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11. 마루 엔터테인먼트
수한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미리 기사를 대비해 놓았기 때문에 주혁의 출연 소식을 알렸고, 그 후 방송 후에서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특히나 주혁이 부드럽게 출연자들을 가르치는 모습에 설레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주혁이 시범으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이번 주 인기 있는 영상 2위를 달렸다. ‘SSS급 슈퍼스타’가 오랜만에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현장에 있던 이재성 PD도 만족스러워하는 반응이었다.
“오늘만 하면 끝이네요.”
“네. 근데 형, 이거 너무 과하지 않아요?”
주혁은 새 코디네이터가 입힌 옷을 만지작거리며 어색해했다. 수한이 보기에도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제왕 느낌도 나와서 멋있었다. 주혁이 특별 심사 위원 중 하나이니 나름대로 컨셉에 맞춰 입힌 것이다.
“그럼 그 금목걸이라도 뺄까요?”
“네.”
한때 힙합 하는 친구들이랑 어울릴 때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더니마는 4년이라는 시간이 짧지 않은 기간이기는 했다. 금목걸이를 빼자 과한 느낌이 빠지기는 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럼 들어가 볼게요.”
“아! 주혁 씨. 촬영 들어가기 전에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주혁이 의문스럽게 수한을 보자 수한은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잠시 망설여졌다. 그러나 안 하고 넘어가기에는 주혁의 감정이 크게 상할 가능성이 있다.
“주혁 씨를 심사 위원석에 앉히기는 했지만, 아마 주혁 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겁니다.”
“아… 역시 그런가요?”
“주혁 씨 의견을 무시한다기보다는 이제까지 봐 왔던 시즌들처럼 자기들이 그리는 그림이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혁도 연예계 생활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므로 수한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게다가 수한과 함께 시즌 1부터 시즌 6까지 정주행하지 않았는가? 수한의 말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주혁은 미리 그 이야기를 해 준 수한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네. 그러면 가시죠.”
주혁은 어색하게 심사 위원석에 앉았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자 곧 여유 있는 모습으로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한에게 이야기를 들었어도 최선을 다할 생각인 게 보여서 수한은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지훈 씨는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편의점에 들렀다 간 이후로도 지훈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 정도로는 용기를 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수한은 핸드폰 화면을 켠 뒤 지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거창한 내용을 쓴 건 아니었고, 주혁이 ‘SSS급 슈퍼스타’의 출연한 방송 클립 링크를 보냈다.
‘이제 스스로 찾아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지.’
그대로 썩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능이었다. 그리고 수한은 소원뿐만이 아니라 지훈의 재능도 필요했다.
‘작곡가 에이치가 대단한 존재이긴 하지만, 나 때문에 특정 패턴을 품게 된 건 장점이자 단점이니까.’
분명 다른 곡임에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였다. 자가 복제를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 중이었기에 수한은 그 대체안으로 지훈을 생각해 냈다.
수한은 메시지를 읽은 지훈을 발견하고, 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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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고주혁 씨를 직접 만날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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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을 믿을 수 없으니 주혁을 만나고 싶다는 뜻이었다. 수한은 이렇게 의심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이런 사람이 한번 의심이 풀리면 잘 믿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사기를 잘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사기꾼이 아니니까.’
지훈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다행인 일이었다. 수한은 경연하는 출연자들을 보며 그를 지켜보는 주혁을 보았다. 주혁은 열심히 보며 글을 적어 나갔다. 수한이 주혁을 보며 그랬듯이 주혁도 똑같이 그러고 있었다.
‘주혁 씨도 초심으로 돌아간 게 맞기는 하네.’
주혁의 첫 방송 프로그램으로 ‘SSS급 슈퍼스타’를 잡은 건 잘한 일이었다. 주혁의 초심에도, 수한의 초심을 잡는 것에도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지훈의 마음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였다.
