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수한은 예진이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예진은 전보다 더 연기가 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놀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휴식도 예진에게는 큰 도움이 된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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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예진 - 스타성: S, 연기력: S, 가창력: D, 춤: D, 인지도: S, 기타: A, 성장 가능성: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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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비교하면 다를 것 없는 수치이지만, 성장 가능성이 더 늘었다. 여기서 더 늘 수 있다는 사실에 수한은 감탄했다.
특히 수한이 놀란 건 예전에 전혀 되지 않았던 사랑에 빠진 연기를 지금은 잘한다는 거였다.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에 유지아 작가가 굉장히 만족하는 게 보였다.
“와. 역시.”
이런 현장에는 직접 잘 안 나오는 편이기에 유지아 작가의 신남이 수한에게까지 전해졌다. 작가들이 이런 맛에 드라마 작가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컷!”
촬영이 끝났음에도 예진의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수한은 예진과 시선이 마주치고는 그 눈빛에 괜히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조금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대표님도 이제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요. 제 촬영은 조금 더 뒤에 있어서요. 그보다 작가님. 대사가 너무 긴 거 아닙니까?”
“하지만…….”
정지원 작가 때도 만만치 않았기에 유지아 작가의 불만이 자연스레 얼굴에 드러났다. 그렇다고 해도 수한이 대본을 안 외워 온 건 아니기에 할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뭐. 작가님에게 잘 보여야 다음에 제 배우들을 써 주실 테니 열심히 하겠습니다.”
“역시 수한 씨네.”
“네?”
“아니요. 너무 대표님다워서요.”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자고 하기에는 이미 수한은 그 사이의 벽을 무너뜨린 사람이었다. 물론 감정적으로 일한다고 하기에는 수한이 너무 일을 잘해서 할 말이 없기도 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일할 거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에 표본이라고 해야 할까?
“커피 차 왔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커피 차 하나가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예진과의 의리로 수한이 보낸 것이기에 다들 감사하다고 수한에게 인사를 하고는 커피를 받으러 갔다. 수한은 당연히 예진이 이쪽으로 올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예진은 자리에서 쉬고 있었다.
‘근데 얼굴이 유난히 하얗네.’
왠지 추워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수한은 주변을 살펴보다가 담요를 찾았다. 수한이 갑자기 담요를 들고 가자 유지아 작가와 유지영은 의아하게 보다가 수한이 곧 그 담요로 예진의 어깨를 감싸자 그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놀란 건 예진도 마찬가지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추운 건 어떻게 알았어?”
“저도 한때 예진 씨의 로드 매니저였는데 왜 모르겠습니까. 선배님은요?”
“내가 춥다니까 따뜻한 차 가지러 갔어.”
하긴 재원이 이런 걸 놓칠 리가 없기에 수한이 다정하게 웃자 예진이 한숨을 푹 내쉬는 게 보였다. 예진의 복잡한 심경이 그 한숨 속에 담겨 있어서 수한은 괜히 어색하게 재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근데 연기가 매번 좋아지시네요.”
“요즘에는 내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들을 역할에 대입해서 넣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어쩐지 사랑에 빠진 연기를 잘하더니 그래서였다. 유난히 뚫어지라 보는 시선을 수한이 피하지 않자 예진의 입술을 움직이려다가 말았다. 재원이 돌아온 탓이었다. 예진은 따뜻한 차를 마셨는데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지 살짝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옷을 얇게 입힌 여파가 큰 듯했다.
“너무 추우면 옷을 조금 두껍게 입는 건 어떻습니까?”
수한이 스타일리스트를 보며 말하자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며 스타일리스트가 옷을 가져오는 게 보였다.
“대표님도 이제 촬영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네.”
수한은 갑자기 대표님이라 부르는 재원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재원이 뭘 보냐고 쳐다봐도 웃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의사를 확실히 전달하는 건 좋았다. 수한은 이쪽으로 오라는 목소리에 그대로 가려다가 흘러내린 예진의 담요를 보고는 다시 올려 주었다.
