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74화 (174/186)

174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나이수는 결말까지 완벽한 대본의 상태를 보고 만족해하며 웃었다. 역시 수한이 들고 온 대본다웠다. 물론 나이수의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 대중에게 통하니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을 보내 현장 이야기를 들으니 촬영 분위기도 좋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수한이 함께하는 드라마는 늘 분위기가 좋다고 한다.

“이번 드라마는 대박 날 것 같습니다.”

15분 미리 보기 영상을 보니 감독의 솜씨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좋지도 않았지만, 수한이 택한 사람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어떻게 이런 것들만 들고 오는 거지?”

“안목이 그만큼 좋은 것 같습니다.”

나이수는 대본 앞에 적혀 있는 ‘최민희’를 봤다. 그러고 보니 처음 받았을 때부터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흔하다면 흔한 이름이라 나이수가 그 이름을 보며 의문을 가지자 나이수의 비서가 서둘러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주었다.

“전에 로맨스 연대기를 썼던 작가입니다.”

나이수는 소름이 돋았다. 드라마 제목을 들으니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표절 작가라는 게 아닌가? 표절 문제도 최민희 작가 스스로 자멸했기에 더 기억이 선명해졌다. 그런 사람을 썼다고 하니 의문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런 사람을 쓴 거지?’

설마 개과천선이라도 한 걸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 번 표절한 인사가 두 번은 못 할까. 설사 표절을 했다고 해도 대중들은 재미있기만 하면 상관이 없으므로 나이수는 이 일을 문제 삼을까 하다가도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그것과 별개로 나이수는 나이수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이 친구를 너무 좋게만 평가했어.’

한 기획사의 대표가 된 이상은 더러운 일에도 손을 적셔야 하는데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이수만 해도 더러운 일에 하도 손을 담가서 손이 아주 까맸다. 하긴 마루 엔터테인먼트가 그냥 잘나갈 리가 없었다. 나이수는 새삼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입안이 아주 썼다.

‘굳이 따로 확인할 필요는 없겠지?’

설사 최민희 작가를 믿어서 데려왔다고 해도 나이수는 상관없었다. 뭐 어찌 되었든 성공만 하면 되니까 나이수는 이대로 의문을 속으로 묻은 채 지나가기로 했다.

“그보다 마루 엔터테인먼트에서 키우는 더 블랙이라는 그룹 말입니다.”

“그 그룹이 왜?”

수한이 정성을 들이는 아이돌이라는 걸 들어서 알고 있기는 했다. 그래서 수한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이야기도 했고 말이다.

“요즘 상승세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 해외 반응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진심으로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도 나이수는 피식 웃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가 키워 낸 아이돌이 한둘이 아니다. 잠깐 빛났다가 꺼지는 아이돌이 그동안에도 많았다. 물론 그조차 해내지 못한 아이돌이 많았지만, 나이수는 큰 걱정이 없었다.

마약 사건쯤이야 나중 가면 지나갈 일이다. 팬들도 잠깐은 창피해서 고개를 돌릴 수도 있겠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떻게든 이미지 세탁만 잘하면 다시 돌아오는 게 팬이었다.

연예계에서 마약 사건이 터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선례를 몇 번이나 겪었기에 나이수는 시간이 말해 줄 거라 굳게 믿었다.

그러한 가운데 들려오는 신인 아이돌 그룹 하나쯤이야 별거 아니었다. 아무래도 차세대 탑 아이돌이 아직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지 않아서 초조해하는 게 분명해 나이수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

“조만간 준비해 두었던 애들 내보내야겠어.”

“기사 낼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늘 그랬듯이 선배 그룹이 후배 그룹을 이끄는 모양새로 갈 생각이었다. ‘더 블랙’이고 뭐고 생각나지도 않게 할 대형 그룹을 만들어 새로운 붐을 만드는 게 나이수의 또 다른 계획이었다.

‘이참에 엘 엔터테인먼트의 힘을 보여 줘야지.’

