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33화 (133/186)

133   10. 터닝 포인트

[굳이 두 사람에게 투자할 필요가 없죠. 한 사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역시 그럴까요?”

수한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한번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이번 캐스팅은 재미있게도 하고 싶다고 의사 표현을 먼저 하는 배우들 때문에 곤란해졌다. 전에는 엘 엔터 소리만 해도 기겁하더니 ‘더 아이돌’까지 잘되자 엘 엔터테인먼트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 직업이 또 이런 재미가 있네.’

연예인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회사를 키우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다만 문제는 이번 캐스팅에 탑스타를 뽑으면 예산 문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나이수는 강우형의 성공을 경계한 건지 이번 프로젝트 예산을 적게 편성했다. 물론 강우형의 능력이라면 다른 데서 돈을 끌어올 수도 있겠지만, 강우형은 이 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가지길 바랐다.

‘그래. 이해는 되지.’

탑스타를 뽑으면 탑스타 때문에 잘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게 뻔했다. 수한은 회사에서 강우형이 인정받아야 할 상황인 것을 잘 알기에 강우형을 이해했다. 그래서 탑스타를 쓰더라도 한 명만 쓰자는 게 강우형의 의견이었다.

[제가 지금 선약이 있어서 조금 이따가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수한은 기분 좋게 전화를 끊은 뒤 작곡가 에이치로서 함께 작곡한 곡들을 보았다. 수한은 수많은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건 내 약점만이 아니니까 소원 씨에게 말하는 게 좋겠어.’

솔직히 말해 작곡가 에이치는 소원의 약점이지, 수한의 약점은 아니었다. 그러나 수한은 소원과의 의리를 저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소원은 수한의 아픈 손가락이니까.

수한이 전화를 걸자 얼마 안 가 소원이 전화를 받았다. 아직 잠 잘 시간은 아니지만, 저녁 시간이기에 수한은 살짝 미안해하며 말문을 뗐다.

“작곡가 에이치와 관련해서 의논드릴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아니요. 생길 예정이라서요.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알겠어요. 제가 따로 장소를 정할 테니까 거기서 만나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너무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소원과는 메일이나 전화로밖에 서로 안부를 전하지 못했다. 수한은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 소원과 함께 갈 맛집을 찾아보다가 말았다.

‘이 와중에 나와 따로 만난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으려고 하지 않겠지.’

장준환의 협박으로 인해 고주혁을 얌전히 보내 주기로 했지만, 소원까지 건드리면 남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소원이 약속 잡을 장소는 조용한 곳일 테니 수한은 둘이 만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한은 소원과의 약속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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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사 강우형, 음주 운전으로 교통사고… 의식 불명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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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형에게 이상이 생겼다.

어제 새벽에 일어난 교통사고라고 한다. 소속 아이돌이 음주 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전적이 있기에 비난이 쏟아져 내렸지만, 그와 별개로 의식 불명 상태라는 소식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강우형 외에는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병원이라도 가 보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강우형과 제법 친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병원에 직접 찾아가서 어떻게 되어 가는지까지 알아볼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수한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느낌이 너무 좋지 않았다. 수한은 제 기억 속에 이와 관련된 사고 같은 게 있었나 찾아보았지만, 이 시기는 수한이 대학로에서 한창 연극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 내가 기억할 리가 없지.’

지난번 사고도 김우리와 관련되어서 기억난 거였다. 이번 건은 수한의 기억 속에 전혀 없었다. 하긴 대형 기획사 일에 수한이 무슨 관심이 있었겠는가? 어떻게 하면 극단 사람들과 사이를 잘 풀어 볼까 고민만 했을 텐데…….

‘만약 여기서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상상은 하기도 싫지만, 이상하게 수한의 본능이 그를 준비하라고 말했다. 수한은 씁쓸했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보기로 했다.

‘일단은 장준환 씨를 만나야겠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자세히 알아야 다음 행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한이 장준환에게 전화를 걸기가 무섭게 장준환이 전화를 받았다. 이미 상황 파악은 마쳤는지 만나자고 하는 수한의 제안을 장준환은 흔쾌히 수락했다.

***

“이런 일로 만나게 되니 참 마음이 좋지 않네요.”

늘 만나던 한정식집에서 만나지는 않았다. 수한은 장준환이 보낸 차를 타고 왔기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왔다. 서울인 것 같긴 하지만, 인적은 드문 동네로 보였다. 수한은 장준환의 비밀 장소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하면서도 낯빛이 좋지 않은 장준환을 이해하게 되었다.

“강 이사와 제가 아는 사이라는 걸 알고 있었군요.”

“네. 이사님이 직접 말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긴 두 사람이 친한 사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자세한 상황을 알고 싶은데 들려 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장준환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눈빛은 확연히 달라졌다. 그동안 수한을 봐주고 있었다는 걸 보여 주는 것처럼 압도하는 눈빛에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었다.

“일단 아주 심각한 상태예요. 이대로 살아나는 게 기적일 정도로요.”

