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09화 (109/186)

109   9. 캐스팅 디렉터

“콘서트 전에 저녁 먹을 거지?”

“네. 아무래도 시간이 그렇게 되겠네요.”

“뭐 먹을까?”

“글쎄요.”

수한은 자연스레 핸드폰으로 식당을 찾아보는 예진의 모습에 놀랐다. 아무 준비 없이 왔을 거라는 수한의 예상과 다르게 예진은 일상적인 일본 회화까지 준비해 와 수한을 놀라게 했다. 말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알아듣기도 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니 하는 말이 기가 막혔다.

“언제 외국 영화 찍게 될지 모르잖아.”

배우로서 당연한 말인데 예진이 하니까 놀라움이 배가 되었다. 예진은 언제든 해외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였다.

“그럼 영어도 하는 편입니까?”

“그것도 모르고 날 추천한 거였어?”

당연하다는 듯이 짓는 오만한 표정 때문에 수한은 예진이 영어도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도치 않은 정확한 캐스팅이었다.

“영어도 미리 공부한 겁니까?”

“어릴 때 잠깐 살다 온 적 있어. 가서도 고생을 좀 했었거든. 그래서 평소에도 공부해 두고 있어.”

완벽하다. 수한은 이광무 감독이 예진을 만나게 되면 굉장히 만족할 거라 여겼다. 이광무 감독은 특히나 준비된 배우를 좋아했다.

“감독님은 어때?”

“호랑이 같은 분입니다.”

그보다 적합한 표현이 없어서 그리 말했더니 예진이 황당하다는 듯이 수한을 보며 말했다.

“너 이과지?”

“아니요. 문과인데요.”

“근데 표현력이 그게 다야?”

하지만 호랑이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수한이 볼을 긁적이고 있자 예진은 가볍게 혀를 차더니 시간을 확인했다. 주혁의 콘서트 당일이었기에 시간을 잘 계산해 놔야 했다.

“멀리 가서 먹지는 못하겠다.”

“네. 그러면 가까운 곳에서 먹어요. 안 그래도 승택 선배님께 주변 맛집 정보를 받아 왔습니다.”

다행히 승택이 수한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확실한 도움이 되었으니 수한은 과거 일은 완전히 잊기로 하였다. 어차피 그러기로 했으니 말이다. 승택의 맛집 추천은 탁월했다. 일본 음식인데도 두 사람의 입에 딱 맞았다. 수한도, 예진도 만족스럽게 먹었다.

“저녁은 내가 살게.”

수한이 대답하기도 전에 예진이 계산대에 가서 일본어로 말했다.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수한은 저 모습을 본받기로 하였다.

“내일은 제가 사겠습니다.”

“그러든가.”

저녁을 먹고 나니 벌써 콘서트 시간이 다 되었다. 특별히 주혁이 자리를 따로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수한은 스태프가 안내해 주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묘하게 사람들의 시선이 수한을 향했다.

‘응? 뭐지?’

수한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사람들이 보는 게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진을 보는 거였다. 예진을 보며 소곤거리는 것을 보니 예진을 알아본 게 틀림이 없었다. 하기야 특별히 변장하지 않았으니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긴 예진 씨가 여러모로 활동을 많이 했지.’

도전도 많이 했지만, 도전에 따른 성공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는 있는 모양이다.

수한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 시선을 받아들이는 예진을 보며 웃었다. 수한과 함께 있을 때는 편한 분위기를 냈지만, 연예인은 연예인이었다. 이 자리에서 홀로 빛나고 있었다.

“언제 시작한대?”

“곧 할 겁니다.”

공연 시작 직전에 들어왔으니 곧 시작할 거다. 수한이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주변이 캄캄해졌다. 강렬한 소리가 콘서트장 전체로 울리면서 저절로 가슴을 들뜨게 하였다. 수한이 예진을 보니 그녀도 조금 흥분한 얼굴이었다.

그때부터 주혁의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수한은 예진과 함께 야광봉을 열렬히 흔들며 콘서트를 즐겼다. 무대 위에 주혁은 SSS급 슈퍼스타 시절 그대로였다. 그 열정이 팬들에게 닿으면서 즐거운 비명이 콘서트장에서 울렸다.