드라마 쪽에서는 수한이 힘을 잘 쓰겠지만, 아이돌 쪽에서는 달랐다. 그동안 엘 엔터테인먼트가 쌓아 둔 경험이 만만치 않았다. 나이수는 이참에 수한에게 단단히 제힘을 보여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위기라고 수한에게 굽신거렸던 걸 과거를 만회할 좋은 기회였다.

“오랜만에 연습실에 좀 내려가 봐야겠군.”

“네. 그러면 준비하게 하겠습니다.”

“그래.”

이참에 수한의 높아진 콧대를 제대로 꺾어 줘야겠다. 남일에게도 무언가를 보여 줄 좋은 기회였다.

***

수한은 이번에 만들어진 ‘더 블랙’의 응원 봉을 보고 새삼 신기해했다. 스윗걸즈 때도 이런 물건들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누군가에게 나눌 정도로 인지도가 있지는 않았기에 만들 수 없었다.

‘더 블랙’이라는 이름과 맞게 응원 봉 전신은 까맣게 만들었지만, 스위치를 켜니 하얀 불빛이 멋지게 빛났다.

“예쁘게 나왔다고 직원들도 나눠 가졌어.”

“주혁 씨도 이런 걸 만들어야 할까요?”

“그건 생각해 보자고. 주혁이가 원한다고 하면 만드는 것도 좋고.”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주혁은 일본 투어까지 한 가수였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다시 얻긴 해도 본질은 가수이므로 콘서트까지 생각하면 역시 만들어야 한다.

“그럼 그건 주혁 씨 콘서트 일정이 잡히면 만들죠. 더 블랙처럼요.”

“그래. 주혁이가 알면 좋아하겠네.”

‘더 블랙’도 당장은 그린 콘서트에 참여하기 때문에 만든 거였다. 그린 콘서트는 환경 관련된 콘서트였다. ‘더 블랙’ 단독 공연은 아니고, 여러 가수가 모여서 공연을 하므로 곡 수가 부족하다고 해도 부담이 없었다.

‘더 블랙의 팬 규모를 실제로 볼 좋은 기회니까.’

팬클럽 회원 수가 날이 갈수록 늘기는 하지만, 숫자로만 봐서 그런지 아직은 체감이 되지 않았다. 물론 ‘더 블랙’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견제보다 호의적인 반응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그걸로도 부족한 감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한은 이 그린 콘서트를 기대하게 되었다. ‘더 블랙’뿐만이 아니라 엘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아이돌을 내보낸다고 한다. 마약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멤버가 속한 그룹이라고 하지만, 그 멤버는 내보내지 않는다고 하니 비난 여론이 있기는 해도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이참에 거기 규모도 제대로 보자고. 너도 함께 갈 거지?”

“네. 저도 그런 현장이 궁금하긴 했거든요. 그리고 응원 봉도 흔들어 보고요.”

원래라면 이런 응원 봉을 만드는 데 꽤 시간이 걸려야 하지만, 수한은 어차피 할 거면 빨리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미 강우형의 밑에서 이런 작업을 한 적이 있는 직원이 있기에 더 빠르게 진행된 것도 있었다.

중소 기획사답지 않은 빠른 실행력에 마루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아이돌 팬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얼마나 중소 기획사들이 일 처리들을 못 하면 그와 관련된 비하 단어가 있을까?

수한은 요즘 아이돌 팬들 생태계를 세세하게 공부하고 ‘더 블랙’을 데뷔시킨 것이기에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 덕분인지 ‘더 블랙’의 위세가 갈수록 높아지는 중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애들이 못하면 안 되니까 연습 더 시키자고.”

“저희가 나서지 않아도 열심히 하던데요.”

얼마 전에 팬들에게서 선물이 왔다고 주니 엄청 좋아하던 게 생각났다. 그걸 보니 초창기 주혁이 생각나서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런 시기에 가장 위험한 게 뭔지 알지?”

“네. 알죠. 스타병이요.”

어중간하게 이름이 알려졌을 때 걸린다는 병의 이름이었다. 예전에 소원 때문에 만난 적이 있던 그룹이 있으므로 수한도 그 병에 걸리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았다.

‘그러고 보니 거기도 블랙이라는 이름이 들어갔던 거 같네.’

