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수한은 옆에서 긴장하는 서이나를 보았다. ‘더 아이돌’을 통해 김민영 작가와 만난 적은 있지만, 그 뒤에 있던 정지원 작가는 만난 적이 없기에 지금이 처음이었다. 오늘 정지원 작가가 서이나를 부른 이유는 주인공으로 세우기 전에 서이나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정지원 작가는 캐릭터의 개성도 중요히 여기지만, 그보다 그 개성을 배우가 어떻게 녹이느냐를 더 중요히 여겼다. 배우에 따라 같은 대사를 하더라도 그 맛이 달랐다. 그래서 정지원 작가가 서이나를 택한 이유도 있었다. 서이나는 대사의 힘이 무엇인지 아는 배우였다.
“좋은 분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차현은 이미 탑스타이니 수한이 밀어줄 것도 없었지만, 서이나는 올라가는 중이기에 이 시기가 굉장히 중요했다.
수한이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누군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나온 건 정지원 작가의 다른 보조 작가였다. 김민영 작가는 독립했으니 이 자리에 없었다. 그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 것 같아 수한은 정지원 작가의 위치를 새삼 체감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정지원 작가님을 뵈러 왔습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한번 와 본 적이 있기에 수한은 자연스레 소파가 있는 거실로 갔다. 옆에서 서이나만 눈치를 볼 뿐이었다. 서이나는 정지원 작가가 모습을 보이기 무섭게 18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정지원 작가는 그런 서이나를 보며 웃은 뒤 수한에게 말을 먼저 걸었다.
“우리 은근 자주 보네요. 수한 씨.”
“네. 그만큼 친근감이 들어서 좋습니다.”
“커피 단 거 좋아하는 거 맞죠?”
“네. 맞습니다.”
만날 때마다 단 커피만 찾았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특히나 만나는 사람마다 특징을 열심히 관찰하는 정지원 작가에게 수한은 특징으로 삼을 게 많은 사람이었다.
“서이나 씨는 뭐 드실래요?”
“아! 저는 같은 거요.”
“정아야. 들었지? 시럽 넣은 커피 두 잔.”
“네! 작가님.”
주문하고 나자 거실에서는 적막이 들었다. 애초에 서이나를 여기 데려온 목적이 서이나를 관찰하기 위해서니 수한은 정지원 작가에게 약간의 시간을 주었다. 물론 수한의 의도와 다르게 서이나는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원래 이런 건가?’
수한이 옆에서 가만히 있으니 이게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이상하게 초조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고 그랬다. 어색함에 서이나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고 하자 그를 알아챈 정지원 작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많이 어색한가 보다. 외향적인 성격이라더니 침묵 견디는 걸 힘들어하나 봐요.”
“네? 네.”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을 휘어잡았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휘어잡았다기보다는 그냥 빨리 친해진 것 같아요.”
정지원 작가는 일부러 ‘더 아이돌’ 현장에서 있었던 서이나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게 서이나의 긴장을 풀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수한은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며 커피를 마셨다. 수한이 여기서 할 건 두 사람이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놔두는 거였다. 하지만 정지원 작가는 그런 수한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조금 친해졌다고 장난기가 돋은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특별 출연해 줘야 하는 거 알죠?”
“네. 작가님이 원하시면 그리하겠습니다. 근데 출연한다고 해서 시청자분들이 알까요?”
“몰라도 상관없어요. 제 만족을 위해서 그런 거니까.”
수한은 할 말이 많았지만, 앞에 있는 커피가 맛있어서 참았다. 그런 수한을 보던 정지원 작가는 웃으면서 말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단 것만 찾다가는 제명에 못 살아요.”
“그럼 작가님도 건강 관리를 잘하시는 편인가요?”
“그럼요. 특히 작가에게 중요한 건 건강이에요. 그것도 이 손가락.”
열 손가락을 까딱거리는데 수한은 정지원 작가의 손목에 있는 파스 비슷한 것을 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작가 중 많은 사람이 터널 증후군을 달고 산다고 한다. 수한은 관리하는 법을 자세히 물어본 뒤 나중에 유지아 작가를 만나게 되면 선물로 필요한 것을 해 주기로 했다.
“오늘 커피 잘 마셨습니다.”
“아! 가기 전에 이거 받아요.”
수한은 정지원 작가가 건네주는 책에 미소를 지었다. 내용을 보기도 전에 눈앞에 뜬 능력치가 웃음이 나오게 했다. 정지원 작가가 건네준 책은 이번에 나오는 정지원 작가의 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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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 - 대중성: S, 화제성: S, 평균 시청률: 12%(21%), 성장 가능성: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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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시청률 안에 다른 게 있네?’
수한은 저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금세 답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답의 확신을 얻기 위해 정지원 작가에게 물었다.
“이게 케이블에 들어갈 그 드라마 대본인가요?”
“네. 맞아요. 수한 씨 안목이 좋네. 단번에 드라마 대본인 거 알아보고.”
“별말씀을요.”
역시 케이블 시청률과 지상파 시청률을 나눠 놓은 거였다. 한쪽 시청률이 더 높은 걸 봐서는 그쪽이 지상파 시청률이었다.
“보고 어떤지 이야기해 줘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이나 씨도 대본 보고 어떻게 캐릭터를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고 다시 와요.”
“아! 네!”
