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유지영은 할 일을 마친 뒤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여섯 시 반이었다. 유지영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실시간 검색어에 ‘소원’과 함께 뜨는 ‘고주혁’이라는 이름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맞다. 고주혁 곡 낸다고 했지?’
원래라면 대중가요에 관심 없는 유지영이지만, 수한이 새로 차린 기획사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곡이기에 들어 보기로 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마루 엔터테인먼트 개업식을 다녀왔기에 유지영은 회사 규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한 이유가 있었네.’
수한이 일을 잘한다고 하지만, 몇 개씩 겹쳐서 일하는 걸 볼 때마다 돈이 급한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 드라마에 투자한 것도 그렇다. 전 재산을 투자한 보람이 있게 드라마는 큰 성공을 이루었다. 특히나 여자 주인공인 유진이 대상 후보로 언급되고 있어서 유지영까지 기대 중이었다.
‘건물만 봐도 대단했지.’
유지영의 회사도 허름한 편은 아니었으나, 마루 엔터테인먼트와 비교하면 부럽기는 했다. 게다가 시설도 얼마나 좋게 만들어 놨던지 유지영은 회사를 없애고, 수한의 기획사에 들어갈까, 잠깐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그래서는 절대 안 되지만 말이다.
‘행복한 고민이었다.’
유지영은 십 분만 쉬자는 개념으로 음악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러자 메인으로 고주혁의 사진이 뜨면서 앨범이 나왔다. 이번에 디지털 싱글로 낸 곡은 총 세 곡이었다.
‘고주혁이라…….’
수한이 ‘SSS급 슈퍼스타’로 키워 낸 스타이지만, 수한이 나가면서 좋지 않은 노래만 줄곧 내다가 성적이 안 좋아 해외 투어로 돌리게 된 가온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적 가수였다.
예전에 비하면 화제성이 크게 떨어졌기에 유지영은 수한의 선택이 과연 옳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최근에 ‘SSS급 슈퍼스타 시즌 6’에 출연하면서 화제성을 다시 얻었다고는 하는데 그것도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이 사람을 다시 데려온 걸 보면 재능은 있다는 거겠지?’
유지영은 아무 생각 없이 세 곡을 재생했다가 깜짝 놀랐다. 좋은 곡은 전주부터 다르다고 하더니 바이올린 소리가 울리면서 순식간에 유지영을 몰입하게 했다.
유지영은 세 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도 모르게 대박 소리가 연속으로 나오게 되었다.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노래에 유지영은 음악을 다시 틀었다가 전곡 반복 재생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노래를 이렇게 부르지?’
아니다. 이건 곡이 좋은 것도 한몫했다. 어느새 집중하고 있으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유지영은 계속해서 노래를 듣다가 시간이 오후 일곱 시가 넘어간 것을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곱 시 반이었다. 노래를 들은 지 한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유지영은 자신의 귀에만 이 노래들이 좋게 들렸을지 궁금했다. 대중가요를 워낙 안 듣다 보니 현재 유행과 맞는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유지영은 음원 순위를 보게 되었다.
‘1위는 아니어도 10위 권 안에는 들어가 있네.’
8위였다. 오랜만에 앨범을 냈다고 해도 이 정도 성과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위로는 소원의 곡이니 좋은 성과라면 좋은 성과였다.
다른 음원 사이트를 보니 비슷했고, 기사로는 고주혁의 새 노래에 대한 극찬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소원의 앨범 다음으로 말이다. 특히나 네티즌 반응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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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혁이 부활했다!
ㄴ부활했다 2222
ㄴ노래가 SSS급 슈퍼스타 시절 때 퀄임 ㅇㅇ
-그저 기획사 하나 옮긴 것뿐인데요. 곡의 퀄이 달라지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ㄴ그러고 보니 옮긴 기획사 대표가 SSS급 슈퍼스타 시절 매니저래
ㄴ미쳤다 ㅎㄷㄷㄷ
ㄴ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냐?
ㄴ가온 병신들. 이런 가수를 두고 왜 그동안 삽질만 함?
