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나이수는 회장실에서 나오기도 전에 달려온 직원들에 어리둥절했다. 회장실로 곧장 달려온 직원 중에 임원도 있었기에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건가 했다. 직원들은 말을 하는 것보다 보여 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는지 기사 하나를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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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A 마약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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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네. 마약이요.”
나이수는 마약이라는 ‘단어’를 보기가 무섭게 저절로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제까지 그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이 아이돌 A는 엘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아이돌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약이었다.
“이게 누구라고 알려졌지?”
기사로는 누구라고 정확하게 안 쓰여 있었지만, 이 업계가 다른 건 몰라도 소문 하나만큼은 빨랐다. 그래서 기사 하나가 터지면 누구인지 대략적인 말이라도 나왔다.
“황경이요.”
나이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주먹을 쥐었다. 황경이라면 이전에 마약을 했던 멤버와 친하게 지낸 아이돌이었다. 심지어 일본에서 먼저 권했던 놈이기도 해서 엘 엔터테인먼트에서는 특별히 황경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게 주변인 관리까지 하는 중이었다. 한창 잘나가는 시기에 마약 문제로 꺾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달려온 사람들은 나이수가 마약 사건을 덮은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잘못해서 황경이 입이라도 털면 큰일이었다.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나?”
“자세한 것까지는 안 알려 주지만, 검찰이 황경 주변으로도 알아보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다른 사람을 말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나이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경은 아이돌치고는 온갖 곳에 발이 넓은 편이었다. 게다가 마약 사건이라면 정계까지 나갈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므로 스스로 불지 않는다면 잘 넘어갈 수 있기도 했다. 설사 검사를 해서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황경을 보호할 세력은 분명 존재했다.
“괜찮겠지?”
“그래도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으니까 머리라도 깎게 하는 게 어떨까요?”
“그건 아니죠. 머리 깎으면 분명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있을 텐데요.”
“어차피 팬 많잖아요. 걔들이 알아서 아니라고 말하고 다닐 텐데 뭐 어때요?”
연애 문제만 아니라면 무조건 감싸고 돌 아이돌 팬들이 많아서 고민이 많아졌다. 나이수는 차라리 앨범 활동을 시켜 컨셉이라며 머리라도 깎게 할까 싶었지만, 잘못했다가는 반발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특히 기자들이 냄새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맡는단 말이지.’
냄새만 맡는다면 다행이지, 대놓고 알아보기 시작하면 힘들어지는 건 엘 엔터테인먼트다. 일본까지 가서 뭐라도 알아낸다면 간단히 해결할 돈도 억으로 훌쩍 올라갈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만약 그 돈을 내놓지 않는다면 국민도 알 권리가 있다면서 기사를 단번에 터트릴 것이다.
‘왜 자기들이 기레기라고 불리는지 자기들만 모르겠지.’
예전에는 신념을 가지고 움직이는 기자가 많았다면 지금은 무조건 돈이었다. 특히나 연예계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조회 수를 높일 수만 있다면 온갖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내는 게 기자였다. 세상이 벌써 그렇게 변했다.
“일단 조용히 있자고.”
“네. 알겠습니다.”
“검찰 쪽에 있는 인사는 내가 알아서 만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나이수는 어서 나가 보라고 손짓을 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에 얽힐 때마다 나이수는 극한 피로도를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사고 치는 연예인이 없었다. 심하게 사고를 친다고 해도 음주 운전이 끝이었다.
예전에는 지금만큼이나 음주 운전에 민감하지 않았기에 음주 운전을 해도 어떻게든 돈으로 잘 무마했다. 그러나 마약은 그 정도가 달랐다.
‘조용히 잘 넘기기만 하자.’
나이수는 간절히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그 기도를 들어줄지 안 들어줄지는 신만이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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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A라고? 이제 시작인가 보네.”
나이수가 본 기사를 수한이 안 봤을 리가 없다. 게다가 나이수만큼이나 발도 넓은 수한이라서 그 아이돌 A가 누구인지도 금방 알아냈다.
“황경이라고요?”
요즘 마루 엔터테인먼트가 굉장히 바빠져서 성민도 수한이 불러서 이야기해 준 다음에야 알았다. 성민은 턱을 매만진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기는 했다.
“주로 일본에 가서 약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이런 식으로 터질 줄이야.”
“일본은 이런 쪽 단속에 약한가 보죠?”
“야쿠자가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나라도 조폭이랑 얽힌 곳이 많긴 한데 그래도 일본만큼은 아닐걸요?”
그렇다면 이해는 되었다. 황경이 한 마약의 종류는 대마라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허용되는 마약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니기에 문제가 있을 만했다.
“그래서 이번 일에 엘 엔터테인먼트가 엮일 확률은 어느 정도 될까요?”
“아! 전에 이걸 이용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위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황경에서 꼬리 자르기를 하느냐 아니면 좀 더 가서 자르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수한은 뒤에 장준환이 있는 이상은 더 갈 거라 예상했다. 특히 장준환은 자신을 용의자로 만들었던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을 사람이다. 강우형과 별개로 그 또한 복수할 여지가 있는 부분이었다.
“그럼 더 갈 거라 생각하고 움직입시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수한이 나가자 성민도 따라붙었다. 이런 일에는 장차 부대표가 될 이도 함께하는 게 맞았다. 이미 누구를 영입할 거고, 누구에게 정보를 전달할 것인지 목록을 추려 놓았기 때문에 움직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마루 엔터테인먼트의 김수한입니다.”
