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53화 (153/186)

153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그래? 이지훈 앨범 준비를 한다고?”

“네.”

남일은 제 앞에서 어색하게 앉아 있는 성민을 보고 피식 웃었다. 역시 배신자들은 다시 돌아오는 것도 쉽게 온다. 특히 자신이 가는 길이 몰락의 길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 배신은 더 빨리하게 되어 있다. 남일의 예상대로 수한은 몰락의 길을 걷는 중이었다.

“감 다 잃은 녀석을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사업은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닌데 멍청하기는.”

남일은 지훈을 데려가서 가수로 키우려고 한다는 수한의 이야기를 듣고는 함박웃음이 나왔다. 사업을 처음 하면 흔히 할 수 있는 실수였다. 남일도 그 실수를 한 적이 있기에 처음 가온 엔터테인먼트를 세웠을 때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 그때 임금 밀려서 미안하다고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했었는데.’

남일은 직원들에게 감정에 호소하며 월급을 미루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돌아온 건 노동청에서 들어온 신고였다. 그때 남일은 알게 되었다. 감정으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그 이후로 정신 차리며 열심히 일하다 보니 만난 게 장준환이었고, 장준환을 통해 남일은 더는 돈 걱정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도 이젠 끝이지만.’

“그때 먼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어야 했는데 되레 뻗대서 죄송했습니다.”

진심 어린 성민의 사과에 남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더불어 그에게 얼마 전에 팬 미팅을 했다는 주혁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그날의 팬 미팅을 남일은 끔찍한 악몽의 날로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왜 이렇게 내 주위에 일을 똑바로 하는 놈이 없는 거야.’

그깟 녹음 하나가 뭐가 어렵다고 걸려서 퇴장까지 하느냐 말이다. 덕분에 남일은 수한이 얼마나 경계를 잘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더 수한이 성민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게 되었다.

“본인 입으로 회사 규모가 좀만 커지면 부대표 자리를 척척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돈이 순전히 본인 돈이라 생각하니 나오는 오만이지.”

“네?”

성민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남일을 보자 남일은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성민은 지금 수한의 자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 관해서는 굳이 알려 줄 필요가 없어서 말하지 않은 거겠지마는 남일은 수한에게 떨어져 나간 성민의 신뢰를 아예 바닥으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김수한이 가진 돈 말이야. 그거 큰손에게 투자받은 돈이야.”

“큰손이요?”

“그래. 가온도 그분께 도움을 받기는 했지.”

그랬지만 끝내 버림받고 말았다. 이게 다 죽은 강우형 때문이었다. 장준환에게 투자한 금액을 돌려주기 위해서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긴 하지만, 이게 은근히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고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더 엘 엔터테인먼트를 뜯어먹어야지.’

나이수의 욕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성공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더 아이돌’이 성공하는 바람에 미련이 더 커지고 말았다. 그래서 제작하려고 생각하는 게 ‘더 아이돌 2’였다. ‘1’이 크게 성공했으므로 ‘1’의 화제성만 잘 끌고 와도 이건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남일은 이에 관해서 나이수에게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주로 수한에 관련된 칭찬이었다. 별로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현재는 나이수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실정이니 그대로 들었다.

‘보니까 그쪽으로는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왜 굳이 기획사를 차려서 스스로 앞길을 망치는지.’

남일은 이 소식을 성민에게 말해 줄까 하다가도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성민을 다시 데려올 생각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온전히 믿을 수 없다. 적어도 성민이 중요한 정보를 들고 와서 수한에게 크게 엿은 먹여야 믿을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조만간 큰 거 물어올 테니.”

“그래.”

남일은 성민이 따라 주는 술을 마시며 기분 좋게 웃었다. 일단 케이블 방송국에서 한다는 드라마부터 망해야 했다. 다음 주에 시작한다고 하니 그 결과를 보긴 해야 했다.

‘서이나라고 했던가?’

남일이 마루 엔터테인먼트에서 눈여겨보는 연예인이었다. 나이는 어린데 연기가 기가 막혔다. 나이수와 대화하려고 일부러 ‘더 아이돌’을 챙겨 본 남일은 그 안에서 서이나라는 보석을 찾았다. 물론 너무 늦게 봤기 때문에 서이나를 데려올 수 없었다. 그 전에 벌써 마루 엔터테인먼트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뭐, 그 회사가 망하게 되면 데려올 수 있겠지.’

