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43화 (143/186)

143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오랜만이에요!”

“네…. 오랜만이에요.”

반가워하는 주혁과 다르게 지훈은 저절로 주눅이 들었다. 수한의 옆에 있는 주혁은 확실히 좋아 보였다. 주혁이 이미 ‘SSS급 슈퍼스타 시즌 6’에 나간 것도 봤기에 지훈은 이제 수한을 안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수한 형한테 지훈 씨 이야기 들었을 때 엄청 설렜어요.”

“네?”

“천재시잖아요. 천재의 곡을 바로 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행운이에요.”

주혁의 반짝이는 얼굴에 지훈은 저절로 수한을 보게 되었다. 서로 말 맞추고 왔느냐는 그런 시선이라서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작곡할 줄 모르는 주혁에게 있어 지훈은 천재가 분명하다. 주혁은 다시 작곡을 배워 봤지만, 여전히 재능이 없었다. 주혁은 남이 작곡해 준 노래를 들고 노래해야 하는 가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주혁 스타일로 잘 소화해 내니까.

“그래서 마루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생각 좀 해 보셨습니까?”

수한의 말에 지훈은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그동안 쌓인 실패의 역사가 길었다. 그것도 그냥 망한 것도 아닌, 부모의 돈까지 손대서 망했으니 그 실패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지훈을 안다는 것처럼 수한은 말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지훈은 멍하니 수한을 봤다. 그동안 지훈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 안다는 얼굴이었다. 하긴 그때 편의점에 찾아왔을 때부터 지훈은 수한이 자신의 뒷조사를 했을 거라 예상은 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지훈은 수한에게 실망하지 않았다. 그 모든 걸 알고도 손을 내미는 거니까.

“아직 망설여진다면 주혁 씨의 실패를 한번 봐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네?”

지훈이 놀라서 주혁을 보자 주혁이 미소를 지었다. 마치 혼자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한 반응에 지훈이 의문을 구하자 수한이 그 답을 말해 주었다.

“이번에 소원 씨와 맞붙을 예정이거든요.”

“아…….”

그렇다면 이해는 되었다. 지훈이 세상에 관심을 안 가지려고 해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게 소원의 노래였다. 4년 사이에 소원은 연예인의 연예인이 되어 버렸다. 지훈이 꿈꾸던 이상향이 되어서 활동 중이었다.

그런 소원과 맞붙는 건 스스로 깨지겠다는 거였다. 일명 달걀로 바위 치기였다.

“근데 왜 굳이 그렇게 하는 거죠?”

“보복입니다. 보복에는 맞서야죠. 도망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한의 담백한 말에 지훈은 이해가 되었다. 지훈이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기 전에도 지훈은 수한과 남일의 사이를 잘 알았다. 지훈과 주혁을 데리고 경쟁까지 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치졸하네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 부딪치려고요.”

주혁의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 그 모습은 절대로 패배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함께하자고 미소를 짓는 주혁의 모습에 지훈은 크게 흔들렸다.

이제까지 지훈은 실패할 때마다 늘 혼자였다. 누구든 실패한 원인을 지훈에게 떠밀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주혁을 보니까 이번에는 혼자 외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지훈 씨 일부터 해결해야 할 게 많으니 주혁 씨 다음 타자로 밀어드리겠습니다.”

가온에 있을 때도 준비만 하다가 끝났기에 지훈은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게 수한의 탓은 아니었다. 상황에 밀려서 미뤄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지훈 씨의 가능성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계약서입니다. 천천히 보시고 고치고 싶은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수한의 배려에 지훈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계약서를 미리 준 것에서 지훈은 수한을 신뢰하게 되었다.

지훈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카페에서 나갔다. 지훈이 다음으로 향할 곳은 당연히 다음 아르바이트 장소였다. 지금 시간도 겨우 빼서 만든 거였다.

지훈은 걸어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새 카페에서 나온 두 사람이 아쉬워하며 지훈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지훈에게는 또 다른 감동이 되었다. 하지만 그로도 지훈은 마음의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지훈은 가면서 계약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계약서 내용은 깔끔했다. 장난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대형 기획사처럼 연습 비용은 회사에서 투자 비용으로 감당하기로 되어 있어서 지훈은 이 계약이 마음에 들었다.

