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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탑스타-117화 (117/186)

117   10. 터닝 포인트

강우형은 오늘도 잘 나온 ‘붉은 꽃’의 시청률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벌써 시청률 20%에 가까워졌다. 시청률뿐만이 아니라 화제성까지 높으니 이 기세면 올해의 드라마로 손꼽힐 것 같다.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드라마 중에 이 정도로 잘 나온 게 없으니 강우형이 크게 기뻐할 만했다. 더불어 회사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다. 만약 이 드라마로 올해의 대상까지 거머쥐게 된다면 이보다 대박이 없었다.

‘내 사람도 많이 만들어졌고.’

물론 다음 드라마까지 두고 보자는 사람도 있기는 했으나, 강우형은 반드시 성공할 거라 여겼다. 수한이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니 말이다. 애초에 그런 안목을 어떻게 얻은 건지가 궁금했지만, 배우 중에 그런 탁월한 감을 가진 사람도 있기는 했다. 강우형은 수한이 그 같은 경우라 여겼다.

“그보다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강우형은 사진 몇 장을 받아들었다. 수한이 알면 불쾌할 일이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수한의 뒤에 사람을 붙였다. 수한을 지키는 수단이자 그의 약점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강우형은 수한이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 두라고 지시했다.

강우형과 남일은 서로를 싫어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

강우형은 살짝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왜 이 사람이 수한과 함께 있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 사람이 김수한과 따로 만났다고?”

“네. 그렇습니다.”

동시에 장준환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남일을 쳐 낼 수도 있다는 말 말이다. 강우형은 설마 그 빈자리에 수한을 들이려는 건 아닌가 싶어서 소름이 돋았다.

‘아니, 대체 언제부터?’

언제부턴가 남일과 함께 있게 되면 남일을 도발하기 위해 수한을 꺼내기는 했었다. 설마 그 때문일까? 강우형은 장준환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수한을 사진으로 보고는 불쾌감이 먼저 들었다.

‘이러다가 엉뚱한 사람한테 먼저 빼앗기겠군.’

장준환이 엉뚱한 사람은 아니지만, 강우형이 수한에게 공을 들이던 상태였기에 분노가 치솟았다. 강우형은 수한을 자신의 밑에 두려고 했지, 동등한 입장으로 보지는 않았다. 장준환의 손에 들어간다면 남일의 위치에 서게 된다. 그건 결코, 강우형이 바라는 광경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나?”

평소 같았으면 제 생각대로 마구 밀고 나갈 강우형인데 이번만큼은 신중해지기로 했다. 잘못하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가 둘 다 놓칠 수도 있다. 그런 강우형의 의중을 비서가 모를 리가 없었다.

“김수한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아쉽게도 강우형이 원하는 답변은 아니었다. 어리숙한 가면을 쓰고 있지만, 수한이 만만한 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강우형이 가장 잘 알았다.

‘일단 회장이 김수한을 통해 뭘 하고 싶은지를 봐야겠어.’

이유 없이 사람을 만나고 다닐 사람은 아니었다. 그와 함께 강우형은 수한의 감시를 더 강화하기로 했다.

***

장준환을 만난 수한의 느낀 점은 ‘거물을 만났다’였다.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런 느낌을 준 건 이광무 감독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광무 감독보다 더 대단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수한과 함께 식사하면서 존재감을 숨기는 게 느껴졌다.

‘덕분에 그날 편하게 식사를 잘 먹었지만.’

앞에서는 자신 있게 말했지만, 막상 테스트해 본다니까 걱정은 되었다. 그래도 그 걱정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미리 걱정을 꺼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 말이다.

수한은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반기는 유지영을 발견했다. 요즘 매번 촬영 현장에 나가다 보니 얼굴이 수척해졌다. 배우들과 촬영 스태프들은 근처에 숙소를 잡아서 이동하는데 유지영은 회사와 촬영 현장을 번갈아 가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님, 오랜만입니다.”

