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지훈은 공허하게 연습실 천장을 올려다봤다. 처음에 수한에게 작곡 10개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만 해도 벅차긴 해도 금방 해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게 예전에는 그게 가능했다. 하지만 과제라는 압박이 있어서 그런지 손이 마음대로 가지 않았다.
‘이러다가 쫓겨나면 어떡하지?’
수한이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 지훈의 가능성을 믿고 데려온 것이다. 그 믿음을 저버린 것 같아서 지훈의 어깨가 저절로 무거워지며 암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차라리 집에 가서 할까 고민도 되었지만, 그것만큼 나쁜 건 없었다.
‘집에 가 봤자 지금이랑 비슷하겠지.’
지훈은 제 손에 있는 기타를 보았다. 수한이 신경 써서 구매한 티가 났다. 손에 착착 감기는 게 마음에 쏙 드는 기타였다. 지훈은 한숨을 내쉬며 기타 줄을 건드려 보다가 연습실 문 너머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남자애들을 발견했다.
‘어?’
나이는 많아 봤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애들이었다. 마루 엔터테인먼트에서 키우는 남자 연습생 같았다. 지훈은 새삼 아이돌도 키울 생각을 하는 수한의 행보를 대단하게 여겼다. 아이돌 하면 대형 기획사밖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훈이 문을 열자 복도에서는 다섯 명의 남자 연습생들이 보였다. 확실히 또래끼리 모였는지 서로에게 장난을 치느라 지훈의 존재감을 못 느낀 듯했다.
‘확실히 좋기는 하네.’
방음이 잘 된다는 게 이럴 때 실감이 났다. 복도가 이렇게 시끄러울 줄 몰라 지훈이 인상을 찌푸리자 그제야 한 사람이 지훈을 발견하고 인사를 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한 명이 인사를 하자 단체로 허리까지 꾸벅 숙이며 인사를 건네는데 지훈은 그 모습들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선배님이라니, 지훈은 제대로 데뷔한 기억이 없다.
“TV에 한 번이라도 나왔다면 선배님이 맞습니다!”
기합이 들어도 단단히 들어서 지훈이 신기하게 남자 연습생들을 보니 얼마 안 가서 수한이 나타났다. 그러자 지훈 못지않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에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지훈과 마찬가지로 수한 또한 부담스러워하는 게 보였다.
“지금 연습 시간인 것 같은데 안 가세요?”
수한의 말에 남자 연습생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쳐다보더니 곧바로 복도 끝으로 달려갔다. 수한이 조심히 가라고 소리를 쳐도 그 말은 귀에도 안 들어오는 듯싶었다.
“젊음이 좋기는 하네요.”
“그렇게 따지는 지훈 씨도 아직 젊은 편입니다.”
수한의 다정한 말에 지훈은 아니라고 부정했다. 나이는 젊을지언정 인생이 나이 들었으니 저런 맑음은 없었다.
“제가 준 과제가 꽤 어렵죠?”
“네. 사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네요.”
‘꽤’ 수준이 아니라 많이 어려운 상태였다. 왜 이런 과제를 줬는지 수한이 원망스러워질 정도였으니까. 그 마음을 다 안다는 것처럼 수한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과제를 줬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노는 거라 생각하시면 어떻습니까?”
“네? 하지만 그래도…….”
“잠시 기타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장난스러운 수한의 얼굴에 지훈은 긴가민가한 상태로 연습실에 들어가 기타를 들었다. 그러자 연습실 안으로 따라 들어온 수한이 기타를 건네받아 마음대로 치기 시작했다.
기타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는 티가 나게 딩가딩가 노는 수준이라서 지훈이 황당해하며 수한을 보니 수한이 몇 개의 음을 반복해서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음 비슷한 게 들리기는 했다. 그걸 또 반복해서 치니 그럴듯한 게 들려왔다. 물론 음 이탈하는 가운데 들려오는 멜로디였다.
“대표님 기타 정말 못 치시네요.”
“소질도 전혀 없어 보이나요?”
“그건 대표님께서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느냐에 따라 달렸죠.”
지훈만 해도 기타 연습을 하느라 손가락이 말이 아니었다. 특히 요즘은 예전 실력을 찾기 위해 더 필사적으로 연습해서 손가락이 난리가 났다.
