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수한은 유지영이 보낸 메시지를 보고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응원 봉 잘 받았다며 인증 사진까지 보낸 탓이었다. 누가 콘텐츠 제작하는 사람 아니랄까 봐 사진도 정성스레 찍어서 올렸다.
수한은 지인 찬스로 먼저 달라고 한 것을 거절하고, 다른 팬들과 동등하게 응원 봉을 주었다. 괜히 딴 데 새어 나갔다는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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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치사하긴 한데 그래도 맞는 말이니까 뭐라고 하지는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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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응원 봉과 함께 건우의 사인을 따로 전달해 줬더니 굉장히 기뻐했다. 수한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지영이 이럴 줄은 몰랐기에 조금 충격이긴 했다.
“뭐, 어차피 같은 업계 사람인데 좋아할 수도 있지.”
생각보다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성민의 모습에 수한은 살짝 놀랐지만, 곧 팬클럽에 가입한 연령대를 듣고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은근히 유지영의 나이대 사람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긴 누굴 좋아하는 건 죄가 아니니까.’
오히려 삶의 활력을 이런 데서 찾는다면 그것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다 고객이니 말이다. 도리어 지갑을 더 활짝 열 수 있는 나이라서 수한은 무조건 환영하기로 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오늘이었다. 그린 콘서트를 하는 날이었다.
“갑시다!”
“풍선은 잘 챙겨서 보낸 거죠?”
“네. 이미 현장에서 팬들에게 나눠 주고 있어요.”
그린 콘서트처럼 여러 가수가 모일 때는 팬들끼리 모여 앉는다고 해서 수한도 신기해했다. 이미 ‘더 블랙’ 멤버들은 현장에 가서 리허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니 수한도 서둘러 출발하기로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차가 막히네요.”
“이런 날이야말로 공연 보기 좋은 날이지.”
하늘은 푸르고 날씨도 선선한 게 확실히 그 말대로 공연 보기 좋은 날씨였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차가 막혀서 수한은 태블릿 PC로 업무를 처리하면서 가다가 유지영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고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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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애들 공연한다면서요?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잘 달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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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이라는 호칭에 수한은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이리 보니 서이나 때보다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다. 나중에 단독 콘서트라도 하면 좋은 좌석을 빼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건 그때 생각하자고.’
차는 계속해서 밀리다가 특정 구간을 지나자 뻥뻥 뚫리기 시작했다. 하도 차가 막혔던지라 도로가 뚫리자 제 가슴도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역시 공연장 앞에서는 차가 밀렸다.
“공연장이 생각보다 넓네요?”
그린 콘서트는 이름과 맞게 공원에서 콘서트를 했지만, 그 규모는 컸다. 수한은 이 정도면 그냥 잠실에서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확실히 주혁이 때와 분위기가 다르긴 하네.”
수한은 성민의 말에 공감했다. 1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나이가 최고로 많아 봤자 20대였다. 수한은 이 자리에 유지영이 왔으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궁금해졌다. 더불어 근처에 잡상인도 많아서 안 그래도 복잡한 길이 더 복잡해 보였다.
“저기 봐 봐. 우리가 만든 응원 봉 든 애들 보여.”
‘더 블랙’의 팬들이 곳곳에서 보여 수한은 새삼 신기해했다. 여기서 수한은 솔로 가수와 아이돌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수한의 그런 생각을 알아챘는지 성민이 옆으로 슬쩍 와서 말했다.
“그래도 소원이면 아이돌 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둔 가수죠.”
“그런가요?”
“그럼요. 소원 팬들 실제로 본 적 있잖아요.”
본 적이야 있기는 했다. 그쪽에도 수한의 얼굴이 알려져서 가끔 만나면 아는 척을 해서 더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유지아 작가의 드라마에 또 카메오로 출연하면서 그들 사이에서도 수한의 이야기가 나오긴 했다.
