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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탑스타-121화 (121/186)

121  10. 터닝 포인트

“그랬습니까?”

“네. 얼마나 당돌하던지요.”

장준환은 자신 때문에 참았다는 식으로 말하는 나이수를 보며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만약 강우형의 뒤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건 장준환과 강우형, 두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그 패를 나이수가 무너지기 전에 먼저 공개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중에 나이수가 무너졌을 때, 그날을 장준환과 강우형은 기다렸다.

“그래도 그 친구 꽤 능력자입니다.”

“네. 만나 보고 나서 따로 알아봤습니다.”

덕분에 강우형과의 관계까지 알아낸 상태였다. 수한이 강우형과 엮이니 더욱 수한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강우형에게 엿을 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우형의 사람으로 강우형을 상대한다면 강우형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일단 저는 소개만 한 거니 그 친구와 알아서 조율하십시오.”

“그래도 됩니까?”

“네.”

나이수의 고집스러운 얼굴이 보이면서 장준환은 수한이 어떻게 대처할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지켜만 보겠다고 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나이수의 고집을 강화한 꼴이 되어 버렸다.

‘이거 참 미안하게 됐구먼.’

지난번 전화했을 때만 해도 수한은 꽤 당황스러워했다. 나이수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정신이 깨진 게 통화에서 다 느껴졌다. 수한은 이 골칫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 감을 잡지 못한 듯했다.

‘그것까지 해내면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건 강우형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나이수를 설득하는 건 강우형도 버거워하는 일이었다. 만약 이 일을 해낸다면 강우형도 수한의 그릇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열심히 강우형을 키워 낸 장준환이니 그도 사람 하나로 강우형과 적이 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술 한 잔 더 드시죠.”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장준환이 술을 따라 주자 나이수는 단번에 들이켰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다운 모습이었다. 반면에 장준환은 음미하며 마시는 타입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 대표 이사가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고 하던데 바짝 긴장하셔야겠어요.”

“안 그래도 그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처리라면……?”

“드라마 하나 잘됐다고 기고만장한 상태라서 말이죠.”

“그렇다면 더욱더 이번 드라마가 성공해야겠네요.”

수한을 도와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나이수가 멈칫하는 게 보였다. 하긴 이번 드라마를 성공시켜야 강우형의 성공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밝힐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이수도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는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생각 좀 해야겠군요.”

“네. 그러시죠. 이왕이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투자자 관점에서 말입니다.”

“네. 물론이죠. 꼭 성공하게 하겠습니다.”

조금 더 느리게 무너질지, 빠르게 무너질지는 나이수의 몫이었다. 장준환은 나이수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으며 그의 명복을 비는 의미로 빈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

“차기작을 바로 만들겠다고?”

“네. 그렇습니다.”

나이수는 미소를 지었으나, 그 속은 편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강우형의 기고만장한 모습을 봐야 하는 건가 싶었다. 저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얼굴이 싫었다.

“대본은?”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후에 말하지.”

결코, 그냥 허락해 주는 법이 없었다. 강우형은 알고 왔으나, 지난번처럼 크게 좌절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한이 동시에 진행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물론 수한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기는 했지만, 강우형은 수한이 퇴짜 놓는 대본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기준이 있어.’

그만큼 까다롭게 고르니 믿음이 갔다. 강우형이 얼른 준비해서 보고서를 올리겠다고 말하자 나이수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리하라고 말했다. 상장 회사이다 보니 주주들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서 문제였다.

‘이번 일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리 생각하자 없던 욕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이수는 수한이 내놓은 제안서를 보았다. 엘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네 명으로 드라마를 꾸려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누구 한 명만 더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여자 아이돌만 네 명 넣어서는 부족해 보였다. 그렇다면 남자 아이돌을 한 명 더 넣으면 어떨까? 나이수는 소속 아이돌 그룹을 떠올리다가 미소를 지었다. 한 사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웹 드라마를 한 경력이 있으니 괜찮을 거다. 그래서 수한이 왔을 때 제안하게 되었다.

“다섯 명이나요?”

“다섯 명이나라뇨. 최대한 적게 부른 겁니다.”

수한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겨우 참아 냈다. 지금 장난하나 싶은 마음이었으나, 수한에게 그런 제안을 한 나이수는 뻔뻔하게도 진심이었다. 자체 제작인데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네 명으로 하겠습니다.”

“그쪽에서 제안한 것에서 한 명 더 추가할 뿐인데 뭐가 문제죠?”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나 너무 엘 엔터테인먼트 소속사 사람들만 나오는 건 문제가 있다. 이미 네 명도 너무 많은 상태였다. 그것도 고르고, 골라서 뽑은 사람인데 여기서 한 명을 더 뽑자고 하니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고민하지 말라고 그 한 명도 제가 직접 뽑았습니다. 다크니스의 정현입니다.”

다크니스라면 지난번에 연습실에서 만났던 남자 아이돌이었다. 그중에서도 정현은 연기 수치가 가장 낮은 멤버여서 수한은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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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현 – 스타성: A, 연기력: E, 가창력: A, 춤: A, 인지도: S, 기타: F, 성장 가능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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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은 혹시 몰라 기억했던 수치를 떠올리고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연기력이 E등급이다. 그런 사람을 데리고 대체 뭐 하란 건가? 수한은 양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나이수의 발언에 화가 먼저 났다.

“그 친구, 연기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잘못 알고 계십니다. 엘 엔터테인먼트 자체 웹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물론 성적도 좋은 편이었고요.”

