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06화 (106/186)

106  9. 캐스팅 디렉터

“이광무요.”

먼저 손을 내미는 이광무 감독의 모습에 수한은 덥석 그 손을 잡았다. 세월이 녹아 있어서 그런지 손이 까칠하면서도 주름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노인의 손이지만, 수한은 이 사람의 손에서 태어난 작품들을 잘 알았다. 하나같이 대한민국 명작으로 뽑히는 영화들이었다.

“나보다 일찍 오는 사람은 오랜만이라 조금 놀랐어요.”

“저도 늘 일찍 오는 건 아닙니다.”

수한도 의도해서 한 시간이나 일찍 온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광무 감독에게서 호감을 산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다.

“옷이 굉장히 잘 어울리십니다.”

“요즘 젊은 애들이 입는 옷이래서 입어 봤는데 보시다시피 젊은 애들이 입어야 패션이지.”

오히려 노숙자 취급을 받아서 불쾌감이 올라온 듯했다. 그러나 이광무 감독은 곧 웃으면서 유리잔을 들었다.

“이게 맛없었으면 바로 일어났을 거요.”

“맛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달아서 입에 딱 맞았다. 수한도 공감하는 바라 웃었다. 수한은 자신이 준비해 온 자료들을 이광무 감독 앞에 내놓았다. 여러 명의 프로필 나열에 이광무 감독은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이 안 좋아서 찌푸린 거라기보다는 시력이 좋지 않아서 찌푸린 거였다.

막상 수한을 긴장하게 했던 당사자를 눈앞에서 맞이하고 있으니 수한은 긴장감이 오히려 싹 사라졌다.

“사실 우리나라 배우였으면 이렇게 볼 필요가 없는데 늙은이가 귀찮은 일 벌이는 걸 좋아해서 말이요.”

“그래서 제가 필요한 게 아닙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 눈만큼은 자신이 있어 수한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광무 감독도 수한의 그 자신감이 재미있었는지 제대로 수한을 봤다. 순간, 수한은 위압감에 가슴이 확 쪼여 들었다. 누가 거장 아니랄까 봐 눈빛이 참 매서우면서도 압도적이다.

‘마치 호랑이를 앞둔 기분이네.’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지만,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인제 보니 틈을 주면 안 되는 사람이다. 혹시 몰라 이광무 감독에 관한 것을 조사해 보기는 했는데 듣던 것보다 더 대단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한은 내려놓았던 긴장을 다시 들면서도 이광무 감독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강우형과 비슷한 사람이다. 피하지 않는 상대를 좋아한다.

“눈빛이 참 좋군요.”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일을 잘하는지는 겪어 봐야 알겠지.”

수한은 그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줄 알았다. 일단 써 보고 결정하겠단 이야기이니 긍정적이었다.

“해외 배우들을 대부분 쓰긴 하겠지만, 한국 배우도 몇 명 쓸 생각이요.”

“그렇습니까?”

아직 시나리오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수한도 모르는 내용이었다. 수한이 바짝 긴장하며 이광무 감독을 보자 이광무 감독의 품에서 각본 하나가 나왔다.

“일단 한국에서 먼저 시작이요. 그다음에 그쪽을 쓸지 결정할 거요.”

각본을 보고 분석하여 맡는 사람을 데려오라는 이야기였다. 이미 생각해 둔 배우가 있지 않을까 하여 이광무 감독을 봤으나, 이광무 감독은 그저 웃기만 하였다.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을 테니 알아서 해 보라는 뜻이었다.

‘설마 갑자기 이런 식으로 테스트할 줄은 몰랐는데.’

적어도 자신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수한은 과제를 줬으니 기꺼이 해 보기로 했다. 해 보기도 전에 겁먹는 건 수한이 할 일이 아니었다.

“기간은 언제까지로 해야 합니까?”

“일주일.”

촉박하다면 촉박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수한은 날짜를 미루지 않았다. 이광무 감독은 그런 스타일을 싫어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주일 안에 적합한 배우를 찾아서 데려오겠습니다.”

“그럼 일주일 후에 내 집으로 와요. 바깥은 영 시끄러워서 나와 안 맞아.”

“네. 알겠습니다.”

수한은 자신이 준비한 서류를 하나도 챙기지 않는 모습을 보고 조금은 허망한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 당장은 웃음이 나왔다. 대충 훑어본 것 같으면서도 수한은 알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눈동자를. 아마 수한이 준비한 것을 다 머릿속에 담고 갔을 거다. 수한이 조사한 이광무 감독은 그런 사람이니까.

“어쨌거나 당장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생겼네.”

수한의 안목을 보려고 하는 거니 평범한 배우를 들이대서는 안 되었다. 그러니 적어도 이광무 감독과 함께한 배우를 데려와서는 안 되는 거였다. 수한은 아직 남은 커피를 한 번에 털었다. 속은 차가웠지만, 가슴은 뜨거워졌다.

***

수한은 영화를 보고 또 봤다. 갑작스레 한국 배우를 던져 줄지 몰랐기 때문에 해외 배우들만 신경 쓴 시간이 조금 아까워졌다. 그러나 아까워할 시간도 없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어려워.’

누가 거장이 아니랄까 봐 이광무 감독이 주고 간 각본은 좋은 능력치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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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 대중성: B, 화제성: S, 관객 수: 700만, 손익 분기점: 330만, 성장 가능성: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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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단순하면서도 따뜻한 것 같은데 각본은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삭막한 이 세상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어 사회 비판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외국 영화를 찍은 건데도 저런 화제성이 나오는 건 이광무 감독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스쳐 지나가면서 이 영화 포스터를 본 기억이 있어.’

