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58화 (158/186)

158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수한은 오랜만에 오는 음악 방송 현장에 신기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원을 따라온 이후 오랜만이었다. 지훈의 앨범을 낸 뒤 첫 음악 방송이기에 수한이 직접 따라왔다.

“안녕하십니까. 마루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수한입니다.”

수한이 하나하나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가자 바쁜 가운데서도 스태프들은 인사를 받아 주었다. 수한은 메인 PD에게까지 인사를 마치고 난 뒤 지훈이 있는 대기실을 찾았다. 지훈은 따지자면 중고 신인이기에 다른 가수들과 같은 대기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케이블 방송사였다면 따로 대기실을 줬을 테지만.’

그래도 지훈은 다른 가수들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너무 긴장해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청심환을 미리 먹었는데도 진정이 안 되는 것 같아 수한이 걱정스럽게 지훈을 보았다.

“어차피 사전 녹화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방송 출연이 처음이 아닌데도 너무 긴장되네요.”

“그래서 더 그런 걸 겁니다.”

수한은 새삼 예전에 지훈이 예능에도 나간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때 지훈을 처음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수한은 처음인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정식 가수 활동을 하긴 했었네요.”

“네. 완전히 묻혀서 회생하려고 했던 것도 실패했었고요.”

수한은 쓰게 웃었다. ‘스타로드’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훈의 자신감을 완전히 앗아 간 그 프로그램. 오히려 지금이 더 정식으로 데뷔하는 느낌이라고 말해 수한은 그리 생각하면 다행이라 여겼다.

“이번에 나온 신곡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가 좋다고 합니다.”

그 말에 지훈의 얼굴이 밝아졌다. 수한의 말은 사실이었다. 음악 차트 100위 안에는 들지는 못했지만, 대한민국에는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많았다. 그들을 통해 지훈의 노래에 대한 반응을 보니 수한의 대중적인 감각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는 반응들이라서 수한은 이 정도면 됐다고 여겼다. 어차피 지훈이 예능에 나가게 되면 이 노래를 실컷 듣게 될 테니 말이다. 수한이 노리는 건 역주행이었다.

“잘해 볼게요.”

예전에 묻힌 적이 있어서 도리어 다행이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이름이 알려진 상태에서 실망감을 안겨 주면 더 비참한 상황으로 가게 된다. 모두가 아는데 안 찾는 상황이 되니까. 하지만 ‘스타로드’는 영상으로 남은 상태이기에 수한은 그를 통해 새로운 에피소드를 꺼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물론 지훈의 허락이 떨어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타로드 이야기해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나가 봅시다.”

“네!”

지훈이 기타 가방에서 기타를 건네자 수한이 흐뭇하게 웃었다. 저 기타는 수한이 선물해 준 기타였다. 이미 기타에 관해서도 방송국 측과 이야기를 해 두었기에 수한이 어서 나가자고 신호를 보내자 지훈이 따라나섰다.

“무대에 가면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은…….”

“알고 있어요. 아이돌 그룹 팬들이잖아요.”

자꾸만 지훈이 처음 무대에 올라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자신에 수한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자 뺨을 몇 번 쳤다. 가서 실수하면 안 되는 건 수한도 마찬가지였다.

지훈이 무대에 올라가자 푸른색의 응원 봉을 든 여자들이 보였다. 남자 아이돌 그룹 팬들이었다. 정확한 나이대는 모르겠지만, 아마 중학생에서부터 시작해 대학생까지 있을 거라 추정되었다. 다른 가수에 타 가수의 팬들이 동원되는 것, 예전에 수한이 본 적이 있는 가수를 인질로 잡은 방송국의 갑질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지훈입니다. 저 때문에 여기에 오신 게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이 듣기에 나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래 부르겠습니다.”

방송국 때문에 억지로 붙들리게 되었지만, 정중한 지훈의 말에 아이돌 그룹 팬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응원하겠다고 소리를 질러 주는 덕분에 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데려오기 전에 관리를 잘해 놓았기 때문에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비주얼은 어느 정도 찾은 상태라 화면에 훈훈한 얼굴이 잡혔다.

“오빠 잘생겼어요!”

자기들이 해 놓고도 웃겼는지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훈도 그 목소리에 긴장이 완전히 풀린 게 보였다.

지훈이 노래를 부르자 조용히 박자에 맞춰서 흔들리는 응원 봉이 보였다. 소원의 일로 남자 아이돌 그룹 팬에 대한 선입견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자기 가수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전반적으로 순해지는 면모가 있는 것 같았다.

수한은 남자 아이돌 그룹을 만들 생각이기에 그런 점들을 유의 깊게 보며 아이돌 팬 문화에 관심을 좀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준환이 밀어준다는데 그걸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수한은 두 번 만에 사전 녹음을 마친 지훈을 향해 웃어 주었다. 다음에는 이렇게 따라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훈은 녹음을 마친 후에도 예의 있게 인사를 하며 응원해 줘서 고맙다며 훈훈한 말을 하고 내려갔다.

***

명훈은 우연히 음악 방송을 틀었다가 그 안에서 나오는 지훈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봤나 했는데 아니었다.

“뭐야!”

명훈은 흥분해서 일어나게 되었다. 그때 거절했던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려서 찝찝하더니 이제야 그 찝찝함의 정체를 알게 되어 소름이 돋았다.

“이미 계약한 곳이 있던 거야?”

명훈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그래도 옛정이 있어서 찾아간 거였는데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마지막에 웃는 모습을 지켜보니 말이 안 나왔다.

“나 왔다.”

“동현 형!”

