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60화 (160/186)

160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지훈은 인생 통틀어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 지훈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뽑으라고 하면 지금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솔직히 대표님이 하는 말을 다 믿지는 않았었는데…….’

오히려 수한에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예전의 감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은 빛을 발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지훈은 여전히 음원 사이트에서 자신의 곡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 1위를 만들어 준 이태욱 PD에게 지훈이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전하자 이태욱 PD는 자기 일이 아닌데도 뿌듯하게 웃어 주었다.

그래서 지훈은 제 안에 다른 인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녹화에 참여했다. 그러자 녹화 현장만큼 편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이 말한 대로 음악과 관련되어서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러자 지훈에 대한 좋은 반응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 예민함도 수한의 앞에서는 무너졌다.

“남자 아이돌 곡이요?”

“네. 어떠십니까?”

이미 지훈의 곡이 남자 아이돌 곡으로 흘러간 적도 있기에 어떻게 보면 적합자를 찾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 곡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좋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훈과도 친한 그 다섯 연습생의 첫 타이틀 곡이라고 하니 지훈도 긴장되었다.

“제 곡으로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지훈은 가끔 지훈 자신보다 더 자신 있어 보이는 수한을 볼 때면 신기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수한의 선택은 늘 그랬다고 한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선택해서 오히려 의심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선택이 틀렸으면 모를까 늘 옳았기에 많은 사람이 수한을 따르게 되었다.

“회사에 A&R팀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아… 네!”

“그리고 무조건 저를 거쳐야 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 알겠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수한이 직접 듣고 판단한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지훈은 그렇게 해서 수한의 의뢰 아닌 의뢰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지훈은 틈틈이 시간을 내서 어떤 곡을 써야 할지 고민했다.

‘중독성이 있으면서도 퍼포먼스 하기 좋은 곡.’

추상적이라면 추상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지훈이 이 일을 하고 싶은 건 자신을 향한 수한의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음…….”

“형. 뭐 해?”

어느새 주혁과도 말을 놓을 정도로 친해졌다. 주혁은 제법 귀여운 동생이었다. 첫 만남이 좋지는 않았으나, 꾸준히 사죄하는 주혁의 노력이 통하면서 거의 절친이 되었다.

“대표님이 부탁한 게 있어서.”

“아! 형은 좋겠다.”

“뭐가?”

“작곡할 줄 알잖아. 나는 백날 해도 안 되던데. 대표님도 나한테는 재능이 없다면서 창법에 조금 더 신경 쓰자고 하셨어.”

지훈은 잠시 할 말을 잃어졌다. 수한이 그리 말했다면 재능이 없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지훈은 그게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주혁에게는 뛰어난 가창력이 있으니까. 작곡가 시점에서도 주혁은 자신이 먼저 곡을 주고 싶은 가수다.

“근데 곡이 잘 안 나와?”

“이게 쉽지가 않네.”

중독성을 넣으려면 쉬우면서도 반복되는 음을 넣어야 하는데 남자 아이돌 그룹이니 멋있기도 해야 했다. 물론 몇 개 작곡한 곡이 있긴 하지만, 그게 수한의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형. 너무 부담감 가진 거 아니야?”

“뭐?”

“대표님이 그랬잖아. 형은 마음이 편할 때 좋은 곡이 잘 나온다고.”

실제로 그렇기는 했다. 지훈은 진심으로 자신을 생각해 주는 주혁이 고마웠다. 그러다가 한 가지 이미지가 머릿속에 팍 들어왔다. ‘SSS급 슈퍼스타’에서 날뛰던 주혁의 모습 말이다. 그 악동 같은 이미지가 잡히면서 영감이 떠올랐다.

“주혁아. 잠깐만.”

“어? 어!”

멋있는 것에도 카테고리가 여러 개 있었다. 안 그래도 다섯 명을 생각하면 악동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므로 그 이미지에 맞게 음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왔다.

‘여기서 조금 더 손을 보면 좋겠지만…….’

“지훈 씨! 촬영 들어갈게요!”

“네! 갈게요!”

너무 갑작스럽게 떠오른 거라 조금 더 보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예능 촬영이 우선이었다. 촬영을 마치자 이태욱 PD가 유독 눈을 빛내며 지훈에게 다가왔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에요. PD님께는 늘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저 근데 요즘 김 대표님이 역사 공부시킨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에요?”

“네. 다른 건 몰라도 역사 관련해서 실수해서는 안 된다고요.”

이태욱 PD는 재미있는 소재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미소를 지었다. 수한이 준 의뢰와 별개로 지훈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요즘 게을리 공부하는 주혁을 독촉하기로 했다.

***

수한은 지훈이 보낸 파일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지훈이라면 수한이 원하는 대로 해 줄 줄 알았다. 물론 수한이 생각했던 짐승 같은 이미지와 다르긴 했지만, 오히려 이 음악이 다섯 명과 잘 어울렸다.

‘좋네.’

수한이 조금만 손대면 더 좋은 곡이 나올 것 같았다. 수한은 당장 A&R팀으로 가서 곡을 손보기 시작했다. 이젠 수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진 A&R팀은 수한이 하라는 대로 곡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결과물을 틀자 서로 감탄사가 나왔다.

“대표님!”

누가 들어도 대박인 곡이 튀어나왔다. 그냥 좋은 것도 아니고, 남자 아이돌 느낌도 물씬 나서 데뷔곡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다듬고 가이드 녹음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수한은 자신을 보는 직원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뿌듯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이제 컨셉 회의를 해야 할 시간이지만, 수한은 그 회의는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음악이 완성되면 또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달라질 테니까.

