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03화 (103/186)

103   9. 캐스팅 디렉터

수한은 질문 하나 없이 입국 심사를 통과해서 한국인이 얼마나 관광지로 일본을 자주 찾는지 알게 되었다. 혹시 몰라 미리 여권을 만들어 두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며칠 기다릴 뻔했다.

‘혹시나 이광무 감독님 때문에 해외에 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만들었지.’

미리 준비하기 잘한 것 같다. 수한은 가방 하나 메고 일본에 도착했다. 숙소에 관해서는 따로 말하지 않았는데 성민이 알아서 잡아 주었다. 그래서 숙소 문제는 해결되어서 좋았는데 문제는 수한이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길만 잘 찾아가면 괜찮지 않을까 했다.

‘나중을 생각하면 일본어를 배워 두긴 해야 하는데.’

미래에 일어날 불매 운동이 떠오르면서 수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가수는 일본 투어를 돌면서 돈을 벌어들였다. 그건 일본 돈을 가져오는 일이니까 대중들도 나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 일본어도 미리 공부해 두자.’

언제 어디에 써먹을지 몰라 영어도 공부하는 중이었다. 물론 누가 앞에서 영어로 말해 보라고 시키면 부담스러워 할지어도 대충 듣는 귀는 열려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미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라 어디까지 들리는지는 수한도 잘 몰랐다.

‘그보다 바다 하나 건넜다고 분위기가 이렇게 다르네?’

수없이 적힌 일본어가 일본에 온 것을 실감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한국어에 수한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 어지간히 일본에 많이 오는 것 같다. 물론 물가가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되었으니 국내 여행보다는 해외여행이 끌리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고주혁 씨를 어떻게 찾느냐지.’

우선 성민이 알려 준 주소로 가야 할 것 같다. 오기 전에 일본 교통 수단을 열심히 공부해 두었기 때문에 수한은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일본 택시를 타기에는 요금이 너무 비쌌다. 물론 일본 지하철도 안 비싼 건 아니었다.

‘여기는 환승이 안 되네.’

그래서 관광객들이 많이 쓰는 것 중의 하나가 표를 묶음으로 싸게 사는 것이었다. 수한도 고주혁이 어딜 갔는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사 두기로 했다.

일본 지하철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작은 편에 속했다. 지하철만 타도 느낌이 다르니 수한은 내심 신기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건 뭐, 고주혁 씨를 찾으러 온 건지 관광을 하러 온 건지 모르겠네.’

생각해 보면 수한의 첫 해외 방문이기도 했다. 과거에 회귀하기 전에도 다른 나라에 가 볼 여유가 없었다. 그냥 직원도 아닌 기획사 대표였으니 굉장히 바빴다. 국내 여행도 갈 틈이 없었으니 말 다 했다.

‘그래서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구나?’

다행히 출퇴근 시간은 아니어서 지하철 자리는 넉넉했다. 그러나 외국에 왔기에 언제 내려야 역을 놓칠지 몰라서 수한은 긴장한 상태로 지나가는 역을 보았다.

일본 지하철이 환승이 안 되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수한은 복잡해진 내부를 보면서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다시 살펴보고 또 살펴보며 걸었다. 우선은 고주혁부터 찾아야 하므로 일본에 있는 고주혁의 매니저를 만나야 했다.

수한이 겨우 길을 찾아 지하철역에서 나오자 성민에게서 미리 연락을 받은 건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수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승택 매니저였다. 이지훈의 초창기 매니저였던 사람이다. 고주혁 건으로 칭찬을 받은 기억이 있다. 수한과는 재원처럼 많이 엮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서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이에요. 승택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조금 딱딱한 분위기를 가진 건 여전했다. 게다가 수한이 이제 같은 회사 사람도 아니니 반말도 존댓말로 수정되었다. 그런 성품이라 수한도 승택과 친해지지 못했다. 승택은 묵묵하게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면에서는 고주혁과 안 맞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한이 기억하는 고주혁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훈 씨와는 잘 맞겠지?’

심약한 지훈이라서 심지가 굳건한 사람이 옆에 있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수한은 고주혁의 매니저로 승택이 와 있는 것에 놀랐다. 승택도 그 생각을 알았는지 우선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깊은 한숨 사이에 느껴지는 무거운 감정이 수한에게도 전해졌다. 처음 고주혁 담당으로 승택이 정해졌을 때 고주혁보다 승택이 거부감이 더 컸다고 한다. 이유는 예전에 고주혁이 지훈의 노래를 훔치려고 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긴 고주혁 씨가 나와는 풀었지만, 다른 사람과 풀지는 못했으니까.’

애초에 고주혁이 승택의 존재부터 알았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승택은 이왕 맡은 건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주혁의 열정이 식어 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것마다 안 된다고 하니 고주혁으로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고주혁은 승택을 원망했다고 한다.

“수한이 형이었으면 하게 해 줬을 텐데.”

그 말은 승택에게도 상처였다. 그러나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똑같이 그럴 수 없었다. 승택의 강직하고도 성실한 성품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고주혁의 막말은 수위가 올라가면 갔지, 낮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말하고 나서 늘 후회하는 얼굴이었습니다.”

수한은 설마 고주혁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줄은 몰랐기에 충격을 받았다. 의도치 않게 승택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건 괜찮습니다. 제가 매니저 일을 다 못한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대표님은 너무 완고하셔서 제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민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열정이 식은 건 고주혁뿐만이 아니었다. 성민도 마찬가지였다. 벽창호에 대고 말을 하니 그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고주혁이 참지 못하고 도망가 버렸다. 고주혁이 그렇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었다.