ㄴ그래도 가온은 소원이 있는 한 안 흔들림 ㅇㅇ
-대박! 작곡가가 에이치네.
ㄴ이 사람이 누군데?
ㄴ히트곡 공장임 내는 곡마다 다 히트곡임
ㄴ고주혁 슈퍼스타 시절에 낸 곡이 다 에이치 거임
ㄴ진짜? 대박이네
-이 대박 노래를 이긴 소원은 대체 뭐임?
ㄴ탈인간이지 ㅎㅎ
ㄴ소원은 솔직히 천상계 아님? 대진운이 나빴음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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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혁의 부활이라는 반응이 대세적이었다. 더불어 기획사 하나 옮긴 것만으로도 곡의 질이 달라졌으니 마루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도 생겼다.
‘오늘 그쪽 회사 전화 불나겠네.’
네티즌과 다르게 이쪽 업계 사람들은 수한에 대해 알고 있으니 더 불같은 반응일 거다. 캐스팅 디렉터로 활약했던 수한이 기획사를 차린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만 해도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첫 타자로 고주혁을 데려와서 더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한은 보란 듯이 본래 고주혁이 어떤 가수였는지 보여 주었다.
‘물론 신중한 사람들은 이거 하나만으로는 움직이지 않겠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 급한 사람들은 수한에게 접근할 가능성이 컸다. 수한이 그 안에서 신중하게 몇 개만 잡아 내서 성공 가능성을 보인다면 신중한 사람들도 움직일 거라 여겼다. 유지영도 그동안의 인연과 별개로 신중하게 수한의 행보를 지켜보는 사람 입장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잘됐으면 좋겠네.’
유지영도 고주혁의 신곡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기에 기대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러다가 훌쩍 지나간 시간에 유지영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으. 오늘도 야근하게 생겼네.”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좋은 곡을 들어서인지 다시 기운이 났다. 유지영은 회사 일을 시작하기 전에 수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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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혁 씨, 신곡 무척 좋네요. 첫 시작부터 좋아요.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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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락하는 사람이 유지영뿐이 아닌지 수한에게서는 바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유지영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위해 인터넷을 끄려다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 기사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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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 마루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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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차현의 기획사 대표 도주 사건 이후로 차현이 어느 기획사에도 들어가지 않아 업계에서 말이 나오던 상황이었다.
‘그래. 나한테도 탐난다고 말한 사람이 여럿 있었지.’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강우형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붉은 꽃’이 크게 성공했기에 차현의 몸값이 크게 오른 상태였다. 배우 위주인 기획사들이 특히 탐내던 인재라서 어디로 갈지 궁금했건만 결국, 마루 엔터테인먼트로 가게 되었다.
유지영은 수한의 수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차현이 마루 엔터테인먼트로 오게 된 계기에는 연인인 유진이 크게 적용했을 거라 여겼다.
‘인제 보니 김수한 씨 엄청 위험한 사람이네.’
그런데도 수한과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수한이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오는 사람이면 사람이었지,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명훈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텅 비어 있는 내부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동현과 호기롭게 기획사를 차리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어려웠다.
‘결국, 무명들을 데려와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건데.’
원래 목적은 동현이 아는 연예인들을 데려와 계약하는 거였다. 그 연예인들 소속이 가온 엔터테인먼트라고 해도 명훈은 상관없었다. 수한과 다른 의미로 쫓겨나다시피 해서 나왔는데 전 회사에 대한 의리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이용만 당했다고.’
수한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니 불만이 많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온에서 성민이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좋은 기회가 왔다 싶어서 동현을 통해 계약 기간이 다하는 연예인들에게 연락했지만, 하나같이 거절이었다. 염두에 두고 있는 기획사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훈은 고민하다가 지훈에게도 연락했다. 한 명이라도 아쉬운 상황이니 연락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거절이었다.
‘주제에 자존심 챙기기는.’
지훈 때문에 명훈이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데 그걸 알면 자신에게 이럴 수 없었다. 명훈은 됐다고 생각했다. 무명 중에서도 지훈과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찾으면 그만이다. 그 잘나가던 주혁도 명훈이 찾아낸 인재였다.
