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71화 (171/186)

171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수한이 엘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말이 돌자 바닥을 쳤던 엘 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수한은 그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새삼 자신의 가치가 이렇게 높았나 싶었다.

“역시 우리 대표님이야.”

“저도 솔직히 놀랐네요. 제 가치가 이렇게 높은 줄 알았으면 더 나댈 걸 그랬어요.”

수한의 말이 반쯤 진심이라는 걸 아는 성민이라서 괜히 소름이 돋았다. 역시 수한은 적으로 두는 것보다 같은 편일 때가 훨씬 좋다.

“더 블랙 현황은 어떤가요?”

“팬 카페 가입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어. 왜 팬클럽 안 만들어 주냐고 벌써 그러던데?”

“팬클럽 준비는 다 잘 되고 있죠?”

“그럼. 누가 시킨 일인데.”

수한이 가볍게 손을 들자 성민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웃었다. 일이 많기는 해도 하나같이 잘 풀려서 다행이었다.

“그 엘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 말이야. 우리 애들 넣을 생각은 없어?”

서이나뿐만이 아니라 그사이에 배우들 몇몇과 더 계약했기에 내보내려고 한다면 내보낼 수 있는 배우가 많아졌다. 주연도 있지만, 조연 롤인 배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수한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은 오롯이 엘 엔터테인먼트가 혼자 공먹게 놔둘 겁니다.”

그 말에 수한이 호의적으로 엘 엔터테인먼트와 손잡은 줄 알았던 성민은 어쩌면 이게 호의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회사에는 절대 폐 끼치지 않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성민은 안 좋은 생각이 잠깐 돌았지만, 지우기로 했다. 수한이 설사 엘 엔터테인먼트를 물 먹이는 일을 한다고 하여도 수한은 아무 이유 없이 그러는 사람이 아니다. 우습게도 남일과 다르게 수한을 향한 믿음은 굳건해서 성민조차 어이가 없었다.

“그럼 잠시 방송국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수한은 옷걸이에 걸어 둔 겉옷 하나만 걸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이태욱 PD와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성민은 늘 바쁜 수한을 보며 저러다가 결혼은 영 못 할 거라 확신했다. 아니, 결혼 이전에 연애도 못 할 게 뻔했다.

‘너나 나나 일 중독자로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어.’

수한이 이 생각을 안다면 조금 억울해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른 말도 아니었다. 수한은 안쓰럽다는 듯이 보는 성민의 눈빛에 무언가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하면서도 애써 무시하며 케이블 방송사로 출발했다.

“안녕하십니까.”

수한이 자연스레 예능국으로 가자 이태욱 PD뿐만이 아니라 여러 PD가 수한을 반갑게 맞이했다. 물론 자리에 있던 이재성 PD는 수한을 불쾌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이재성 PD의 시점에서 볼 땐 수한이 단물만 쏙 빼먹고 간 도둑놈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는 도와주나 봐라.’

주혁의 화제성을 다시 살린 것도 자신이건만 이태욱 PD만 챙기는 꼴을 보고 있자니 심사가 뒤틀렸다. 그런 이재성 PD의 시선을 수한이 못 느낄 리가 없기에 수한은 잠시 이태욱 PD에게 시간을 달라고 눈짓을 보낸 뒤 이재성 PD의 앞에 섰다.

“오랜만입니다. 이재성 PD님.”

인제 와서 아는 척한다고 해도 받아 줄 생각이 전혀 없던 이재성 PD는 괜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봐도 삐친 티를 다 내고 있어서 수한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을 티 내지 않으며 챙겨 온 비타민 음료를 이재성 PD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새 프로그램에 들어가신다고 하더니 혈색이 좋아지셨네요.”

“흥.”

이재성 PD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자 수한은 이 유치한 인간을 어떻게 구워삶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SSS급 슈퍼스타’ 시절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보내 주신 기획안 봤는데 제 생각에는 SSS급 슈퍼스타보다 더 파급력이 클 것 같아요.”

