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그린 콘서트 이후로 ‘더 블랙’의 추세는 더 좋아졌다. 음악 방송에서 보던 것보다 야외무대에서 보니 실력이 더 부각되어 나타난 탓이었다. 특히나 인기가 좋은 엘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과 비교되게 더 열심히 하니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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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7년 차 아이돌이라고 해도 이건 조금 너무한 거 아니야?
ㄴ7년 차가 이 정도면 열심히 한 거지.
ㄴ열심히 한 거지222 한 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형이 얼마나 크게 달라지는데.
ㄴ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아? 누가 봐도 대충 추던데?
ㄴ부상 때문이라고 다쳤는데 그럼 어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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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밑으로 쭉 싸우는 댓글들이 달렸다. 수한도 현장에서 어떻게 공연을 했는지 봤기에 첫 번째 글에 공감했다. 누가 봐도 건성건성 했는데도 이렇게 감싸 주는 걸 보면 아이돌 팬들의 충성심은 대단했다. 함께 글을 보던 성민도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인터넷에서 싸우는 건데도 엄청 살벌하게 싸우네.”
“네. 그렇네요.”
“다른 직원 이야기 들으니까 이쪽은 이런 게 일상이라고 하네.”
잠깐 보기만 해도 기가 확 질렸는데 이게 일상이라니, 아이돌 사업에 적응한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수 팬들도 이럴까요?”
“지금은 다 같이 영차영차 하겠지만,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오긴 하겠지.”
수한은 다른 것보다 ‘영차영차’라는 단어를 쓴 성민이 웃겼다. 그런 단어를 쓰니까 완전 옛날 사람처럼 느껴졌다. 수한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나중에 그 말을 다시 썼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성민을 놀리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우리 쪽 일이 아니니 지금은 무시해도 되겠죠.”
“아니지. 이럴 때일수록 더 홍보팀을 돌려야지.”
“아! 그렇죠.”
한때 아이돌이 대중에게 익숙하던 시절이 있었다. 탑 아이돌이 나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당시 아이돌은 대중에게 친근한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대가 지나가고, 다른 시대가 왔다.
마니아층을 공략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지금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만 계속 좋아하는 그런 시대였다. 그러니 고객층이 어떻게 보면 한정되어 있다는 거다. 그건 전 세계적으로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한류도 결국 다른 나라의 마니아층이 생긴 것뿐이니까.’
돈 씀씀이가 한국 팬들보다 더 큰 것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나라를 공략하는 엘 엔터테인먼트의 전략이 먹혀들었다.
‘처음 그 생각을 한 게 강우형 이사님이라고 했지.’
나이수도 관심이 있긴 했지만, 강우형만큼이나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강우형이 달리 엘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사까지 올라간 게 아니었다. 그만큼의 큰 성과를 발휘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강우형이 거느린 사람들은 강우형이 어떤 방식으로 일했는지 잘 알고 있어 마루 엔터테인먼트의 큰 도움을 주는 중이었다.
“너튜브 조회 수도 잘 나오고 있죠?”
“그래. 온갖 언어가 댓글로 달려 있더라.”
한류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수한은 계속해서 나간다면 수한이 알던 미래처럼 차세대 탑 아이돌이 될 거라 굳게 믿었다.
“그 엘 엔터랑 하는 드라마 말이야. 다음 주에 방영이지?”
“네.”
“시간이 빨리 흘러가긴 한다.”
“생각보다 관심이 많으시네요.”
“그럼 누가 하는 일인데 관심이 없어?”
수한은 웃으면서 넘어가려다가 무언가 석연치 않아 하는 성민의 표정을 발견했다. 수한의 주변 사람 중에 성민만큼 수한을 많이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기에 수한은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제가 걱정되세요?”
“솔직히 말하면 그래.”
“어째서요? 드라마가 망한다고 해도 그건 엘 엔터테인먼트의 몫이지, 제 몫이 아닌데요.”
수한은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성민은 그게 문제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
“설마 제 명성이 무너질까 봐요?”
“아니. 그게 아니야.”
“그럼 대체 왜?”
“이번 프로젝트 망칠 생각인 거지?”
수한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된 이상 더는 숨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동안 말을 모호하게 해 왔던 것도 있으니 성민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거 안 하면 안 돼?”
“제 뒤에서 도움을 주시는 분이 원하는 거라서요.”
다른 건 몰라도 강우형의 복수를 대신 해 주는 건데 수한도 참여하고 싶었다. 강우형과 친했던 것과 별개로 강우형에게 빚을 진 것도 있으니 말이다. 수한은 불안해하는 성민의 얼굴에 괜찮다고 웃었지만, 성민은 걱정했다.
“내가 느낌이 안 좋아서 그래.”
수한은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이 웃다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강우형을 볼 때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실제로 죽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사람들이 제게 해를 가할 것 같습니까?”
이번에는 성민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수한은 대답을 들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일이 벌어지면 남일이든 나이수든 수한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이미 한 번 사람을 건드려 본 사람들이 아닌가? 두 번 못할 것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어요. 실장님 말대로 할게요.”
수한이 걱정하지 말라고 웃자 성민은 그제야 조금 안심했다. 물론 수한은 하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지만 말이다. 이미 일은 진행되었고, 멈출 수 있는 선을 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성민에게 말하면 계속 불안해할 테니 수한은 당분간 성민에게 숨기기로 했다.
