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73화 (73/186)

073   7. 진짜와 가짜

“허 참, 어이가 없네.”

수한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성민은 기가 막혔다. 그리고 시은이 엎어진 역할에 들어간 배우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하나요? 그 아이돌 말입니까?”

“그래. 그 아이돌 말이야. 엘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는 인기 아이돌.”

“설마 이 일에 엘 엔터테인먼트가 끼어든 겁니까?”

“그래. 어떻게 소문을 듣고 온 건지는 모르겠는데 투자를 하겠다고 나섰다더군. 대표님이 괜히 중국에 다녀온 게 아니더라. 거기서 돈을 많이 번 모양이더라.”

그러니까 한류 바람이 분 중국에서 번 돈으로 이곳저곳에 투자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나중에는 자체적으로 콘텐츠도 생성하겠군요.”

“이미 회사 하나 인수하려고 알아보고 있다더라.”

수한은 미래를 떠올리고는 쓰게 웃었다. 안타깝게도 엘 엔터테인먼트의 이러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회사를 잘못 인수했을 뿐만이 아니라 잘나가던 아이돌 기획사에서 점점 감각도 무뎌져 인기 아이돌이 더는 나오지 않아 돈만 까먹게 되었다. 그제야 급하게 발 등에 불을 껐지만, 이미 때는 지나갔다. 그 잘나가는 아이돌도 세월을 빗겨 나갈 수 없으니까.

특히나 인기를 얻으면 마약 등으로 사고를 쳤기 때문에 잘나가던 그룹들이 차차 무너졌다. 물론 그중에서도 사고 치지 않고 무사히 인기를 누린 여자 아이돌은 다른 기획사로 옮겨 가 관리를 잘 받았으니 어떤 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

“그래서 대표님이 가수 키우는 걸 허락하신 거군요.”

“예진이 중국에 보내겠다고 하면 예진이가 싫다고 하겠지?”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물으시니까 할 말이 없네요. 근데 그 하나라는 친구, 연기 경험 없지 않아요?”

“없지.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잘됐어.”

연기를 잘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지 성민은 이왕 이렇게 된 거 확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저주 아닌 저주를 걸었다. 물론 수한은 대본을 확인하고 피식 웃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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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연대기 – 대중성: B, 화제성: S, 평균 시청률: 3%, 성장 가능성: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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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느낀 거지만, 소름 끼치게 정확하다. 적어도 어느 정도 연기가 되는 사람이 연기해야 본래 능력치가 발휘된다는 뜻이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아놔서 다행이네.’

“그래서 유지아 작가와는 언제 만나기로 했어?”

“내일이요. 겨우 설득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네. 가서 사과만 하고 올 거지?”

“네, 그래야죠.”

마음 같아서는 드라마로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말하고 싶으나, 사과만 하겠다고 해서 겨우 허락된 자리였다. 그 자리에 유지영도 함께할 거라 했으니 수한은 목적만 이루고 오기로 했다.

“그래, 알았다. 잘 다녀와라.”

“네, 알겠습니다.”

수한은 자리로 돌아가 고주혁의 팬카페에 들어갔다. 공백기일수록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살펴볼 때였다. 그러다가 수한은 하나의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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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혁 오빠 다 좋은데 너무 팬이랑 가깝게 지내는 것 같지 않아요?

ㄴ해 줘도 난리네ㅉㅉ

ㄴ오빠 성격이 착해서 거절을 못 해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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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정색하고 관련된 내용을 더 찾아보았다. 고주혁과 만난 팬들의 목격담이 자주 등장하면서 인상이 찌푸려졌다. 팬 서비스 좋은 건 좋다. 그러나 이렇게 너무 잘해 주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지.’

마침내 팬을 돌려 가며 사귄다는 찌라시를 발견했다. 수한은 당장 고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주혁은 아무것도 몰랐기에 해맑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수한이 형! 무슨 일이에요? 곡 나왔어요?]

“고주혁 씨,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요즘 연애합니까?”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요즘 제 애인은 팬분들인데요.]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다른 의미로 들릴 수 있다는 걸 고주혁만 몰랐다. 수한이 자신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자 그 소리를 고주혁이 들었는지 고주혁은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안 그래도 저 조심하고 있어요! 저는 여기서 멈춰 있을 생각이 없으니까요.]

“그럼 제가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팬분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막상 다가오면 거절을 못 하겠어요. 저 보려고 멀리 지방에서 왔다는데 어떻게 거절해요.]

수한은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이러다가 한번 이미지가 손상되면 쉽게 회복할 수 없는데 말이다. 사소한 말실수 하나로도 10년 넘게 말 나오는 게 연예인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볼게요. 자꾸 신경 쓰게 해서 죄송합니다.]

고주혁이 좋은 건 이렇게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올라가야 할 길이 있으니 그 열정이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높게 도약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시간이라는 걸 그도 잘 알았다.

“알겠습니다. 곡은 조금 더 손본 후에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네! 기대하고 있어요! 노래 듣자마자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첫 앨범이 나온다는 사실이 기쁜지 들뜬 게 목소리에서 다 전해져 수한 또한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다시 한번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고주혁은 시무룩해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는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

수한은 카페에 들어가기 전에 옷 점검을 먼저 하였다. 이번에는 최대한 부드럽고 편한 인상을 주기 위해 애썼다. 수한은 웃는 입꼬리를 살펴보고는 카페 안에 들어가 두 사람을 기다렸다.

