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이태욱 PD. ‘댕댕이를 부탁해’를 시작으로 다음 예능 프로그램도 대박을 쳐 공중파에서 이름이 알려진 얼마 안 된 유명 예능 PD였다. 그가 한 예능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최고 시청률 20%를 돌파한 적이 있으며 평소 겸손하고 좋은 성격으로 주변인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좋으면 호구로 보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방송국 안에서도 라인은 있었고, 이태욱 PD는 과거의 수한처럼 그 라인을 잘 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그는 혼자가 되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이태욱 PD에게 손을 내민 게 수한이었다. ‘댕댕이를 부탁해’ 이후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은 사이였기에 수한은 이태욱 PD의 사정을 잘 알았다.
“그러면 여기만 있지 마시고, 다른 방송국으로 넘어가 보는 건 어떻습니까?”
“넘어가다뇨?”
“케이블 방송국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이태욱 PD는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랐다. 방송국에서 한번 나가면 돌아오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이태욱 PD는 그런 수한의 제안을 거절했다.
“물론 바로 넘어가라는 건 아닙니다. 지금 넘어가면 PD님의 몸값이 너무 낮으니까요.”
이태욱 PD는 수한이 하는 말을 듣고는 긴가민가했다. 케이블 방송국이 나중에는 흥하게 될 거라니 그게 말이 되나 싶었다. 물론 ‘SSS급 슈퍼스타’ 등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이 몇 개는 있었다. 하지만 공중파에서나 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케이블에서 만든다니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세요.”
케이블 방송이 흥하기 전에 먼저 넘어가서 자리를 제대로 잡는 게 어떻냐는 게 수한의 생각이었다. 어쨌든 간에 초반에 넘어가면 개국 공신이나 다름이 없는 지위를 얻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위험도가 너무 컸다. 케이블로 넘어간다고 해도 잘될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수한이 말한 대로 몸값부터 올려 보기로 했다. 라인을 잘 타지 못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시간대를 받았지만, 세상이 달라지기는 했다.
‘이게 되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면 네티즌이 먼저 알아봐 주고 응원했다. 그 응원이 실제적 시청률까지 이어지자 시간대를 옮기게 되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광고 완판은 물론이요, PPL까지 풍족하게 들어와 흑자를 내는 예능 프로그램을 기어코 만들어 냈다.
“거봐요.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수한은 처음에 제안했던 걸 잊은 사람처럼 이태욱 PD를 대했다. 그래서 이태욱 PD도 그대로 그때 이야기하던 것을 접으려고 했다. 만약 그 기사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 그랬을 거다.
[정지원 작가 케이블과 손잡는다!]
아무리 이태욱 PD가 방송국 안에서 라인이 없다고 해도 관련된 소문은 듣게 되었다. 정지원 작가를 케이블과 연결한 사람이 바로 수한이라는 거다. 이태욱 PD는 그때 수한이 한 말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사를 보고 수한에게 연락한 수많은 사람 중에 이태욱 PD가 들어가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태욱 PD는 자신이 잘 만들어 놓은 예능 프로그램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기꺼이 케이블로 넘어가기로 했다. 당연히 능력 있는 예능 PD가 가니 케이블 측에서는 환영하는 게 당연했다.
“자리는 마음에 드십니까?”
“네. 마음에 들어요.”
역시 초반에 넘어오길 잘한 건지 처음부터 이태욱 PD의 자리는 높았다. 거의 총괄 수준이어서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이태욱 PD가 말 한마디만 해도 그게 통하니 왜 사람들이 권력을 좋아하는지 알겠다.
“지금 새 프로그램을 기획 중인데 고민 중이에요.”
“케이블이니까 조금은 자극적으로 해도 되겠죠. 근데 견제하는 사람은 없나요?”
“당연히 있죠.”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견제하기는 했다. 특히나 이재성 PD라는 사람이 대놓고 와서 시비 건 적도 있어서 이태욱 PD도 황당하기는 했다. 하지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게 생겼으니 이해는 되었다.
“뭐. 그런 것쯤이야 능력으로 보여주면 되니까요.”
과연 자기 능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보일 법한 자신감이었다. 수한은 이태욱 PD라면 충분히 자리를 잘 잡을 거라 예상했다. 원래부터 이태욱 PD도 정지원 작가처럼 케이블에 넘어오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수한이 그저 그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다.
“있던 곳에서 넘어오겠다는 PD님은 없던가요?”
“일단 제가 여기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오겠죠.”
“하긴 그래서 개국 공신이 중요한 거겠죠?”
“그래서 왜 온 거예요?”
“PD님이 만들 프로그램에 괜찮은 인재를 소개하고 싶은데 PD님께 얼굴을 한번 보이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대놓고 하는 청탁이었지만, 수한은 보고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빼도 된다고 했다. 본래 인맥으로 돌아가는 곳이 맞기 때문에 이태욱 PD는 그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얼굴 한번 보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근데 재미없는 친구면 진짜로 안 씁니다.”
“당연하죠.”
청탁이라고 해도 거절할 수 있는 청탁 수준이라 이태욱 PD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수한이 생각한 멤버는 두 명이었다.
‘주혁 씨와 지훈 씨.’
지금 당장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 소심하지만, 훗날에 자신감이 넘쳤던 지훈을 떠올리면 오히려 예능 멤버로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주혁의 경우 이미 케이블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도 있어서 아예 그 이미지를 콕 박아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둘의 관계성은 수한이 더 잘 알아서 둘을 붙이면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거라 예상했다.
