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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탑스타-136화 (136/186)

136   10. 터닝 포인트

“슬슬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수한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장준환이 꺼낸 말이었다. 수한은 그동안 장준환이 무슨 일을 해 왔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눈을 본 상태였다. 차갑게 식은 분노가 불같은 분노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수한은 장준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누가 했는지 알아냈나 보네.’

역시나 수한이 짐작한 게 맞았다. 누구인지 몰라도 간도 크다. 강우형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장준환을 건드릴 생각을 한 걸 보면 말이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싶은 일을 그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뒤에서 원하는 것들이 알아서 따라올 테니까요.”

장준환을 모르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나 수한은 알아들었다. 수한을 도울 준비를 이미 마쳤다는 이야기였다. 수한이 궁금한 건 장준환이 수한을 도우면서 누구에게 타격을 줄 것이냐였다.

‘그 사람이 강우형 이사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겠지.’

시간이 지날수록 강우형의 사고는 꺼림칙해졌다. 게다가 흉흉한 소문까지 도니 이제는 강우형이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고 확신하는 사람마저 생겼다. 하지만 소문만으로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소문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개미들뿐이었다.

“제가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하던 일은 어떻게 할까요?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는 건 어떤가요?”

누구한테 맡기라는 걸까? 수한은 머리를 굴리다가 곧 알아서 결론을 내렸다. 굳이 다른 적임자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딱 적절한 사람을 찾아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이 일을 맡긴 사람에게 다시 돌려주면 그만이다. 그래야만 일이 잘되지 않더라도 책임질 이유가 없다. 떠넘기는 방법이야 많으므로 따로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이광무 감독님 영화는 어땠습니까?”

“좋더군요. 더불어 수한 씨가 투자한 드라마도 잘 보고 있습니다. 역시 그 안목은 의심할 여지가 없네요.”

빠른 편성으로 인해 무리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배우 유진은 다시 스타의 길에 오르는 중이었다. 주변에 염려와 다르게 유진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수한은 1화를 보고 자기가 생각한 그 캐릭터라며 좋아했던 유지아 작가를 떠올렸다. 덕분에 수한의 명성은 더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 않았다.

“제 돈을 투자한 의미가 있었죠.”

“그 돈을 다시 돌려받으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 고주혁부터 시작하죠.”

“네. 알겠습니다.”

수한은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더럽게 손 쓸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연을 쌓아 둔 기자들도 이미 대기해 둔 상태였다. 수한은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차를 마셨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

수한은 앞에서 심기가 불편한 나이수를 발견하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이수는 일을 온전히 수한에게 떠맡길 생각이었으나, 수한은 깔끔하게 손을 뗄 생각이므로 무리한 요구를 내놓았다. 덕분에 나이수는 제대로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는 못 합니다. 아니, 안 합니다.”

“그럼 저는 여기서 손을 떼겠습니다.”

“그래도 뭐, 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강우형이 의식 불명 상태라 나이수도 더는 견제할 사람이 없었다. 수한을 이용하고자 한 건 강우형의 상태가 호전될까 걱정되어서였다. 그러나 강우형의 상태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러자 굳이 수한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서 제 입맛대로 만들어서 또 성공하게 만든다면 주주들의 마음을 쉽게 얻으리라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저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그런가 보네요.”

“하지만 이 일은 강우형 이사님이 진행해 오던 일입니다. 강우형 이사님이 원하던 대로 최소한은 지켜 주십시오.”

나이수와 강우형의 관계가 어떤지는 수한도 잘 알았다. 강우형의 이름을 계속해서 입에 담자 나이수의 분노가 차오르는 게 보였다.

‘가만 보면 다르면서도 비슷하단 말이야.’

나이수를 보고 있자면 수한의 이름을 꺼내면 울컥하는 남일의 나이 든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다. 몇 번이나 한 생각이지만, 역시 비슷하기는 했다.

수한은 완전히 손 떼겠다고 몇 번이나 말한 뒤 사무실에서 나왔다. 수한도 따로 기획사 건물을 얻어야 하기에 수한은 나가면서 유심히 건물 구조를 보며 내려왔다.

‘그래도 사람 하나 없어졌다고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어.’

겉으로 보기에는 티가 안 나지만, 걱정하는 얼굴들이 보였다. 강우형이 보기 드물게 일 잘하는 임원이었으니 그런 분위기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수한은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전화를 걸었다. 장준환에게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장준환은 좋은 반응이었다. 특히나 강우형을 언급해서 나이수를 자극한 것에 대해 칭찬을 크게 받았다.

‘이러니까 내가 정말 이 사람 밑으로 들어온 것 같네.’

강우형이 우려했던 게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수한은 잘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충고했던 강우형에게서 장준환에 대한 작은 불만도 발견했다. 그가 앉은 자리에 만족스럽긴 하지만, 오롯이 그의 힘으로 가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수한은 시각을 확인하고 서둘러 달려갔다. 약속한 시각보다 더 늦게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게 되었다. 수한은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지나쳐 카페 구석에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모자를 쓰긴 했으나, 모자를 쓴 보람이 없게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일이 늦어져서요.”

“괜찮아요. 형. 형이 보내 준 노래 듣고 있었어요.”

주혁이 모자를 살짝 들었다가 다시 썼다. 수한은 잠시만 기다려 보라고 한 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주전부리를 주문해서 가져왔다. 그리고 주혁이 주전부리를 먹는 동안 가방 안에 있던 서류를 꺼냈다.

“원래는 제대로 된 사무실에서 내밀었어야 했는데 아직 공사 중이라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오면서 사무실 위치 보고 왔는데 좋던데요? 그동안 돈 많이 모으셨나 봐요.”

