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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탑스타-108화 (108/186)

108  9. 캐스팅 디렉터

“맛이 나쁘지 않죠?”

“그렇네.”

그런 것치고 평소 먹는 것보다 많이 먹기는 했지만, 예진은 내색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수한은 감탄하는 예진의 얼굴을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맛집 하나만큼은 정확히 기억했다.

‘그렇다고 해도 얻어먹은 건 좀 미안한데.’

“다음에는 제가 사겠습니다.”

“그래도 되고.”

어딘가 또 기대하는 눈빛에 수한은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비싼 것보다는 맛있는 걸 대접해야겠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핸드폰으로 온 문자에 수한은 고개를 살짝 내렸다.

[형, 비행기 표 예매해 놨어요.]

주혁에게서 온 문자였다. 수한은 주혁의 콘서트 날짜를 떠올렸다. 가기로 약속했으니 가야 한다. 수한이 잠시 일정을 생각하기 위해 멍하게 있자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던 예진이 물었다.

“무슨 연락인데 그래?”

“아! 주혁 씨한테서 연락이 와서요.”

“주혁? 고주혁? 너 걔랑도 연락해 왔어?”

어딘가 배신에 찬 얼굴에 수한은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거든요. 일본에서 콘서트하는데 오라고 해서 가겠다고 했더니 연락이 왔네요.”

굳이 성민이 수한에게 도움을 청한 사실은 알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주혁의 이야기를 하자 예진이 인상부터 찌푸리는 게 아닌가?

“걔, 너한테는 잘하나 보다. 다른 매니저들한테는 거지같이 하더니.”

“예진 씨도 아세요?”

“어. 재원 오빠가 대타로 나간 적이 있거든. 나보다 힘든 사람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앞으로도 잘해 보자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

수한은 어느 순간 재원의 담력이 세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을 예진의 앞에서 했다니 말이다. 그러나 예진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얼굴이었다. 어차피 그녀도 알았다. 본인이 업계에서 어떻게 소문났는지 말이다.

‘하긴 스토커 사건 이전에는 이러지 않았다고 하니까.’

어떻게 보면 다 알면서 일부러 까칠하게 사람을 대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가시였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그래서 일본까지 가려고?”

“네. 약속했으니 가야죠.”

“콘서트 날짜가 언제인데?”

예진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생각해보니 예진은 SSS급 슈퍼스타에서 주혁을 뽑은 시청자 중 한 명이었다.

“왜요? 예진 씨도 가시려고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딴청을 피우며 다른 곳을 보는데 수한은 예진이 일본에 갈 생각이라는 걸 알아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예진이 간다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혼자 심심하게 안 다녀도 될 것 같고.’

한국도 아닌 일본이니까 같이 다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덜 신경 써도 되니까.

“가실 거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니까.”

“그래도 갑자기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수한의 능글맞은 말투에 예진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생각이 많아 보였다. 어쨌거나 저녁 계산은 예진이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의 운전도 예진이 했다.

“운전 잘하시네요.”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해.”

순간적으로 지옥의 강아지 간식이 떠올랐지만, 수한은 웃음을 참으며 말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또 예진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진짜로 예진은 운전을 잘했다. 주행도 거칠지 않고, 안전하게 잘했다.

“감사합니다.”

“응. 조심해서 가.”

남을 데려다주기만 했지만, 남이 데려다준 건 처음이라서 느낌이 신선했다. 이게 다 수한이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지만, 예진은 그걸로 딱히 생색을 내지 않았다. 수한은 멀어지는 예진의 차를 보며 자신의 집이 있는 골목을 보았다. 확실히 허름한 골목이었다.

‘이런 데서 사냐고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안 그러네.’

변하긴 했는데 좋은 쪽으로 변한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수한은 묘하게 데이트한 기분이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즐거웠다.

***

“네. 김수한입니다.”

[수한 씨, 지금 전화할 시간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수한은 비행기 표를 손에 쥐고서 여유 있게 공항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행기를 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수한이 유지영의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자 유지영의 입에서 서이나에 관한 칭찬이 쏟아졌다.

[진짜 천재라니까요.]

“영화 촬영 현장에도 자주 가십니까?”

[당연하죠. 첫 영화인데 당연히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에요?]

틀리지는 않은 말이라 수한은 피식 웃었다. 아무리 갖은 현장을 다 뛴 사람이라 하더라도 첫 대표가 되어서 하는 일이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수한만 해도 처음 기획사를 차렸을 때 매니저가 필요 없을 정도로 다 따라다녔다.

‘아마 이번에도 비슷하겠지.’

그보다 서이나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나 보다. 만약 그때 서이나를 놓쳤으면 크게 원망을 받았을 거라 예상이 되었다. 그래도 자신을 믿어 준 유지영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영화 잘되면 자리 만들게요.]

“꼭 영화가 잘 만들어져야 만듭니까?”

“그러게 말이야. 나처럼 화끈하게 쏘는 게 더 나은데 말이야.”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선글라스를 낀 예진이 보였다. 고민해 본다고 하더니 기어이 와 버렸다. 미리 연락 달라고 했는데 안 준 것도 예진다웠다.

[옆에 누가 있어요?]

“네. 기다렸던 일행이 왔네요. 이만 끊어야겠어요.”

[여자 목소리던데 애인이에요?]

“그렇게 따지면 지금 저와 통화하는 유지영 씨도 여자인데 유지영 씨가 제 애인입니까?”

