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26화 (126/186)

126   10. 터닝 포인트

수한은 어색하게 옆에 서 있는 서이나를 보며 안심하라고 웃어 주었다. 본격적으로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노래 녹음을 위해서 아이돌이자 연기자들을 모았다.

첫 화 대본을 본 사람이라면 이 노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크게 긴장했다. 이 노래가 드라마의 첫인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 가장 긴장한 사람은 서이나였다.

“청심환이라도 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다고 하기에는 안색이 새하얘져서 불안했다. 서이나는 벌써 안에서 물 한 병을 비웠다. 나중에 화장실에 자주 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수한은 서이나를 믿었다.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녹음하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와서 자리를 잡았다. 음악 감독도 이 자리에 와 있어 수한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음악들이 하나같이 너무 좋아요.”

“이게 다 작곡가 에이치의 노래입니다.”

“아!”

작곡가 에이치는 수한과 소원이 활동하지 않을 때도 음악 쪽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OST에도 들어가고, 다른 아이돌 앨범에서도 타이틀로 나온 적이 있다. 대부분 대중에게 잘 먹혔기 때문에 작곡가 에이치의 노래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수한이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구매한 곡과 더불어 작곡가 에이치의 노래를 한꺼번에 들고 왔으니 음악 감독이 수한을 좋게 여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일이 쉬워졌으니 말이다.

“이번에 음원 순위 상위권에서도 보게 되겠는데요.”

“꼭 그리될 겁니다.”

수한의 확신에 찬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수한이 저리 확신하며 말할 정도면 정말로 기대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미 수한에 대한 소문이 쫙 돌았기 때문에 다들 신뢰하는 얼굴로 수한을 봤다.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 눈을 믿으니까.’

수한은 또 물을 마시려는 서이나를 발견하고는 얼른 다가가서 물병을 빼앗았다.

“물은 그만 드십시오. 이러다가 녹음하다 화장실 가겠습니다.”

“알았어요. 언제 시작해요?”

“준비 다 됐으니 지금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냥 노는 거라 생각하세요.”

“네…….”

대답과 다르게 더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연기는 몰라도 노래를 이런 식으로 사람이 많은 데서 한 경험이 적어서 서이나는 부스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긴장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에다 노래 부르면 되는 거죠?”

“네. 맞습니다.”

앞에 있는 커다란 마이크가 어색한지 서이나는 굳은 상태로 웃었다. 수한은 그런 서이나를 보는 다른 연기자들의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노래도 잘할까?”

“그럼 완전히 사기인데.”

보통 아이돌 가수는 각자 시간을 정해서 따로 녹음했다. 한 그룹이어도 각자 활동하는 영역이 다르다 보니 시간의 효율성을 위해서 그리하였다. 녹음한 것은 나중에 합치면 되니까. 그러나 이번은 보통의 경우와 달랐다. 첫 드라마이다 보니 서로에게 관심이 생겨서 다른 사람이 녹음할 때 함께 있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저들은 서이나 다음 시간이지만, 서이나가 궁금하여 미리 와서 기다리게 되었다.

‘그래도 있을 거면 얌전히 있지.’

소곤거리는 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탈이었다. 저들의 호기심의 주는 서이나의 노래 실력이었다. 아이돌 출신인 자신들과 다르기에 궁금해하는 게 많아 보였다. 물론 수한은 그 호기심이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하나, 저런 식으로 와서 평가하는 눈빛을 보내는 건 좋지 않다고 여겼다. 다행히 서이나는 긴장으로 인해 그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잘하네.’

초반에는 긴장해서 음정이 나갔지만, 몇 번 반복하면서 잘한다고 격려의 말을 듣다 보니 소리가 쭉쭉 뻗어 나갔다. 녹음이 잘 되었다는 눈짓에 수한은 미소를 지었다.

“이건 OST 음원으로 넣을 거고, 방송용으로 다시 부르겠습니다. 이번에는 대본대로 부르세요.”