모든 경연을 마친 뒤 끊임없이 다른 심사 위원을 설득하는 주혁이 보였다. 수한이 말한 게 있지만, 뒤집고 싶은 마음이 전해지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수한은 결과가 결코 뒤집힐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작이니까.’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주혁의 모습이 기특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카메라 또한 담아 내는 중이었다. 수한은 저 장면만큼은 절대로 편집하지 말아 달라고 이재성 PD에게 요청할 생각이었다.
‘적어도 주혁 씨는 이 더러운 판을 몰랐다는 걸 어필해야지.’
나중에 조작 사건이 터지면 과거의 화면들이 돌게 되어 있었다. 수한은 그 미래를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수한은 기어코 좌절하는 주혁을 보았지만, 주혁은 곧 회복하여 침착하게 방송을 이어 나갔다. 수한이 미리 결과를 말해 준 게 든든한 회복제가 되었다.
“수한 형!”
“네. 주혁 씨.”
모든 촬영을 마친 뒤 주혁은 속 시원하다는 듯이 수한을 보았다. 수한은 주혁이 몸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오늘만큼은 맛있는 걸 먹이고 싶어졌다. 첫 촬영부터 너무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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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은 인상을 잔뜩 구기며 기사를 봤다. 그동안 해외 투어를 도느라 사라졌던 주혁의 존재감이 다시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특히나 주혁이 출연한 방송분에 한해서 시청률이 올랐기에 남일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이재성.’
이름만 봐도 치가 떨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일이 직접 연락을 취했는데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고작 방송국 PD라는 놈이 남일의 앞에서 오만 떠는 것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강우형 앞에서도 허리를 굽힌 적이 없는 남일이었다.
‘두고 보자.’
남일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소원의 앨범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얼마 안 가서 한 사람이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성민을 외면했던 매니저 중 한 사람이었다.
“앨범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녹음은 마친 상태입니다.”
남일은 소원의 매니저가 건네는 USB 파일을 받고 음악을 틀었다. 대표실 내에 좋은 스피커를 들여서 그런지 선명한 음질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남일의 얼굴이 어느새 사르르 녹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원의 작곡 솜씨는 믿을 수 있다. 소원 자체는 불안하지만, 소원이 작곡한 곡은 남일에게 실망 하나 준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한소원도 김수한이 데려가려고 하겠지?’
따지고 보면 소원을 키운 것도 수한이었다. 하지만 남일은 소원만큼은 절대로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주혁과는 다르게 소원에게는 최대한 잘해 주는 중이었다. 수한을 제외하고, 소원 한 사람만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돈은 조금 더 써도 상관없으니까 최대한 배려하고 해.”
“네. 알겠습니다.”
남일은 소원의 곡을 들은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주혁이 날뛴다고 하여도 소원의 앞에서는 무리였다.
남일은 주혁의 기사를 꺼 버리려다가 한 댓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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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이 떨어지는 게 말이 되냐?
ㄴ인정. 심사 기준 너무 이상한 거 아님?
ㄴ고주혁만 봐도 이건 아닌 것 같으니까 열심히 설득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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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은 어딘가 싸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직접 주혁이 출연한 ‘SSS급 슈퍼스타 시즌 6’을 보기로 했다. 남일의 감은 모든 시즌을 다 봐야 한다고 외쳤지만, 남일은 그 정도로 한가한 사람은 아니었다.
‘음?’
남일은 이상하게 웃음이 먼저 나왔다. 댓글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물론 심사 위원에 따라서 의견이 다를 수는 있다. 방송과 현장 분위기가 또 다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일은 탈락자를 결정하는 순간에 무덤덤한 다른 출연자들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러면 그렇지.’
어디든 조작이 판친다. 남일은 그 가운데서도 열심히 심사 위원들을 설득하는 주혁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봤다. 왜 남일이 주혁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는지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김수한과 닮았군.’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열심히 남일을 설득하려 했던 수한과 너무 닮았다. 처음 주혁을 봤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수한을 만나면서부터 주혁이 달라졌다. 그래서 주혁에게 더 냉정하게 굴게 된 것이다.