반쯤 농담 삼아 한 건데 갑자기 전화가 뚝 끊겼다. 처음 유지영과 전화했던 내용이 생각나면서 수한은 어이가 없어졌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예진의 반응이었다.

“너 애인 있어?”

선글라스까지 반 벗겨진 걸 보니 상당히 놀란 모양이다. 수한은 뜻 모를 미소만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은 드셨습니까?”

“잠깐만, 나 조금 전에 너한테 뭐 질문하지 않았어?”

“조금 전에요? 무슨 질문했었죠?”

수한이 얄밉게 웃자 예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기분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 힘을 주며 수한을 노려보는 탓에 수한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침 드셨으면 커피는 어떻습니까?”

“진짜 애인 있는 거야?”

왜 그런 걸 궁금해하는지 수한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예진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 상태를 오래 가지고 가기에는 예진의 분노가 거세질 것 같으므로 빠르게 대답하였다.

“있었으면 예진 씨와 이렇게 안 있겠죠.”

그 말에 예진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러고는 얼마 안 가 얼굴이 새빨개졌다. 수한은 자신보다 먼저 앞으로 걷는 예진의 모습에 서둘러 쫓아갔다. 이러다가 서로 잃어버릴까 봐 염려되었다.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 아니거든.”

“네, 알겠습니다.”

그런 것치고 정색하며 물었지만, 수한은 기억에서 지우기로 했다. 그래도 그새 빨갛던 얼굴이 가라앉았다. 열심히 마인드 컨트롤을 한 탓이었다. 덕분에 피곤함이 더해졌는지 비행기를 타자마자 예진은 잠들었다.

‘주무시네.’

의자에 완전히 기댄 채 잠든 예진이 보였다. 따로 예매를 해 두었기 때문에 예진과는 떨어져서 앉게 되었다. 예진은 커피 마신 보람도 없이 완전히 푹 잠들었다. 수한은 나갈 때 깨워 주기로 하며 주혁의 콘서트를 기대했다. 모처럼 놀러 온 것이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다행히 예진은 비행기가 일본에 도착하기 전에 깨서 수한이 깨울 필요가 없어졌다. 둘 다 몸을 가볍게 하고 왔기에 공항에서 나오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순돌이는 어떻게 하고 오셨습니까?”

“동물 병원에 맡겼어. 순돌이도 다른 강아지 좀 만나 보고 그래야지.”

보니까 처음 맡겨 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하긴 배우 일을 하는데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그보다 예진은 맑게 웃으며 일본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야 여행 온 기분 드네.”

“숙소는 따로 잡으셨습니까?”

“아니? 너 믿고 안 잡았는데?”

수한은 대책 없는 예진의 모습에 말이 안 나왔다. 다행히 주혁이 잡아 준 곳이 호텔이라서 방을 따로 잡기에는 어려움이 없긴 했다. 게다가 비수기라서 예약이 꽉 찼을 것 같지 않았다. 수한은 한숨부터 나왔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른다고 하지만.’

남자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수한이니까 괜찮은데 다른 남자라면 오해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아니, 수한도 다른 생각이 들 정도이니 수한은 정신 차리기 위해 머리를 여러 번 흔든 뒤 말했다.

“일단 제가 잡아 둔 호텔로 가시죠.”

“오- 호텔? 너 돈 많이 벌었다더니 사실인가 보네.”

“그런 소문이 났습니까?”

“너 외제 차 타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재원 오빠가 자기도 퇴직할까 고민하면서 네 이야기 하더라. 퇴직한다고 해서 다 너처럼 버는 거면 퇴직하라고 하겠지만, 그건 또 아니니까 현실을 알려 줬지.”

수한은 뼈아픈 말에 재원이 어떻게 반응했을지 예상하고는 웃음이 나왔다. 예진이 직접 한 말이니 아프다 못해 뼈가 바스러졌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보통은 반대로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 말이야. 내가 연예인 관둔다고 하면 오빠가 말려야 하는데 반대로 하고 있으니.”

예진은 가볍게 혀를 차면서 어딘가에 연락하였다. 뭔가 하고 봤더니 택시를 불렀다고 한다.

“택시비 비싸지 않습니까?”

“괜찮아. 나 돈 많잖아.”

그 말에 수한은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진 앞에서 돈으로 나대서는 안 되었다. 예진이 그동안 찍었던 광고만 생각해도 수한은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다.

“사실 호텔 방도 빌렸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와, 저 데리고 장난친 거예요?”

“어. 너 반응 궁금해서.”

장난스럽게 웃는데 굉장히 얄미웠다. 그래도 교통비를 아끼게 해 준 예진의 돈 뿌리기에 수한은 감사함을 표했다. 솔직히 말해 택시로 다니는 게 훨씬 편했다. 돈은 예진이 내 줄 것 같으니 수한은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호텔은 어디로 잡으셨습니까?”

“네가 묵는 곳.”

“제가 묵는 곳이요? 거길 어떻게 알고요?”

“고주혁한테 물어봤어.”

수한은 어색하게 웃었다. 예진이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을 테고, 재원이 연락했을 거다. 예진의 말에 의하면 수한을 제외한 다른 매니저들에게 좋지 않게 반응했다고 하니 재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며칠 휴가 줬으니까 괜찮아.”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보다 택시 안에서 보는 광경은 지난번 지하철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놀러 온 거라 마음이 들뜨기도 했고 말이다. 고개를 돌리니 예진도 같은 얼굴이라 수한은 이번 일본 여행이 서로에게 좋은 휴식이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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