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50화 (150/186)

150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남일은 정보통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물론 보복을 할 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치졸하게 굴지 몰랐다. 하긴 그러니까 고작 케이블인 거다. 어차피 케이블에서 방영해 봤자 혜택 볼 것도 없으니 남일은 딱히 케이블 방송국에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 시청률은 공중파지.’

시청률 10%도 넘어 보지 못한 케이블 방송국이 뭘 할 수 있을까? 남일은 수한이 그쪽에 붙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비웃었다.

캐릭터 디렉터인지 뭔지 그 일을 하면서 스타 작가와 안면을 튼 모양인데 그를 잘 이용한 건 칭찬할 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얼마나 작품이 형편없기에 케이블까지 갔을까 싶어서였다.

그보다 남일은 성민이 먼저 떠올랐다. 성민이 사라진 가온 엔터테인먼트는 조금 심심해지기는 했다. 친척 사이다 보니 성민이 편한 맛이 있기는 했다. 게다가 다른 직원들과 다르게 성민은 남일을 불편해하지 않아 함께 노가리 까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게. 왜 김수한 같은 놈이랑 손잡아서.’

막상 사라지니 아쉬운 게 있어서 남일은 성민이 아쉽기는 했다. 장준환이 뒤에 있어서 금방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남일은 수한이 망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애초에 누가 처음부터 그렇게 크게 회사를 차린단 말인가?

장준환이 처음은 허락하겠지만, 계속 실패하다 보면 수한의 손도 놓을 것이다. 남일은 수한이 그리될 거라 굳게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개고생할 성민이 떠올랐다. 쫓아낸 후에야 후회가 조금 드는 것이다. 무턱대고 화만 내고 달랠 생각을 전혀 안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성민을 쫓아냈다는 소문을 어디서 들은 건지 가족들한테 전화 오고 난리가 났다. 특히 성민의 부모 쪽에서는 잠깐 엇나가는 걸 거라고 봐달라고 전화까지 했으니 마음이 흔들리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기회를 다시 한번 줘 볼까?’

하지만 기회를 줘도 그냥 주어서는 안 되었다. 적어도 수한에게 엿은 먹여야 했다. 남일은 얼마 안 가서 대표실을 두드리는 소리에 금세 정신을 차렸다. 지금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대표님. 이번 엘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했다가 손해 본 것이 막대합니다.”

“알고 있어.”

장준환이 자신을 버렸으니 남일은 새로운 배를 타기로 했다. 그 배가 바로 엘 엔터테인먼트였다. 계속해서 사업을 넓히려는 나이수의 야심에 남일은 자신의 손도 보태기로 했다.

엘 엔터테인먼트가 아이돌 특화로 진행하는 사업이 많기에 가온과는 상반되는 지점이 많았다. 그래서 서로 각자 사업을 더 잘할 수 있게 돕는 차원에서 두 회사가 손을 잡았다.

“오히려 잘됐지. 뭐.”

나이수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 사람인지 알고 있어서 나온 말이었다. 둘이 손을 잡았다고 하지만, 나이수는 남일을 동등한 상대로 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이수의 최종 계획은 가온 엔터테인먼트를 엘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로 흡수하는 걸 거다.

‘하지만 그럴 수야 없지.’

그렇게 되게 할 생각이 전혀 없는 남일은 다른 쪽으로 머리를 굴렸다. 사자가 가 버리고, 하이에나가 초원에 등장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할 것이다. 남일은 강우형이 하던 것을 자신이 이어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고 보니 요즘 성예진은 뭐 하고 지내?”

“그게, 놀러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진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남일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번에 이광무 감독 영화가 해외에서도 매우 잘됐기에 예진이 해외 진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조금 했는데 예진의 행보를 보니 그쪽으로는 전혀 안 갈 것 같다.

“요즘은 김수한이랑 만나지 않고?”

“네. 그렇다고 합니다.”

남일은 예진과 수한을 생각하면 머리가 더 많이 복잡해졌다.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건 분명한데 재원은 아무것도 없다고 딱 잡아떼니 말이다. 재원이 수한과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남일은 재원도 의심했으나, 영화제에서 예진에게 시달리는 재원을 보고는 그 의심을 거두었다.