“연습하는 것도 좋은데 건강도 잘 챙기면서 하시길 바랍니다.”
“안 그래도 회사에 있는 보건실에서 연고 바르고 있어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대표님이 하는 거 보니까 대충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감이 잡히네요.”
“그렇습니까?”
사실 아무 의미 없이 친 거지만, 지훈에게는 도움이 된 듯싶었다. 수한은 그거면 됐다고 생각하여 그만 가 보기로 했다.
“그럼 과제 수정. 일주일에 10개로 하죠.”
“네. 해 보겠습니다. 대표님.”
수한은 기타에 열중하기 시작하는 지훈을 보고는 연습실 문을 조용히 닫고 복도를 걸었다. 아까 남자 연습생들이 달려갔던 복도 끝으로 가 보니 춤 연습실이 보였다. 복도에서 뛰어다니던 혈기 못지않게 연습하는 것도 열심이었다. 수한은 그들 가운데 있는 주혁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설마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그러고 보면 맨 처음 주혁을 만났을 때도 매일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기는 했다. 수한은 주혁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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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혁 - 스타성: S, 연기력: S, 가창력: A, 춤: A, 인지도: A, 기타: S, 성장 가능성: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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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중에는 오래 그 자리를 유지하는 스타가 있는가 하면 짧게 올라가고 내려오는 스타도 있었다. 그를 두고 거품 빠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주혁도 그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수한이 기억하는 과거 아니, 미래의 주혁을 떠올리면 주혁은 계속해서 성공의 가도를 달렸다. 물론 남의 곡을 훔쳐서 달리는 거였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주혁이 저렇게 성실한 사람이라서 그 인기가 유지된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낫지.’
그때는 여전히 남의 곡을 훔쳤겠지만, 지금은 달라졌으니 말이다. 수한은 주혁과 별개로 열정적으로 연습하는 남자 연습생들을 보았다. 덜하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은 다섯 명이었다. 누가 미래의 한류 스타 아니랄까 봐 다른 건 몰라도 춤 하나만큼은 최상급, 상급인 다섯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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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우 - 스타성: S, 연기력: B, 가창력: A, 춤: A, 인지도: F, 기타: C, 성장 가능성: 2%]
[이정원 - 스타성: S, 연기력: C, 가창력: A, 춤: A, 인지도: F, 기타: E, 성장 가능성: 3%]
[김민준 - 스타성: S, 연기력: B, 가창력: B, 춤: S, 인지도: F, 기타: D, 성장 가능성: 7%]
[이도현 - 스타성: S, 연기력: D, 가창력: B, 춤: S, 인지도: F, 기타: F, 성장 가능성: 21%]
[최건우 - 스타성: S, 연기력: E, 가창력: B, 춤: A, 인지도: F, 기타: E, 성장 가능성: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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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두 명은 좋은 가창력을 가졌으니.’
다섯 명 안에 메인 보컬이 두 명이니 이건 됐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가창력도 B등급이면 어느 정도는 부를 수 있다는 뜻이니 이 팀은 안 되려고 해도 안 될 수가 없는 팀이었다. 그룹 이름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는 그룹이니 영어 이름으로도 따로 지어야 했다.
‘한류 스타라고 하니까 내가 다 설레네.’
지금의 가온 엔터테인먼트를 보면 알겠지만, 가수에 딱히 투자를 안 하는 회사였다. 그런 기획사에서 탄생한 아이돌 그룹이니 적극적으로 밀어주면 얼마나 더 잘할지 기대가 되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네.’
수한은 제 것을 빼앗긴 것도 모르고 있을 남일을 비웃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수한은 핸드폰을 켜서 오늘 떴을 기사를 확인하다가 한 기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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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엔터테인먼트, 잘나가다가 제대로 헛발 내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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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내용인가 싶어서 자세히 들어가서 내용을 살피니 수한은 웃음부터 나왔다. 그러니까 수한이 참여하다가 만 드라마의 시청률이 굉장히 저조하다는 내용이었다. 하도 반응이 없어서 하는 줄도 몰랐다.
‘엘 엔터테인먼트는 이제 시작인가?’