명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전에 봤던 것을 이야기해 주자 동현은 쓰게 웃었다. 동현은 지훈이 수한의 회사에 들어간 것을 알면서도 명훈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쯤 되면 알려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김수한이 기획사를 차렸다고요?”

“그래.”

명훈은 말이 안 나왔다. 그러니까 지훈을 빼 간 사람이 수한이라는 거 아닌가? 명훈이 대놓고 인상을 구기자 동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회사 접는 거 어떠냐.”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제 막 1년째잖아요.”

명훈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동현은 생각보다 이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대표로 삼을 수 있는 연예인을 데려와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힘들었다. 아무리 친하게 지냈다고 해도 보여 줄 것이 없는 기획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신생 기획사이니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탑스타가 아닌 이상은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함께 시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한이 대단한 거다. 적어도 함께 성공하겠다는 믿음을 주었으니까.

“김수한도 해내는데 우리가 못 해낼 게 어디 있어요?”

명훈이 흥분해서 말해도 동현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명훈이 빌려 온 돈을 벌써 다 까먹었기 때문이다. 명훈도 그걸 알지만, 그래서 더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수한도 해냈는데 자신들이 못 할 리가 없다. 동현이 암울하게 앉아 있자 그 순간 무언가 떠오른 명훈은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 이번 한 번만 자존심 굽히는 건 어때요?”

“자존심을 굽히자고?”

“가온에 도움을 청해요.”

동현은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싶어서 명훈을 봤지만, 아무리 봐도 진심이었다.

“형 이야기에 따르면 김수한이 지금 잘나간다면서요. 그걸 자극하면 될 거예요.”

동현은 황당한 계획을 들었다는 듯이 됐다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명훈은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니 덤벼 볼 만하다고 여겼다. 남일이 도움을 주면 좋은 거고, 주지 않아도 손해 볼 게 없었다. 그만큼 두 사람이 만든 기획사는 가진 게 없는 기획사였다. 기획사에 있는 것은 빚과 얼마 없는 연습생뿐이었다.

그래서 명훈은 동현 몰래 가온 엔터테인먼트에 찾아가게 되었다.

‘여기는 4년이 지나도 그대로네.’

그래도 나름 이름 있는 기획사라고, 외벽 청소도 깔끔하게 해서 방문자에게 깔끔한 이미지를 주었다. 명훈은 제 외관을 확인하고 당당하게 가온 엔터테인먼트 내부로 들어갔다. 잠시 일해서 그런지 명훈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명훈은 그대로 대표실로 갔다. 여전히 따로 일하는 비서는 없는지 대표실만 덩그러니 있어 문을 두드리니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남일은 명훈의 얼굴을 발견하자마자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그렇게 나가고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이죠?”

남일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남일에게 명훈은 그저 수한에게 진 패배자일 뿐이었다. 명훈은 주저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지금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대표님.”

한 가지 재미있는 건 남일은 이렇게 상대가 먼저 굽히고 들어오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는 거다. 남일은 우선 명훈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눈을 반짝였다.

‘안 그래도 SSS급 슈퍼스타에 내보낼 인재가 없냐고 계속 연락 와서 문제였는데.’

성예진을 드라마에 받아 주는 것과 별개로 케이블은 남일에게 물도 함께 먹이기로 했다. 그렇게 조작 같으면 직접 출연자를 넣어서 확인해 보라는 거다. 하지만 남일은 그 조작 놀음에 전혀 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 중이었는데 명훈이 알아서 찾아왔으니 이건 남일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차린 기획사 이름이 뭐라고?”

“엠디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순간 남일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가온 엔터테인먼트를 향한 나이수의 계획이었다. 엘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로 만들 가온 엔터테인먼트. 남일은 가온이 먼저 그 일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용만 하고 버릴 생각이었다. 그 과정 중에서 명훈에 대한 처분은 명훈이 어떻게 하느냐를 보기로 했다.

솔직히 남일에게는 성민보다는 명훈같이 아부를 잘 떠는 인사가 더 손에 딱 맞았다. 어차피 수한도 가온에서 나갔으니 굳이 무릎 꿇어오며 충성을 맹세하는 명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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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예진 케이블 드라마 출연!]

[이태욱 PD의 새 예능 프로그램, 이번 주 토요일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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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기사가 함께 떴다. 수한은 기사를 보고 계획대로 잘 흘러가는 이 흐름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 지훈과 주혁이 이 예능 프로그램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실을 알고 있어서 수한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 밑에 뜬 기사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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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슈퍼스타 시즌7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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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별거 아니라고 넘길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감이 안 좋아서 수한은 기사를 클릭해서 안에 내용을 보았다.

시즌7에는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기획사들의 연습생도 나올 거라는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무명의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했던 것 같은데 프로그램이 확실히 변질되었다.

‘그 변질의 시초가 나니까 할 말은 없지만.’

그와 별개로 요즘 케이블 방송국의 위상이 예전과 조금 달라져서 안 내보려고 했던 기획사들도 내보내기로 한 모양이다.

‘일종의 거래지.’

연예계에 있다 보면 인권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연예인 자신이 상품이자 거래 대상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자기 소속사 사람을 넣는다면 그건 분명 버리는 패일 거다. 물론 그를 통해 얻을 건 드라마나 예능 쪽이고.

연예인보다 연습생이 덜 중요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 수한은 그 연습생들을 향해 먼저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

‘나는 이런 거래는 절대 하지 않게 만들어야지.’

수한이 한 기획사의 대표로서 할 일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적어도 자신의 사람들을 버리는 패로 삼지 않는 것. 그것이 수한의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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