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너무 긴장하지 말고.”
성민의 말에 다섯 명의 연습생 아니, 이제는 곧 데뷔할 신인 다섯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청심환도 나눠서 먹었기 때문에 더 먹을 건 없었다. ‘더 블랙’의 첫 음악 방송이기 때문에 성민이 직접 왔다. 수한은 할 일이 많아서 방송으로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근데 메이크업, 그거 꼭 받아야 하는 거죠?”
“당연하지.”
“야. TV에 나오는 개그맨들도 다 화장하고 나와.”
“헐. 진짜?”
성민은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말다툼을 하는 다섯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조용한 것보다는 시끄러운 게 낫다.
“자. 내리자.”
“네.”
샵에 들어가자마자 다섯 명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미 샵 안에 그들이 잘 아는 연예인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굳어 버린 다섯 명과 다르게 성민은 반갑게 그 연예인에게 인사했다.
“시은아. 오랜만이다.”
“네.”
시은이 예전에 촬영을 함께한 적 있던 감독이 만드는 단편 드라마에 의리로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성민은 자연스레 말을 붙였다.
“오늘 드라마 촬영?”
“그거는 이미 촬영 끝났고, 인터뷰요.”
“하긴 오늘 화장이 청초하긴 하네.”
성민의 말에 시은이 수줍게 웃다가 이쪽을 계속 쳐다보는 다섯 명을 발견하고, 누구냐는 듯이 턱짓을 했다.
“오늘 데뷔하는 신인 아이돌.”
“아! 이야기 들은 적 있어요. 수한 오빠가 제대로 준비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시은의 입에서 수한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섯 명이 움찔했다. 사실 이들은 서이나 말고는 제대로 된 다른 여배우를 처음 봤기 때문에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얼굴이 내 손만 해.’
‘카메라보다 실물이 훨씬 예뻐.’
시은이 인기가 많긴 해도 다섯 명 중에 시은을 이상형으로 뽑는 사람은 없었기에 충격을 받았다. 카메라라는 물건이 무엇이기에 앞의 여신님을 그렇게 변형해서 내보내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다음에 계약서 쓸 때 뵈어요.”
“그래. 인터뷰 잘 하고.”
시은이 다섯 명을 향해 다음에 보자며 미소를 짓자 이제는 거의 영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하지만 인사는 꾸벅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인사는 잘해야 한다는 수한의 말이 있어서 반사적으로 나왔다.
“자! 자! 다들 정신 차리고.”
“실장님이랑 시은 님은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뭐? 님?”
성민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다섯 명을 봐도 그 호칭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성민은 이들의 태세 전환이 웃겼지만, 연예인을 처음 보면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이나도 여배우로서 예쁘긴 했지만, 시은은 나이를 먹으면서 특유의 아우라까지 생겼다.
성민은 아우라를 풍기는 배우를 좋은 배우라고 판단도 하기에 저들의 반응을 이해했다.
“일단 메이크업부터 받자. 이것들아.”
“네? 네.”
다들 이런 메이크업은 처음인지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보였다. 성민도 연예인하라 하면 이것부터 어색해할 것 같아서 공감했다. 그래도 막상 화장을 받고 나니 다들 얼굴이 훤해졌다. 특히 강렬해진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가면 무조건 인사하러 다닌다. 알지?”
“네. 실장님.”
방송국 앞에서 차 문이 열리자 어색한 몸짓으로 내리는 다섯 명이 보였다. 케이블 방송이 가장 먼저 잡혔기 때문에 다른 가수를 기다리는 팬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직 아이돌 방송 ‘블랙’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이제 스태프들과는 친해진 사이이기에 그 카메라들에 대한 의식은 딱히 없는 편이었다. 같은 케이블 방송 스태프라 그런지 현장을 따라다녀도 딱히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친근하게 인사했다.
“이게 그 촬영이야?”
“어. 오늘 방송 잘 부탁한다.”
“그래.”