수한의 말에 이재성 PD뿐만이 아니라 몇몇 사람의 귀가 움찔거렸다. 이재성 PD도 더는 수한을 모른 척하지 않고 눈을 빛내며 수한을 봤다. 더 이야기해 보라는 얼굴에 수한은 웃음이 나왔다.

“제가 보기에 백 퍼센트 성공합니다.”

“그래요? 김 대표님이 봐도 재미있겠죠?”

“네. 저희 기획사에서 신인을 내지 않았다면 그 애들을 여기에 내보냈을 겁니다. 그만큼 확신이 드네요.”

수한의 A급 연기력이 발동되면서 정말로 아쉽다는 표정을 짓자 이재성 PD가 속아 넘어갔다. 수한은 생각보다 단순한 이재성 PD의 뇌 구조에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잘 속아 주니 다행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속인 것도 없었다.

‘진짜로 성공해서 대한민국의 붐을 일으켰으니까.’

특히나 이재성 PD가 부리는 악마의 편집이 꽤 효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다. 악마의 편집도 갈수록 기술이 늘어나서 과연 출연자가 어떻게 저기에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측은한 감정이 들 정도였다.

“성공하면 나중에 한번 밥 한 끼 사 주시죠.”

“좋아요. 성공만 하면 못 할 거 없죠.”

이재성 PD 자신도 이 프로그램이 잘될 거라 직감했기에 더 들떴다. 특히나 실패한 적이 없는 수한이 그 말을 하니까 더 마음의 확신이 생겼다.

‘이건 무조건 된다.’

이재성 PD는 멀리서 이 현장을 지켜보는 이태욱 PD를 보며 실실 웃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게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럼 저는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수한은 어깨를 으쓱거리는 이태욱 PD를 보며 웃었다. 이태욱 PD는 수한이 무슨 의도로 이재성 PD에게 가서 자신감을 채워 줬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기에 의아해하면서도 수한과 단둘이 이야기할 수 있게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수한은 능글맞게 웃으며 먼저 화제를 꺼냈다.

“조금 전에 보니까 기 싸움이 장난이 아니네요.”

“둘이 한다기보다는 자기 혼자 하는 거죠.”

이태욱 PD는 같잖다는 듯이 이재성 PD가 있는 방향을 보았다. 유난히 이재성 PD가 견제를 많이 해서 그런지 둘의 사이가 안 좋은 건 잠깐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근데 그렇게 해도 되나요?”

“뭐가요?”

“저렇게 띄워 주면 자기 잘난 줄 알고 날뛸 텐데요. 저러다가 걸리면 크게 한번 데일 텐데.”

수한은 이태욱 PD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는 쓰게 웃었다. 이 업계에 쭉 퍼져 있는 조작 이야기를 같은 예능국에 있는 이태욱 PD가 모를 리가 없었다. 이미 조작 관련되어서도 나눈 적이 있는지 이태욱 PD는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이 이재성 PD가 있는 방향을 보았다.

“그 또한 자기 선택이니까 어쩔 수 없죠.”

수한의 말에 이태욱 PD의 눈이 크게 떠졌다. 수한이 이재성 PD를 띄우면서도 정작 연습생을 내보내지 않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수한은 말없이 앞에 있는 주스를 마시고는 미소만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태욱 PD는 본래 목적을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무슨 제안할 게 있다고 하고 오신 것 같은데.”

“네. 아예 시즌제로 여러 장르 예능을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떤가 싶어서요.”

이태욱 PD는 조용히 눈을 깜빡이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이태욱 PD가 하고 싶은 것과 수한이 말하는 것이 일치해서였다. 게다가 수한이 먼저 말함으로써 이 기획이 어쩌면 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시리즈를 다양하게 해서 시즌제로 번갈아 가면서 나오게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이태욱 PD님 쪽으로 힘이 갈 거라 생각합니다.”

일명 사단을 만들라는 이야기였다. 이재성 PD는 전혀 염두에 담지 않은 말이라서 이태욱 PD는 웃어 버렸다. 어차피 자멸할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저도 서바이벌 프로그램 같은 걸 하면 안 되겠죠?”

