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76화 (76/186)

076   7. 진짜와 가짜

“김수한.”

“네, 실장님.”

수한은 유지아 작가에게서 받은 따끈따끈한 대본을 성민에게 주었다. 성민은 이제 수한을 안 믿을 수가 없었다.

“너 설마 흥행의 신이 갑자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으로 태어난 그런 거 아니지?”

“신기에서 이제는 신으로 바뀐 겁니까? 그리고 그건 다른 종교의 신 이야기가 아닙니까?”

수한이 흐뭇하게 웃자 성민은 신난 얼굴이 되었다. ‘로맨스 연대기’는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잘 써진 대본이었다. 무엇보다 성민은 스릴러 장르 부분을 잘 살려서 마음에 들었다.

“장르를 바꾸지 않은 건 잘한 일이야.”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릴러라는 장르에 로맨틱 코미디를 끼얹기는 했으나, ‘로맨스는 없었다’의 장르는 분명 스릴러였다. 대중들은 가볍게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다른 장르를 안 보는 건 아니었다.

“네가 보기에 어때? 계속 이런 퀄리티로 쓸 수 있을 것 같아?”

“쓸 수 있게 도와드려야죠.”

“그래, 그래야지. 근데 이 여자 주인공 말이야. 시은이 아니면 할 수 없겠는데?”

그거야말로 당연했다. 드라마 대본으로 바꾸면서 유지아 작가가 대놓고 여자 주인공을 시은이라 생각하고 썼기 때문이다. 일부러 시은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댕댕이를 부탁해’까지 다 봤다고 하니 어떤 의미에서 유지아 작가는 노력파였다.

“시은이한테는 아직 대본 안 전해 줬지?”

“네. 실장님 반응부터 보고 전해 주려고 했습니다. 실장님께서도 그러라고 하셨잖아요.”

“좋아. 이 기회에 시은이 얼굴 좀 보고 와.”

“저야 좋죠.”

수한은 제게 쌓인 일들을 애써 무시했다. 수한이 금방이라도 나갈 기세를 보이자 성민이 수한의 어깨를 잡으며 씩 웃었다.

“지금 말고, 조금 이따가. 해야 할 일이 많지 않나?”

“네, 많죠.”

“조금 있다가 동현이가 일정 있어서 나가니까 그때 태워다 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수한이 동현을 쳐다보자 매우 바쁜 모양인지 동현은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래도 성민과의 대화를 듣긴 한 모양인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어째서 일은 줄어들지 않고, 많아지기만 하는지 수한은 이러다가 다 같이 과로사하는 거 아닌가, 심히 염려되었다.

“아! 그리고 로맨스 연대기 말이야.”

“네, 말씀하세요.”

“남자 주인공도 아이돌이란다.”

“남자 주인공도 엘 엔터테인먼트 소속입니까?”

“아니. 이미 연기 경력은 쌓은 친구인데 연기는 꽤 하는 편이야. 아직 이렇다 할 대표작은 없지만.”

수한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로 돌아와 ‘로맨스 연대기’를 살폈다. 남자 주인공의 연기력이 좋다고 하니 혹시나 변화가 생겼을까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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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연대기 – 대중성: B, 화제성: S, 평균 시청률: 3%, 성장 가능성: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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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건 없네.’

워낙에 여자 주인공에 집중되어 있는 이야기라 어떻게 손 볼 수가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아니, 오히려 손을 댄다면 이쪽에서 더 반길 일이기도 했다.

‘여기서 더 좋게 각색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단 말이야.’

수한은 얼마 전에 구매한 홍삼을 쪽 빨아 마시며 고주혁의 앨범에 집중했다. 소원에게 도움을 청하니 소원이 코드 몇 개를 건드리며 다른 노래를 만들어 왔다.

‘역시 이 사람은 천재야.’

금세 바뀐 능력치를 보며 수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고주혁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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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혁 오빠, 요즘 변했어. 예전처럼 크게 반기지 않더라.

ㄴ이런 글 쓰면 남들이 오해함. 너 팬 맞음?

ㄴ언제는 너무 가깝게 지낸다고 뭐라 하더니 이제는 거리 둔다고 뭐라 하는 거야?

ㄴ팬인데 이런 말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몰아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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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혁은 수한의 말을 굉장히 잘 들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라고 했던 말을 잘 지켰다.

‘그보다 원래 이런가?’

수한은 은근히 날카로운 댓글들에 다른 가수의 팬도 이런가 싶어 소원의 팬카페를 찾았다. 고주혁처럼 수한이 직접 관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홍보팀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었다. 소원의 팬카페는 소원의 성격처럼 다들 부드러운 구석이 있었다.

‘여기는 아직도 팬 사인회 사진으로 앓고 있네.’

앨범 활동 이후로 노출된 게 없다 보니까 이러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수한은 너무 빨리 활동을 접게 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수한은 작업을 마무리한 뒤에 일어서는 동현을 따라갔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그럴래?”

수한도 바쁘긴 하지만, 가만 보면 동현이 가장 바빠 보였다. 현장 매니저이다 보니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느라 바빴다.

“네, 네, 가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수한은 사무실에서 바쁜 사람을 뽑으라 하면 동현을 뽑고 싶었다. 물론 다른 매니저들도 바쁘긴 했지만, 동현이 일을 잘하다 보니 유독 일이 몰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유난히 지쳐 보여서 수한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홍삼 하나를 건네주었다.

“고맙다, 수한아. 근데 너 혹시 이직할 생각 없냐?”

“갑자기요?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는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현이 이런 말을 꺼낼 줄 몰랐기 때문에 수한은 상당히 놀랐다. 그러나 동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우리 회사 일이 힘들잖아. 한번 물어본 거야.”

