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42화 (142/186)

142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수한은 카페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밥 살 테니 따라오라는 정지원 작가의 눈짓에 웃었다. 생각한 것보다 이야기가 더 잘 풀렸다. 김기해 국장은 위치만큼이나 바쁜 사람이라 카페에서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서로 이야기가 잘 된 탓에 그의 돌아가는 뒷모습은 즐거워 보였다.

정지원 작가는 김기해 국장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수한에게 말했다.

“중간에서 애써 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러려고 중간에 낀 거니까요.”

“그래서 누굴 제 드라마에 넣고 싶은 거예요?”

가볍게 화제를 꺼냈지만,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쉬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수한은 최근에 수한과 계약한 한 연기자를 떠올렸다. 전에는 캐스팅 디렉터로서 드라마에 참여시켰지만, 이번에는 소속 연기자가 되었으므로 예전과 그 관계가 달라졌다.

“작가님도 아는 사람입니다.”

그 말에 정지원 작가는 바로 누굴 말하는지 깨달았다. ‘더 아이돌’에서 갈수록 분량이 늘어났던 그 연기자를 말하는 게 틀림이 없었다.

서이나. 어린 나이인데도 연기를 할 줄 아는 아이였다. 훗날에 탑스타가 될 게 자명한 아이라 정지원 작가도 그 이름과 얼굴을 외워 뒀다.

“하긴 그때만 해도 어디에 속한 데가 없었죠?”

“네. 그래서 제가 중간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유지영의 영화를 찍을 때도 수한이 도움을 주었으므로 ‘더 아이돌’에서 도움을 주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갖은 소속사에서 서이나에게 눈독을 들였다. 정지원 작가만 하더라도 아는 곳이 있었다면 추천해 줬을 정도로 서이나의 스타성은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지원 작가가 아는 기획사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괜찮은 기획사가 없었다.

기획사들은 하나같이 다 양아치들이었다. 솔직히 말해 정지원 작가는 연예 기획사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대본을 고쳐 달라고 요청만 하니 글을 쓸 수가 있어야지.’

배우들은 정지원 작가를 믿고 따랐지만, 그들의 기획사는 달랐다. 조금 더 멋있게, 조금 더 예쁘게 갖은 요구를 해 왔다. 아무리 정지원 작가가 상업적인 작가라고 해도 그 말을 다 들어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한은 특이한 경우였다. 작가의 이득을 위해 먼저 움직여 주는 연예 기획사라니 들어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서이나가 이 사람 기획사에 들어간 건가?’

“그 애, 캐스팅할 때부터 눈독 들이고 있었죠?”

“애초에 제가 데려온 사람입니다.”

수한에게 빚을 진 건 서이나였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 빚은 계속해서 쌓이는 중이었다. 수한이 밀어주는 덕을 톡톡히 보는 중이었으니까.

“안 그래도 제 이름을 건 작품에서 한번 써 보고 싶긴 했어요.”

“연기를 기가 막히게 잘하죠?”

“네. 원래 이런 식으로 조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없긴 한데 이번에 하게 되겠네요.”

수한은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놀라고 말았다. 많이 바라봤자 중요한 조연이었지, 주연일 거라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 진짜 놀란 건 정지원 작가였다. 설마 제 몸값을 수한이 키워 줄 거라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일을 잘했으면 그에 대한 보상도 받아야죠.”

게다가 서이나가 워낙 연기를 잘해서 연기자로서는 부족함이 없었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래서 점심은 무엇을 사 주시려고요?”

“근처에 아는 곳이 있어요. 그리로 가요. 그러고 보니 차 안 가져왔어요?”

“가져왔습니다.”

수한이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자 잘빠진 외제 차 하나가 서 있었다. 워낙 관리를 잘해서 새 차 같았다. 물론 아껴서 타느라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정지원 작가는 올 때 택시를 타고 왔으므로 거리낌 없이 수한의 차에 올라탔다.