역할이 소심한 설정이기 때문에 드라마에서는 머뭇거리면서 불러야 하므로 재녹음이 필요했다.

서이나는 대본대로 부르라는 말에 눈빛이 바뀌었다. 이제는 노래가 아니라 연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자 그 앞에 서 있는 건 서이나가 아닌 대본 속 캐릭터였다. 그 모습에 수한은 소름이 쫙 돋았다.

‘최고다. 서이나.’

수한은 미소를 지으며 서이나가 노래를 다 부르는 것을 본 뒤 전문가들을 보았다. 그들도 서이나의 바뀐 분위기에 놀랐는지 진지하게 노래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한에게 눈짓을 주었다.

“잘하셨어요! 나오셔도 돼요!”

서이나가 웃으면서 나오자 수한은 잘했다는 의미로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웬 초콜릿이에요?”

“그냥 단 거 먹고 기분 좋아지라고요.”

어린애 취급받아서 기분이 상한 것 같지만, 금세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걸 보니 귀여웠다. 그보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돌 한 명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청심환은 저쪽에 줘야 할 것 같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불러서 놀랐나 보네. 노래도 중요하지만, 노래를 부르며 연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더 부담감을 느꼈을 테고.’

역시 서이나는 가수보다는 연기자를 하는 게 맞았다. 천재가 주는 짜릿함은 언제 봐도 소름 돋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 사람이었다.

“서이나 씨가 했던 것처럼 연기하는 것처럼 부르면 됩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천재는 관객에게는 짜릿함을 선사하지만, 같은 무대에 서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을 준다. 수한도 연기한 적이 있기에 그 감정을 잘 알았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 말이 최선이었다.

“물론 할 수 있습니다. 절 믿으세요.”

수한은 들어가기 전에 잘할 거라고 몇 번이나 더 독려한 뒤 부스 안으로 들였다. 안에 들어가자 부스 밖에 서 있는 서이나를 보는데 그 때문에 더 긴장하는 게 보였다. 그래서 수한은 서이나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서이나 씨, 안 가실 거예요?”

서이나는 자기도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으나, 부스 안에 들어간 아이돌을 배려하기 위해 보냈다. 녹음하는 서이나를 광대처럼 지켜본 심보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끝날 때까지 함께 해야 할 연기자이다.

‘그리고 서이나 씨를 위해서도 이게 좋고.’

아이돌 가수도 가수는 가수였다. 배우보다 노래를 못 부르면 무슨 망신일까? 그래서 걱정하는 게 수한의 눈에 다 보였기에 수한은 서이나를 잘 달래며 보냈다. 그러자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씩 풀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쭉쭉 부르는 노래에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 실력은 서이나보다 조금 못할지언정 못하지는 않았다. 수한이 연기자를 뽑는 기준에는 노래도 들어갔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

수한은 전문가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진 노래를 듣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처음 듣자마자 귀에 바로 익으면서도 좋은 게 딱 맞아떨어졌다.

‘이 노래들이면 초반 화제성은 당연히 따낸다.’

수한은 곧바로 김민영 작가에게 음악 파일을 보냈다. 얼마 안 가 오는 전화를 받으니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김민영 작가인가 했는데 자세히 들으니 정지원 작가가 직접 전화한 거였다.

[이거예요! 제가 생각한 게!]

“잘 맞아서 다행입니다.”

[이 노래, 에이치가 했다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그 사람 곡으로 OST 해 보고 싶었는데 이걸 이렇게 하게 되네요!]

처음에 수한을 간 보던 사람은 어디로 간 건지 완전히 만족스러워하는 목소리에 수한도 미소가 나왔다.

“다음 곡도 나오면 바로 보내겠습니다.”

[좋아요! 아무튼, 다음 화도 재미있을 거라 장담해요. 민영이가 진짜 재미있게 썼거든요.]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이렇게 좋아하니 수한도 만족스러웠다. 수한은 이제 촬영 중인 현장을 보았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나, 장준환의 테스트 때문에 현장을 자주 찾게 되었다.

