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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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블랙?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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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블랙’에 관한 기사가 떴다. 물론 홍보팀을 동원해서 써내게 한 기사였다. 수한은 그 밑에 있는 댓글들에 미소를 지었다. 아무 반응도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더 블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제 아이돌 방송 ‘블랙’이 시작한 게 영향을 준 듯싶었다. 수한은 아이돌 팬 중에 신인만 전문적으로 파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신기해했다.
“아이돌 팬 중에는 꽤 다양한 사람들이 있네요.”
“우리가 조심해야 할 건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야.”
수한은 주혁의 때를 잊지 않았다. 지금의 주혁이야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 그때의 상처가 극복되었지만, 수한은 그런 일을 다시는 일으키게 할 생각이 없었다. 더불어 그 일을 기억하는 팬들이 있기에 주혁과 주혁의 팬은 서로 조심하는 사이가 되었다.
‘주혁 씨가 기본적으로 팬들한테 잘하니까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SNS를 해도 되냐는 말에 수한은 조심만 하면 상관없다고 했다. 물론 올리기 전에 회사 검수를 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소한 말로도 밉상으로 찍히기 좋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태욱 PD의 예능 덕분에 팬들이 어느 정도 돌아온 상태였지만, 그와 반대로 주혁을 향한 안티 팬도 늘었다. 수한은 아직도 주혁을 버리지 않은 안티 팬들을 떠올리면 치가 떨렸지만, 이 또한 연예인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일이 되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가온과 우리가 다른 점이 있지.’
가온에서는 악플러를 봐주었지만, 마루 엔터테인먼트는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악플 전문 변호사를 이미 고용하여 팬들이 주는 자료를 꾸준히 넘겨받아 고소를 준비 중이었다. 그 비용이 상당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악플 다는 사람이 거기서 거기라는 거다. 어떤 사람은 그냥 벌금을 내고 계속 쓰기도 한다고 하니 악플을 쓰는 사람 대다수가 정신병자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주의하게 하는 게 좋겠네요.”
“그렇지. 네 말대로 탑 아이돌로 만들 생각인데 처음부터 조심해야지.”
걱정스러운 점은 ‘더 블랙’ 멤버 대다수가 관심 종자라는 거다. 물론 연예인들이 되려면 관심 종자의 면모가 있기는 해야 했다. 누구보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연예인이 된 게 아닌가?
“아휴. 징그러운 놈들.”
성민은 그리 말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수한은 기사를 다 본 뒤에 페이지를 뒤로 넘겼다가 ‘SSS급 슈퍼스타 시즌 7’ 관련 기사를 보았다.
“이거 언제 시작한 거죠?”
“시작한 지 조금 됐을걸?”
이재성 PD가 수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 정중하게 거절했다. 수명이 다한 프로그램에 나가 굳이 조작 사건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가온에서도 나온다고 했죠?”
“어. 가온 자체에서는 안 내놓고 자회사를 만들어서 냈다고 하던데.”
“가온은 중소 기획사 아닌가요?”
“뭐, 만들려고 한다면 만들 수는 있지.”
자회사를 만들어도 대형 기획사 정도로 커진 후에야 만들 줄 알았기에 뜻밖이었다. 그러나 성민의 답에 수한은 그러면 그렇지, 하고 웃어 버렸다.
“뻔하지. 페이퍼 컴퍼니 비슷한 거일 거야. 그게 아니어도 케이블 상대하기 귀찮으니까 자회사라는 명목으로 떠넘겼을 테고.”
“거기 이름은 알아요?”
“잠시만 기다려 봐.”
핸드폰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성민이 핸드폰을 뒤적였다. 수한은 잠시 기다리다가 불리는 이름에 깜짝 놀랐다.
“엠디 엔터테인먼트라고 쓰여 있네.”