“어디 갔을지 짐작은 됩니까?”

“아니요. 그래도 카드는 들고 갔으니 굶지는 않을 겁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수한은 생각이 많아졌다. 이게 다 섣부르게 가온에서 나온 자신의 탓 같았다. 그러나 수한은 스스로 원망하지 않았다. 이 일을 일으킨 원인은 따로 있지 않은가? 가온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서남일이었다.

“카드 위치 추적은 안 했습니까?”

“아무리 연예인이 상품이라고 해도 그건 사생활 침해라서 하지 않았습니다.”

수한은 내심 감탄했다. 이런 사람이니까 그런 고주혁을 버텨 낸 거다. 수한은 우선 고주혁을 만나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만약 고주혁이 예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수한도 생각했던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 오면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한 것 같습니다.”

“놀이공원이요?”

“그 극장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 관련해서 만들어진 놀이공원이라 합니다.”

그리 말하니 어디를 말하는지 알겠다. 어린이들의 동심을 지켜 주기 위해 엄청 힘쓴다는 도쿄에 있는 놀이공원이었다.

“그럼 같이 가서 찾아보는 건 어떤가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대화는 김수한 씨가 하는 게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가 보죠.”

돈으로 동심을 사는 건지 입장권도 비쌌다. 그래도 막상 안으로 입장하자 들뜨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수한은 놀이공원을 굉장히 좋아했다. 특히나 무서운 걸 굉장히 잘 탔다. 시간이 없어서 자주 못 가는 게 문제지, 일단 가면 웬만한 놀이기구는 다 타고 왔다.

‘그래도 용인에 있는 놀이공원의 공포 체험은 못 하지.’

수한은 무서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였으나, 인제는 인정하게 되었다. 수한은 무서운 것을 좋아하지 않다 못해 싫어하는 편이었다. 돈 내고 공포 체험을 하러 들어간다니 그 사람들의 담력이 부러우면서도 부럽지 않았다.

“너무 넓은데요?”

“네. 그래서 저희도 찾아보긴 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도쿄에 있는 놀이공원이라 해서 방심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다. 그렇다면 찾다가 엇갈릴 수도 있다는 거다.

수한은 세심하게 살피며 걸어가다가도 캐릭터 복장을 한 사람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지켜 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보기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오는구나.’

수한은 놀러 온 것이 아니라 조금 마음이 서글퍼졌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또 올지 몰랐다. 그래도 고주혁을 찾는 게 우선이기에 수한은 걸어 다녔다. 놀이공원은 그림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넓었다.

‘다리 아프네.’

스물아홉밖에 안 먹었는데도 이러면 나중에는 어떨까? 그러면서도 이 놀이공원을 몇 바퀴 돌았는지 떠올리자 헛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면 엇갈리는 게 아니라 없는 게 아닐까?

‘그래도 성은 멋있네.’

이 놀이공원의 상징이라서 그런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수한은 성을 가만히 보다가 어디서 많이 본 뒷모습에 정신이 번쩍 깨어났다.

“고주혁 씨?”

그 이름을 부르기가 무섭게 뒤를 도는데 이상하게 울컥하는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성민의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정이었다. 수한의 탓이 아니라고 하지만, 막상 그를 보니 미안한 감정이 더 많이 든다.

고주혁도 수한을 발견하고 놀랐는지 뒷걸음질을 치며 물었다.

“수한 형?”

“왜 이렇게 말랐습니까?”

수한이 고주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자 방황하는 시선이 보였다. 그러나 곧 수한이 고주혁의 두 손을 잡아 버리자 불안했던 시선이 안정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수한은 그대로 고주혁을 끌어안았다. 안 그래도 마른 몸이 더 말라서 뼈밖에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주혁 씨.”

“보고 싶었어요. 형.”

안은 건 수한인데 수한을 꼭 끌어안은 건 주혁이었다. 남자 둘이 그러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단 한 사람만큼은 둘의 관계를 오해하지 않았다.

수한은 주혁 너머로 슬프게 웃는 승택을 발견하였다. 승택은 둘만의 시간을 가지라면서 뒤돌아 걸어갔다. 그 걸음이 어찌나 쓸쓸해 보이던지 수한은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저 때문에 오신 거라고요?”

오랜만에 보는 주혁은 처음 SSS급 슈퍼스타에 나갔을 때처럼 활발한 청년의 모습이 되었다. 예민함과는 통 거리가 멀어 보여서 수한은 성민이 누굴 착각한 건 아닌지 괜히 의심하게 되었다.

“네. 주혁 씨가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하하.”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하자 주혁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거다. 더불어 인상도 살짝 찌푸리는 게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걸 전혀 원치 않아 한 게 보였다.

“그래서 형 따라가면 전 다시 그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나요?”

“일단은 해야죠.”

“그 뒤에는요?”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한 건지 주혁의 시선에서 원망이 느껴졌다. 이게 다 수한의 탓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수한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새 앨범 냅시다.”

“네?”

“오랜만에 에이치 곡을 받아 보는 건 어떻습니까?”

작곡가 에이치가 나오자 주혁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이자 그를 뜨게 한 사람 중 한 명이 아닌가? 게다가 작곡가 에이치의 노래를 받는다는 건 한국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도 되었다. 그래서 저절로 들뜨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기대도 얼마 안 가 바르르 무너졌다.

“하지만 그건 대표님이 막고 있잖아요.”

“글쎄요. 새 대표님은 안 막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주혁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니까 지금 하는 말은…….

“신생 기획사여도 괜찮다면 환영합니다. 고주혁 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