‘유지영 씨가 왜 그렇게 들락날락했는지가 이해가 되네.’

간절할수록 더 그렇게 되어 버린다. 연기는 현장에 오니 대본 리딩 때보다는 더 나아졌다. 그리고 서이나는 어느새 출연자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배우가 되어 버렸다.

‘낯가리던 게 무슨 꿈이라도 꾼 것 같네.’

특히나 주연 배우와 친해져서 거친 장난도 막 하는 게 딱 그 나이대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수한은 또래 아이들에게 연기 조언도 해 주는 서이나를 보며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갑자기 진지해진 얼굴에 수한이 시선을 떼지 못하자 서이나도 마침 수한을 보게 되었다. 수한은 그 와중에도 틈틈이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는 서이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려서 그런지 확실히 귀여웠다.

“수한 씨랑 아주 친한가 봐요.”

“제가 전에 영화 캐스팅할 때 본 친구거든요. 물론 그 영화의 주연입니다.”

“역시 수한 씨가 보는 눈이 있네. 안 그래도 스태프 사이에서도 저 친구는 반드시 뜰 거라고 말이 나오고 있거든요.”

현장 스태프들과도 친해져서 수한은 편하게 이야기하였다. 그중에는 수한과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스태프도 있었다. 수한의 인맥은 직종을 가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수한이 서이나의 친화력에 대해 감탄할 입장은 아니었다. 수한이 더하면 더했다.

“그렇죠?”

많은 현장에 가 본 스태프일수록 그런 감은 더 빨리 잡혔다. 워낙 변수가 많은 연예계이다 보니 그 감이 틀릴 때도 있지만, 서이나는 보면 볼수록 위에서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특히나 서이나는 수한에게 현장 예의도 잘 배워서 현장 스태프들에게도 잘하는 편이었다.

“피곤해 보이시는 데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주시면 감사하죠.”

워낙 촬영 현장이 열악해서 수한은 모든 사람을 챙기려고 노력했다. 그게 스태프 사이에서도 이미 소문난지라 수한이 먼저 다가가도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이나가 연기를 잘하긴 잘해요.”

“그렇죠?”

발연기를 하던 연기자들도 서이나만 만나면 연기력이 좋아지니 현장에 한번 와 봤던 김민영 작가가 분위기를 금세 파악하고 정지원 작가에게 현장 상황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인지 서이나의 분량이 확 늘어나게 되었다.

서이나는 점점 늘어나는 대사에 어색하게 웃으며 거부감을 보였지만, 수한은 알았다. 서이나가 속으로는 얼마나 좋아하고 있을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르게 탑스타가 될 수도 있겠어.’

만약 이 드라마가 성공하면 지름길은 열린 거나 다름이 없었다. 서이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수한이 보기에는 그랬다.

‘서이나 씨가 아직 소속사가 없지?’

수한은 미소를 지었다. 장준환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수한이 생각한 대로만 흘러간다면 주혁과 더불어 서이나라는 연기자도 데려올 수 있을 것 같다.

‘일단은 테스트부터 통과하자.’

나이수가 팍팍 밀어줘서 그런지 현장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역시 돈이 많아질수록 주변 환경은 달라지게 되어있다. 물론 중간에서 돈을 빼돌리는 사람이 없다면 말이다.

수한은 현장을 계속해서 지켜보다가 유지영에게서 온 메시지를 봤다. 영화 편집을 완성했는데 혹시 함께 봐줄 수 있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광무 감독님 영화는 아직 촬영 중이랬지?’

이광무 감독이 거장인 이유에는 배우들을 배려하는 것도 있어서였다. 본인도 스태프 일을 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무리를 하면서 촬영하는 편이 아니었다. 수한은 이광무 감독과 개봉 일자가 겹치면 어쩌냐고 걱정했던 유지영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가 자신을 경계했던 유지영도 떠올라서 편집본을 볼 때 조금 까탈스럽게 굴어 볼까 고민하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