‘내가 그 녀석이었으면 진작 김수한 회사로 떠났겠지.’

게다가 재원이 아니면 예진을 감당할 사람이 없으니 어쩌면 성민보다 더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예진을 수한에게 보내는 게 낫겠지만, 그러기는 싫었다. 예진의 성격이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남일이 가장 예진의 연기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진이 노력파라는 점이 남일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보고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와 별개로 남일은 소원에게 특별 선물을 주기로 했다. 최근 앨범이 완벽하게 주혁을 밟기에는 곡의 수가 모자라서 아쉬웠지만, 주혁에게 온전히 관심이 가지 않도록 화제성을 분배하는 일에는 크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모든 차트 올킬이라니 이게 보통 쉬운 게 아니었다.

남일은 나이수가 가온에서 노리는 연예인이 있다면 그게 바로 소원일 거라 확신했다. 엘 엔터테인먼트가 무너져 간다는 건 엘 엔터테인먼트에 속한 아이돌 그룹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최근에 낸 남자 아이돌 그룹이 영 신통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한때 세대 붐까지 일으켰던 아이돌 그룹들도 최근 성적은 별로였다. 아이돌 하면 대중성을 띠던 시장이 이제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봐도 소원은 보물이었다. 대중성의 대표 가수가 아닌가? 소원의 마음이 약하다는 걸 잘 아는 남일이니 남일은 그 약한 마음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나중에는 미안해서 못 떠나가게 하는 게 남일의 목표였다. 그러므로 소원에게 뭘 퍼줘도 남일은 아깝지 않았다.

‘연기만 할 줄 알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스스로 원치 않아 하니 그 또한 남일의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었다.

***

수한은 자신이 만진 지훈의 음악을 A&R팀에게 들려 주었다. 지훈의 첫 앨범에 들어가는 곡이다 보니 수한이 조금 더 신경 써서 대중적인 감각을 넣었다. 처음에는 무슨 대표가 음악에도 손대냐고 항의했던 A&R팀은 수한이 문외한이 아니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오히려 수한이 손대니까 조금 더 대중적인 곡이 되었다. 특히나 귀에 민감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A&R팀이니 수한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달리 소원을 키워 낸 게 아니었네요.”

“하하. 저는 여러분이 차린 상에 숟가락만 얹을 뿐이죠.”

“그거 너무 오래된 말인 거 알죠?”

어느 배우가 수상 소감으로 말하면서 유행어처럼 번진 말이었다. 어느덧 너무 옛날 말이 되어서 수한은 민망해졌다. 그래도 나름 젊은 대표라고 불리는 편인데 생각이 늙었다는 이야기를 돌려서 들은 셈이니까.

“작곡 공부도 따로 하세요?”

“네. 조언하려고 해도 이쪽에 대해 알아야 조언받는 사람도 받아들이기 쉬우니까요.”

딱히 지훈이 그에 관해 반발심을 갖는 작곡가는 아니지만, 무언가를 지적하면 크게 상처를 받고 토라지는 작곡가들이 많았다. 아니, 그건 작곡가뿐만이 아니라 창작을 하는 계통이라면 모두에게 통하는 내용이었다.

“대표님이 이쪽 공부를 해 두셔서 저희가 편하긴 하네요.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까.”

“여러분의 실력을 믿으니까 그냥 막 말씀드리는 거죠.”

수한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알았다. 그들은 수한이 꽤 실력이 있고, 경험이 있다는 걸.

그중 예민한 사람들은 이 패턴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기시감까지 느꼈다. 하지만 금세 알아채지는 못했다. 지훈의 곡에 더해지니 전혀 작곡가 에이치 특유의 느낌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저 지훈의 곡에 대중성 한 숟가락만 넣은 것뿐이니 그 맛이 강하게 날 리가 없었다.

“그럼 잘해 주실 거라 믿고 가 보겠습니다.”

“네. 그럼 결과물 나오면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대표님.”