예상했던 대로였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예상했지만, 실제로 들으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즐겁게 통화했던 사람이 그렇게 됐다고 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사실 어제 저와 통화를 했었습니다. 누군가와 약속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상한 느낌은 없지 않아 있었다. 애초에 강우형은 운전기사를 둔 사람이었다.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이 사고가 보통 사고로 보이지 않는다는 거로 들리는데 제 말이 맞나요?”

그리 잠깐 생각한 적은 있으나, 그 말을 직접 꺼내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수한은 바로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에 대한 합당한 근거는 있어야지.’

특히 장준환 같은 사람은 그런 식으로 상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한이 고개를 젓자 장준환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장준환이 돈 앞에서 냉정한 사람이라 해도 그동안 함께해 왔던 사람이 의식 불명이라 하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절 만나자고 한 건 그다음을 보자는 거겠군요.”

“네. 유감스럽게도요.”

수한이 느낀 불길함을 장준환도 마찬가지로 느낀 모양이다. 강우형이 없어질 미래를 준비해둬야 했다.

“일단 어제 강 이사와 만난 사람은 접니다.”

“네?”

“그리고 강 이사는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죠. 회사에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수한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럼 어째서 음주 운전으로 사고가 났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준환의 말은 거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아마 이대로 죽는다면 경찰들은 절 의심하겠죠. 만약 보통의 교통사고가 아니라면 말이에요.”

수한은 장준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그러니까 이건 강우형을 죽이면서도 장준환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소리였다. 수한은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떠올렸다.

‘설마 서남일이?’

아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아무리 남일이 상황 판단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상대는 무려 장준환이다. 장준환을 상대로 그런 일을 벌인다고? 수한은 남일의 간이 그렇게 클 리가 없다고 여겼다.

“저는 만약 일이 그렇게 진행된다면 보통의 교통사고로 마무리하게 할 생각이에요.”

“어째서요?”

“제 존재 자체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니까요.”

“그럼 강 이사님은요?”

“그런 의미에서 김수한 씨가 더 제게 필요해졌습니다.”

수한은 소름이 돋았다. 차갑게 웃는 장준환의 눈빛은 살기가 가득했다. 누구인지 몰라도 강우형과 장준환을 건드렸으니 무사히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준환은 계속해서 ‘만약’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수한은 기꺼이 자신을 이용하겠다는 말에 씁쓸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또한 기회라는 걸 깨닫게 되어 장준환이 뻗은 손을 안 잡을 수가 없었다.

***

엘 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내려갔다. 일 잘하는 임원진이 사고를 당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으니 그에 따른 혼란이 빚어졌다. 게다가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도 중단되었다. 어차피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를 주도적으로 하던 강우형이 사고로 의식을 잃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교통사고 말이야.”

“그날 술을 안 드셨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날 회사에서 밤늦게 이사님을 봤다는 이야기도 있어.”

열심히 쉬쉬했지만, 쉬쉬할수록 안 좋은 소문은 더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 일로 임원진들은 다른 골칫거리를 얻게 되었다.

“뭐, 누가 일부러 술이라도 먹였다는 거야, 뭐야?”

“더 아이돌이 끝난 이후라 다행이기도 하네요.”

“하긴 그랬으면 드라마 시청률도 좋지 않았겠지.”

주가가 내려가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강우형이 무사히 깨어나기만 하면 다시 안정화될 것이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아니다. 사실은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상태가 많이 안 좋대요?”

“뇌사 상태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아이고, 이사님.”

강우형 라인으로 줄을 댄 사람도 있기에 이 상황은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이 틈을 나이수 라인이 안 치고 들어오는 게 이상했다. 안 그래도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었기에 당장에라도 칼춤을 출 기세였다.

그 가운데 조용한 사람은 나이수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큰 수혜자이니 나이수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도 쏟아졌다.

“상태는 아직도 안 좋은가?”

“네. 그렇습니다.”

나이수는 넘쳐나는 보고서에 머리가 다 아팠다. 그동안 강우형이 벌여 놓은 일이 많았기에 그 뒷수습을 다 나이수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수혜자이니 말이다.

“나에 대한 여론은 어떤가?”

“좋지는 않습니다.”

“그렇겠지.”

강우형의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그 정도 각오는 하게 되었다. 물론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사냥개가 주인까지 잡아먹으려고 했던 상황이었으니 나이수는 강우형에게 전혀 미련이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얌전히 저세상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이건 다 강우형이 자초한 거지.’

하지만 보는 사람이 많기에 대놓고 좋은 걸 표현하기는 힘들었다. 나이수는 수한과 함께 준비하던 강우형의 프로젝트를 보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도 할 겸해서 이 일을 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뒤에서 무슨 소리는 듣겠지만, 주주들은 오히려 반가워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다시 진행하도록 하지.”

“네?”

“김수한을 불러들이도록 해. 김수한에게 기회를 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떤 의미에서는 강우형과의 사이를 제대로 갈라 놓을 기회이기도 해서 나이수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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