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70화 (170/186)

170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명훈은 요즘 하는 일이 너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남일을 찾아간 건 그의 인생에 있어 신의 한 수였다. 남일과 손잡으면서 동현과 멀어지게 되었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내 진심을 알아 주면 다시 돌아오겠지.’

하지만 돌아올 때 맨몸으로 오지 않기를 바랐다. 명훈은 동현을 좋아하긴 했지만, 매정하게 떠나 버린 동현의 모습에 상처를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떠나냐.’

그래서 동현이 돌아오더라도 쉽게 받아 주지 않기로 했다. 결국은 받아 줄 거지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서는 안 되었다.

‘어디 두고 보자고요. 꼭 성공해서 돌아오게 할 겁니다.’

명훈은 ‘SSS급 슈퍼스타 시즌 7’에서 수고한 연습생 아니, 이제는 연예인이 된 백선재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서 대표님이 적극적으로 밀어준다고 했으니까 안심해도 돼.”

“네!”

처음에만 해도 불안해했던 백선재는 요즘 길거리에서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에 크게 감격했다. 이 맛에 연예인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많은 사람이 알아봐 주는 건 아니었지만, 한 사람이라도 알아봐 주니 감사했다.

“대표님, 정말 감사해요.”

“아니야. 뭘. 네가 잘해서 그런 거지.”

명훈은 쑥스럽게 웃으면서도 사실은 제 공이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수한이 겸손을 떨었는지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 이런 가슴이 꽉 차는 듯한 뿌듯함은 명훈의 인생에 있어 처음 느껴 보는 거였다. 명훈은 지금의 이 감정을 절대로 잊지 않기로 했다.

‘김수한도 하는데 내가 못할 게 뭐가 있어.’

명훈은 앞으로 은혜를 갚겠다는 백선재의 말에 흐뭇하게 웃다가 남일의 호출에 서둘러 달려갔다. 사실 말이 대표지, 따지자면 남일의 부하 직원이나 다름이 없었다.

“부르셨어요?”

“엠디에 쓸 만한 연습생이 또 있나?”

명훈은 자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런 기회가 또 한 번 오기를 기다렸다. 명훈의 환한 얼굴에 남일은 미소를 짓고는 이재성 PD에게서 받은 새 프로그램 기획안을 명훈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거기에 내보내는 건 어떤가 싶어서.”

‘SSS급 슈퍼스타’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결이 달랐다. 명훈은 안의 내용물을 보고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기획안만 봐도 벌써 재미가 보장되었다.

“무조건 하고 싶습니다!”

“그래?”

남일은 여전히 성민의 말을 믿어야 할지 반신반의했지만, 무조건 참여하고 싶다는 명훈의 표정에 이게 성공 가능성이 그렇게 큰 건가 싶었다.

‘이참에 성민이 그 녀석이 하는 말이 진짜인지 알아볼 필요도 있겠어.’

성민을 믿고 싶지만, 요즘 마루 엔터테인먼트의 추세를 보면 다시 마음이 바뀔 가능성이 있었다. 남일은 의심해 보라는 명훈의 말을 잊지 않았다.

‘김수한이 무조건 성공한다고 했지?’

성민이 과연 진실을 고했는지 알아볼 기회였다. 잘 되면 좋고, 잘 안 되어도 괜찮았다. 남일이 참여해 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하자 명훈은 그 어느 때보다 기뻐했다. 배우 영역은 몰라도 가수 영역은 명훈에게 맡긴다고 말한 것과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기대해 주시는 것보다 더 큰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래.”

어서 가 보라고 남일이 턱짓을 하자 명훈이 신나서 나갔다. 남일은 명훈이 나간 대표실이 꽤 조용해진 것을 보고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래서 저 녀석을 들인 것 같군.’

봐도 봐도 남일과 성향이 비슷했다. 남일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남일은 역시 명훈이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오늘 하는 예진의 새 드라마에 큰 기대감을 품었다.