성민은 그들에게 하나같이 열심히 인사하고는 다섯 명을 대기실로 보냈다. 그리고 준비한 앨범에 사인과 함께 누구, 누구에게 앨범을 주어야 하는지 목록을 확인했다.
‘엘 엔터테인먼트 걸그룹이 껴있네?’
수한과 대화가 잘 된 걸그룹이라 성민은 특별히 별표를 쳐 두었다. 엘 엔터테인먼트가 웃긴 게 마약 사건이 터질 걸 알면서도 걸그룹을 내보냈다는 거다. 일종의 방패막이이자 간 보기 용이었다.
‘솔직히 음원만 내고 활동시킬 줄 몰랐는데 말이야. 이래서 우리 회사로 온다고 한 건가?’
걸그룹 계약 기간이 끝나 간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재계약을 위해 사전 작업을 해 두는 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소원이 가온에 넘어올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잘해야 하건만.’
같은 기획사라는 이유로 마약 사건에 함께 얽히게 되었는데 미안해하기는커녕 이런 식으로 나오면 누가 재계약하려고 할까? 물론 이것도 재계약의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걸 성민도 알기는 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통하기도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근데 내가 키운 자식을 후려치면서까지 계속 함께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지.’
연예인을 상품으로 보느냐, 아니면 인간으로 대하느냐 이 차이인 것 같다. 성민은 다른 데는 몰라도 마루 엔터테인먼트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수한을 따라온 거였고.
“자! 인사하러 가자!”
“네! 실장님.”
긴장은 있는 대로 하면서 아닌 척 시치미 떼는 게 귀여워서 성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를 감싸며 긴장이 풀릴 수 있게 유도했다.
***
수한은 ‘더 블랙’의 팬 카페에 회원 수가 확 느는 걸 보았다. 어디든 팬을 모아야 할 장소는 필요하기에 만들어진 카페였다. 처음에는 팬들에게 맡길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인기가 많아지면 파생 카페가 만들어질 걸 알아서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주혁 씨의 팬 카페처럼 만들지는 말아야지.’
이왕 만드는 거 주혁의 팬 카페도 다시 만들까 했지만, 주혁은 팬 카페보다는 팬클럽을 원했다. 그래서 팬클럽을 만들 때 일괄적으로 함께 만들기로 했다.
수한은 앞으로의 계획을 살펴보다가 은근히 바뀌는 일정에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일이 많아진 것에 대해 불평해서 찌푸린 건 아니고, 밀려오는 피로감에 찌푸린 거였다.
회의 중이었기에 온갖 말들이 수한의 귀에 들어왔다.
“요즘 섭외 전화가 엄청 와요.”
“음원 순위도 지금 장난이 아니에요.”
1위까지는 못 찍어도 10위권까지 올라왔다. 남자 아이돌의 음원이 이 정도 성적이라니 좋아도 너무 좋았다. 오롯이 대중들이 선택한 곡이라는 것이 아닌가?
보통 대형 남자 아이돌 그룹이 실시간 음원 차트 상위권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팬의 힘으로 올라갔다. 일명 스트리밍으로 사람들이 음악을 듣지 않는 시간을 노려서 올리는 거였다.
그러니 팬들의 힘으로 올라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더 블랙’의 첫 곡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요즘 방송에서도 노래 많이 틀고 있어요.”
노래도 좋은데 춤까지 멋지니 팬들이 늘어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그와 별개로 이번에 마약 사건에 얽힌 남자 아이돌 그룹이 너무 오랫동안 1위를 하기는 했다. 새로운 바람이 필요했고, 그 시기를 잘 맞췄다.
“이거 보면 남자랑 여자랑 비슷하기는 하네요.”
“나이가 어린 사람 좋아하는 거요?”
“그렇죠.”
배우 쪽은 모를까 아이돌 쪽은 그런 성향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오래된 아이돌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반만큼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안무로 흥한 남자 아이돌 그룹이면 그 경향이 더 컸다.
