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80화 (80/186)

080   8. 과도기

“그런 일이 있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성민이 턱을 매만지면 심각한 얼굴이 되자 수한의 입가에 있던 웃음기도 사라졌다. 집에 돌아간 뒤에도 유지아 작가에게 연락했지만, 돌아가는 동안에도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엘 엔터에서 네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어라? 안 놀라네?”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는 합니다. 그럼 실장님은 엘 엔터에서 그런 것 같다는 거죠?”

“그래. 엘이 아니면 그럴 곳이 없기는 하니까.”

물론 최민희 작가일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아직은 확실한 게 없었다. 어쨌든 간에 수한의 뒤든 유지아 작가의 뒤든 누군가 쫓아다니는 건 확실했다.

“그런 사진으로는 뭘 할 수는 없을 거야.”

“그렇죠?”

“그냥 보고형으로 찍었을 가능성이 크지.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는데. 내가 한번 알아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수한이 부담을 팍팍 안겨 주자 성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이렇게 커질 거라고 그도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도 누군가 제대로 경계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었으니 값진 수확이었다.

수한은 쓰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수한에게 메일 하나가 왔다. 수한은 유지아 작가가 보냈을 줄 알고 마우스를 눌렀다가 의문에 빠져들었다.

‘이게 뭐야?’

이상한 글 하나가 와 있었다. 내용은 고주혁과 관련된 거였다. 그런데 정신병자가 글을 쓴 건지 아니면 인격이 나쁜 사람이 글을 쓴 건지 괴상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저주 같으면서도 고주혁에게 집착하는 듯한 이상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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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주혁아. 나만 볼 수 있게 그 눈을 도려 버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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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새끼.’

수한은 혹시나 메일에 바이러스라도 심어 두었을까 봐 메일을 끄자마자 백신 프로그램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문서들은 따로 USB에 담아서 보관해 두었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다.

수한은 이 사실을 고주혁에게 알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돌려서 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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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혁 씨, 혹시 고주혁 씨한테 이상한 편지나 메일을 쓰는 사람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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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신중하게 적은 건데 답장은 수한이 메시지를 입력하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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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어떻게 알았어요? 이상한 메일이랑 문자가 맨날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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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은 당장 고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주혁은 한숨을 잔뜩 내쉬면서 이제까지 보내 온 것들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제가 맞냐고 전화가 왔어요. 당연히 저는 아니라고 했죠. 그랬더니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전화를 대뜸 끊어서 그걸로 끝난 줄 알았어요. 근데 그다음 날부터 제 사진이 계속 찍혀서 핸드폰으로 날아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하는 행동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씩 하는데 그 내용이 소름 돋아서 형이 알면 걱정할까 봐 저만 알고 넘어가려고 했죠.]

나름대로 생각하고 한 행동인데 고주혁이 참고 넘어가니 그 정도가 심해지면 심해졌지, 약해지지는 않았다.

“그럼 메일은요?”

[메일은 이상한 글을 써서 제 눈을 가지고 싶다느니 이상한 소리를 해서 바로 차단했는데 다른 계정으로 계속 메일이 와요. 그래서 요즘에는 형이 얘기하지 않는 한 메일도 잘 안 봐요.]

수한은 머리가 지끈 아파졌다. 수한은 이 일을 성민에게 보고하기로 했다. 수한만 알고 넘어가기에는 심각한 문제였다. 고주혁에게 스토커가 붙었다.

“스토커?”

“네, 확실합니다.”

수한이 메일 내용을 보여 주자 성민이 소름이 돋았는지 팔을 문질렀다. 보고 싶지 않은 걸 보게 되었으니 그러한 반응이 당연했다. 그래도 성민은 수한처럼 당황해하지는 않았다. 이미 이런 일을 겪어 본 사람처럼 말이다.

“처음에 예진이한테도 이런 새끼가 붙었었지.”

“예진 씨한테요?”

