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아무래도 좋은 판단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마약 사건과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나이수도 순식간에 퍼진 소문에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철판 깔고 넘어가기에는 황경이 입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어쩔 수 없었다.
‘그놈은 입을 다물고 있을 거면 끝까지 다물고 있을 것이지.’
검찰 쪽에서 뭐라고 꼬드긴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돌과 배우의 이름이 황경의 입에서 나왔다고 한다. 아이돌 이름 중에서 엘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이름까지 나왔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기에 난감해진 상황이었다.
“이미 인터넷에서도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거 보십시오.”
굳이 안 보여 줘도 되는데 보여 주는 모습에 나이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인터넷 반응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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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마약 사건에 그 그룹 연관되어있는 거 알고 있어?
ㄴ방송가에서 쫙 퍼져 있는 소문?
ㄴ그거 다 루머거든?
ㄴ네 다음 빠순이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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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 여기서까지 열심히 아이돌을 보호하는 팬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생판 남인데 이렇게까지 해 주는 걸 보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엔터 계는 이런 마음을 이용해서 장사하는 바닥이었다. 이들을 어떻게 잘 이용할 수 있을지 조용히 머리를 굴렸다.
“팬들 분위기가 대다수가 이런가?”
“네. 그렇습니다. 확실한 게 안 나오는 이상은 믿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루머이니 고소한다고 하는 게 낫겠군.”
“아!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소 이야기가 나오면 아닌가 보다 생각할 여지가 컸다. 현재로서는 최대한 버티는 게 답이었다. 더불어 더 확실하게 아예 가수 활동을 시킬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이전에는 말이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이 이야기가 퍼졌으니 오히려 정공법이 나을 수 있다. 이런 말들이 나온 이상 기자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니요. 그래도 앨범 활동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 준비도 덜 되어 있고요.”
“역시 그건 좀 그런가?”
“나중에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니 그냥 이대로 침묵을 유지하는 게 답일 것 같습니다.”
나이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이런 뒤치다꺼리까지 하게 되었는지 한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이상은 엘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가수다. 회사에서 먼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회장님. 약속 시각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
나이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움직였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나이수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통해 현재 검찰 진행 상황은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알 수 있기에 나이수는 긴장하며 약속 장소로 갔다.
***
수한은 이번 사건으로 건진 이익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나이수가 정신없이 윗사람들과 만나러 다니는 동안 엘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여자 아이돌들을 만났다. 이미 소문을 들었는지 그들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간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는지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얼마 안 가서 나타난 엘 엔터테인먼트 출신 직원의 얼굴에 다들 표정이 변했다.
엘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중에 강우형을 안 거친 이가 없기에 낯익은 인사가 접근하자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를 시작으로 수한은 협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접촉한 사람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마루 엔터테인먼트를 생각했다. 처음에는 미래에서 솔로로도 활약하는 멤버와 연기로 눈에 띄는 멤버를 데려오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소속감을 중요시하는 모습에 원한다면 전체 멤버를 데려올 수도 있다고 협상을 했다.
다른 것보다 그 문제가 중요했는지 그 조건에 동요하는 게 보여 수한은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치가 모호한 멤버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좋은 곡을 줌으로써 어떻게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능력 없는 사람들을 스타로 만드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드림걸즈를 데려왔을 때도 그 능력은 필요할 테니 말이다.
수한이 그 계획을 성민에게 말하자 성민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하긴 탑스타가 된다고 쭉 유지될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영원한 탑스타는 없다는 게 성민의 생각이었다. 수한도 어느 정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탑스타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그 자리를 유지하려면 좋은 필모그래피와 디스코그래피를 유지해야 했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수한이 알던 미래에서도 손에 꼽았다.
‘그래서 중간에서 내가 잘해야 하는 거겠지만.’
솔직히 이 눈이 있는 이상 못 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수한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에 성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믿는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러면 우리 더 블랙을 보러 갈까요?”
“응. 기대해도 될 거야.”
“근데 이 실장님.”
“응? 왜?”
“역시 반말이 편하신 거죠?”
수한의 지적에 성민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눈동자를 굴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냥 단둘이 있을 땐 반말 좀 씁시다.”
“네. 그러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수한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성민은 피식 웃더니 어서 가자고 수한을 이끌고 연습실로 내려갔다. 연습실로 가니 힘 있게 춤을 추고 있는 다섯 명의 연습생이 보였다.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서 수한이 신기해하며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자 즉시 연습을 멈췄다.
“대표님!”
“우리 언제 데뷔해요?”
“우리 이제 완전히 잘 추죠?”
조금 전에 멋있게 춤추던 애들은 어디로 가고, 철없이 달려드는 애들만 보였다. 수한은 그런 다섯 명을 귀엽게 보다가도 안색이 어두워진 안무 디렉터를 발견하고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하게 하고 싶어도 그리할 수가 없는 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주혁 씨 때까지만 해도 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주혁에 비하면 너무 어려서 문제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고 여겨 그냥 놔두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면 성민부터 제지할 테니 말이다.