성민이 그 안에 있으니 서이나를 어떻게든 잘 구슬려서 데려오면 될 것이다. 남일은 성민이 따라 주는 술을 마시다가 문득 서이나의 이름을 다른 데서도 들어 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일의 성도 ‘서’였다.

‘한번 알아봐야겠는걸.’

만약 피로 이어진 사이면 데려오기가 더 수월하니 말이다.

***

서이나는 괜히 고개를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그때마다 시선이 마주친 사람들은 서이나를 보며 괜찮다고 웃어 주었다. 서이나는 새삼 기획사 하나 잘 들어왔다고 안심했다. ‘더 아이돌’ 때는 친구들과 모니터링을 함께했는데 오늘은 기획사 사람들과 함께한다고 하니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또래랑 있을 땐 서이나 자신이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편이라서 피곤한 게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현장에서는 어리다는 이유로 서이나를 우선으로 챙기며 보살펴 주니 그게 너무 좋았다.

오늘도 첫 방송이라고 서이나를 기획사에서 엄청 챙겨 줘서 서이나는 들뜬 마음으로 치킨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이 밤에 기름진 건 좋지 않지만, 함께 먹어서 그런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서이나가 다시 고개를 돌리니 기획사 직원들뿐만이 아니라 기획사에서 연습 중이던 연습생들이 보였다. 겸사겸사해서 야식도 먹일 겸 해서 수한이 다 불러들인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 모니터링 담당은 따로 있어서 사람들은 편하게 야식을 먹으며 방송을 기다렸다.

“시작한다!”

그 말에 맞춰서 앞에 시켜 놓은 치킨과 피자들이 아래로 내려졌다.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서 누구도 움직임 없이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와-.’

CG가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하게 들어갈 줄 몰랐다. 공중파에서는 제작비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CG를 써도 최대한 저렴하게, 최대한 적게 사용했다. 그러나 케이블은 달랐다. 눈이 아주 즐거워졌다.

“역시 돈이 최고이긴 하네요.”

“그러니까 정 작가님이 케이블로 가셨죠.”

그 가운데 들려오는 서이나의 나레이션은 사람들을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담담하면서도 차분한 캐릭터의 성격이 목소리에서부터 드러나며 보는 사람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기대감을 심어 주었다.

‘역시 보는 눈이 나쁘지 않았네.’

정지원 작가가 공중파에서 넘어오는 거의 첫 타자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물론 먼저 넘어온 작가들도 있긴 했지만, 첫 번째 효과는 정지원 작가가 다 잡아먹었다. 수한은 아마 이날의 일이 후대에도 길이길이 전해질 거라 여겼다.

‘케이블도 삐끗하는 시기가 생기긴 하지만 역시 돈이면 못하는 게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엘 엔터테인먼트는 글러 먹어도 너무 글러 먹었다. 그렇게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성공한 게 두 개뿐이니 말이다. 그 두 개도 수한이 솜씨를 부려서 만든 것이니 말 다 했다.

‘그런데도 썩은 동아줄을 굳이 잡으려는 그 사람을 보면 사람 일은 역시 모른다니까.’

누굴 이야기하는 거냐고 묻는 거냐면 당연히 남일이었다. 남일은 성민의 앞에서 최대한 정보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람은 말만 하는 동물이 아니었다. 몸짓으로도 말하는 동물이었다. 덕분에 수한은 남일과 나이수가 완전히 손잡은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원래의 자리를 빼앗았으니 이건 당연한 결과인 건가.’

그렇다고 미안한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수한은 뒤에서 조용히 들어오는 지훈을 향해 방긋 웃어 주었다. 막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왔기 때문에 유난히 피곤해 보였다.

뮤직비디오 같은 경우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찍어 주게 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바짝 찍고 쉬는 게 스태프들과 연예인에게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 그렇게 촬영하게 했다. 당연히 돈은 더 주었다.

“집에 들어가도 된다고 말했는데요.”

“아니에요. 이런 날은 오고 싶었어요.”