“예진이가 처음부터 그렇게 까칠하지는 않았단 말이야.”

질 나쁜 놈 하나가 달라붙어서 예진을 괴롭혔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좋게 타일렀지만, 역시 착한 사람은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때부터 예진이 변했다.

“그래서 그 스토커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단 횡단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어. 그것도 예진이 쫓아오다가 그런 거라서 예진이는 잘 죽었다고 좋아했지. 그놈이 그만큼 예진이를 힘들게 했거든.”

수한은 스토킹을 당해 본 적은 없지만, 다른 매니저들의 경험담을 통해서 얼마나 그게 사람의 피를 말리게 하는지 들은 기억이 있었다.

“글 쓴 거 보니까 꽤 심각하네. 경찰에 맡기고, 주변에 사람 붙여야겠다. 하긴 인기에 비례해서 너무 자유롭게 풀어 주기는 했어.”

그래서 고주혁에 관한 목격담이 많았다. 고주혁은 팬들에게 다 잘해 주려고 한 거지만, 그게 곡해되기도 해서 슬슬 제대로 관리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이 일로 인해 그 시기가 빨라진 것뿐이었다.

“역시 위험하죠?”

“위험하지. 예진이 스토커도 처음에는 그렇게 대담하지 않았단 말이야. 근데 한 번, 두 번 경험이 쌓이니까 해 볼 만하다고 여긴 거지. 게다가 고주혁의 경우는 상대가 여자일 가능성이 크잖아.”

“네. 그렇죠. 뭔가 차이점이 있습니까?”

“여자면 자기가 힘이 약하다는 걸 잘 안단 말이야. 그러니까 평범한 수를 쓰지는 않는다고. 더 악질적으로 사람을 피 말리게 해.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치고 들어온단 말이야?”

성민은 최악을 생각하며 상황을 준비하자고 하였다. 수한은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말하는 것만 보면 고주혁에게 큰 위험이었다.

수한의 안색이 하얘지자 성민이 힘내자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지만,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만 쌓였다.

“다녀왔습니다.”

유난히 무거워진 사무실 분위기에 동현이 들어오자 몇몇이 재빠르게 달려가 들려온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동현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수한은 그 표정을 본 순간 무엇 때문에 그가 난감해졌는지 짐작했다.

‘이직 이야기하려고 그랬구나.’

성민이 전혀 들은 게 없다는 듯이 행동했으니 타이밍을 재고 있던 모양이다. 그 상황에서 이러한 안 좋은 이야기가 들리니 생각이 많아지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동현은 마음의 결심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곧 성민에게 다가갔다.

“실장님, 잠깐 저랑 가서 이야기 좀 하시죠.”

“어? 어, 그래.”

성민과 동현이 사라지자 동현에게 이야기를 들은 게 있는지 재원이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수한은 재원의 책상 위에 올려진 홍삼을 보고 피식 웃었다. 물론 수한의 책상 위에도 홍삼이 올려져 있었다.

‘역시 말한 건 지키는 사람이네.’

홍삼도 어디서 사 온 건지 먹자마자 뱉을 맛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효과도 좋아서 돈을 상당히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들은 게 있습니까?”

“더블에스로 간다더라.”

“아, 더블에스요?”

“조건을 후하게 불렀나 봐. 나도 흔들릴 정도인데 당사자는 얼마나 더 흔들렸겠어.”

결국에는 그 회사로 간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동현인데 그 회사에서 어느 정도 버티지 않을까 싶었다. 이 생활을 하면서 생긴 짬밥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근데 더블에스 최명훈이 간 곳 아니야?”

“네, 맞습니다.”

“역시 여기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단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수한은 명훈이 이 세계를 떠났으면 했다. 수한이 이 안에서도 적당히 명훈을 짓밟긴 했지만, 수한이 겪었던 걸 생각하면 새 발의 피였다.