“힘들긴 해도 그만큼 성과가 눈에 보이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만족합니다.”

“하긴 우리 회사가 작으니까 네가 실력을 발휘하기에는 적당하겠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성민만큼 적극적으로 수한을 밀어주는 상사도 없을 테니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신기한 회사이기도 했다. 대표 빼고 다 마음에 드는 회사였다.

“왜요? 선배님께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습니까?”

“어. 그래서 고민 중이야.”

동현의 표정으로 보아서는 조건이 여기보다는 훨씬 좋은 게 틀림이 없었다. 수한은 원한다면 이직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수한만 하더라도 적당히 일만 배우고 나갈 생각으로 이 회사에 들어왔다.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건 좋은데 후임은 구하고 가십시오.”

“당연하지. 요즘 한창 바쁠 때인 거 나도 아니까. 그래도 가지 말라고 안 붙잡네?”

“다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수한의 능글맞은 말에 동현이 풋-하고 웃었다. 그러나 그 말이 동현에게 방향성은 정해 줬는지 무언가 결심한 얼굴이 되었다.

“근데 어디서 제안 왔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더블에스라고 알아?”

“아… 네, 압니다.”

명훈이 있는 회사이자 돌아오기 전 과거에 수한이 머물렀던 회사였다. 수한은 설마 이런 데서 더블에스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거기에 대해 아는 거 있어?”

“들은 게 있긴 합니다. 근데 웬만해서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회사예요.”

“어째서?”

“함께 미래를 꿈꾸기는 힘든 회사거든요.”

명훈이 달리 수한과 함께 나와 기획사를 차린 게 아니었다. 가온 엔터테인먼트와 다르게 장래성이 전혀 없는 회사가 더블에스였다. 만약 더블에스가 괜찮은 회사였다면 수한은 명훈과 다시 만날 것을 인지하고도 그 회사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회사는 정말 아니었다.

“연예인을 철저하게 상품으로만 보는 회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떻게 보면 더블에스는 명훈과 딱 어울리는 기획사였다. 그런 회사에서 다른 꿈을 꾸자고 함께 나왔던 일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라 수한은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생각은 해 볼게.”

“네, 선배님.”

수한은 제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동현을 보며 쓰게 웃었다. 하기야 수한이 이 업계에 들어왔으면 얼마나 들어왔다고 수한의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있을까?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이 생기긴 했지만, 다른 매니저들이 보기에 수한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신입 매니저였다.

‘선택은 본인이 하는 거니까. 그래도 거긴 안 갔으면 좋겠는데.’

수한은 시은의 집 근처에서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차에서 내렸다. 동현은 여전히 바쁜지 핸드폰에 이어폰을 연결하며 통화를 하면서 운전을 했다.

수한은 데려다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뒤 시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출발하기 전에 메시지를 넣어 두었기에 시은은 금세 전화를 받았다.

[집에 있으니까 올라오시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시은의 집은 이전에 왔을 때와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시은도 마찬가지였다. 수한은 집에서 나돌아 다니는 하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고양이 키우십니까?”

“최근에 입양했어요. 언니 보니까 너무 부러워서요. 근데 저는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좋아하거든요.”

예진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거 보면 딱 그럴 것 같았다. 예진은 고양잇과의 인간이니까. 새삼 그리 생각하니 앞에 있는 고양이가 묘하게 예진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수한이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수한의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직 이빨이 자라지 않아 귀여운 느낌이 있다.

“귀엽죠?”

“네, 귀엽습니다.”

강아지도 매력이 있는데 고양이도 매력이 상당했다. 수한은 고양이를 보며 웃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가지고 온 대본을 시은에게 건네주었다. 시은은 생각보다 흥미가 없는 얼굴로 대본을 받았다.

“이 드라마가 별로 내키지 않으십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간절하게 원했던 드라마는 대형 기획사 아이돌에게 빼앗겼으니 의욕이 없었다. 특히나 성민이 무조건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감을 심어 주었기에 실망이 배가 되었다. 수한은 그 반응에 혹시 성민이 말을 안 해 준 건가 싶었다.

“네? 그 작품이 표절작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말하지 않았다. 수한은 눈앞에서 차갑게 분노하는 시은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예진만 불인 줄 알았더니 시은도 못지않았다. 예진이 붉게 타오르는 불이라면 시은은 푸르게 타오르는 불이었다.

“일단 대본부터 읽어 볼게요.”

“네. 저는 잠시 실장님과 통화하고 오겠습니다.”

수한이 구석으로 가는 동안 고양이가 수한을 쫓아왔다. 귀엽게 울면서 쫓아왔기에 수한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핸드폰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실장님, 시은 씨한테 왜 말 안 한 겁니까?”

[대본 보고 결정하려고 했지.]

뻔뻔한 성민의 태도에 수한은 할 말을 잃으면서도 이해는 했다. 의욕은 넘치는데 그만큼의 성과가 없으면 안 하느니만도 못하다. 이미 최민희 작가의 일로 설레발을 치게 해서 실망하게 했으므로 성민은 이번에는 신중하게 하였다.

[너 근데 오면 바로 대표실로 가 봐야겠다. 내가 오자마자 대본 건네드렸거든. 그랬더니 널 좀 보고 싶으시대.]

“네, 알겠습니다. 시은 씨 이야기 듣고 바로 가겠습니다.”

수한은 전화를 끊고 난 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부른 걸까? 그전에 수한은 시은의 반응이 궁금했다. 시은은 대본을 다 읽고 나더니 잠시 아무 말 없이 대본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모습에 수한도 마찬가지로 대본을 보았다. 그와 함께 대본의 능력치가 눈에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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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없었다 – 대중성: SS, 화제성: S, 평균 시청률: 28%, 성장 가능성: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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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아 작가는 그야말로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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