‘가기 전에 감기약 같은 거라도 챙겨 줘야겠네.’
드라마 촬영의 고됨 중 하나가 몸 관리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생방송 촬영은 아니니까 다행이라 볼 수 있었다.
수한이 맡은 역할은 예진에게 관심을 가져 남자 주인공의 질투를 유발하는 남자 주인공의 친구 역할이었다. 수한은 카메오 역할을 줘도 무슨 이런 역할을 주나 했지만, 유지아 작가의 기대하는 얼굴에 A급의 연기력을 보여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컷! 다시 찍을게요!”
문제가 있다면 남자주인공이었다. 수한은 이상하게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자신을 질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 질투가 드라마 안에서의 질투가 아니라 실제로 질투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부러 수한이 대사 칠 때 NG를 많이 냈다. 긴 대사를 가진 걸 알면서도 말이다.
“죄송해요. 웃음이 자꾸 나와서요.”
전혀 웃음이 나올 장면이 아닌데도 계속 웃음을 터트리는 것에는 문제가 있었다.
‘뭐지?’
그러면서 예진 쪽을 바라보는데 수한은 그제야 이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 배우가 드라마 속에만이 아니라 실제로 예진을 좋아하고 있었다. 결국은 공과 사가 구분이 안 되어서 생긴 문제였다.
요새 들어 이런 상황을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어 수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팔짱을 끼자 촬영 현장을 지켜보던 예진이 왜 그러냐고 쳐다보았다.
‘연기력도 좋고 스타성도 좋아서 영입 대상으로 좋게 생각했는데…….’
수한은 그 생각을 깔끔하게 접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녀 주인공이 실제로 눈이 맞는 경우가 많다고 듣기는 했는데 데이빗 랩에 이어서 이 남자 배우까지 보니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수한은 웃기게도 이 상황에서 소원이 생각났다. 예진의 갖은 매력에 대해 성토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유난히 여자 팬들이 많아서 여자들에게만 그 매력이 어필되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시 촬영할게요!”
그 말에 맞춰서 다시 촬영했지만, 수한은 연기를 다 마칠 때까지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촬영도 마치고, 슬슬 다음 일정 시간이 되어서 수한은 이만 현장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물론 가기 전에 인사는 해야 하기에 인사하고 가려는데 대놓고 아쉬워하는 예진의 얼굴이 보였다.
이상하게 그 얼굴이 신경 쓰여 수한은 주변 스태프에게 겨우 구한 감기약을 들고 예진의 앞으로 갔다.
“오늘 자기 전에 이거 드시고 주무세요.”
“감기약은 집에도 있긴 하지만 알겠어.”
말과 다르게 기뻐하는 게 보여서 수한의 기분도 그제야 좋아졌다. 수한은 가기 전에 예진의 이마에 손을 올리며 다시 한번 예진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열은 없었다.
수한과 다시 눈이 마주치자 예진이 눈을 살짝 돌리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 광경이 마치 평범한 애인 사이 같아서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게 두 사람을 봤지만, 두 사람만 그 시선을 몰랐다.
“딱 봐도 누구 생각하고 연기했는지 알겠다.”
유지영의 말에 유지아 작가도 동의했다. 예상보다 뛰어난 수한의 연기력과 별개로 사람들에게는 두 사람의 연인 비슷한 분위기가 더 머릿속에 남았다.
***
수한이 연습실로 내려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눈을 빛내는 다섯 명이 보였다. 수한이 USB 파일 하나를 들고 있자 다들 기대하게 되었다. 노래가 이미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으니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지 궁금했다.
“일단 그룹명은 더 블랙입니다.”
“좋아요!”
단순한 그룹명이지만, 입에는 착 달라붙었다. 사실 멋있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지만, 여러 고민 끝에 나온 그룹명이었다. 단순하고 쉬워야 더 머릿속에 각인된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물론 몇몇 명은 그룹명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지만, 그 문제에 관해서는 다수결의 투표를 받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모두가 바닥에 앉아 집중하는 얼굴이 되어서야 수한은 음악을 틀었다.