수한은 괜히 ‘더 블랙’ 아이들과 엮일까 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애들 관리에 더 힘쓰기로 했다. 어중간한 인기로 스타병을 얻기 전에 위로 쭉 솟아 올라가게 할 계획이었다.

“그래도 이거 주면 좋아할 것 같으니 조금 이따가 영상 촬영이라도 하게 해서 팬카페와 SNS에 올리죠. 어차피 디자인은 이미 올린 상태이니 실물을 궁금해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어차피 완성작이어서 지금 보여 줘도 상관은 없었다. 수한은 완성된 응원 봉을 책상 서랍 안에 넣으며 뿌듯해했다. 적어도 공식 응원 봉이 없어서 팬과 가수, 모두를 기죽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

“으아! 끝!”

유지영은 새로 만드는 영화 제안서를 완성한 뒤 가볍게 몸을 쭉 폈다. 역시 한 회사의 대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유지영은 유지아 작가가 사다 준 홍삼을 쭉 들이켠 후 몸을 흔들어 홍삼이 몸에 흡수되게 유도했다. 몸을 흔든다고 해서 빨리 흡수되는 것도 아니지만, 유지영은 피곤 좀 날아가라며 몸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러다가 유지아 작가가 메시지로 보낸 동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얘 요즘 아이돌에 푹 빠졌다고 했지?’

밑에 보조 작가를 두니 여유가 생긴 모양인지 세상 것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어차피 작가 일을 하려면 여러 가지 보고 배우는 게 있어야 하기에 유지영은 그 변화를 나쁘게 보지는 않았지만, 하필 또 빠진 게 아이돌이라 걱정은 되었다.

‘그래도 작품은 쓰겠지?’

여자주인공으로 예진을 쓴 건 신의 한 수였다. 이광무 감독의 영화를 봤을 때만 해도 진지한 것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언제 연기력이 그렇게 늘었는지 로맨틱 코미디 연기도 매우 잘했다.

유지아 작가를 계기로 유지영과도 인연이 닿아서 유지영은 예진을 차기작 영화 주인공으로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역시 김수한 씨와 알게 되어서 나쁘게 된 건 하나도 없단 말이야?’

요즘 유지아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던 최민희 작가와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기분이 안 좋긴 했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니 원망하고 싶은 마음을 접었다.

그쪽에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고 하고, 작품도 너무 좋아서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무엇보다 지아가 괜찮다고 하잖아.’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니 섭섭한 감정은 일단 접어 두기로 했다. 대신 수한이 참여했음에도 이 드라마가 망하길 진심으로 바랐다.

어쨌거나 유지영은 유지아 작가 보낸 영상을 클릭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애들이네?’

유지아 작가가 아주 얇고 넓은 취향을 가져서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영상을 쭉 보게 되었다. 어차피 10분도 안 되는 길이라서 금방 보고 말겠지 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이상하게 집중하게 되었다.

“여러분 이게 뭔지 아나요?”

“짜잔!”

유지영은 귀엽게 웃는 그 얼굴을 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줄 알았다. 새까만 응원 봉을 흔들며 공식 응원 봉이 나왔다며 귀여운 얼굴로 상큼하게 웃는데 유지영은 그 순간이 세상이 느리게 보였다.

‘이 귀여운 애는 누구지?’

영상을 쭉 보고 나니 이 아이돌이 누구인지 궁금해져서 영상 제목을 보니 ‘더 블랙’의 공식 응원 봉 공개 영상이라고 쓰여 있었다.

‘잠깐만 더 블랙이라면?’

유지영이 검색창에 ‘더 블랙’을 치니 그 아래 마루 엔터테인먼트가 나왔다. 유지영은 얼마 안 가서 그 귀여운 애의 이름이 건우라는 걸 알게 되고는 조용히 뮤직비디오부터 시작해서 무대 영상을 쭉 보게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데뷔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자료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유지영은 마지막으로 팬클럽 가입마저 마친 뒤 수한에게 연락했다. 가장 먼저 응원 봉을 받을 수 없느냐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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