‘그래도 예진이 덕분에 케이블과 다시 사이가 좋아지긴 했단 말이야.’

‘SSS급 슈퍼스타’는 덤이었다. 예진이 가온을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막상 활동했던 걸 보면 가온의 가치를 드높여 주었다. 덕분에 가온과 계약하는 배우들이 많아졌으니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그 이유로 남일은 오늘 시작하는 예진의 드라마를 오랜만에 본방송으로 제대로 보기로 했다.

***

“결국, 엠디에서 나가기로 했군요.”

“응. 우리가 파 놓은 함정에 제대로 걸려들었어.”

성민은 속 시원하다는 듯이 웃었지만, 수한은 그 뒤에서 묘하게 얽힌 감정을 읽어 냈다. 시원함과 별개로 남일을 물 먹이는 게 그리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거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니 말이다.

“근데 이러면 가온은 케이블과 사이가 다시 좋아진 거네?”

“아마도요?”

유지아 작가의 신작 드라마가 어제 막 시작되었다. 사전 제작임에도 불구하고, 빨리 나온 대본 때문인지 금방 방영했다. 유지아 작가와 예진의 조합 때문인지 드라마는 방영도 하기 전에 벌써 대중에게 기대감을 안겨 주었고, 첫 방송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케이블에서 시청률 10%부터 시작한다고? 이게 말이 돼?”

“그만큼 기대감이 컸던 거겠죠. 그리고 실제로 그 기대감도 채웠고요.”

성민의 놀란 목소리에 수한은 담담하게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고 해도 케이블의 한계가 있으므로 수한이 예전에 봤던 시청률 정도로만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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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사전 - 대중성: S, 화제성: S, 평균 시청률: 15%(20.5%), 성장 가능성: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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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최고 시청률로 20%를 넘길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수한은 이미 유지아 작가의 완고 대본을 다 봤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어제 본방송으로 봤지만, 유지아 작가의 필력이 나날이 발전했다.

“솔직히 재미있긴 하더라.”

“그렇죠?”

“특히 예진이 연기가 미쳤어. 어떻게 그렇게 늘었지?”

“노력파잖아요.”

“하긴 그렇지?”

수한은 새삼 예진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예진이 저렇게 발전할 줄은 몰랐다. 수한이 알던 미래에서도 늘 비슷한 역할만 했던 배우였으니 말이다.

‘나 하나의 존재가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구나.’

한때 그걸로 많이 고민했던 게 떠올랐다. 수한은 지금도 종종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미 많은 길을 건너온 후였다. 돌이킬 수 없었다.

“저 그럼 엘 엔터테인먼트에 다녀오겠습니다.”

“거긴 왜?”

“회장님께서 제게 부탁할 일이 있다고 하시네요.”

성민은 양심도 없이 나이수를 만나러 간다는 수한의 말에 조용히 혀를 찼다. 아마 자신이었다면 미안해서 만나지 않을 텐데 여러모로 강철 심장을 가졌다.

수한은 그런 성민을 뒤로하고, 주차장에 있는 차를 몰고 엘 엔터테인먼트로 갔다. 강우형 때부터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수한이 얼굴을 보이자 접수대에 있던 직원이 바로 안내를 했다.

‘누가 보면 우리 회사가 엘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인 줄 알겠네.’

실제로 엘 엔터테인먼트는 다양한 장르 부분에서 자회사를 내어 활동 중이었다. 엘 엔터테인먼트가 아이돌로 타격을 받으면 큰 문제가 되는 게 이 자회사들 때문이다.

‘어디 하나 적자를 안 만드는 곳이 없으니.’

아이돌로 돈을 벌면 자회사로 까먹는다. 흑자가 나기 힘든 환경이었다. 더불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마다 말아먹었으니 어떻게 보면 엘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보물은 아이돌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사실을 분명 회장인 나이수도 알 텐데 아이돌을 내주겠다고 하는 걸 보면 그만큼 그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뜻이었다.