수한이 대표실로 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성민이 다가왔다.

“대표님. 선견지명이 장난이 아닌데요?”

“네?”

“설마 어제 방송 안 보셨어요?”

눈을 가늘게 뜨며 설마 안 본 거냐고 충격받은 표정을 짓는데 수한은 그게 다 자신을 놀리려고 하는 것임을 알았다. 안 그래도 어제는 바빠서 본 방송을 챙겨 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점심 먹으면서 보려고 했더니만 성민이 이렇게 쪼르르 달려와서 물을지 몰랐다.

성민이 웃으면서 기사 하나를 보여 주자 수한은 성민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알아들었다.

“결국, 역사 문제가 나왔군요.”

“네. 공부하게 한 보람이 있다니까요.”

다른 것에서는 멍청하게 굴던 두 사람이 역사 문제 앞에서는 또렷한 모습을 보이니 네티즌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특히나 주혁의 경우 일본에서 활동한 기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주혁이 일본 눈치를 보지 않고 일제강점기를 입에 담으며 일본을 비판하자 더 반응이 좋았다.

“주혁이 일본에 안 보낼 거죠?”

“일단은 국내 활동에 주력해야죠. 그쪽 활동을 너무 시켜서 대중에게 멀어지지 않았습니까.”

성민에게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성민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성민이 조금 더 힘이 있었더라면 주혁이 원하는 대로 국내 활동을 조금이라도 더 시켰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 성민의 마음을 수한도 알기에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은 다 지난 일이 아닙니까. 정 그러면 더 잘해 주시든가요.”

“지금 대표님이 그러는 것처럼요?”

“네.”

수한도 그들을 버리고 떠난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그 미안함을 이미 활동으로 풀어 주는 중이었다. 그래서 지훈과 주혁을 이태욱 PD의 예능에 꽂은 이유도 있었다. 다행히 둘에게는 예능 쪽 재능도 있어서 계속 상승세이니 수한은 두 사람의 앞날을 기대하게 되었다.

“두 사람한테 안 그래도 광고 제안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실장님께서 거를 곳은 걸렀을 테니 그대로 진행해 주시죠.”

“네. 알겠습니다.”

성민이 나가자 대표실 안이 고요해졌다. 수한은 짧게 주어진 휴식을 만끽하기로 하려다가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이는 나이수였다.

***

나이수는 요즘 미칠 지경이었다. 강우형이 가고 나서 그의 세상이 다시 돌아왔는데도 요즘 끔찍한 악몽에 계속 시달리게 되었다. 꿈에서 강우형이 나오질 않나, 견제할 사람이 없는데도 회사에서 끝도 없이 밀리는 꿈을 꾸었다.

“내게 말도 없이 자회사를 만들었다고?”

“네. 그렇다고 합니다.”

요즘 남일의 행보가 기이했다. 강우형의 일로 한배에 탄 줄 알았는데 남일의 행동을 보면 아니었다. 단물만 쫙 빼먹으려는 남일의 의도가 느껴져서 나이수는 불쾌함마저 느꼈다. 아무리 그가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이 엘 엔터테인먼트를 키워 낸 사람이다.

그의 손으로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던가?

중소 기획사 하나 차렸다고 오만방자한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투자한 드라마가 망했다고 얼마나 눈치를 주는지 사냥개를 들인 게 아니라 먹을 게 없나 주위를 둘러보는 하이에나를 들인 기분이었다.

얼마나 간을 살살 보든지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콘텐츠 사업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어서 나이수는 애간장이 다 탔다.

이제 슬슬 물러날 때가 되지 않았나 주주들도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강우형만 한 인물이 없는데도 그들이 눈치를 주는 건 새 얼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계속 돈을 까먹는 나이수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 정도까지만 됐다면 나이수도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꾸준히 엘 엔터테인먼트 주식을 사들이는 사람이 있었다.

‘장준환.’

뒤에서 누군가 노리고 있다는 걸 아는 건 간담이 서늘한 일이었다. 강우형의 사고에 나이수가 관련되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조용히 다가오는 손길에 나이수는 소름이 돋았다. 나이수는 이 사실을 남일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모르고 당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테니까.’

남일이 처음처럼 나이수에게 바짝 엎드렸으면 생각해 볼 일이었지만, 요즘 하는 태도를 봐서는 글러 먹었다. 그래서 나이수는 다른 쪽으로 돌파할 곳이 필요했다.

‘김수한!’

나이수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능력자였다. 솔직히 기획사를 차렸다고 해서 금방 망할 거라 생각했기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마루 엔터테인먼트의 행보가 확실히 다른 곳과 다르긴 했다.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답게 수한이 손대는 곳마다 대박이 솟아 나왔다. 그 대박이 장르를 가리지 않으니 관심이 없던 사람마저 마루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이 생겼다.

요즘은 아이돌을 만들기 위해서 연습생을 들였다고 하니 그에 대한 기대감도 생겼다. 과연 수한이 아이돌까지 성공적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호기심이었다.

“강우형의 직속 부하들이 마루 엔터테인먼트로 많이 넘어갔다고 합니다.”

워낙 관심이 없던 사안이라 그것까지는 몰랐기에 나이수는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곧 그것을 좋은 기회로 보았다. 직원을 빼 갔다고 해서 얼마나 알까 싶었다. 그건 그동안 강우형이 해 온 업무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아서 나온 착각이었다.

‘그래. 거래를 시도하자.’

이번에 만드는 드라마야말로 성공해야 했다. 나이수는 그 도움을 청하기 위해 수한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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