팬들의 열기와 함께 수한은 예진과 재미있게 콘서트를 즐겼다. 그 순간을 누가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

“축하드립니다.”

“별말씀을요.”

남일은 거짓으로 축하하는 강우형을 알면서도 웃으면서 축하를 받아들였다. 정확히 남일이 축하받을 일이 아니라 예진이 축하받을 일이었다. 남일은 이 상황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하필 김수한이 물어다 준 일이라니.’

이광무 감독의 영화에 들어가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나, 김수한이 껴서 좋지 않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예진을 추천한 건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오늘 남일의 손에 들어온 사진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야?’

주혁의 콘서트장에서 수한과 다정하게 찍힌 사진이 있다. 일본에 있는 파파라치를 통해 들어온 사진이었다. 파파라치는 주혁과 예진의 사이를 의심해서 사진을 찍은 것이지만, 남일은 주혁보다는 수한과의 관계를 의심하였다.

‘그러고 보니 성예진이 김수한한테는 고분고분한 게 있다고 했지.’

그리 생각하니 더욱 수상하게 보였다. 머릿속으로만 두 사람을 나란히 세워 두었는데 굉장히 잘 어울려서 또 문제였다. 만약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면 일이 복잡해진다.

‘아니지. 연인 관계였으면 성예진이 지금처럼 얌전히 있지는 않았지.’

예진의 성격이 얼마나 지랄 난지 알기 때문에 그 생각은 보류되었다. 게다가 수한도 남자인데 기 센 여자를 연인으로 두고 싶을까 했다.

거의 농담처럼 듣긴 했지만, 수한의 이상형은 예진보다는 소원에 가까웠다. 차라리 수한과 꾸준히 만나고 있는 소원을 의심하는 게 더 나았다.

‘막상 파파라치에게서 사진은 사 왔는데 이걸 어딜 써먹을 데가 없군.’

예진에게 어떻게 된 사진이냐고 물어봤자 무섭게 몰아칠 예진을 생각하니 오히려 결과만 나빠질 것 같아 염려되었다. 결국은 묻어야 한다.

그 수많은 생각 때문인지 남일은 강우형을 앞에 두고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서 대표님?”

“아! 네. 잠시 제가 생각할 게 있어서 실례했습니다.”

“아마 저에게도 축하한다고 하실 일이 얼마 안 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이번에 붉은 꽃이 공중파 방송 편성을 받았거든요.”

“아! 그랬군요. 축하드립니다.”

생각보다 편성 시간대를 빨리 받게 되어서 반 사전 제작이 되어 버렸지만, 그에 관해서는 배우들에게도 양해를 구한 상태였다. 그들도 찍은 영화와 개봉 시기가 비슷해지니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잘하면 화제성을 두 배로 얻을 수 있으니 상부상조(相扶相助)였다.

“그럼 축하는 그때 드리는 게 낫겠네요.”

이번 드라마에 수한이 참여했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으나, 남일은 솔직히 잘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엘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사라는 게 기대감을 떨어뜨렸다.

‘시작도 전에 그 사실을 퍼뜨리면 사람들은 안 보겠지.’

엘 엔터테인먼트가 대형 기획사이긴 하지만, 그만큼 적이 많아서 굳이 남일이 손댈 필요도 없었다.

중국에 팔아넘겼다고 하니 손해는 안 보겠지만, 크게 성공할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엘 엔터테인먼트에 속해 있는 아이돌이 한 명도 안 나온다고 하지만, 그 안목이 그 안목이지 않겠는가?

‘김수한이 참여해 봤자지.’

좋은 대본도 가져가서 망쳐서 나오는 게 엘 엔터테인먼트였다. 대표작으로 ‘로맨스 연대기’가 있으니 남일은 옛날 일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이번에는 수한과 함께 무너질 것 같으니 더 기대가 컸다.

“드라마가 크게 성공하면 제가 크게 쏠 테니 그 축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그보다 회장님께서 늦으시네요.”