“어서 와요.”

수한은 회장실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두 손을 잡는 나이수의 모습에 쓰게 웃었다. 안 본 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볼살이 쏙 들어가고, 주름이 더 많이 잡혔다. 장준환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한 건지 짧은 시간 안에 바싹 늙었다.

그 외양만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 만한데 수한은 그런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아서 스스로 신기해했다.

‘저 안의 추악한 욕심을 알아서겠지.’

강우형을 죽음으로 이끈 자가 나이수인 걸 알다 보니 심장이 차가워졌다. 이대로 장준환과 이야기 한대로만 일을 벌이면 될 것 같다.

‘사실 예전의 나였으면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수한이 하는 일이 명훈이 미래에서 했던 짓과 뭐가 다를까 생각하면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을 배신한다는 것에서부터 똑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해하는 사람을 배신 못 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누군가는 합리화한다고 뭐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수한은 합리화하는 거라 스스로 인정했다. 언젠가 후회할 날이 다가온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었다.

수한은 제 취향에 맞는 커피를 내놓는 나이수의 비서를 보았다.

“오늘도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수한의 예의 가득한 태도에 비서는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나갔다. 나이수는 자신에게 거만했듯 비서에게도 거만할 줄 알았기에 놀란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그런 나이수를 눈치챈 수한은 기가 막힌다는 듯 속으로 웃었다.

‘내가 자기랑 비슷한 사람인 줄 아나.’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수한은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수한은 강자한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사람이라 나이수의 앞에서는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원하는 건 말씀드렸고, 제게 원하시는 건 무엇입니까?”

“콘텐츠.”

“저 이제는 캐스팅 디렉터가 아닙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성공적으로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제가 다 결정해도 된다는 말이죠?”

무조건 된다는 나이수의 끄덕임에 수한이 미소를 지었다. 나이수는 그 미소가 너무 얄밉게 느껴져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수한을 내쫓고 싶었지만, 일단 주가를 올리는 게 시급했다. 더는 주식을 내다 파는 이들이 없게 말이다.

내다 파는 주식마다 장준환이 다 주워 가니 환장했다. 그렇다고 그 주식들을 나이수가 다 매입하기에는 돈이 없었다.

‘젠장.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나이수의 바람은 그저 제 자식들에게 회사를 잘 물려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다 늙어서 고군분투를 하는 건 나이수의 노후 계획에 전혀 없던 일이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강우형을 그냥 제 옆에 뒀을 거다.

‘장준환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애초에 가볍게 장준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면 된다고 했던 남일이 문제였다. 나이수는 오늘의 일을 절대 잊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모두에게 보복하고 말 것이다.

수한은 장준환의 작품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수한은 가방 안에서 대본들을 꺼내 나이수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제가 생각해 본 작품들입니다. 제게 다 일임하신다고 해도 작품 선택만큼은 회장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나이수는 수한을 돌려보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대본들을 읽기 시작했다. 수한도 바쁜 사람인지라 한 자리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지만, 나이수가 이럴 것 같아서 있던 일정도 다 빼냈다. 다른 일도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은 장준환이 수한에게 맡긴 이 일이 더 중요했다.

“오.”

수한이 가져온 작품들을 볼 때마다 나이수는 작게 감탄했다. 수한에게 모든 것을 걸기는 했지만, 기대치는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수한은 어디서 이런 작품들을 구해 온 건지 하나같이 훌륭했다.

과연 강우형이 밑에 데려오고 싶어 했을 정도의 안목이었다.

“이걸로 하고 싶네요.”

“그렇습니까?”

흔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재벌 소재였다. 하지만 그 안에 판타지는 있었다. 수한은 이번에는 모험하지 않는 나이수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그럼 그 작품으로 새 드라마를 만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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