“조만간 술자리 마련할 것 같으니까 너도 시간 알아서 빼라.”

“네, 알겠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떠난다니 재원은 씁쓸해했다. 수한은 그 기분을 이해하기에 더는 말 걸지 않고 자리로 돌아가서 일했다.

메일 하나가 더 왔다. 수한은 조금 전에 봤던 메일이 떠올라 경계하며 메일을 봤다. 다행히 이번에는 유지아 작가에서 온 메일이었다.

‘이렇게 문제점을 잘 고쳐 오기도 쉽지는 않은데 말이야.’

수한은 눈으로 대본의 능력치를 확인하였다.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훌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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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없었다 – 대중성: SS, 화제성: S, 평균 시청률: 28%, 성장 가능성: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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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쓰기만 잘하면 별일 없이 명작 계열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수한은 이런 식으로 작가와 합을 맞춰 볼 경험도 없으니 이 기회를 실컷 즐기기로 했다.

이 일은 유지아 작가에게도 도움이 되었지만, 사실은 수한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수한이 다른 사람들처럼 천재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는 없지만, 대중적 감각은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나쁘게만 말하면 그냥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다 좋아한다는 거지만.’

수한은 자신의 표현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열심히 유지아 작가를 칭찬하며 독려하였다. 그러면서 새삼 최민희 작가가 궁금해졌다.

‘얼마나 초조하면 유지아 작가에게 다시 연락하는 걸까?’

수한이 엘 엔터테인먼트 사람이었다면 그러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말렸을 거다. 그러나 엘 엔터테인먼트는 그러지 않았다. 수한이 짐작한 건데 그곳에서는 최민희 작가가 그러고 있을 거라고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대형 기획사인데 틈을 줄 일은 하지 않겠지.’

물론 가끔 구멍가게처럼 일 처리를 할 때도 있으므로 두고 봐야 알겠지만, 수한은 일단은 높게 올려 쳐서 보기로 했다. 그래야 상대 쪽의 수준이 예상과 다르게 낮더라도 능숙하게 대비할 테니까.

수한은 얼마 안 가 성민과 함께 나타나는 동현의 입가에 핀 미소에 따라 웃었다. 어떻게 말이 잘 된 모양이다. 물론 성민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져서 그 힘듦의 무게가 전해졌다.

“동현이 이번 달까지 함께 일할 거니까 앞으로 다들 잘해 줘.”

“네, 알겠습니다.”

이번 달까지라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성민은 섭섭해하지 않았다. 그는 일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상사를 버리고 떠나는 동현이 안타까웠다. 더블에스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 정말 없으니까.

수한은 그 와중에 전화를 받는 성민을 발견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 상을 짓던 성민의 얼굴이 활짝 펴지는 순간이었다. 수한이 성민에게 관심을 가지자 성민이 웃으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수한은 통화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전화가 끊기자마자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로맨스 연대기 대본이 고쳐지고 있대.”

“네?”

“투자처에서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나 봐. 그리고 우리 대본을 어디서 구해서 읽은 건지 엎으라고 했대.”

수한은 잠시 이게 좋은 일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원래 대본이 이런 식으로 고쳐지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1화 대본부터 싹 고쳤다는데 조금 이따가 소포로 온다니까 오면 네가 먼저 읽어 봐.”

“대본을 구하셨습니까?”

“그럼. 대본 구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이미 유 작가 대본도 다 유출됐는걸.”

역시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라 그런지 대본 유출 정도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상대방의 역량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수한은 좋은 의미로 웃었다.

“택배 왔습니다!”

마침 들려오는 소리에 수한은 곧바로 가서 갈색 서류 봉투에 들어있는 대본을 꺼내서 보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볼 필요도 없었다. 수한의 눈이 대본의 능력치를 말해 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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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연대기 – 대중성: D, 화제성: S, 평균 시청률: 1%, 성장 가능성: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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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의 질이 아주 제대로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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