정현의 연기보다는 다크니스 자체가 인기가 많아서 조회 수가 잘 나온 것이었다. 그걸 나이수는 다르게 착각하고 있었다.

“그럼 같이 보시는 거 어떻습니까?”

수한은 나이수가 정현의 연기를 보지 않고 말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인지 나이수도 흔쾌히 함께 보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프로젝터가 설치된 강당으로 갔다. 굳이 강당에서 틀 필요가 없지만, 나이수가 볼 거면 크게 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여서 그리하기로 했다.

“큼…….”

수한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뒤로하고 화면만 보았다. 이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더럽게도 연기를 못했다. 거의 소원 뺨치게 연기를 못해서 수한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드라마를 성공하게 할 수 있을까?’

막막함이 장난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포기하기에는 늦지 않은 상태였다. 돈이 들어가기 전이니 말이다.

수한은 발연기를 하는 정현을 보면서 진심으로 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는 나이수가 백기를 들었다.

“제가 뭔가를 착각했던 모양이에요.”

“그렇습니까?”

“저 친구를 출연하게 해 달라는 말은 철회하겠습니다.”

나이수가 봐도 아닌 건 아니었다. 적어도 뭐라고 하는지는 알아듣게 해야 하지 않은가? 하도 웅얼거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음향에 문제가 있는 건가 의심하기에는 상대역의 목소리는 너무 선명하게 잘 들렸다. 발음도 얼마나 잘하는지 발음 연습을 제대로 한 것 같다.

나이수는 정현의 연기 선생을 떠올리며 조용히 이를 갈았다. 정현이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했던 그 말이 결국 입에 발린 말이었다.

“생각을 바꿔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냥 네 명으로 그냥 하지요.”

정현의 연기가 상당히 충격이었기에 나이수의 고집에 힘이 빠졌다. 수한은 다행이라 여기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대답했다.

“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공모전 공고는 며칠 뒤에 나갈 겁니다.”

“네. 알아서 잘해 주시니 안심이 됩니다.”

수한의 싹싹한 모습에 나이수도 조금은 마음이 풀어졌다. 그만큼 정현의 연기에 실망감이 컸다. 인기만으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나이수는 수많은 돈을 깨면서 알게 되었다. 게다가 장준환과 이야기했던 대로 지금은 중요한 시기였다.

‘강우형의 사람으로 강우형을 꺾는다.’

그 생각을 하자 나이수의 마음이 싹 변했다. 어떻게 해서든 수한의 도움을 받아 드라마를 성공하게 한다. 지금은 그게 목표가 되었다.

***

유지아 작가는 길게 하품을 했다. 너무 몰입해서 글을 썼더니 피곤함이 밀려들어 왔다. 그래도 피곤함만큼 좋은 작품을 쓰게 되었다. 수한이 누굴 겨냥하고 말한 건지 모르겠으나, 굉장히 매력적인 30대 여자 주인공이 나왔다.

‘조금만 쉬어 볼까?’

심심하면 작가 지망생 카페에서 놀게 되었다. 비록 여기서 표절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유지아 작가는 이 카페를 굉장히 좋아했다. 날이 갈수록 많아지는 회원 수에 유지아 작가는 많은 능력자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내가 작가이기도 하지만, 시청자이기도 하니까.’

그러다가 유지아 작가는 한 게시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눈에 띄는 제목에 마우스를 누르니 흥미로운 내용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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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거 보심?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공모전 한대요.

ㄴ공중파 방송도 아니고 엘 엔터테인먼트요?

ㄴ그러고 보니 지금 나오는 드라마도 엘 엔터테인먼트 제작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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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오는 드라마라면 유지아 작가도 즐겨 보는 드라마였다. ‘붉은 꽃’ 말이다. 유지아 작가도 시대물에 관심이 많았기에 시대물을 쓰게 된다면 저렇게 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러고 보니 매니저님이 캐스팅 담당을 했다고 했지?’

유지영에게 흘러가면서 들은 이야기였다. 유지영은 수한을 좋게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음흉한 사람이라 했다.

“너한테 했던 거 생각해 봐.”

유지아 작가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잘해 주는 것도 다 영업이라고 했다. 물론 수한의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냥 좋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유지아 작가의 눈에는 유지영이나 수한이나 거기서 거기지만 말이다.

그래도 유지영의 입에서 수한에 대해 나쁜 말이 나오는 건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유지영도 그냥 그렇다는 거지, 수한이 싫은 건 아니라고 했지만 유지아 작가가 느끼기에는 조금 그랬다.

‘신인 작가가 아니어도 되네.’

또 장르가 학원물이다 보니 흥미를 많이 자극했다. 좀처럼 공중파에서 보기 쉬운 장르는 아니어서 그랬다. 특히 리모컨을 잡은 사람이 부모님이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나오는 건 잘 보지 않아 시청률이 잘 나올 수가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아이돌 학교라고?’

그렇다면 시청률이 잘 나오는 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롯이 화제성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장르였다.

유지아 작가는 필명을 바꿔서 응모해 볼까 하는 고민이 살짝 들었다. 지금 쓰는 작품도 수한에게 오케이를 받아야 하긴 하지만, 창작자답게 새로운 소재가 보이면 흥미부터 생겼다. 특히나 아이돌 학교라니,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댓글들은 딱 엘 엔터테인먼트답다고 이야기하다가도 상금이 꽤 큰 탓에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유지아 작가는 일단 써 보고 안 되면 말고 하는 마음으로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재미로 쓰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키보드가 계속해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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