수한이 캐스팅 디렉터 직업을 그만둔 걸 알 테니 이젠 부르지 않을 거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수한을 불러서는 안 되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장준환의 최근 행보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일에 수한을 빠지게 한 걸 봐서는 엘 엔터테인먼트가 강우형의 일과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수한은 더 깊게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보복은 장준환의 일이지, 수한의 일은 아니었다. 수한의 일은 얼른 돈을 벌어서 장준환에게 진 빚을 갚는 거였다.
수한은 상위에 있는 기사를 발견하고 웃었다. 수한이 찾던 기사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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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작가 케이블과 손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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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작가가 얼마를 받고 가기로 했는지는 기사에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았지만, 다들 어마어마한 돈일 거라 예상했다. 그럴 게 아니면 스타 작가인 정지원 작가가 케이블로 넘어갈 리가 없을 테니까.
이제 정지원 작가를 시작으로 케이블 드라마가 흥하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소소하게 반응 중인 드라마들도 있었기에 이를 계기로 더 큰바람이 불어올 거라 생각했다.
‘이제 편성들이 케이블 우선으로 흘러가겠지.’
케이블에서 본격적으로 돈을 풀기 시작하면 각 지상파 방송국에 있는 실력 있는 PD들을 데려갈 테니 그 격차는 더 심해질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살아남는 드라마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수한은 자본의 힘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수한은 기사가 터지기 전에 유지아 작가와도 연결을 해 두었기 때문에 걱정 하나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케이블 방송국 쪽에서는 수한의 공을 높이 샀다. 그래서 나중에 소속 연예인들이 개인적으로 방송에 출연하게 되더라도 좋은 대접을 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는 하는데 수한의 생각은 글쎄였다.
지금은 수한이 케이블 측에 갑질을 할 수 있는 처지이지만, 수한은 그도 잠시일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이럴 때일수록 더 잘하기로 했다.
‘방송국이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대표적으로 이재성 PD가 그 경우였다. 최근에 연락해서 괜찮은 가수가 있으면 ‘SSS급 슈퍼스타 시즌 7’에 내보내자고 하는데 수한은 그 제안을 당연히 수락하지 않았다.
‘조작 방송에 출연하는 건 게스트로 족하지.’
수한은 갑자기 터져 오는 전화에 미소를 지었다. 수한이 정지원 작가와 연결하게 한 걸 아는 사람들은 케이블 쪽이 아닌 수한을 공략했다. 어찌 보면 탁월한 선택이기도 해서 수한은 받을 전화와 받지 않을 전화를 거르며 이 호황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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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이 난리가 났으니 케이블 방송국 쪽도 난리가 나는 건 당연했다. 특히 홍보팀 쪽이 난리가 났다. 정지원 작가가 나선 파급이 그만큼 컸다.
“네! 기사 내용 맞고요. 그쪽 문의는 저희한테 하지 마시고 드라마국으로 전화하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얼마나 전화가 많이 오는지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였다. 홍보 팀이 이러하니 드라마국 쪽도 시끄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직접 정지원 작가와의 계약을 성사시킨 김기해 국장은 정지원 작가의 파급력에 새삼 놀랐다.
“국장님. 대본은 확실한 거죠?”
“응. 물론이지. 정지원 작가한테 이미 받았다고.”
누가 스타 작가 아니랄까 봐 연출만 힘내면 되는 대본을 들고 왔다. 특히나 ‘더 아이돌’의 경험치가 제대로 쌓이면서 이번 드라마에서 그 재미가 폭발했다. 발연기를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 대본은 또 처음이라 김기해 국장까지 기대가 되었다.
그때 김기해 국장의 전화기가 울렸다. 이런 일에는 김기해 국장의 번호가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김기해 국장은 의문을 그리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온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드라마는 절대로 받아 주지 말라고요?”
가온이라면 배우 쪽으로 잘나가는 기획사라 김기해 국장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가온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SSS급 슈퍼스타’ 관련하여 조작 루머를 풀었다는 거다.
예능이긴 하지만 케이블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이므로 김기해 국장은 그 지시를 이해하고는 앞으로 드라마를 검토할 때 가온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연기자가 나오는 드라마는 대작이 아닌 이상 제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