고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으나, 고칠 게 전혀 없는 게 이 계약서의 흠이라면 흠이었다.

지훈이 도착한 다음 아르바이트 장소는 정지원 작가와 수한이 들른 적이 있던 초밥집이었다. 맛은 있지만, 손님이 많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다.

“어서 오세요!”

지훈은 수한과 주혁을 만난 게 꿈 같이 느껴지면서 현실을 직시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기에는 4년의 세월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지훈도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되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자 전화 한 통이 와 있는 게 보였다. 지훈은 당연히 수한일 거라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다. 수한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하지 않아서 일어난 실수였다.

[안녕하세요. 지훈 씨.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지훈은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몸이 굳어 버렸다. 지훈이 연예인이라는 꿈에 대한 환상이 없어지기 시작할 때 함께한 사람이었다. 지훈에게 첫 실패를 안겨 준 사람, 최명훈이었다.

“자, 잘못 전화하신 것 같습니다.”

[에이. 지훈 씨 맞잖아요.]

지훈의 탓을 하기 바빴던 목소리는 어느새 능글맞아졌다. 실패의 기억 중 첫 번째라 그런지 지훈은 쉽게 명훈의 전화를 끊지 못했다.

[지훈 씨. 그때는 정말 죄송했어요. 그런 의미로 지훈 씨를 한번 만나서 제대로 사과드리고 싶은데 만날 수 있을까요?]

원래라면 안된다고 해야 했는데 지훈은 어느새 주소를 적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명훈은 4년의 세월 동안 어떻게 바뀐 건지 말로 지훈을 가지고 놀았다. 지훈은 전화를 끊은 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약속했으니 나가긴 해야 했다.

‘그래. 사과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지훈은 생각이 많아졌지만, 일단은 나가 보기로 했다. 명훈의 사과로 과거의 상처 하나가 사라진다면 지훈에게도 나쁘지 않은 거였다. 지훈은 약속 날짜를 바로 내일로 잡은 게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빨리 사과만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

교대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오지 않아 지훈은 약속 시각에 늦게 되었다. 그에 관해서는 사과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빠르게 달려가던 지훈은 카페 창문 너머로 전화 통화하는 명훈을 발견했다.

‘어?’

무슨 통화를 하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서 머리가 먼저 새하얘졌다. 더불어 옛날 일이 떠오르면서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 버렸다.

‘괜히 왔나?’

수한을 만날 때는 이러지 않았기에 지훈은 작은 혼란을 겪었다. 수한을 믿지 못해 주혁까지 만났지만, 명훈을 보게 되니 지훈은 자신이 수한을 은연중에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훈은 고민하다가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데도 명훈은 통화에 집중한 상태였다. 그래서 지훈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전화 통화를 했다.

“네! 네!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마음이 약해서 제가 계약하자고 들이대면 계약할 거예요!”

얼마나 목소리가 크던지 카페 구석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명훈의 목소리를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보다 지훈은 그 내용이 왠지 자신과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이라고?’

지훈은 살짝 고민하다가 의심하는 것보다 확실히 아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여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막 들어온 척 연기를 해 보았다. 물론 지훈의 연기력은 F 등급이지만, 명훈은 전화 통화 중이었기에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눈에 띄게 지훈을 반가워했다. 이번에는 단번에 지훈을 발견했다.

“네. 그러면 다 해결한 뒤에 연락드릴게요.”

명훈은 전화를 끊고 나서 다짜고짜 손을 내밀어 지훈의 손부터 붙잡았다. 나름대로 친근함의 표시였다.

“어서 오세요. 잠시 전화 통화하고 있었어요. 뭐 드실래요?”

“그냥 물이면 괜찮아요.”

“에이. 제가 약속 잡은 건데 제일 비싼 거로 드시죠.”