‘물론 이태욱 PD님이 두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수한이 할 수 있는 건 소개뿐이었다. 그다음은 이태욱 PD의 결정에 달라진다. 수한은 이태욱 PD가 두 사람 다 거절한다고 해도 담담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
수한은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성민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런 곳에 한두 번 와 본 게 아닐 텐데 성민은 신기하다는 듯이 계속 두리번거렸다.
“데려와 달라고 해서 데려온 건데 이렇게 촌스럽게 하고 계시니 나가고 싶네요.”
“아니, 너무 비싼 곳 아닌가 싶어서 그러지.”
회사 밖으로 나가자 성민이 자연스레 말을 놓았다. 어차피 회사 대표로서 만난 것도 아니어서 수한은 별 상관없었다. 게다가 단둘이니 말이다.
“비싼 곳이 맞지만, 실장님이 해 주신 것에 비해서 부족하죠.”
“그렇긴 하지? 근데 나는 편하게 김수한이라고 부를 건데 넌 계속 실장님이라고 부르려고?”
“그럼 형이라고 부를까요?”
수한이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자 성민이 질색했다. 형이라 부르는 걸 허락하면 얼마나 들이댈지 예상이 되어서였다.
“난 남자 싫다.”
“저도 싫거든요. 게다가 저는 눈도 높습니다.”
“하긴 이 업계에서 일하면 눈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 않냐?”
“그야 그렇죠.”
워낙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만 봐서 어쩔 수 없기는 했다. 수한은 그런 의미에서 궁금해졌다. 혹시나 성민이 만나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성민도 수한과 비슷한 상태였다.
“이 시기는 돈 버는 거에 집중해야지. 연애는 무슨 연애야.”
“관심 있던 사람도 없어요?”
“없던데. 연예인이라고 해도 다 내 새끼 같아서 말이지.”
그 말에 수한도 공감했다. 이성으로 보기에는 다 자신이 키우는 자식 같아서 그런 쪽으로 보려고 해도 보기가 힘들었다. 수한은 순간 한 사람이 머릿속에 지나가긴 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먼저 나온 물을 마셨다.
얼마 안 가서 나오는 코스 요리에 성민의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비싼 만큼 많이 먹으마.”
“그러다가 체하지나 마십시오.”
한 입 먹어 본 성민의 눈이 커다래졌다. 하긴 여기서 먹어 본 사람들이면 다 이런 반응이었다. 그래도 성민은 채신머리를 지키며 먹는 편이었다.
“왜 이지훈이가 그렇게 자꾸 떠오른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네.”
“앞으로도 종종 사 드리겠습니다.”
“사 준다고 하면 무조건 먹어야겠네.”
“네. 그러시죠.”
성민은 돈 쓰는 것에서 발을 빼지 않는 수한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 때문에 수한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수한은 한 회사의 대표로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뭐라고 합니까?”
“널 견제해야 한다고 하니까 냉큼 알겠다는데?”
“진짜요?”
“자존심을 살살 긁으니까 바로 넘어오더라.”
굳이 그 장면을 보지 않아도 대충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긴 남일을 상대한 사람은 그와 몇 년을 함께한 성민이었다. 어떻게 하면 남일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지 잘 알았다.
“네 쪽 사람을 빼 와야 한다니까 잘해 보라고 격려하더라. 나 몰랐는데 이쪽에 은근 소질이 있나 봐.”
“이러다가 저 배신하는 거 아니죠?”
“원하면 배신해 주고.”
성민의 장난스러운 말에 수한은 웃으면서 앞에 있는 음식을 먹었다. 언제 먹어도 이 집 음식은 맛있었다. 수한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성민이 배신하지 않게 더 잘해 줘야겠다는 생각도 함께했다.
***
정지원 작가의 작품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결국, 마지막 방송이 최고 시청률은 찍어 버리면서 케이블 방송국에 대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렸다. 굳이 TV가 아니어도 온갖 기기로 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 마루 엔터테인먼트는 업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었다. 정지원 작가의 작품이 끝났기 때문에 주연인 서이나가 주목받는 게 당연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관심은 수한에게 있었다.
기어코 이태욱 PD의 새 예능에 두 사람을 넣은 것이다.
정지원 작가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태욱 PD의 이름도 꽤 알려진 상태기에 사람들은 이태욱 PD가 과연 어떤 예능을 낼까 기대했다. 그 가운데 마루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 두 명이 들어갔으니 말이 나올 만했다.
‘김수한, 그 친구가 평소에 인맥 관리를 잘하더니 잘 활용해 먹네.’
어떻게 보면 수한을 비꼬는 말이었지만, 수한은 칭찬이라 생각했다.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걸 수한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말이 나돌아도 수한은 아무 상관 없었다. 그런 말이 나돈다고 해도 수한이 하려는 일을 막을 수 없었다.
수한은 오늘 음원 사이트에 올라갈 지훈의 앨범을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건 성공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지훈의 앨범이었다.
이태욱 PD야 한번 밀어주기로 마음먹으면 지구 끝까지 밀어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어야 빛을 보지 아무 가능성도 없는데 밀어주는 건 그저 시간 낭비였다. 하지만 수한은 함께 활동하는 가수들까지도 이미 다 파악했기에 걱정 하나 없었다.
오후 6시가 되자 지훈의 앨범이 올라가고, 고생해서 찍은 뮤직비디오가 동영상 사이트들을 통해 올라가게 되었다. 더불어 홍보팀을 돌리자 여러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문제없이 올라간 거 확인했습니다.”
굳이 대표실까지 올 필요가 없는데 온 성민의 모습에 수한은 고개를 돌려서 지훈을 봤다. 연습실에 있던 걸 데려왔는지 땀투성이였지만, 이상하게 함께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지훈이 정식으로 가수 데뷔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