“차가 조금 막힌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회장이 없는데도 서로 예의를 차리고 있는 이 현장이 웃기긴 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면서 가슴의 칼을 갈았다. 상대가 처참하게 무너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강우형은 남일을 쳐다보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쓰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서 대표님이 우리 회장님과 만났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우리 회장님이라면……?”

“엘 엔터테인먼트 나이수 회장님 말입니다.”

“아! 지난번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종종 골프를 치러 가거든요. 제 골프 솜씨를 보더니 호감을 느끼신 것 같습니다.”

남일은 그때 일을 생각하자 굉장히 즐거워졌다. 조금만 대화를 나눴는데도 나이수 회장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겠다.

‘쓰다 버릴 말.’

천하의 강우형을 두고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알게 되자 강우형이 앞에서 뻗대는 게 우습게만 보였다. 마치 남일을 앞에 두고 아등바등하던 3년 전의 수한처럼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경고 비슷한 말을 해 주었다. 다행히 나이수 회장은 남일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아니, 오히려 남일보다 강우형의 생각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였다.

‘이자도 얼마 안 가면 내 앞에서 없어지겠지.’

그러니 이런 식으로 오만하게 굴어도 용서가 되었다. 얼른 나이수 회장이 강우형을 손봐 주기를 남일은 바랐다.

***

수한은 아침부터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부터 날아온 찌라시 때문이었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아침부터 짜증을 일으키게 하였다.

‘무슨 콘서트 하나 갔다고 둘이 사귀냐 마느냐 이런 이야기가 나와?’

예진이 이 소문을 들으면 굉장히 분노할 것 같아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수한 때문에 이런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게 아닌가. 국내도 아니고, 일본 콘서트를 갔기 때문에 말이 나온 것이다.

‘내가 너무 생각하지 못했네.’

오히려 해외니까 괜찮을 줄 알았고, 수한과 함께 다녔기에 이런 소문이 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한 게 막상 일본에서 함께 다닌 사람은 수한인데 소문은 엉뚱한 사람과 났다. 생각해 보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하긴 그쪽이 더 자극적이니까.’

수한은 다른 것보다 이광무 감독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광무 감독은 개인적으로 이런 소문이 도는 걸 굉장히 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이 일로 이광무 감독의 마음이 바뀐다면 수한도 곤란했다.

‘일단 오늘 만나면 말씀드리자.’

그래도 사진은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사 갔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아니다. 오히려 가온에서 그랬기 때문에 둘이 정말 그런 사이가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막상 주혁 씨와 함께 있는 사진도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는지 모르겠다. 의미 있는 사진도 아닐 텐데 대체 왜 샀을까?

‘언제부터 가온이 호구가 된 거지?’

이런 식으로 나오면 파파라치가 더 판 칠 텐데 이 사실을 모르는 건 남일뿐이었다. 아무튼, 가온 엔터테인먼트에 속해 있는 연예인들만 곤란하게 되었다. 수한은 그중에서는 자신이 담당했던 연예인들만 걱정했다. 특히나 걱정되는 건 소원이다.

‘그래도 소원 씨가 집순이라 다행이지.’

그러고 보면 수한이 담당했던 연예인들 대부분이 집순이, 집돌이였다. 그나마 주혁이 밖에 나가는 걸 좋아했으나, 이제는 그냥 다가오는 사람에게도 민감하게 군다고 하니 정말로 집순이, 집돌이만 남게 되었다.

수한은 깔끔하게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이광무 감독과 약속을 잡은 날이었다. 다음 달에 미국에 간다고 해도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가는 게 좋았다.

‘일단 괜찮은 배우들을 다시 뽑아 놨으니까 그걸 말씀드려야 하고.’

미국에서 인지도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할 생각이기는 하지만, 떠오르는 스타를 끌어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워낙 외국에서도 상을 많이 타는 이광무 감독이니 각본에 흥미를 느낀다면 참여하고 싶은 배우들이 많을 거다. 수한도 배우를 해 봤기 때문에 공감하는 흥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종 차별도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인종 차별 안 하는 척하지만, 오히려 그러면서 하는 게 더 나쁘다는 걸 모르는 게 미국인들이었다. 수한은 이에 관해서도 미리 이광무 감독에게 말해 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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