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13화 (113/186)

113   9. 캐스팅 디렉터

상영회를 마치고 나니 누구 하나 눈치 볼 것 없이 칭찬을 쏟아 냈다. 보통 드라마 4화면 이 드라마가 흥할지 아닐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대중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 수밖에 없었다. 이 드라마는 무조건 흥하게 되어 있다.

‘광고주들 표정이 좋네.’

강우형의 능력이 이런 데서 빛을 발하였다. 강우형은 배우와 각본으로 광고까지 끌어왔다. 괜히 엘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사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니었다.

‘저 사람은 굳이 엘 엔터에 있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수한이 들었던 이야기를 반대로 수한이 다른 사람을 보며 하게 되었다. 물론 대표 이사 자리가 대단하기는 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기획사 엘 엔터테인먼트니까.

‘하지만 이 회사가 망한단 말이지.’

망할 회사에 굳이 강우형 같은 능력자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게 수한의 생각이었다. 아무튼, 광고주들까지 이 드라마가 성공한다는 확신을 얻었으니 다른 광고도 붙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하는구나.’

저런 게 사업가 정신이 아닐까 싶었다. 수한이 배워야 할 모습이기도 했다.

“좋은 성적 나올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수한은 감독에게 먼저 들어가는 축하 인사를 보다가 차현의 성공을 확신하는 유진의 밝은 얼굴을 눈에 담았다. 아무리 연인 사이라고 해도 같은 직업군인지라 질투가 나올 만한데 유진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역시 부부가 서로한테 좋은 사람이네.’

수한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부다웠다. 안 그래도 유진이 들어갈 만한 드라마를 물색했기에 수한은 곧 좋은 소식을 들려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수한 씨.”

수한은 제게 먼저 다가온 강우형을 보며 웃었다. 그 어느 때보다 성공을 향한 열망이 있는 눈빛이 보였다. 이 드라마가 성공하면 엘 엔터테인먼트 내에서 강우형의 입지가 더 좋아질 것이다. 그게 강우형의 눈빛에서 드러났다.

“네, 이사님.”

“시청률이야 방영을 해 봐야 알겠지만, 지금 나온 결과물로는 느낌이 좋네요.”

“네.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 나갑시다.”

“네.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먼저 악수를 청하기에 수한은 강우형의 손을 꽉 잡았다. 강우형이 먼저 접근한 만큼 관계자들의 눈에 수한이 들어왔다. 안 그래도 이광무 감독의 영화에 들어간 사실이 퍼졌기에 몇몇 사람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앞으로 더 바빠질 수도 있겠는데.’

수한이야 바쁘면 바쁠수록 돈을 더 모으는 것이니 일이 많아지는 것이 싫지 않았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이 감당 못 할 일을 하지 말 것이었다.

‘괜히 일 벌였다가 신뢰 못 할 사람으로 찍히면 큰일이지.’

어쨌거나 상영회 현장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수한은 이 분위기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쭉 유지되기를 바라며 연락처를 묻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명함을 나눠 주었다.

언제나 성실한 수한의 모습에 강우형은 수한을 뿌듯하게 보다가도 자신의 경쟁자가 느는 광경을 탐탁지 않게 보았다. 앞으로 더 몸값이 오를 수한을 생각하니 너무 아까운 것이다.

‘이광무 감독의 일을 오히려 내가 방해했어야 했나?’

그렇다고 수한을 돕지도 않았지만, 조금은 후회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방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이광무 감독이 수한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한다는 소문이 벌써 돌았다. 수한의 능력을 바로 알아본 것이다.

‘저런 사람을 내 밑에 둬야 하는데.’

프리랜서로만 두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그렇다고 당장 엘 엔터테인먼트로 데려올 수 없는 건 강우형을 경계하는 회장 때문이었다. 수한을 엘 엔터테인먼트에 데려온다고 해도 수한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번 일로 내 편을 많이 만들어 둬야지.’

회장은 아이돌 육성에는 탁월한 안목을 가졌으나, 콘텐츠 제작에는 영 보는 눈이 없었다. 그게 회장의 현 위치를 갉아먹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엘 엔터테인먼트가 상장 회사이다 보니 주주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다.

‘얼른 움직여야겠어.’

대중들은 음주 운전 사건으로 엘 엔터테인먼트를 향해 손가락질하지만, 한편으로는 강우형에게는 반란의 기회가 되었다. 강우형은 나이수 회장의 꼭두각시 노릇만 하다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한 회사의 회장 정도는 되어야 뭐라도 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야망으로 강우형은 움직였다.

***

수한은 ‘붉은 꽃’ 상영회 이후로 오는 수많은 연락을 뒤로하고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었다. 물론 비행기 타려면 아직 시간이 있지만, 지금은 이광무 감독에게만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수한은 ‘붉은 꽃’ 상영회 이후 연락 온 곳 중에서 단 하나만 받아들였다. 아무리 수한이 돈이 급하다고 해도 모든 일을 수용하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기본은 해야지.’

대체 무슨 정신으로 사업을 하는 건지 모를 제작사가 많았다. 그중에서 어떤 곳은 운이 좋아 성공했지만, 수한은 그 성공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우선 작품을 고르는 눈부터 틀렸어.’

예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지만, 등급이 좋지 않다고 해서 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중에서 재미있는 작품도 많아 수한은 안타깝게 대본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본부터 재미없는데 이걸 하겠다고?’

수한은 지극히 대중적인 눈을 가졌기에 재미없는 것에는 더 냉정하였다. 그래서 고르게 된 곳이 단 하나였다. 물론 수한이 고르는 기준에는 이 제작사가 전에는 어떻게 했는지 과거 이력도 있었다.