“거기라면 최명훈이랑 동현 선배가 만든 기획사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
수한은 어안이 벙벙했다. 수한이 아는 미래에 이런 건 없었다. 물론 기획사를 차리는 시기가 몇 년이나 당겨지긴 했지만, 명훈이 남일에게 붙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동현 선배한테 연락해 볼까요?”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만 나가봐도 좋다는 수한의 눈짓에 성민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수한은 생각난 김에 곧장 전화해 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엠디 엔터… 아니, 크흠. 이동현입니다.]
“선배님. 오랜만이에요. 안부 전화를 한다는 걸 잊고 있었어요.”
[아니야. 요즘 대표 일 하느라 바쁜데 그럴 수 있지.]
“혹시 시간 되면 만날 수 있습니까?”
[음… 그래. 좋아. 언제 만나지?]
“오늘 저녁에 만나시죠. 장소는 제가 문자로 남기겠습니다.”
[그래. 조금 이따가 만나자.]
수한은 전화를 끊은 뒤 묘하게 가라앉았던 동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역시 뭔가 잘 안 된 게 틀림이 없었다. 수한은 오늘 일정을 확인한 뒤 저녁 시간을 비워 두기로 했다.
***
동현은 수한에게서 온 전화를 끊은 뒤 많은 생각이 오갔다. 명훈에게서 오는 연락을 차단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처음에 명훈은 열심히 동현에게 전화했다. 어떻게서든 동현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내 포기했다.
이미 남일에게서부터 신임을 얻었기 때문에 동현이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동현은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해야 하기에 위험하기는 했지만, 일한 만큼 돈을 버니 나름대로 성취감도 있었다. 차라리 이 직종으로 직업을 굳힐까 싶었지만, TV에서 나오는 그를 거친 연예인을 보니 역시 다시 저쪽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 돌아가기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실패의 경험이 꽤 크게 상처를 남긴 듯했다.
수한과 만나기로 한 건 그 미련의 한 종류였다. 그리고 수한이 어떻게 성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약속 장소에 나가게 되었다. 수한은 특별한 장소로 동현을 불러내지 않았다. 평범한 삼겹살 구이집으로 불러냈다.
동현의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서 택한 장소인 게 뻔히 느껴져 동현은 수한의 섬세함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선배님!”
동현은 먼저 와서 기다리는 수한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한창 일 때문에 바쁠 텐데 먼저 와있어서 놀랐다. 동현이 자리에 앉자마자 수한은 삼겹살을 시키고는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살이 빠지신 것 같네요.”
“그래 보여?”
“네. 오늘 고기 많이 사 드릴 테니 많이 드시고 가십시오.”
수한이 소주를 잔에 따르기가 무섭게 동현은 수한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오토바이를 운전해서 그런지 오랜만에 술을 마시게 되었다.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 마시니 술이 굉장히 달게 느껴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수한이 자연스레 집게를 잡게 되면서 고기가 촤아악 하고 맛있는 소리를 내며 뒤집혔다. 동현은 그 질문에 수한이 왜 자신을 만나자고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스카우트하려고 부른 거야?”
“네. 맞아요. 이건 뇌물이고요.”
수한은 돌려서 말하지 않았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자 수한은 가위를 들어 구워진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 냈다. 얼마나 잘 구웠는지 겉이 노릇노릇한 게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였다. 수한은 다 익은 고기를 동현의 앞에 가져다주며 어떠냐고 기대하며 쳐다봤다.
“넌 어딜 가도 성공하겠다.”
“그럴 리가요. 저도 실패 좀 했습니다.”
동현이 아는 역사에는 수한의 실패 기록이 없기에 저절로 의문이 그려졌다. 물론 수한이 말한 건 회귀 전의 일이었다.
“사실 선배님이 만든 기획사가 가온의 자회사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걸 듣고 날 찾아온 거네. 근데 내가 거기서 나온 건 어떻게 알았어?”
“그냥 동현 선배님이라면 가온의 자회사에 들어가는 걸 찬성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요.”