“네.”

수한은 지훈의 곡까지 성공적이게 고치는 자신의 능력을 보고 편곡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작곡은 대중성 A까지는 가능한데 음악성은 아무리 해도 늘지 않았다. 정말 전형적인 대중성 있는 작곡만 할 줄 아는 재능이었다.

‘뭐, 안 되는 길은 빠르게 접어야지.’

음악성이 있는 곡에 대중성을 더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재능이라 생각하는 쪽이라서 수한은 기분 좋게 대표실로 가다가 계단 쪽에서 심각한 표정을 지은 성민을 발견했다.

성민은 무슨 전화를 받는 건지 제법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잠시 기다리니 성민이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인간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 인간한테 전화가 왔어.”

그 인간이라면 남일을 말하는 게 틀림이 없어서 수한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성민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도 곧 분노했다.

“이번에는 그쪽 첩자가 되란다. 그러면 다시 오는 걸 허락하겠다고.”

“그랬습니까?”

요새 조용하다 했더니 그런 이유에서였다니 황당했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용한 것도 아니었다. ‘SSS급 슈퍼스타’가 조작 방송이라고 소문을 퍼뜨렸으니 말이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수한은 남일이 참 멍청하다 싶었다.

‘사람 인연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는 건데.’

수한이 달리 모든 사람에게 잘하는 게 아니었다. 특히나 대한민국은 썩어서 그런지 더러운 물에 손을 묻히는 사람일수록 권력이 클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고발을 하려고 해도 조금 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해야 한다. 물론 이런 제보들로 인해 나중에 조작 사건이 밝혀진 거겠지만, 이게 정의를 위해서 행한 게 아니라는 걸 수한이 가장 알아서 씁쓸한 미소가 나왔다.

‘주혁 씨를 못 나오게 하려고 손 쓰다가 안 돼서 이렇게 된 거겠지.’

결국, 소원으로 인해 화제성 분배에 성공했으니 이건 수한의 패배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소원을 키워 낸 것도 수한이니 어떻게 보면 무승부였다. 수한만 아는 무승부.

“근데 내가 언제 네 첩자 역할 했냐?”

“그러게 말이에요. 오히려 스카우트 거절만 당한 게 저인데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니까 부모님을 생각하란다. 내가 분명 내 발로 나왔다고 했는데도 못 믿고 전화한 거지.”

성민은 다른 것보다 그에 가장 크게 실망한 듯했다. 수한은 자신 때문에 성민이 이런 오해를 받은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왕 안 하고 오해받는 것보다 차라리 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뭐?”

“그쪽 첩자 말고, 제 쪽 첩자로요. 어차피 데려와야 할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실장님이나 저나.”

수한의 말에 성민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좀 해 보겠다는 말에 수한은 자신이 무리한 부탁을 한 건 아닌가 싶었다. 수한의 곁에는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수한은 힘내라고 성민에게 한 번 더 말한 뒤 장준환에게서 연락 오는 것을 받았다.

“네. 김수한입니다.”

[오랜만에 식사 한 끼 하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아요?]

“물론이죠.”

[그럼 내일 저녁에 늘 먹던 곳에서 먹죠.]

“네. 알겠습니다. 시간 빼 두겠습니다.”

돈만 투자하고 연락을 통하지 않아서 많이 바쁜가 했는데 수한이 할 일이 생긴 모양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친목 도모로 만날 수 있겠지만, 수한의 감은 그게 아니었다. 드디어 자신을 이용하려고 하는 건가 싶었다.

‘뭐, 부탁을 해도 내 사정을 알고 하겠지.’

장준환을 오래 알아온 건 아니었지만, 수한이 본 장준환은 그런 사람이었다. 수한은 생각난 김에 엘 엔터테인먼트 주가를 보았다. 이번 드라마가 제대로 망하면서 하락하기는 했다. 수한은 나이수가 투자했던 돈을 떠올리고는 미소를 짓다가 한 기사를 발견하고는 가슴이 싸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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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형 엘 엔터테인먼트 전 대표 이사, 끝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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