“주소는 제가 알려 드릴게요. 그리로 가요.”

“네. 알겠습니다.”

정지원 작가가 데려간 곳은 자그마한 식당이었다. 정지원 작가만이 아는 맛집인지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아서 나쁘지 않았다. 수한은 주문을 받기 위해 걸어오는 종업원을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여기 초밥이 맛있어요.”

“아! 네.”

초밥이라면 수한도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수한은 종업원의 존재가 더 신경 쓰였다. 저번 편의점은 수한이 직접 찾아간 거였으나, 이번에는 정말로 우연이었다. 저쪽에서도 우연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는 여기 연어를 좋아해요.”

“저는 작가님이 시키는 대로 먹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수동적이라 볼 수 있겠지만,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다른 사람의 메뉴를 골라 주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정지원 작가도 그런 편이었는지 쉽게 주문을 했다.

수한은 주문을 받는 지훈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실제로 보게 되니 마음이 그랬다. 수한의 시선이 자꾸만 지훈에게 향하자 정지원 작가도 그런 수한을 알아채고는 묻게 되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네. 예전에 매니저 일을 했을 때 담당한 적이 있던 연예인입니다.”

그 말에 정지원 작가가 흥미로운 눈으로 지훈을 봤다. 그 시선이 실례가 되는 걸 알면서도 본 것은 재미있는 캐릭터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훈의 손에 지금 기타는 없지만, 기타를 치는 모습이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독특한 조연 캐릭터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정지원 작가는 즐겁게 식탁 위에 있는 연어를 입에 넣었다. 역시 입 안 가득 터져 나오는 연어 특유의 부드러움은 언제 먹어도 훌륭하다.

“저 사람은 그러면 연기자였어요? 가수였어요?”

“가수입니다. 조만간 저희 기획사로 데려오려고요.”

수한의 안목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겠지만, 정지원 작가는 수한이 욕심을 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럼 저 사람과 계약하게 되면 저한테도 따로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수한은 지훈의 연기력 수치를 알기 때문에 연기를 시키는 거라면 반대를 하고 싶었지만, 그게 아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냥 관심만 가지는 걸 수도 있으니까. 괜히 이상한 소리를 해서 정지원 작가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수한이 지훈을 보자 지훈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주혁과 만나기 전에는 편하게 대화할 생각이 없는 듯하니 수한도 부담스럽게 그에게 다가가지 않기로 했다.

***

------

[소원, 선공개곡 ‘Sunny’ 티저 컷 공개]

------

수한은 기사를 보고 쓰게 웃었다. 미리 소원에게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으나, 마음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수한은 가온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에 들어가 소원의 티저 사진을 보았다.

‘돈 쓴 티가 장난 아니네.’

주혁의 때와 확연히 달라서 수한은 남일이 얼마나 작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수한은 이 곡의 수치도 잘 알기 때문에 한숨을 먼저 내쉬었다.

------

[Sunny - 대중성: S, 음악성: S, 최고 순위: 1, 성장 가능성: 1%]

------

수한이 함께 손봐 준 곡이라서 모를 수가 없었다. 아주 주혁을 짓밟으려고 안달 난 게 곡 선정에서부터 느껴졌다. ‘Sunny’는 이름 그대로 발랄하며 명랑한 곡이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Easy song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독특한 비트가 음악성을 살려 주었다.

‘주혁 씨 것도 이 비슷한 수치이긴 한데 대중성으로 보면 밀리겠지.’

수치는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수한이 가장 잘 알았다. 비슷한 능력치가 붙으면 연예인의 인지도를 따랐다. 물론 ‘SSS급 슈퍼스타’로 주혁의 존재감을 알리긴 했으나, 수한은 다른 방법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어깨를 잡는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성민이 걱정하지 말라고 툭툭 쳐 주는 덕분에 수한은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믿음직한 동료가 필요한 것이다. 만약 수한 혼자 했으면 초조함에 성급하게 일하다가 일을 망칠 가능성도 있었다.