동현이 나름대로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수한은 알았다. 그리고 그 말이 정답이기도 해서 동현은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수한이 구워 준 고기를 말없이 먹었다.
과연 고기가 뇌물이 맞았다. 얼마나 잘 구웠는지 바삭바삭한 식감이 입안에서 돌면서 고기 특유의 고소한 맛이 퍼졌다. 거기에 소주 한 모금을 입에 넣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네 말이 맞아. 이래서 네가 잘되는 거구나.”
“과찬의 말씀이네요.”
수한은 이어서 갈비 3인분을 시켰다. 정말 고기로 배 터지게 하고 보낼 생각인 것 같았다. 동현은 이런 대접은 또 오랜만에 받아 기분이 좋았다.
“내가 말렸는데 어느새 가서 다 이야기하고 왔더라고.”
“예나 지금이나 제멋대로 하는 건 같네요.”
“투자처를 간신히 구했는데 덕분에 무산되었지 뭐야.”
동현은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속이 상하는 듯싶었다. 수한도 그 심정을 알기에 빈 잔에 마저 술을 채웠다. 그래도 동현이 나은 건 명훈이 회사가 성장하기 전에 그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나만 해도 어느 정도 회사를 키운 후에 뒤통수를 맞았으니까.’
그런 걸 보면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 듯했다. 수한이 잘 구워진 고기를 동현의 앞에 놔두자 동현이 쓰게 웃었다.
“너라도 날 찾아줘서 고맙다.”
“선배님이 얼마나 능력이 좋은지 아니까 찾아온 거죠.”
“이 실장님은 거기서 잘 적응하고 계시나?”
“네. 부대표 자리를 노리고 계십니다. 그래서인지 엄청 열심히 해요.”
수한의 좋은 노예를 구했다는 얼굴에 동현은 웃어 버렸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명훈을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렸다.
“명훈이는 같이 가기 힘들겠지?”
“네. 아쉽게도 제 스카우트 기준은 능력이거든요.”
이렇다 할 능력을 보여 줄 기회도 없었지만, 역시 묵힌 감정이 컸다. 수한은 배신자를 스스로 제 안에 들일 만큼 좋은 성품의 사람이 아니었다. 회귀 전의 이야기까지 동현이 알 수는 없기에 동현은 가온에서 있던 일만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온에서 데려올 인재는 없고?”
“재원 선배님이랑 승택 선배님을 데리고 올 생각입니다.”
재원은 그렇다 쳐도 승택까지 데려온다고 하니 놀란 감정이 먼저 들었다. 가온에 있는 동안 수한과 승택이 친하게 지내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승택 선배님께는 죄송한 것도 있어서요. 물론 그 마음 하나로 스카우트 제안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하긴 승택도 능력자라면 능력자였다. 동현은 승택과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승택이 현재 가온에서 얼마나 힘들게 생활하는지 알았다. 그래서 수한의 말에 내심 안도했다.
“이 정도 환경이면 마루 엔터테인먼트에 올 만하지 않나요?”
최고의 직장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수한이 동현에게 주는 환경은 그를 기본으로 하니 동현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좋아. 가도록 하죠.”
이제부터는 고용주가 될 예정이니 말을 존대로 고치기로 했다. 그 말에 수한은 뿌듯해하며 다시 고기를 구워 동현의 앞에 놓아 주었다.
“계약서는 다음에 다시 만나서 쓰시죠. 그때는 삼겹살 말고 한정식집으로 모시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대표님.”
동현은 수한이 구워 준 고기를 먹으며 신생 기획사라는 이유로 거절했던 연예인들을 떠올렸다. 솔직히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기에 섭섭한 마음이 들긴 해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만약 그들에게 마루 엔터테인먼트를 제안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연예인을 데려와도 됩니까?”
“네. 저는 선배님의 안목을 믿으니까요.”
수한의 허락이 떨어지자 동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알겠다. 수한은 동현이 모시던 상사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상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