‘확실히 김수한이 문제야.’
수한과 만나니 주혁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남일은 방송이 끝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역시 수한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깨달았다. 나중에 이 조작이 밝혀진다고 해도 주혁이 타격 입을 일은 없었다.
‘제법이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제는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일은 더욱더 두 사람을 짓밟기로 했다. 성민 또한 수한이 있는 마루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갔다고 했으니 더 인정사정 봐줄 게 없었다. 물론 남일은 드라마 쪽에서도 수한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그쪽에서 이름을 날렸다고 해도 고작 신생 회사지.’
수한을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인정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이었다.
남일은 수한에게 엿 먹일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재성 PD를 엿 먹이고 싶은 생각도 했다. 조작 방송이나 하는 PD에게 무시당한 것은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일이다.
남일은 순간적으로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본체가 케이블 방송국이라서 쉽게 건드리지 못하겠지만, 깔짝거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어차피 케이블과는 인연을 쌓을 일이 없을 거라 여겼기에 남일은 사람 하나를 불러 일을 시켰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조작 제보가 있다고 인터넷에 글 하나 올리도록.”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 글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그 글을 본 사람의 의향에 따라 달라졌다. 남일은 연못 위로 작은 돌멩이 하나 던졌다고 생각하며 소원의 앨범을 더 획기적으로 만들 방법을 연구했다.
***
“안녕하세요. 정지원 작가입니다.”
“안녕하세요. 드라마국 국장 김기해입니다.”
처음 이름을 듣자마자 정지원 작가는 의문을 그리다가 명함을 보고 웃었다. 발음만 듣고 이름이 ‘김기회’인 줄 알았다. 다행히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는지 김기해 국장은 기분 나빠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이름이 독특해서 머리에 많이 남는 것 같다며 농담을 했다.
“이렇게 정지원 작가님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게 다 수한 씨가 연결해 준 덕분이죠.”
수한이 으쓱하며 미소를 짓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렀다. 수한도 김기해 국장이 나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지만, 사실 정지원 작가를 만나려면 국장급이 나와야 하기는 했다. 그만큼 정지원 작가는 모든 작품을 성공시킨 스타 작가였다.
김기해 국장의 등장으로 부담스러워하는 수한과 다르게 정지원 작가는 익숙하다는 듯이 대화를 나누었다.
“네. 후에 수익까지 생각하고 작가님의 회당 대본을 책정할 생각입니다.”
“그 정도의 자금이 되나요?”
“방송국 자체로는 힘들지만, 본체가 대기업이니까요.”
하긴 영화까지 직접 만드는 곳이니 자금을 끌어오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이미 수한과 이야기해 둔 게 있어서 김기해 국장은 정지원 작가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수용할 생각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 그래서 먼저 제안하게 되었다.
“회당 대본 1억 3천은 어떻습니까?”
정지원 작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지원 작가의 전작 대본이 1억 비슷하기는 했다. 세간에는 1억으로 알려졌지만, 1억 엇비슷한 금액이지 1억이 넘는 건 아니었다. 물론 이 금액이 나오는 데에는 수한의 공이 크기도 했다. 인맥을 총동원하여 정지원 작가의 값어치를 책정하여 보냈기 때문이다. 이만큼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수한은 재빠르게 정지원 작가의 정신을 차리게 했다.
“설마 회당 대본만 크게 줄 생각은 아니겠죠? 회당 대본만 높고, 작품 퀄리티가 낮아진다면 문제이지 않습니까?”
정지원 작가의 고마워하는 시선에 수한은 피식 웃었다. 남일이 방해한다면 더 높은 사람과 손을 잡으면 그만이었다. 수한은 남이 만든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닌 길을 직접 개척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