수한은 솔직히 그들이 한 대화를 보고 팬들이 생각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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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우리 소원이 매니저였잖아.
ㄴ아! 그? 팬 서비스 엄청 시키던?
ㄴ지금은 마루 엔터테인먼트 대표라는데?
ㄴ이번에 소원이랑 음원 같이 나왔던 고주혁 기획사 이름이지?
ㄴ소원 재계약 기간이 어느 정도 남았지?
ㄴ그럼 저쪽으로 옮겨 가는 거 아니야?
ㄴ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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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반응도 성민이 보여 준 거였다. 소원을 어차피 데려올 거면 팬들의 반응도 한번 살피는 게 좋겠다는 게 성민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수한도 팬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조용히 살폈다.
결과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겠다는 게 그들의 결론이었다. 특히 요즘 ‘더 블랙’에게 해 주는 것을 보니 아이돌 회사로서도 나빠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비교해서 봐야 할 건 주혁이지만, 이상하게 ‘더 블랙’과 비교해서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소원 씨를 아이돌 계열로 보는 건가?’
어쨌거나 이 현장에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귀엽기는 했다. 수한이 미래에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세계이니 말이다. 성비를 보니 남자보다는 여자가 월등히 많았다.
“우리 직원들은 저쪽에서 풍선을 나눠 주고 있어요.”
그 말대로 공연장 입구 구석으로 가니 풍선을 보이는 사람한테 다 나눠 주고 있었다. 어차피 많은 수량을 준비해서 마구 줘도 상관은 없으나, 받아서 주머니에 간직하는 어린 애들을 보니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이쪽은 저도 잘 알지 못하지만, 더 블랙은 이상하게 크게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뒤에서 받쳐 주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돈을 마구 써서 위로 올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적절한 곳에 적절히 돈을 쓰는 게 나중을 위해서도 합리적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준환이 수한을 좋아하기도 했다.
수한은 뒷배가 있다고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수한은 고생한다고 직원들에게 인사하다가 풍선을 받게 되었다. 이런 풍선은 또 오랜만에 불게 되어서 기분이 남달랐지만, 조금 이따가 필요할 것 같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우리 애들 보자고요.”
“네.”
이미 리허설도 마쳤다고 하니 대기실에 가서 응원하는 게 지금의 최선이었다. 대기실로 가니 신인답게 다른 가수와 방을 같이 썼다. 밝은 성격답게 벌써 옆 아이돌과 친해져서 수한은 그 친화력에 놀랐다.
“대표님!”
수한은 어서 오라고 끌어당기는 멤버들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긴장해서 얼어붙어 있을 줄 알았더니 벌써 무대에 적응한 모습이었다.
“밖에 우리 팬들 많아요?”
“일단은 많아 보이는데 무대에 서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멤버들도 초창기 팬 사인회 이후로는 팬들을 볼 기회가 없었으니 기대하는 듯했다. 특히나 누가 바람을 넣어 준 건지 팬클럽 회원 수가 크게 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 기대감에 차올랐다. 하지만 수한도 밖에서 본 것만으로는 아직 가늠되지 않았기에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멤버들도 너무 기대하지는 말자는 얼굴이라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비록 오늘 온 팬이 적다고 해도 이제 시작이니까요.”
“네!”
건우만 해도 지금 이 현장이 꿈인가 생시인가 구분이 안 될 정도이니 이렇게 공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수한은 스윗걸즈를 통해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모두를 다독여 준 뒤 공연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저는 잠깐 근처 관계자들한테 인사하고 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출연 가수들에게는 이미 인사를 돌았기에 ‘더 블랙’ 멤버들은 시끄럽게 자리에 앉아서 메이크업을 받았다. 수한은 나중에 더 적응되면 더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린 콘서트 관계자를 만나러 갔다가 뜻밖에 인물을 만나고 말았다.
“선배님?”
“어?”
