네. 안 그래도 지훈 씨나 주혁 씨로 함께하면 재미있지 않을까도 계획 중입니다.”
그전에 주혁과 지훈의 앨범을 내는 것도 중요했다. 이태욱 PD가 건우가 나오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을 찍고 있기에 두 사람에게 자연스레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물론 지훈은 수한과 작곡을 하느라 바빴지만, 주혁은 노래 실력을 더 늘리기 위해 연습했다.
‘일단 주혁 씨부터 내보내는 게 좋겠네.’
안 그래도 주혁에게 드라마 OST 제안이 들어와서 위에서 검토 중이었다. 수한이 제작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시청률이 잘 나올 만한 드라마에 들어가는 게 좋기에 수한은 아는 사람을 통해 대본도 받아 둔 상태였다.
‘원래라면 고작 드라마 OST 하나 부르면서 대본까지 가져가냐고 뭐라 해야겠지만…….’
오히려 저쪽에서는 수한이 대본을 어떻게 볼지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수한도 주혁만큼이나 부담감이 없지 않아 생기기는 했다. 수한은 대표실로 돌아가기 전에 핸드폰을 봤다가 유지아 작가에게서 온 메시지에 ‘아-’ 소리를 냈다.
‘표절이라…….’
성민은 수한이 최민희 작가를 안 믿었다고 생각했겠지마는 수한은 솔직히 반반이었다. 만약 최민희 작가가 표절하지 않는다면 그녀에게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생겨서 좋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엘 엔터테인먼트에는 다른 식으로 물을 먹일 수도 있으니 그래도 괜찮다고 여기려고 했다.
‘조금 씁쓸하긴 하네.’
수한은 역시 최민희 작가에게 연락을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표절이 분명하다면 책임을 지게 하는 게 옳았다. 그러나 그 전에 성민에게서 온 연락에 수한은 쓰게 웃었다.
[큰일 났어.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표절 문제로 사고를 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