“제가 노력 좀 했습니다.”

수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혁은 자세히 수한이 내놓은 계약서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짬이 있기에 주혁도 기획사와 계약할 때 조심해야 할 사항들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주혁의 친구 중에는 아직 연습생 신분인 친구도 있기에 주혁은 바쁜 가운데서도 상담을 잘 해 주었다. 한마디로 주혁은 그가 사귄 여자들에게만 나쁜 남자였다.

주혁은 계약서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르네요.”

수한과 더불어 주혁도 이 순간을 기다려 왔기에 벅찬 얼굴이 되었다.

“근데 마루 엔터테인먼트라니. 아이스크림 생각나는데요? 호두 맛, 체리 맛이요.”

“하늘이라는 순우리말이라고 해서요.”

“그러고 보면 가온도 그렇죠?”

“그렇죠. 은근 찾아보면 우리말 중에도 예쁜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수한도 기획사 이름을 짓는 데 꽤 오래 고민했다. 예전 명훈과 지었던 기획사처럼 영어 이니셜로 갈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수한이 고민하는 사이에 이미 명훈은 동현과 함께 새 기획사를 차렸다. 이름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엠디 엔터테인먼트였다.

‘엠디라고 하니까 상품 같네.’

확실히 명훈이 작명 감각은 없었다. 수한과 함께 만들었던 기획사도 이니셜로 한 글자씩 땄으니까. 그때는 엠에스 엔터테인먼트였다.

“하늘이라는 뜻이라면 저도 마음에 들어요.”

“우리가 올라갈 길은 아직 남았으니까요.”

올라다가 쉬었을 뿐이지, 주혁은 아직 아래로 떨어진 상태는 아니었다. 올라갈 길이 아직 있었다. 주혁은 계약서를 보다가 한 가지 의문이 드는지 의아하게 수한을 봤다. 수한은 주혁이 가리키는 3년이라는 기간에 씩 웃었다.

“이렇게 짧게 하면 제가 배신하고 다른 기획사로 도망갈 수도 있잖아요.”

“도망갈 기회를 미리 드리는 겁니다.”

“성공할 자신이 없으시다?”

“앞날은 모르는 거니까요.”

사실 자신이 있기에 짧게 잡은 것도 있다. 어차피 재계약하게 되어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게다가 주혁이 신인도 아니기에 굳이 5년, 7년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대표님.”

수한은 망설이지 않고 곧장 도장을 찍은 주혁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보여 준 거 하나 없는데 수한을 믿고 도장을 찍은 것이니 말이다.

“그럼 계약했으니 갑시다.”

“네? 어디를요?”

“녹음실이요. 기다리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기다렸죠.”

주혁은 모자를 다시 제대로 쓰며 수한을 따라나섰다. 녹음실은 이 카페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다. 혹시 몰라 한 시간을 더 추가해서 빌렸는데 잘한 일인 것 같다.

“고주혁 씨. 오랜만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주혁은 예전에 녹음할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안에 있어서 깜짝 놀랐다. 수한이 그동안 쌓아 왔던 인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음음.”

부스 안에 들어간 주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수한이 나간 뒤로는 쭉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녹음했기에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도 3년이라는 시간을 주혁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다.

‘역시 잘하네.’

수한이 반했던 주혁이 저 안에 있었다. 수한은 현장을 사진으로 찍은 뒤 소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동안 벼르던 곡이 드디어 세상에 나오니 그 현장을 소원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소원 씨와는 이번 주에 만나기로 했으니 겸사겸사해서 다 말해 줘야지.’

그러다가 수한은 잠시만요 하고 지나가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아니, 남자를 발견한 것까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수한의 눈에 잡히는 남자의 능력치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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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 스타성: S, 연기력: F, 가창력: A, 춤: B, 인지도: D, 기타: S, 성장 가능성: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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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뒷모습인 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수한은 녹음실에서 나가는 지훈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녹음하는 주혁에게 잠시만 나갔다 온다고 손짓을 보낸 뒤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막상 나오니까 어디로 사라진 건지 지훈이 안 보인다.

“지훈 씨!”

가수로서의 능력치를 발하게 해주고 싶었으나, 끝내는 놓쳐버린 게 지훈이었다.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나간 이후로 아무 소식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막상 발견한 지훈은 전처럼 빛나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수한은 이렇게 마주친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한은 계단을 내려가다가 마주친 눈에 멈칫했다. 수한이 이리 쫓아올 줄 알고 있다는 눈빛이 지훈에게서 보였다. 정면에서 보는 지훈은 인상이 더 어두워진 상태였다.

“지훈 씨. 오랜만입니다.”

“못 봤기를 바랐어요.”

쓰게 웃는 것까지 수한을 신경 쓰이게 하는 건 예전과 똑같았다. 수한은 만나서 반가웠다는 말만 하고 가려는 지훈을 붙잡았다. 이렇게 보낼 수 없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그냥. 아르바이트하고 지냈어요.”

“여기 있는 것도 아르바이트 때문입니까?”

“네. 그렇죠.”

수한은 새삼 주혁과 지훈의 바뀐 관계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예전에는 지훈이 녹음하러 왔고, 주혁이 아르바이트 일을 했었다. 그를 지훈이 가장 체감하고 있기에 지훈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수한은 본능적으로 수한을 피하려는 지훈의 모습에 지훈이 가수의 꿈도 포기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 않은 한 이렇게 도망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미래의 보석을 수한이 그냥 보내 줄 리가 없었다.

“지훈 씨. 번호는 안 바뀌었죠?”

“네? 네.”

대답하면서도 떨떠름한 게 눈에 보였지만, 수한은 상관없었다. 수한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조만간 연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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