“헉!”
“대박!”
이미 수없이 많이 들은 수한과 다르게 다섯 명은 지훈이 작곡한 노래를 처음 들었기에 상당히 놀랐다. 특히나 가이드가 이미 들어간 상태였기에 이게 얼마나 대박 곡인지 알 수 있었다. 수한이 옆에서 안무 디렉터에게 눈짓을 주자 안무 디렉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수한이 말한 대로 중독성도 있지만, 화려함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당연히 이에 맞춰서 안무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무는 수한에게 합격을 받았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다섯 명에 수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저 수한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것뿐이다.
“저희 성공하면 이 은혜 꼭 갚을게요.”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제 여기 선생님이 안무를 가르칠 겁니다. 일단 보시죠.”
안무 디렉터가 바깥을 보자 대기하고 있던 다섯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키도 다섯 명과 맞춰서 데려온 것이기에 노래가 시작되자 만들어 놓은 안무에 맞춰서 춤추기 시작했다.
다섯 명은 안무를 보고는 입이 쩍 벌어졌다. 노래가 워낙 좋기에 안무의 임팩트가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안무 디렉터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쉬우면서도 화려한 동작을 제대로 만들어 냈다.
특히 보기만 해도 인상에 깊고 따라 하려고 하면 쉽게 할 수 있는 안무를 만들어 냈다. 물론 그 동작을 깔끔하게 하려면 어느 정도 춤의 조예가 있어야 하지만, 일단 여기 있는 다섯 명은 저 안무를 소화할 능력이 충분히 되었다.
“여기까지입니다.”
수한이 만족스럽게 웃자 다섯 명은 또 한 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솔직히 이런 곡과 안무를 두고도 성공하지 못하면 이건 확실히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거다.
“그럼 녹음은 따로 준비할 테니 곡부터 먼저 배우고 계세요.”
“네! 대표님!”
절대 충성을 다하겠다는 얼굴들이라 믿음직스러웠다. 수한이 복도로 나오자 걱정이 되었는지 복도에서 대기하던 지훈이 보였다. 요즘 일정이 많아서 힘들 텐데도 지훈의 얼굴이 예전 편의점에서 마주했을 때보다 밝았다.
“애들 반응은 어때요?”
“아주 마음에 차 합니다.”
본인이 곡을 들었을 텐데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도 걱정되나 싶었다. 이런 곡을 만들어 낼 실력이면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도 될 텐데 말이다.
“광고 촬영은 잘하고 왔습니까?”
“네. 제게 다들 과분하게 잘해 줘서 감사해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저 대표님! 대표실 책상 위에 작은 선물 준비했으니까 받아 주세요.”
수한은 그 말을 하고 달려가는 지훈의 모습에 그만 웃어 버리고 말았다. 무슨 소녀 팬처럼 수줍게 말하고 달려가니 말이다. 안 그래도 대표실에 돌아갈 생각이었으므로 수한은 작은 기대를 하며 대표실로 올라갔다.
수한은 대표실에 들어오자마자 책상 위에서 한 상자를 발견했다. 택배 상자 같은 그런 상자는 아니었고, 잘 포장된 선물 상자였다. 수한은 흔들었다가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에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이런 선물 받은 것 자체로 기쁘니 말이다.
“어?”
만년필이다. 만년필도 가격이 천차만별이었지만, 이름을 보니 꽤 유명한 브랜드였다. 생각보다 고가의 선물이었기에 수한은 살짝 놀랐다. 광고비를 타자마자 이런 선물이라니 수한은 지훈의 마음이 느껴져서 고마웠다.
‘오히려 빚은 내가 지고 있는 것 같은데…….’
다 키운 자식이 그동안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고 선물을 내놓은 기분이라 수한은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