“그보다 이래도 돼?”

“네? 뭐가요?”

성민이 가리키는 건 작곡가 에이치였다. 수한이 무슨 말이냐고 쳐다보자 성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막 타 온 커피를 쭉 들이켰다.

“그보다 아무리 제 집이라고 하지만, 커피 너무 막 드시는 거 아닙니까?”

“야. 제대로 된 사무실도 없는데 이렇게 축 내기라도 해야지.”

“그래도 제가 일을 잘 물고 오잖아요.”

“그건 인정하마.”

달리 캐스팅 디렉터로 일하면서 인맥을 넓힌 게 아닌지 소속 연예인들의 일을 하나같이 잘 물어왔다. 심지어 하나같이 대어니 이 정도면 수한의 자신감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이지훈이는 오늘 만나러 가기로 했다고?”

“네. 주혁 씨도 함께요.”

“하긴 4년 동안 고생 많이 했는데 잘 설득해서 계약서에 도장도 찍고 와.”

“네. 당연하죠.”

수한이 자신만 믿으라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자 성민이 다시 커피 하나를 타는 게 보였다. 수한은 저 정도면 카페인 중독자가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집 정리하고 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무실 공사는 언제 끝나는데?”

“다음 주요.”

수한의 산뜻한 얼굴에 성민은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안 좋은 곳이기만 해 보라고 불평불만을 쏟아 냈다. 물론 수한은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수한이 바깥으로 나오자 슬슬 미세먼지가 낀 하늘이 보였다. 수한은 과거로 돌아왔을 때 봤던 새파란 하늘을 떠올리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수한은 지훈을 만나러 가기 전에 주혁을 먼저 데리러 갔다. 주혁은 수한의 외제 차는 처음 봤는지 휘둥그레져서 차를 봤다.

“형. 이거 연비가 얼마나 돼요?”

“비밀입니다. 일단 타시죠.”

“네. 와, 외제 차라 그런가? 착용감이 다르네요.”

주혁도 해외 투어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차를 따로 사지는 않았다. 이유는 음주 운전이라도 해서 사고라도 칠까 염려되어서였다.

“하긴 가온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그런 건 철저히 하는 편이죠?”

“네. 근데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술김에는 무엇이든 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성향이 있잖아요.”

조금만 운전하는데 뭐 어떠냐는 식으로 운전하다가 나중에는 거리낌 없이 탈 가능성이 컸다. 솔직히 말해 주혁은 음주 운전을 하는 사람을 살인자라고 여기는 사람이라서 앞으로도 차를 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콜택시라는 좋은 게 있으니까요.”

“정 안 되면 저를 부르셔도 좋습니다.”

“사실 그 생각도 하고 있었어요.”

신생 기획사이다 보니 매니저 역할을 수한과 성민이 하게 되었다. 아직 소속 연예인이 많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사무실에서 보는 업무는 현재 성민이 대부분 하게 되었다. 나머지 직원들도 이미 계약을 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사무실 공사가 끝나면 그때부터 일하기로 했다.

‘이것도 이번 주면 다 끝이겠네.’

수한은 기분 좋게 운전하여 지훈과 약속 잡은 장소로 갔다. 평범한 차들 사이에 들어온 외제 차는 확실히 존재감이 있었다. 카페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던 지훈까지 놀란 표정을 지었으니 말 다했다. 특히나 수한이 그 안에서 내리자 지훈은 놀라다 못해 굳어 버렸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내리는 주혁의 모습에 지훈은 눈 하나 깜빡거리지 못했다.

“지훈 씨와 약속한 대로 주혁 씨 데려왔습니다.”

보여 줄 거면 확실히 보여 주는 게 좋았다. 수한은 지훈의 반응으로 그 작전이 이미 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