지훈은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말한 뒤 연습생들 옆에 앉았다. 연기자끼리는 몰라도 가수끼리는 확실히 사이가 돈독했다. 연습실에서 거의 살다 보니 서로 얼굴이 부딪치는 날이 많았고, 서로에게 조언할 것도 많기에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에게 정들었다.

게다가 수한이 작정하고 키우려는 다섯 명의 연습생은 하나같이 친화력이 높은 아이들이었다. 친화력만 높을까? 선배들에게 들이대는 정도도 장난이 아니어서 소심한 지훈까지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지훈이 온 타이밍이 딱 광고 시간이었기 때문에 연습생들은 지훈을 크게 반가워하다가도 드라마가 시작되자 조용해졌다.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음 화 예고편이 끝났을 때 안에서는 저절로 박수 소리가 나왔다.

“이나야! 축하해!”

“드라마 첫 주연 축하한다!”

언제 준비해 온 건지 폭죽까지 터트리는 사람까지 있어 수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보면 과했지만, 당사자인 서이나가 너무 좋아해서 됐다고 여겼다.

수한은 서이나를 비롯하여 어린 친구들을 차로 데려다주기로 했다. 열한 시가 넘은 시간이라 혼자 집에 들어가기에는 위험한 시간이었다. 다른 직원들을 시키기에는 피곤해할 것 같아서 수한이 직접 데려다주기로 했다.

“저희야 차로 데려다주면 편하긴 하죠.”

“와. 대표님이 운전하는 차 타 본다!”

다행히 한꺼번에 한 차에 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이나도 가수 쪽 사람들과는 대화를 제대로 나눈 적이 없어서 신이 난 게 보였다. 한때 서이나를 어린 성예진으로 본 적이 있기에 수한은 그때의 생각을 미안해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다들 퇴근하시죠.”

“내일 봅시다!”

“저는 여기서 자려고요.”

“나도 여기서 자고 갈까?”

매니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사무실에서 자고 가는 걸 택했다. 특히 내일 일정이 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사무실에서 자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럼 모셔다드리고 돌아오겠습니다.”

“대표님도 사무실에서 주무시게요?”

“네. 그러려고 합니다.”

혹시나 상사라고 하여 불편해하나 싶었지만, 그들의 얼굴을 보니 그건 아니었다. 왠지 감동한 얼굴이라서 수한이 더 당황스러웠다. 하긴 다들 대형 기획사 출신이니 대표가 회사에서 자고 하는 광경은 거의 보지 못했을 거다. 그 가운데 들리는 성민의 목소리에 수한은 그만 웃어 버렸다.

“역시 매니저 출신은 달라.”

“아. 맞아. 그랬죠?”

“그럼 다녀오세요. 대표님. 회사는 저희가 지키고 있을게요.”

“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차는 마루 엔터테인먼트에서 가장 큰 차를 사용하기로 했다. 처음 차 크기를 보고는 몇몇은 반신반의한 얼굴로 탔지만, 그 외에는 딱히 불안해하지 않았다. 이미 수한의 차를 타 본 사람들은 수한이 얼마나 운전을 잘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님. 운전 잘하시네요.”

“그럼요. 매니저 경력이 몇 년인데요.”

“1년 아니었어요?”

지훈의 반문에 수한은 어색하게 웃었다. 뭐, 과거로 돌아와서는 1년이지만, 총으로 치면 만만치 않은 경력이었다.

다섯 명의 연습생들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가는 내내 분위기를 돋우며 차 안을 재미있게 했다. 수한은 은근슬쩍 서이나의 핸드폰 번호를 받아내려는 움직임에 눈짓을 주어 연애는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너무하시네요.”

“서이나 씨. 다음 중 아이돌에게 가장 타격이 되는 사건은 무엇일까요? 일 번…….”

“연애요.”

보기를 부르기도 전에 대답하는 서이나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이미 ‘더 아이돌’을 통해 아이돌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많아서 알게 된 지식이었다. 특히 위로 올라가려다가 열애설이 터지면서 오르지 못한 아이돌도 있어서 수한은 더 조심해야 한다고 여겼다.

‘시은 씨도 그럴 뻔했고.’

“그런 의미에서 데뷔한 이후 3년간 연애 금지입니다.”

“너무해요! 대표님!”

온갖 항의가 들어왔지만, 수한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저들 가운데 지금 연애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서 한 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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