“네…….”

수척해진 건 유지영뿐만이 아니었다. 유지아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은 건지 눈 밑에 그늘이 졌다. 수한은 불안하게 떨리는 눈빛에 쓴 웃음이 나왔다.

“일단 작품에 관한 건 식사부터 하고 말씀하시죠.”

“네. 알겠어요.”

작게 한숨을 내쉬는 유지아 작가의 등을 유지영이 내려쳤다.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였다. 나름대로 아프지 않게 때린 건데도 유지아 작가는 아팠는지 울상을 지었다. 과연 자매다운 모습이었다.

‘나는 혼자라서 그런지 저런 거 보면 괜히 부럽네.’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캐스팅 디렉터가 되니 용돈도 종종 보내 드리게 되었다. 물론 기획사를 차리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도 있지만, 부모님께는 돈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내가 과거로 다시 돌아오기 전에도 살아 계셔서 다행이었어.’

명훈과의 일은 걱정하실까 봐 결코 말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수한 씨는 뭐 드실래요?”

“아! 저는 이걸로 먹겠습니다.”

“남자들은 고기 엄청 좋아하네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유지영도 함박스테이크를 골랐다. 그 모순적인 행동에 수한은 웃음이 나왔다. 유지아 작가는 한참을 신중하게 고르더니 결국에는 같은 것을 시켰다. 이럴 거면 그냥 같이 시키는 게 나을 텐데 뭐 하러 한참을 고민한 건지, 유지영은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으면서도 막상 유지아 작가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작가님은 많이 드셔야겠습니다. 그래야 머리가 팍팍 돌아가죠.”

“네…….”

오랜만에 본다고 낯가리는 모습은 확실히 재미있었다. 저런 성격인데도 막상 작품을 보며 과감하게 써 내린다. 저 소심함 속에도 대범함은 있었다. 하긴 그 대범함은 ‘로맨스 연대기’의 최민희 작가를 작품으로 깔끔하게 바른 전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었다.

“맛있네요.”

말은 주로 유지영이 하고 유지아 작가는 호응을 위주로 했다. 막 나온 함박스테이크가 맛있긴 했는지 유지아 작가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나름대로 맛집을 데려온 건데 성공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요즘 엄청 바쁘시던데 용케 시간 내셨네요.”

“작가님 보고 싶어서 그랬죠.”

나름 입에 침을 바르고 한 말인데 유지영의 표정이 썩었다. 반면 유지아 작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한을 봤다. 자매라고 하기에는 너무 상반된 태도지만, 결과적으로 얼굴을 보면 비슷하게 생겨서 자매라고 안 할 수가 없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자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수한은 늘 그랬듯이 달콤한 커피를 시켰다. 유지아 작가는 목이 타는지 물을 시켰고, 유지영은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답장을 안 주셔서 많이 기다렸어요.”

“일단은 보기는 봤습니다.”

“네.”

긴장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에 대고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수한이 살짝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유지아 작가는 그거로도 답이 되었는지 시무룩해졌다.

“이번 거 재미없죠?”

“그냥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네. 재미없습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그 말을 들으니 제대로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수한은 알았다. 유지아 작가의 정신은 약하지만, 그만큼 회복도 빨랐다.

수한은 기대하는 자매의 눈빛을 보며 부담감을 크게 가졌다. 솔직히 말해 수한도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본 것이 유지아 작가의 전작 ‘로맨스는 없었다’였다.

“그럼 너무 비슷하다고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게요.”

“작가님. 작가님이 밑에 있었다는 그 스타 작가의 현재는 어떻습니까?”

유지아 작가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스타 작가는 여전히 잘나가는 중이었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살짝 비틀면서 판타지를 더한 것만으로도 다른 느낌이 들게 말이다. 그러면서도 점점 캐릭터들은 재미있게 발달했다. 각각 가해지는 개성이 다르기에 내용이 다르게 느껴져 많은 대중이 그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오히려 작가님 드라마니까 이제는 작가님한테 기대하는 것들이 생겼겠죠.”