‘은근히 스태프 돈을 떼어먹는 곳도 있단 말이야.’

솔직히 말해 ‘붉은 꽃’의 좋은 제작 환경은 강우형의 절박함이 만들어 낸 기적이라 볼 수 있었다. 만약 엘 엔터테인먼트가 만든 콘텐츠가 계속해서 잘되었다면 그런 환경이 만들어질 수 없었다.

“김수한?”

“네, 감독님.”

수한은 어색하게 웃으며 몇 번을 와도 적응이 안 되는 인천 공항을 괜히 한번 둘러보게 되었다.

“적응 안 되지?”

“아닙니다.”

수한이 부정했으나, 이광무 감독은 전혀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수한이 그저 맑게 웃자 이광무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먼저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광무 감독은 느긋한 성격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었다.

‘저 나이에도 핸드폰을 잘 쓰시네.’

나이가 들수록 신문물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게 귀찮기 때문도 있었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생긴다고 했다. 수한은 반쯤 동의했다.

‘이런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이 있으니까.’

이광무 감독은 바뀌는 시대를 보며 적어도 기계만큼은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좋은 카메라가 들어왔는데 내가 쓸 줄 몰라서 놔두면 얼마나 아까워.”

다른 건 몰라도 자기 작품에 대한 욕심이 강한 사람이다. 수한은 나이가 들면 이광무 감독처럼 나이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행기는 얼마 안 가서 타게 되었다. 시간에 맞춰 왔기에 너무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감독님.”

수한이 가방에서 목 베개를 꺼내자 이광무 감독이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옆에 있던 관계자가 그건 생각 못 했다는 얼굴로 수한을 봤다. 물론 평소에 이런 거, 저런 거 챙겨 오지 말라고 말하는 이광무 감독이지만, 막상 챙겨 오니 싫은 얼굴은 아니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장시간 비행이니까.’

돈을 아끼려고 일부러 일반석으로 예매했다. 그래서 더 불편할 거라고 여겨서 챙겨 왔다. 수한은 이광무 감독이 읽을 만한 책도 준비하여 가져왔다. 최근 인터뷰에서 읽어 보고 싶다고 말한 책이었다. 수한의 철저한 준비성에 이광무 감독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번 드라마 기대가 많던데.”

“상영회 보고 왔는데 좋은 작품 나올 것 같습니다.”

“우리 영화도 그래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겠죠. 그러니까 저희가 미국으로 가는 거고요.”

일부러 이광무 감독을 띄우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광무 감독은 간신 같은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모순적인 말이냐 싶겠지만, 무조건 찬양하는 걸 싫어한다는 소리였다. 그게 정답이었는지 이광무 감독은 여유 있게 웃으며 수한이 가져온 책을 읽었다.

흔들리는 비행기를 타고 있으니 속이 울렁였다. 그러면서도 일반석도 괜찮다고 한 이광무 감독의 말을 그대로 들어준 영화 제작사의 눈치에 수한은 조용히 혀를 찼다.

‘이럴 때는 반대로 알아들어야지.’

이광무 감독의 영화라 해서 무조건 한 건데 눈치가 없는 제작사의 모습에 수한은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

“음…….”

이광무 감독의 그 소리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눈치 보게 했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왔다. 게다가 한국으로 직접 날아와 오디션을 본 배우들의 실력이 좋았기에 더 큰 기대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거 참 애매하네.’

우선 마음이 바뀌어 안 온 배우들이 많았다. 이유는 특별히 없었다. 변심이었다. 심지어 어떤 배우는 수한의 메일조차 무시해서 많은 생각이 들게 하였다.

‘차라리 한국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라니.’

그나마 다행인 건 이광무 감독이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것이었다. 수한보다 더 많이 미국에 와 봤으니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백인 우월 사상에 찌들어 있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어중간한 스타가 스타병에 걸린다고 한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중간한 사람들이 더 여기 있는 사람들을 무시했다. 오히려 탑배우들이 예의 있게 행동해서 놀랐다. 물론 아닌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수한이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 중에는 이런 경우가 많아서 심란했다.

‘이런 사람은 그냥 처음부터 안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래.”

이광무 감독의 무거운 한숨만큼 수한의 피로감도 무거워졌다. 그래도 제작사가 눈치가 완전 없는 건 아니기에 숙소는 좋은 곳으로 마련하여 편하게 들어가 쉴 수 있었다.

[수한 형! 메일 받았어요! 노래 완전히 좋던데요!]

숙소에 있는 와이파이를 켜자마자 온 메시지에 수한은 웃음이 나왔다. 콘서트 당일 날은 예진 때문에 길게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차근차근 계획은 세워 두고 있었다.

우선 앨범 준비를 한다. 녹음까지는 아니고, 곡을 모으는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온에 트집이 잡히면 안 되기 때문이다.

주혁은 계약 사항에 어긋나면 위약금을 얼마든지 물 수 있다고 했지만, 수한은 괜한 돈 날리게 하기 싫었다. 더불어 주혁은 한국에서 활동할 가수였다.

‘방송가는 소송 걸린 연예인들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압박하지 않아도 방송국이 알아서 눈치를 보고 움직이게 되어 있다. 특히나 연예인의 잘못이 크다고 여기면 더 그랬다. 방송국은 기획사에 갑질을 하지만, 사실은 서로 돕는 사이이기도 했다. 그러라고 갑질을 당해 주는 것도 있으니까.

‘하여튼 간에 복잡해.’

수한은 내일 만나기로 한 배우들 목록을 보다가 눈을 반짝였다. 수한이 눈여겨본 사람이 내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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