“윗선의 명령을 거절할 자신 있으면 하셔도 좋죠.”

하긴 이재성 PD도 처음부터 조작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다. 모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이런 일을 하게 된 걸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즌제 예능에 들어갈 출연진을 추천하고 싶은데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수한의 안목은 믿고 들어가는 게 있기에 이태욱 PD는 어디 말해 보라는 듯이 흔쾌히 수한을 보았다. 선택할지 말지는 이태욱 PD의 손에 달렸지만, 이번에도 수한은 자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엘 엔터테인먼트와 다시 손잡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그 말이 이태욱 PD의 귀에까지 들어갈 줄 몰랐기에 수한은 살짝 놀랐다. 하지만 거짓 소문은 아니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되네요. 이번에도 케이블 쪽으로 들어갈 건가요?”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지원 작가와 유지아 작가의 작품이 잘나가서 당연히 이번 작품도 케이블에 먼저 넣을 줄 알았기에 이태욱 PD는 살짝 놀랐다. 요즘 수한과 방송국의 사이가 무척 좋지 않은가? 특히나 이번에 유지아 작가의 작품도 잘되고 있어서 수한이 또 어떤 작가를 추천할까 방송국에서도 기대하는 게 있었다.

“얼마 안 가서 재미있는 작품이 하나 나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수한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이태욱 PD는 살짝 기대하게 되었다. 타 방송국에서 방영하겠지마는 어차피 그건 드라마국의 일이니 이태욱 PD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

나이수는 요새 부쩍 바뀐 회사 분위기에 웃어야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이게 다 한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새삼 소름이 돋았다.

‘김수한과 손잡은 건 현명한 선택이었어.’

수한이 진두지휘하는 새 드라마라고 하니 기대하는 얼굴이 많아졌다. 그러면서도 나이수가 또 수틀려서 쫓아내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지난번에도 비슷하게 일을 시켜 먹었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쫓아낸 전적이 있어서 그랬다. 쫓아내기만 했으면 다행인데 말아먹기까지 했으니 문제였다.

‘사람을 무엇으로 보고.’

한번 한 실수를 두 번 하는 편은 아니라고 나이수 스스로 생각했다. 그동안 날린 돈을 생각하면 절대 그런 말을 못 할 텐데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수한이 하자는 대로 따를 생각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방어가 되긴 했네.’

수한에게 마음 급하다고 티 냈던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주주들도 수한이 이번 일에 참여한다니 기대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이수는 한숨 크게 돌리게 되었다.

그와 별개로 나이수는 수한이 내놓은 캐스팅 목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음…….”

수한이 진두지휘 중이기에 당연히 수한과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을 넣을 줄 알았는데 다소 인지도가 떨어지는 배우들이 보였다. 웃긴 건 그 배우들이 하나같이 엘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는 거다. 그래서 이상했다.

‘당연히 자기네 소속사 배우들을 넣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걸려 수한에게 연락하게 되었다. 수한은 바쁜지 두 번은 안 받다가 세 번째가 되어서야 전화를 받았다.

[네. 마루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수한입니다.]

“캐스팅 관련해서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시죠.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핸드폰 너머로 약간은 불편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권한을 수한에게 맡기기로 해 놓고 말을 바꾸는 거라 생각해서였다.

“아니, 문제라기보다는 마루 엔터테인먼트 배우가 없어서요.”

[아! 이 프로젝트의 본 목적을 알고 있어서 일부러 타 기획사 사람들은 배제했습니다. 그건 마루 엔터테인먼트도 마찬가지고요.]

나이수는 그 말에 정신이 확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엘 엔터테인먼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었다.

“아! 난 또… 그런 배려면 감사하죠.”

[이번 건 반드시 성공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신뢰감이 넘치는 목소리에 나이수는 그제야 안심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긴 수한은 이제까지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나이수는 잠깐 들었던 의심을 지우고, 이번에야말로 수한에게 모든 걸 믿고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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