드라마 세 작품을 했다는 건 결코 적게 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세 개 다 성공하기가 쉽지가 않지 않은가? 그 성공을 유지아 작가가 이루어 냈다.

“저는 그걸 보여 주면 되는 건가요?”

“네. 현재로서는 그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나시면 그때 그 이야기를 쓰시면 됩니다.”

이게 유지아 작가에게 적절한 조언인지는 수한도 잘 몰랐다. 그러나 유지아 작가는 그 말에 넘어가 버렸다. 진심을 담아 조언한 것이라 확실히 와닿았다. 반면에 수한은 묘하게 자신을 보는 유지영의 눈빛에 또 무슨 의심 살 만한 행동을 했나 어리둥절했다.

“아니, 매니저 일 하던 게 여기서 드러나나 해서요.”

“요즘 그 말 자주 듣는 것 같네요.”

“수한 씨가 담당했던 연예인들도 이런 상담 자주 했나 봐요. 능숙하시네요.”

그랬나 생각하기에는 1년이라는 세월이 적기는 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명훈에 대한 배신감도 있지만, 수한을 떠난 이들에 대한 원망도 없지 않아 있기는 했다.

‘그래서 데려온다면 스윗걸즈만 데려온다는 거고.’

명훈 하니까 말인데 안 그래도 요즘 명훈의 소식을 듣는 중이었다. 알아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중이라고 한다. 마치 과거를 보는 것 같아서 수한의 기분은 싱숭생숭했다. 특히나 동현이 수한의 자리에 있는 것 같아서 굉장히 마음이 찝찝했다.

“아무튼,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듣고 판단하는 건 작가님의 몫이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감사해요.”

“아닙니다. 혹시 조언 한 가지 더해도 됩니까?”

“네? 뭔데요?”

“30대 여자 주인공을 써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문득 떠오른 배우가 있어서 하는 말이었다. 유지아 작가는 그 말이 좋은 단서가 되었는지 눈을 반짝였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각난 모양이다.

“쓰면 바로 매니저님께 보내 드릴게요.”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물론 캐스팅까지 제게 맡겨 주시면 완전히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하죠. 제게 이렇게 큰 도움을 주셨는데요.”

“와, 이런 식으로 영업하는구나.”

옆에서 유지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보는 게 있기는 했지만, 이럴 때 좋은 게 인맥이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좋은 관계였다. 이러려고 수한은 그동안 인맥 관리를 잘 해 왔다.

“영화는 잘 되십니까?”

“일단은요. 편집까지 해 봐야 알 것 같은데 연기 하나는 죽여요.”

“상까지 이어지길 바랍니다.”

“절대 이광무 감독님 영화랑은 피하려고요. 무려 데이빗 랩이 나온다는데 경쟁 상대가 될까요.”

“글쎄요. 쌍으로 잘되면 가능한 일이긴 하죠.”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았으나, 수한이 기억하는 미래에서 있기는 했다. 두 영화가 모두 흥하여서 천만을 찍은 경우였다. 영화를 찍는다면 최대한 많은 관객이 봐 주길 원하기 때문에 천만은 영화인에게 있어서 꿈의 숫자이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데이빗 랩이 캐스팅되면서 수치가 확 바뀌었지.’

그전에 배우도 나쁘지 않았던 기억인데 배우에 따라 능력치가 아주 들쑥날쑥했다. 수한은 생각난 김에 가방에 넣어 둔 이광무 감독의 각본을 슬쩍 보았다. 깜빡하고 아직 대본을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대본은 배우 전체를 갈아 치웠다는 이유로 모든 능력치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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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 대중성: A, 화제성: SS, 관객 수: 1,010만, 손익 분기점: 360만, 성장 가능성: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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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비교하면 예술 영화로 흥했던 영화가 이제는 아예 대성공작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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