‘김수한이 훔쳐 가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내 밑에 있었을 텐데.’
주혁에게 미련이 있었기에 가온에서 나왔다는 소식은 알았다. 마루 엔터테인먼트가 마음에 차지 않으면 다음에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어 살짝 기대도 되었지만, 최근에 나온 주혁의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그 기대도 곧 접혔다. 그러나 주혁이라고 해도 천상계에 있는 소원을 이길 수 없었다.
‘하여튼 간, 소원 얘는 어떻게 데려와서.’
수한이 데려와서 작곡 재능을 살렸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하지만 죽 쒀서 개 준 게 지금의 수한이라서 명훈은 그 안목을 크게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얘는 요즘 뭐 하고 지내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만 동현에게 전해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일을 하지 않을까 짐작만 했다. 오히려 그쪽에서 더 알아준다고 하니 명훈의 조언대로 엘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지 않은 게 다행이기는 했다.
‘근데 그때 내가 했던 말을 받아들일지는 몰랐는데 말이야.’
조언이랍시고 한 말은 악의였지만, 결과적으로 명훈의 뜻을 따른 거라 수한에 대한 감정이 조금 가라앉기는 했다.
‘선배는 선배라 이건가?’
4년이라는 세월이 감정을 망각하는 데에는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명훈은 차라리 수한을 데려올까 하는 고민도 했다. 수한이 일을 잘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었다. 명훈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SSS급 슈퍼스타’는 수한의 공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지친 얼굴의 동현이 들어왔다. 조그만 사무실에 두 사람이 덩그러니 있으니 내부가 좁다는 생각은 들었다. 사무실만 보면 왜 연예인들이 계약하고 싶지 않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계약은 되도록 밖에서 하는 편이지만.’
“성과는 있어요?”
“연습생 중에 괜찮은 애 하나 발견했는데 이미 다른 곳과 이야기 하는 중이라고 하네.”
“다른 곳이요?”
“고주혁이 들어간 소속사 말이야.”
마루 엔터테인먼트. 무슨 아이스크림 떠오르게 하는 이름이라서 더 기억에 남았다. 하긴 MD 엔터테인먼트처럼 새로 생긴 기획사이다 보니 인재 모으는 데 바빠 영역이 겹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거기 되게 빠르네요.”
“거기 대표가 인맥도 넓고, 성실한 편이니까.”
명훈은 그 대표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 동현의 모습에 의문이 생겼다. 동현의 인맥이 넓은 편이긴 하지만, 이런 신생 기획사 대표까지 안다니 신기했다.
그와 별개로 이렇게 영역이 겹쳐서야 문제였다. 한창 달려야 할 시기에 연예인이 없어서 회사가 안 돌아가니 이래서는 안 되었다.
“그쪽에 양보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하겠죠?”
“그렇지. 각자 노선을 달려야 할 거야.”
동현은 마루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수한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그쪽으로는 포기했다. 이미 수한과 명훈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캐스팅 디렉터로서 알려진 수한은 자기 일은 결코 남에게 빼앗기지 않았다. 특히나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라면 더 그럴 게 뻔했다.
‘이렇게 힘들어질 줄 알았으면 수한이가 제안할 때 그쪽으로 가겠다고 말했어야 했나?’
동현은 금세 고개를 저었다. 수한이 제 꿈을 그대로 이루고 생각보다 성과가 좋아서 놀라긴 했지만, 첫 시작만 그런 걸 수도 있다. 그걸로 흔들리기에는 동현에게도 자존심은 있었다. 게다가 명훈까지 함께 받아 달라고 하면 수한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명훈을 배신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더 열심히 해야지.”
“네. 좋아요.”
“근데 우리 계약서 내용은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명훈에게 맡기기는 했지만, 몇 가지 항목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그러나 명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들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요. 일단 회사부터 키워야죠.”
“그래.”
“그리고 이대로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영업 뛰러 가시죠.”
“그래. 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