명훈이었다. 설마 이 현장에서 명훈을 만날 줄 몰랐기에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선배라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역시 이 호칭이 너무 입에 붙었어.’
사실 좋게 볼 이유가 없기에 수한은 인사만 하고 가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명훈이 수한을 붙잡았다. 얼굴을 보니 수한이 말한 ‘선배’라는 호칭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기획사 차렸다며! 축하한다!”
“아! 네.”
명훈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지만, 저쪽에서 먼저 밝게 인사하니 수한은 내색하지 않고 대하기로 했다.
“선배님도 기획사 차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응. 이번 공연에 우리 회사 애가 나오거든. 원래는 내가 안 와도 되는 건데 이런 콘서트는 처음 오는 거라서 함께 왔지 뭐야.”
그러고 보니 ‘SSS급 슈퍼스타 시즌 7’에 나왔던 출연자 이름을 언뜻 스쳐 가면서 본 것 같기도 했다. 그나마 여기서 의식이 되었던 게 엘 엔터테인먼트밖에 없어서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안 좋은 일이 있긴 했지만, 다 과거 일이잖냐. 좋게 지내자고.”
“네. 저도 과거 일은 잊었습니다.”
말과 다르게 전혀 잊지 않았지만, 수한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명훈이 그린 콘서트 관계자와 먼저 인사를 나누었는지 명훈은 자연스레 관계자를 수한에게 소개했다. 그런 점에서 수한은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에 대한 나쁜 감정은 없나 보네.’
물론 돌아오기 전 미래에서도 이런 식으로 친절하게 굴다가 뒤통수를 쳤지만, 이번에는 그럴 게 있나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생각은 없으므로 수한은 명훈이 베푸는 친절을 일단은 받아들였다.
“힘든 일 있으면 제게 말씀하십시오.”
“아니야. 요즘 너무 좋아. 일이 너무 잘 풀려. 이재성 PD가 새로 하는 프로그램에도 우리 소속사 애 들어갔거든. 반응 좋더라.”
명훈의 말에 수한은 웃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부드러워졌나 했더니 여유가 있어서였다. 수한은 그 여유가 언제까지 갈까 궁금해하며 콘서트가 시작하기가 무섭게 명훈과 헤어졌다.
멀리서 수한과 명훈을 보고 있었는지 성민이 걱정스러워하며 수한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둘이 오래 얘기하던데 싸운 건 아니지?”
“싸운 건 아닙니다. 아주 잘 지낸다고 하던데요.”
“하기야 그렇겠지.”
남일에게서 명훈이 어떤 식으로 입안의 혀처럼 구는지 들은 적이 있기에 성민은 쓰게 웃었다. 저런 간신배는 옆에 두는 게 아니다.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저에 대한 감정이 풀렸나 봅니다.”
“그 말은 여유가 없어지면 다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잖아.”
“한번 보자고요. 그렇게 되는지.”
수한의 의미심장한 말에 성민은 멈칫하다가 수한과 시선이 마주치자 따라 웃었다. 역시 수한이 무언가를 뒤에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이대로 놔둬도 되는 건가?’
제 앞가림을 잘하는 성격이니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성민은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특히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하는 그 드라마 말이다. 이상하게 자꾸만 마음에 걸려서 성민은 시간 날 때 수한에게 조용히 경고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실장님. 이제 우리 애들 차례예요.”
그 말에 성민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더 블랙’ 멤버들이 나가는 것을 수한과 함께 지켜봤다. 무대에서 살짝 벗어나 공연석을 보니 말이 안 나오게 멋진 광경이 보였다.
“와.”
아이돌마다 응원하는 색깔이 다르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았다. 수한과 성민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많은 하얀 색을 보고는 크게 웃었다. 걱정하던 것과 다르게 팬이 굉장히 많이 왔다.
옆에 있는 붉은 계열의 응원 봉보다는 그 수가 적긴 했지만, 그래도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서 ‘더 블랙’ 멤버들의 얼굴에도 하얀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