정지원 작가가 하나 더 건네주는 책을 서이나가 공손하게 받았다.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참견 안 하는 게 정지원 작가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직 서이나의 위치는 신인이었다. 그래서 미리 연기의 방향성을 잡아 줄 생각이었다. 이게 수한이 한 일에 대한 그녀의 보상 중 하나였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해서 가요.”
수한은 바깥에 나오자마자 한숨을 작게 쉬었다. 서이나는 긴장이 풀어진 수한의 얼굴에 설마 하며 수한을 보았다. 수한은 그런 서이나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사람이니 긴장합니다.”
“헐. 말도 안 돼.”
“사무실로 함께 가시겠습니까?”
“네. 갈래요.”
기획사 사무실에 한번 가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오래 있지 않았기에 서이나는 아직 궁금한 게 많았다. 물론 현재 궁금한 건 지금 타고 있는 차였다. 지난번에도 봤지만, 좋은 차다. 그러면서도 서이나는 수한의 운전 실력을 부러워했다.
“저는 언제 운전면허 딸 수 있을까요?”
“되도록 성인 되고 나서 따는 걸 추천합니다.”
“왜요?”
“보는 눈이 많으니까요.”
그 말에 서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아이돌’에서 서이나의 반응이 좋기는 했지만, 그만큼 안티도 늘었다. 처음에는 좋은 댓글만 달리다가 악플이 달리기 시작하니 서이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나빴다.
“저 앞으로 댓글 안 보려고요.”
“좋은 생각입니다.”
“헐. 저 아는 사람은 악플도 관심이라고 하던데요?”
그 아는 사람이 무명 시절에 만난 사람이기는 해도 서이나는 공감하는 바였다. 기사에 무플만 있는 것보다 악플 하나라도 달린 게 더 나았다. 하지만 수한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 관심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가면 제가 좋은 댓글만 달린 걸 보여 드릴 테니 그거만 보십시오.”
“그러면 사람이 너무 편협해지지 않을까요?”
“서이나 씨는 기획사가 왜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서이나가 씩 웃었다. 그러니까 수한이 알아서 중심을 잡아 줄 테니 그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변해도 수한은 변할 것 같지 않아 서이나는 안심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물론 저도 가끔 틀릴 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도 눈치 보지 말고 말씀하십시오. 새겨듣겠습니다.”
서이나는 수한이 그럴 거라고는 전혀 생각 안 하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니 새겨듣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새 차는 기획사 주차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대표님 방에 가서 읽어도 돼요?”
“네. 그러세요. 저는 만나야 할 사람이 따로 있어서요. 필요한 거 있으면 이 실장님에게 가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네! 대표님!”
묘하게 기합이 들어가 있어서 수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10대 특유의 발랄함이라서 귀엽게만 느껴졌다.
대표실이라고 마련한 자리는 다른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수한도 엘 엔터테인먼트의 나이수처럼 큰 사무실을 대표실로 가지고 싶었지만, 가진 돈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니 대표실 크기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작은 것도 아니어서 서이나는 편하게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럼 잠시 내려가 있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이 실장님에게!”
“네. 좋습니다.”
수한은 정지원 작가가 건네준 대본을 책상 위에 올려둔 뒤 연습실로 내려갔다. 오늘도 지훈이 연습하러 왔을 게 뻔해서 인사도 할 겸 실력도 되찾았는지 궁금해서 찾게 되었다. 주혁이 예상한 것보다 좋은 성과를 거둬서 나타난 기대였다.
수한은 그다음으로 낼 지훈의 앨범도 기대되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원래 이렇게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게 되는데.’
하지만 이 눈이 알려 주는 천재가 지훈이었다. 수한은 실망할 일이 없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가끔 눈이 보여 주는 수치와 현실이 안 맞을 때가 존재하기는 했다.
“어때요?”
지훈이 긴장해서 옆에 섰다. 수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있었다. 귀로는 지훈이 새로 작곡한 곡을 들었지만, 눈으로는 기대만도 못한 수치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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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대중성: D, 음악성: C, 최고 순위: 순위권 밖, 성장 가능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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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성까지 떨어지는 곡이었다. 게다가 이 정도 낮은 수치면 성장 가능성이라도 커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곡은 그냥 버리고 시작하라고 능력치가 말해 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4년을 쭉 쉰 것도 아닌데 이렇게 떨어지는 건 오랜만에 봤다. 수한은 다시 지훈을 보았다. 그 사이에 지훈의 능력치가 떨어지기라도 했나 걱정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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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 스타성: S, 연기력: F, 가창력: A, 춤: B, 인지도: D, 기타: S, 성장 가능성: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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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도 달라진 건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감을 잃었으니 감을 되찾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수한의 열정 가득한 얼굴에 지훈은 의문을 그리다가 하루 10개 이상 노래를 작곡해 오라는 수한의 과제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무리 저라도 그건 힘든데요?”
“일단 해 보죠. 해 본 뒤에 이야기합시다.”
갑자기 스파르타식으로 진행할 줄 몰랐기에 지훈이 크게 당황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수한은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대표님…….”
“배고플 때는 식당에서 잘 식사하시길 바랍니다.”
“네…. 일단 해 보긴 할게요.”
그래도 지훈이 착하다고 생각하는 건 이런 점 때문이었다. 다른 작곡가였으면 너는 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들며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훈도 이번에 작곡한 곡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수한이 시키는 대로 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도 안 된다면 수한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지훈이 예전의 감을 찾기 전까지는 모든 계획을 실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한은 다른 건 몰라도 제 눈은 믿기에 지훈이 곧 감을 찾을 거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