격한 춤을 오래 추었기 때문에 몸의 무리가 오는 것이다. 물론 초심을 잃어서 변한 아이돌 그룹도 있긴 하다. 팬들도 바보는 아니므로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았다. 그들의 마음이 옮겨진다면 그건 후자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팬 카페에서 활동하는 팬들 성향을 보면 확실히 처음 팬 해 보는 건 아닌 것 같네요.”
“우선 우리의 롤 모델은 엘 엔터테인먼트입니다. 하지만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되겠죠.”
“네. 그래서 보완할 것을 가져왔는데요.”
수한은 보고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강우형의 밑에는 좋은 인재가 많았다. 그 좋은 인재를 썩힐 뻔했다는 사실에 수한은 아찔함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팬클럽은 2달 후쯤에 만드는 게 어떻습니까?”
“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팬클럽은 1년에 한 번씩 받는 거로요.”
“네.”
상시 가입하게 하면 좋긴 하겠지만,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희소성이 미리 가입한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주어 수한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케이블에서 또 무슨 경연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거기는 경연에 맛 들였나 보네요. 무슨 또 경연이야.”
“경연이 확실히 돈 되잖아요. 문자 투표로 돈도 벌고.”
“그 프로그램 메인 PD가 누구인데요?”
“그 SSS급 슈퍼스타 PD요.”
수한은 이쯤에 하던 경연 프로그램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조작의 진수를 보여 주던 그 프로그램이 아닌가? 수한은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참가하지 않습니다.”
수한이 성민에게 눈짓을 주자 성민은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는 회의를 마치고 대표실에 가는 수한을 따라나섰다. 수한은 대표실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성민을 보았다. 성민은 무슨 또 중요한 이야기를 하길래 이리 불렀나 싶어서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잘은 모르겠지만, 그 경연 프로그램이요. 저도 이야기를 들은 적 있거든요. 근데 성공할 것 같아서요.”
“뭐? 진짜? 근데 왜 안 한다고 해?”
수한의 안목을 믿기에 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고 말았다. 그런 좋은 기회면 잡는 게 맞지 않는가? 게다가 수한을 잔뜩 밀어주는 케이블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다. 성공만 한다면 하는 게 무조건 맞았다.
“혹시 이재성 PD 때문에 그래? 그 사람 엄청 까다롭다고 듣긴 했지. 그때 마음고생 많이 한 거야?”
“아니요. SSS급 슈퍼스타에 대한 소문 들어 본 적 있습니까?”
“소문? 무슨 소…….”
성민은 말을 하다가 말았다. 그 소문이 무엇인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온에서부터 시작된 그 소문은 업계 사람들끼리도 소곤거리게 했다. 모두가 알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
“투표수 조작?”
“네. 아마 그건 소문이 아니라 진실이 맞을 겁니다.”
“그럼 이번에도 조작할 거라고?”
수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성민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이재성 PD를 다시 써먹을 이유가 없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안 되죠. 하지만 할 겁니다. 안 들켰으니까요.”
“만약 이거 들키면 어쩌려고……?”
아마 이재성 PD에서 꼬리를 자르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도 그리했고. 하지만 덕분에 그다음에 하는 경연 프로그램들은 줄줄이 망했다. 더불어 케이블에 대한 이미지도 확 떨어졌다. 한번 잃은 신뢰도를 다시 찾는 건 아무리 자본의 힘이 있는 케이블이라 해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쉽지 않다고 했지, 안 될 거라고 말하진 않았으니까.’
결국, 그 이미지를 회복했던 역사가 떠오르면서 수한은 쓰게 웃었다.
“그래서 참가하지 않는 거라면 오케이. 이해한다.”
“근데 가온은 참가하게 하고 싶어서요.”
수한의 말에 성민은 무슨 이런 악마 놈이 다 있나 하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수한은 명훈까지 가온에 붙은 걸 확인하니 더욱더 이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중에 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남일과 명훈, 두 사람의 표정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