***
나이수는 드라마 첫 방송을 보자마자 크게 안도했다. 케이블에서 방송하지 않아 조금 불만이긴 했지만, 막상 1화를 보니 드라마가 너무 잘 나왔다. 15분 미리 보기로 봤던 영상보다 구도도 더 잘 잡혀서 나와서 나이수는 됐다 싶었다.
나이수는 기분이 좋아 핸드폰을 들어 곧장 수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회장님. 김수한입니다.]
“드라마 봤습니까?”
[네. 저도 방금 확인하는 길이었습니다.]
나이수는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는 걸 겨우 참았다.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숨길 수가 없었다. 나이수가 아무리 감이 없다고 해도 재미있는 걸 재미없게 볼 수는 없었다. 드라마와 관련된 기사를 보니 아래 달린 댓글들 반응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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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방송 진짜 오랜만에 챙겨보게 생김
ㄴ주연 약해서 기대 안 했는데 예상 밖으로 재미있음
ㄴ이 퀄 계속 유지되면 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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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댓글들이었다. 나이수는 다른 댓글도 가져오라고 시킬까 고민하다가 너무 주책은 떨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이런 반응만으로도 안심이었다.
‘이 드라마는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단 말이야.’
내용을 아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여유였다. 나이수는 그런 의미에서 수한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축하 연락도 쏟아지는 중이었다.
“앞으로도 잘해 봅시다. 김 대표.”
[네. 회장님.]
나이수는 전화를 끊은 뒤 기분 좋게 웃다가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에 강우형이 해내지 못한 일을 자신이 해내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마루 엔터테인먼트를 우리 회사 밑으로 들이면 어떨까?’
물론 그 말을 하면 수한이 싫어할 게 분명했지만, 아이돌을 키우고 있으니 이쪽 도움이 있을 게 분명했다. 지금 당장 반응이 좋다고 해도 훅 꺼질 수 있는 이 아이돌계였다.
‘일단 협력부터 시작해서 거리를 가까이하는 게 좋겠군.’
사실 가온 엔터테인먼트를 아래로 데려올 생각이었지만, 남일은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었다. 차라리 수한 같은 사람이 아래에 있는 게 더 믿음이 갔다. 비록 강우형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강우형보다는 조금 더 강직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드라마부터 성공적으로 끝내고 이야기해 보자고.’
나이수는 그대로 자려다가 다른 댓글을 하나 또 발견하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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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다른 작품 뭐 있나 해서 찾아봤더니 로맨스 연대기가 있네?
ㄴ그거 표절 작품 아님?
ㄴ설마 동명이인이겠지. 이름이 흔하다면 흔한 이름이잖아.
ㄴ프로필에 로맨스 연대기 적혀 있는데?
ㄴ설마 또 표절한 건 아니겠지?
ㄴ그건 지켜봐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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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수는 예상한 것보다 더 빨리 밝혀진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걸 수한에게 보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우선 일단 자기로 했다. 최민희 작가에게 표절 작품이 있는 것과 별개로 지금 드라마가 표절 작품이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찜찜한 건 찜찜한 거라 나이수는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
***
“역시 이 이야기가 나오긴 했네.”
나이수가 본 것을 수한이 못 봤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수한은 나이수가 모른 척했듯이 똑같이 모른 척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만한 각오는 하고 최민희 작가를 작가로 내세운 거니 말이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들어오라고 하니 성민이 씩 웃으면서 커피를 들고 왔다. 수한은 유난히 밝은 성민의 얼굴에 의아해하며 성민이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이 커피가 탕비실 커피가 아닌 외부에서 사 온 커피라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이거 설마 법인 카드로 산 건 아니겠죠?”
“당연히 아닙니다. 대표님.”
수한이 안심하며 다시 커피를 마시자 성민이 쪼잔하다는 듯이 수한을 봤다. 성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에서 다 보이니 수한은 민망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회사 대표가 되니까 다르긴 하네요.”
“네. 그러시겠죠.”
“그래서 이 커피는 왜 사 주시는 겁니까? 뭐 잘못한 거 있습니까?”
“아니요. 어제 드라마 봤는데 되게 재미있어서요.”
수한이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으니 촬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성민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전 촬영이라서 설사 성민의 말대로 나쁜 일에서 손을 뗐다고 하더라도 어제 방영분에 영향이 갈 리가 없었다.
“제가 완결까지 쭉 봤는데 아마 끝까지 재미있을 겁니다.”
“대표님이 선택한 건데 아마도 그렇겠죠. 그런데요. 대표님.”
“네.”
“그대로 갈 거 아니죠?”
수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성민을 보자 성민이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핸드폰 화면을 켜서 수한에게 대놓고 보여 주었다. 드라마 작품 아래로 쓰여 있는 작가의 이름을 말이다.
“이 작가 이름을 제가 기억하지 못하겠습니까? 대표님?”
최민희 작가. 유지아 작가와 함께 만났으니 성민이 기억 못 할 리가 없었다.
“이거 대본에 문제없는 거죠?”
수한은 다른 건 몰라도 성민의 눈치 하나만큼은 못 따라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때에는 더럽게 눈치가 없으면서 이럴 때는 눈치가 굉장히 빨랐다. 그래서 수한은 결국 두 손을 들기로 했다.
“글쎄요. 그건 작가 양심에 달려 있겠죠.”
수한의 말에 성민은 어이없다는 듯이 수한을 쳐다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 작품이 표절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저도 확실히는 모릅니다. 전 그저 최민희 작가에게 기회를 다시 준 것뿐이니까요.”
만약 표절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 거다. 하지만 성민은 그 말을 좋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수한이 최민희 작가를 전혀 믿고 있지 않다는 걸 싸늘한 미소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