“네. 이영철이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대기업 강성의 핸드폰 모델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수한은 그 기업의 광고 담당자인 이영철을 만났다. 수한이 당일 날 갑작스럽게 만나자고 했기에 이영철은 사실 어리둥절한 상태로 수한을 만났다.
“이번에 이 기사를 봤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수한은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을 꺼냈다. 그 기사는 당연히 봤기에 이영철은 수한이 왜 이 기사를 보여 주는지 궁금했다.
“광고 모델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모델로 엘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수한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이영철은 수한이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알았다. 그리고 곧 기사를 보여 준 이유도 알게 되었다.
“설마…….”
“네. 맞습니다.”
수한의 담백한 대답에 이영철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도 그럴 것이 광고 모델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는 시점이어서였다. 도장만 찍으면 끝날 상황이기에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이 확실한 건가요?”
“네. 안 그랬다면 제가 직접 찾아와서 담당자님께 말씀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 말에 이영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광고 모델로 마루 엔터테인먼트의 지훈과 주혁도 고려한 적이 있기에 마루 엔터테인먼트가 요즘 얼마나 잘나가는지 알고 있었다. 그 잘나가는 마루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이런 말을 이렇게 조심성 없이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이영철은 솔직히 지훈과 주혁을 밀고 싶었지만, 어차피 거품 아니냐고 윗선에서 자르는 바람에 결국 엘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약과 관련해서 문제가 있다면 이건 심각한 일이었다.
“근데 그에 관한 근거는요?”
“없습니다.”
수한의 대답에 이영철은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근거도 없이 그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이영철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더는 대화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만 가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수한은 그대로 일어서는 이영철을 보고는 자리에서 마찬가지로 일어났다. 옆에서 성민이 이래도 되냐고 수한을 봤지만, 수한도 딱히 미련은 없어 보였다.
“저는 경고했으니 후에 일이 생기더라도 저를 원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한이 그 말을 끝으로 가려고 하자 이영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수한의 과한 자신감이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게다가 느낌이 왠지 좋지 않았다. 이영철이 느낌으로 일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수한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저기 그 말이 맞는다고 해도 지금 단계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도장을 아직 찍기 전이라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네. 그건 맞지만…….”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우선 이 아이돌 A 사건을 토대로 계약서를 수정하시죠. 위약금을 크게 걸어서요. 그다음에 반응을 보는 게 어떻습니까?”
“만약 아무 반응이 없다면…….”
“없다고 해도 강성 쪽에서 손해 볼 일은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설사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위약금을 받게 될 테니 말입니다.”
수한의 완벽한 답에 이영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의문이 들었다. 이 일로 수한이 이득 볼 게 하나도 없는데 왜 그 대안까지 말해주나 궁금해서였다.
“대신 이 제안을 제가 먼저 드렸다는 걸 윗선에 알려 주십시오. 그거면 충분합니다.”
더불어 수한이 지훈과 주혁의 포트폴리오를 주자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이영철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계약해서 문제가 생기면 그 빈 자리를 이 두 사람으로 채워 달라는 뜻이었다.
“네. 일단은 그리 말하겠습니다.”
수한이 마지막으로 손을 건네자 이영철도 얼떨결에 그 손을 잡게 되었다. 이영철은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가 긴가민가했지만, 이상하게 수한에게 믿음이 가서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강성에 나온 수한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자 성민은 조금 걱정이 됐는지 자꾸만 강성 건물을 쳐다보게 되었다.
“우리 이렇게 다 알려 주고 버림받는 거 아니야?”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겠죠?”
대한민국 대기업 중에 양아치라 안 불릴 회사는 없었다. 대기업이 왜 대기업이겠는가? 중소기업의 참신한 아이템까지 다 훔쳐서 서민의 등골까지 쪽쪽 빨아서 만든 게 대기업이었다. 그래서 수한은 위에 말을 전해 달라고 말은 했지만, 기대는 딱히 하지 않았다.
설사 광고 모델을 바꾼다고 해도 다른 대세 연예인이 될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근데 왜 이러고 다니는 건데?”
“한쪽에만 하면 버림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여러 곳에 뿌리면 어느 한 곳 정도는 미끼를 물게 될 겁니다.”
하필 또 아직 대체 그룹이 없을 정도로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이라서 여러 회사에서 광고 모델로 탐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니 그중 하나만 낚아도 대박이었다.
성민은 과연 수한의 생각대로 될까 염려했다. 대기업이 괜히 대기업이 아닌 것처럼 그 안에 뱀처럼 약삭빠른 자들이 넘쳐 흘렀다. 모두에게 버림받을 가능성을 성민은 차마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강성에서 온 전화에 수한은 웃게 되었다. 한창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하던 도중이었기에 성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수한이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눈짓을 보냈다. 수한은 한참 통화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 알도록 하겠습니다.”
수한이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성민이 어떻게 됐느냐고 쳐다보자 수한은 계획대로 되어 미소를 지었다.
“엘 엔터테인먼트가 생각보다 약삭빠르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멤버들의 건강을 문제로 광고를 철회하기로 했단다. 하지만 강성도 바보는 아니었다. 계약 조건을 바꾸기가 무섭게 철회 의사를 알렸으니 누가 봐도 이상했다. 엘 엔터테인먼트 스스로 마약 사건에 엘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이 얽혀 있다고 말하게 된 셈이 되었다.
결국, 강성에서는 수한의 뜻대로 그 빈자리를 지훈과 주혁으로 채우기로 했다. 더불어 수한과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여 수한은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