요즘 커피 값이 밥값과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그 한계선이 고작 밥값이기는 했다. 그래서 명훈은 많이 넘어가 봤자 만 원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답지 않게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훈은 싸한 구석이 있기에 괜찮다며 물을 고집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명훈은 물과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오랜만이에요. 지훈 씨.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잘 지냈다고 하기에는 예전과 다르게 인상이 어두워진 지훈이었다. 명훈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명훈은 호감 가는 웃음을 계속해서 보이며 지훈을 최대한 챙겨 주려고 했다. 그래서 지훈은 저절로 알게 되었다.

‘역시 방금 그 통화가 나와 관련된 게 맞는구나.’

대놓고 계약하자고 했던 수한과는 다른 방법이라 지훈은 정말로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 걸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이나 찾아와서 계약 제안을 할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일단 예전에 제가 지훈 씨에게 화내고, 소리쳤던 거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럴 만했는데요.”

“그렇죠? 제 탓만은 아니었죠? 그때 지훈 씨가 너무 긴장해서 그랬던 거 저도 알아요.”

지훈은 명훈의 묘한 뉘앙스에 눈을 크게 떴다. 지훈이 이상함을 눈치채려고 하기가 무섭게 진동벨이 울렸다. 명훈은 재빠르게 주문한 걸 가져오며 실실 웃었다.

“물 드세요.”

“네…….”

지훈은 어색하게 나온 물을 마셨다. 물은 그냥 맹맹한 그런 맛이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물보다 비싼 가격이길래 조금 다르긴 한 건가 했는데 잘 모르겠다. 그 사이에 명훈은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건 다 과거의 일이니까 깔끔하게 잊고 지훈 씨와 새로 시작하고 싶어서 찾아오게 됐습니다.”

“새로 시작이요?”

“제가 최근에 기획사 하나를 차렸거든요. 동현이 형 기억하세요?”

“동현…….”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지훈과 함께한 적은 없었다. 지훈의 현장 매니저는 승택이었기 때문이다. 지훈에게 굉장히 잘해 준 매니저 중 한 사람이기에 지훈은 승택을 기억했다.

“아무튼, 동현 형이랑 둘이 차린 회사거든요. 회사 이름은 MD 엔터테인먼트예요.”

지훈은 수한의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여기서 수한의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것 같다. 남일뿐만이 아니라 명훈 또한 수한으로 인해 회사에서 나간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즘도 작곡해요?”

“아니요. 손 놓은 지 오래됐어요.”

대놓고 실망하는 얼굴에 지훈은 쓰게 웃었다. 하지만 명훈은 아직 희망을 놓지 않았는지 노래 연습은 안 하냐고 물었다.

“네. 일이 바쁘다 보니 못 하게 되었네요.”

“이거 참 곤란하네요.”

“네?”

“아니에요. 아무것도.”

이미 다 들어 버렸는데 뭘 아니라고 하는 건지 지훈은 명훈의 대놓고 드러나는 생각에 할 말이 없어졌다. 지훈의 재능을 확신하는 수한과 다르게 명훈은 괜히 만났나 후회하는 모습도 보여서 지훈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지훈 씨. 가수 꿈을 버린 건 아니죠?”

“어…….”

지훈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살짝 당황했다. 당연히 버렸다고 말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틈을 명훈은 명확하게 파고들었다.

“역시 그 꿈을 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노래해야죠. 제가 지훈 씨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사실 다른 기획사였으면 이 정도 선에서 가망 없다고 포기했겠지만, 저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훈은 다짜고짜 계약서를 내미는 명훈의 모습에 멍해졌다. 지훈의 혼이 빠져나간 사이에 계약을 밀어붙이려는 게 틀림없었다. 지훈은 어느새 펜을 잡은 제 모습에 놀랐지만, 앞에서 웃으면서 압박하는 명훈의 모습에 계약서를 보게 되었다.

‘어?’

그러나 지훈이 4년의 세월을 괜히 보낸 게 아니었다. 이미 사기를 당한 전적이 있어서 말장난하는 조항들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 조항들이 계약서에 담긴 걸 본 순간 지훈은 정신을 차렸다.

“죄송하지만, 저는 계약 못 하겠어요. 그리고 이런 일로 만나자고 할 거면 앞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지훈은 그 말을 끝으로 카페에서 나왔다. 뒤에서는 지훈을 부르는 명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지훈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마루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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