“일단 바깥이 조금 시끄러우니 잠잠해진 다음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앗싸!”
“맞아! 지훈 형이 대표님한테 볼펜 선물했다면서요?”
볼펜이라기보다는 만년필이지만, 다섯 명에게는 그게 그거일 것 같아서 수한은 특별히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저희는 대박 나면 차 사드릴게요!”
“저는 완전 비싼 시계 사드릴게요!”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러웠지만, 하나같이 수한에게 뭘 해 주고 싶다는 말이라서 싫지 않았다. 수한이 고개를 돌리자 대놓고 섭섭해하는 성민이 보였다. 수한에게만 해 주겠다고 하고, 성민에게는 아무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실장님도 기획사 하나 차리시지 그랬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이것 참 섭섭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성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성민에게 달려들어 끝도 없는 약속을 하기 시작했다. 수한이 이번에는 안무 디렉터를 보자 그는 이미 이런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는지 해탈한 표정을 지었다.
‘연말에 보너스라도 더 드려야겠네.’
저 시끄러운 애들을 데리고 연습하자고 독려하며 가르칠 걸 생각하니 벌써 갑갑했다. 실제로 안무 디렉터가 그 역할을 감당해 내고 있으니 수한은 힘내라는 의미로 어깨만 토닥였다. 그리고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이 소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애들아.”
다섯 명 중에도 눈치가 있는 사람은 있기에 금세 소란은 사라지고, 어느새 긴장한 분위기가 흘렀다. 수한이 여기에 왜 왔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수한이 진지하게 다섯 명을 보자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말한 데뷔는 여러분이 준비가 다 됐다는 가정 아래 말씀드린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 조건에 충족하는지 보겠습니다.”
수한이 눈짓을 주자 안무 디렉터가 음악을 틀었다. 아직 음원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튼 음악은 가이드 버전이었다. 음악을 틀기가 무섭게 싹 바뀐 표정에 수한은 미소를 지었다.
‘오.’
조금 전에 연습은 사정을 두고 한 거였는지 격렬하면서도 깔끔한 동작이 보였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한 건지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분명 다섯 사람인데 한 몸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만큼 피나는 노력이 돋보여 수한은 만족스러웠다.
음악이 끝난 후에도 바뀌지 않은 반항적인 눈빛에 수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이 기세를 유지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수한의 합격점에 서로 엉겨 붙고 난리가 났다. 수한이 성민을 보자 성민도 인정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수한뿐만이 아니라 성민도 남자 아이돌 그룹을 키우는 건 처음이기에 수한과 마찬가지로 색다른 재미를 느낀 것 같았다.
수한이 눈짓을 보내자 성민이 함께 연습실에서 나왔다. 성민은 조금 전 안무에 매료되었는지 소녀 팬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여자들이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알겠어.”
“이러다가 팬클럽 회장이라도 할 기세네요.”
“요즘 세상에 못할 것 없지.”
하긴 요즘은 여자가 여자를 좋아해도, 남자가 남자를 좋아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기는 했다. 예진만 해도 여자 팬들이 더 많지 않은가? 소원의 경우에는 팬 성비가 반반이었다.
“근데 팬 해도 가수로 활동할 때만 팬 하려고.”
“하긴 쟤들이 무섭긴 하죠?”
“어. 팬 됐다고 하면 징그럽게 굴 것 같아서.”
귀여우면서도 징그럽다는 게 성민의 평가였다. 수한은 그 평가에 동의하며 걷다가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진동에 핸드폰을 살폈다.
“저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난 사무실 가서 일이나 하련다.”
수한은 성민이 간 것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강성 그룹에서 온 전화였다. 이미 지훈과 주혁의 계약 건은 잘 이야기됐기에 수한은 무슨 용건으로 전화를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네. 김수한입니다.”
[부회장님께서 오늘 만나고 싶어 합니다.]
윗사람이 부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부회장까지 올라갔다는 이야기에 수한은 머리를 천천히 굴렸다. 이거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있다.
“네.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수한은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장준환에게 전화했다. 강성 그룹 부회장이 수한을 부르는 데에는 따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장준환은 얼마 안 가서 그 답을 알려 주었다.
[아마 가족 중에 마약 하는 사람이 있어서겠죠.]
“아!”
[어디까지 알고 있나 궁금해서 만나자고 한 걸 겁니다. 아니면 나를 만나고 싶어서 김 대표를 거치는 걸 수도 있겠죠.]
황경이 입을 연 배경에 장준환이 있었다는 것처럼 들려서 수한은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는 말은 장준환과 협의하기 위해 수한을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였다.
[김 대표가 알아서 잘 구슬려서 이득을 취해 보세요. 그 정도는 허락하죠.]
어차피 장준환의 목표는 엘 엔터테인먼트였다. 그 선에서 꼬리를 자르게 해도 상관없다는 게 장준환의 의견이니 수한은 좋은 기회가 생긴 것에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