구도를 하도 특이하게 찍어서 인상이 깊었다. 아무튼,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에 맞춘 영화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수한이 포스터만 보고 직접 본 기억은 없었다.

‘솔직히 예술 영화가 700만이나 동원하는 건 대단한 일이지.’

수한은 왜 과거에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솔직히 말해 그 영화에 나온 배우들을 캐스팅하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재미있기도 했다.

‘만약 그 배우들이 아닌 내가 고른 사람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어떨까?’

수한의 안목으로 선발된 배우들이 영화를 찍는다면 그 나름대로 뿌듯할 것 같았다. 물론 그리된다면 본래 배우들이 피해를 받겠지만, 수한은 이젠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려고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스스로 나오지 않았는가.

‘어디 누가 없을까?’

이제는 독립 영화에까지 손을 대며 수한은 정신없이 영화를 봤다. 독립 영화라 그런지 확실히 무명 배우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연기력은 하나같이 좋아서 수한은 감탄하며 보았다.

‘근데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인데?’

하도 얼굴 모르는 사람들만 보다 보니 두 번만 나와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정말로 눈에 익숙하다. 심지어 민얼굴인데도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설마 저 사람 예진 씨야?”

너무 놀라서 육성으로 내뱉어 버렸다. 수한은 그 즉시 핸드폰을 들어 예진의 필모그래피를 살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금 보는 영화의 제목을 찾아냈다.

‘진짜네.’

역할을 위해서 예진은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지저분한 모습으로 돌아다녔다. 수한은 눈을 여러 번 깜빡이다가 순간 머리가 번뜩였다. 왠지 이광무 감독의 각본에 눈길이 갔다.

‘예진 씨라고……?’

평소에 모습이라면 절대 생각하지 못할 괴리감이 느껴지는데 이상하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니 저 영화의 역할이 딱 예진의 것 같았다. 설마 이런 곳에서 예진이 눈에 들어올 줄 몰랐기에 수한도 당황스러웠다.

‘아니야. 그래도 예진 씨는…….’

그러나 보면 볼수록 확신만 생길 뿐이었다. 수한은 자신이 가진 선입견을 내려놓기로 했다. 수한은 예진과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보면 볼수록 알겠다. 이건 예진이 해야 하는 역할이다.

‘그래. 일단 부딪쳐 보자.’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생기자 그다음으로 적합한 인물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독립 영화에서 인물을 발견했다. 수한은 날이 바뀌는지도 모르고 열정적으로 필기를 해 가며 봤다. 그리고 다음 날 강우형에게 따로 연락이 왔을 때 미소를 지었다.

‘원래라면 바빠서 못 간다고 해야겠지만…….’

갈 수 있다. 거의 일주일을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냈으니 나갈 때가 되기는 했다. 수한은 구겨진 몸을 쭉 펴며 가겠다고 연락하였다.

***

“일단 축하드린다는 말부터 하고 싶네요.”

“네? 축하할 일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오히려 축하드린다는 말은 제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수한은 넉살 좋게 웃으면서도 놀랐다. 드라마 촬영도 전에 중국이라는 투자처를 물어 온 강우형의 성과가 대단했다. 한류 스타를 내보내지도 않았는데 벌써 팔아 버리다니. 적어도 적자는 보지 않게 되어 돈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졌다.

“이 정도 보험은 들어 둬야 회장님께서 다른 소리를 안 할 테니까요.”

이런 말을 자신의 앞에서 해도 되나 수한은 의문이 들었지만, 강우형은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음주 운전 사건은 어떻게든 합의를 잘 보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돈으로 해결하였다.

‘역시 돈은 못 하는 게 없네.’

강하게 반발했던 피해자의 가족이 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대체 얼마나 부른 건지 모르겠지만, 큰돈이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 만나 뵌 이광무 감독님은 어떻습니까?”

“호랑이 같은 분입니다.”

“과연 듣던 대로인가 보네요.”

그래서 수한은 긴장이 되었다. 과연 자신의 안목이 맞을지 틀릴지 말이다. 그 생각을 하자 이상하게 흥분이 되어 웃음이 나왔다. 당연히 강우형은 그런 수한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꼭 일이 성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바랍니다.”

“주변에서는 방해가 없었습니까?”

“아직 특별한 방해는 없었습니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 그리 대답한 것인데 강우형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마치 수한이 모르는 일이 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제가 전해 들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네?”

“사실 감독님은 김수한 씨를 그대로 쓰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서 수한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면 이광무 감독이 내준 과제는 누군가의 방해로 인해 생겼단 말인가?

“누가 방해를…….”

수한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 존재를 알아채고는 미소를 지었다. 하여튼 간에 어디서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다. 아마도 보복일 거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게는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

“역시 김수한 씨네요.”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강우형의 모습에 수한은 살짝 소름이 돋았지만, 그래도 조금 전에 말은 진심이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눈도장을 찍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부디 김수한 씨의 생각대로 잘 되길 바랍니다.”

“저도 이사님이 하시는 일이 잘 되길 바랍니다.”

강우형을 볼 때마다 수한은 어딘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불안하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순식간에 세상을 떠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 사람이 있는데도 엘 엔터테인먼트가 망한다는 게 이해가 안 돼.’

“저, 이사님. 건강 검진은 꾸준히 하시죠?”

“네, 합니다. 건강해야 일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으니까요.”

수한은 자신 못지않은 일 중독자에 조용히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강우형을 조용히 걱정했다. 강우형이 수한을 마음에 들어 하는 만큼 수한도 강우형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파트너 관계로 계속해서 유지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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