‘괜히 긴장되네. 사과만 확실히 하고 가자.’

수한은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번에 봤던 지영과 함께 초췌해 보이는 유지아 작가가 보였다.

유지아 작가는 수한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당장 나가고 싶어 하는 얼굴을 했다. 한눈에 봐도 이 자리에 나온 걸 후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유지영이 그녀를 붙잡으면서 나가지 못했다.

수한은 유지아 작가가 도망가기 전에 빠르게 다가갔다. 그러자 부담스러웠는지 유지아 작가가 유지영의 팔을 꼭 붙잡았다.

“언니…….”

그러나 유지영은 일부러 대답해 주지 않고, 어서 할 말 하라는 듯이 수한을 봤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지난번에 뵙고 다시 뵙네요.”

“네…….”

별로 말을 섞고 싶어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분위기를 보아 유지영에게 말을 전해 듣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그 말을 온전히 믿지는 못했다.

“일단 뵈면 사과부터 하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너무 회사 차원에서만 상황을 봤습니다. 작가님을 조금 더 배려했어야 했는데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해서 죄송합니다.”

수한이 정중하게 사과를 건네자 유지아 작가는 당황해하면서도 유지영을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의도한 게 아니라고 들었어요.”

“의도한 게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상처를 안 드린 건 아니니까요. 상처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작가님.”

유지아 작가는 다시 한번 유지영을 봤다. 유지영에게 해결해 달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그러나 유지영은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 자신이 나서지 않았다. 그녀는 유지아 작가를 보호하려고 나온 거지 대리인으로 나온 게 아니었다. 현재까지는 수한에게서 어떠한 위협도 느끼지 못했으니 그녀가 나설 이유가 없었다.

유지아 작가도 유지영의 그런 태도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알겠어요. 우선 앉아서 이야기해요.”

아직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라 수한은 순순히 그 말에 따랐다. 수한이 자리 잡아둔 곳에 앉자 유지아 작가의 시선이 불안하게 떨렸다. 지난번에 일이 생각난 모양이다.

“제가 주문하고 올 테니까 둘이 먼저 이야기하고 있어요.”

“언니…….”

“이 정도는 너도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알았어…….”

유지영이 주문을 하러 간 동안 두 사람만 이야기할 시간이 주어졌다. 적막한 분위기에 수한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마음고생 하시는데 제가 도움을 드리기는커녕 부담을 안겨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언니한테 이야기 다 들었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니까 괜찮아요.”

그런 것치고 지금도 겁먹고 있는 게 보여서 수한은 마음이 쓰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수한이 좋아하는 건 예진과 강한 성격의 사람이지만, 마음을 쓰게 하는 건 이런 사람들이었다. 유지아 작가는 소원보다도 정신력이 약해 보여서 걱정이었다.

‘이지훈 씨보다도 약해 보이기도 하고.’

아니다. 두 사람이라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유지아 작가가 나은 것은 그녀의 직업이 연예인이 아니라 작가라는 것이다. 그나마 대중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어서 나은 직업이었다.

“언니분께서 보여 주셔서 작가님이 커뮤니티에 쓴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네. 그 얘기도 언니한테 들었어요.”

“작품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기요.”

언제 음료까지 들고 온 건지 유지영의 차가운 시선이 보였다. 약속과 다르게 다른 것을 요구하는 건 아닌지 염려되어서 말을 끊은 게 보였다. 그러나 수한은 그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

“소장본으로 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종이 책으로 보고 싶어서요.”

무슨 이딴 인간이 다 있나 하는 유지영과 다르게 유지아 작가는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고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었다. 물론 반쯤 진심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한 권만 뽑으면 제가 너무 손해 보는 거 아니에요?”

“제작 비용의 두 배로 저한테 팔면 됩니다.”

수한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하자 결국 유지영까지 웃어 버렸다. 어느새 분위기도 함께 풀어지면서 수한은 자신이 겪은 연예계 경험담을 들려 주었다.

유지영에게도 들은 게 있지만, 유지아 작가는 흥미롭게 수한의 말을 들었다. 그러다가 살짝씩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는 걸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 아이디어도 함께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했는데 아직 신입이에요?”

“네. 제 밑으로 한 명 들어왔었는데 사고 치고 나가서 다시 신입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회사 일이 바빠서 아직 신입을 못 구했어요.”

“저, 근데 소원 씨는 연기는 전혀 생각이 없대요?”

본래 이렇게 만나게 된 이유가 소원 때문이니 유지영은 소원에게 미련을 가졌다. 그러나 수한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네. 없습니다. 지금은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하네요.”

마음 같아서는 연기를 못해서 할 수도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뒷말은 이런 데서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소원을 향한 수한의 애정이 말투에서 묻어 나와서 유지영은 신기하게 수한을 봤다.

“매니저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네요.”

“네. 제가 하고 싶어서 하게 된 거니까요. 지금도 이 직업을 선택한 데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수한의 눈빛이 또렷하게 빛나면서 그의 열정이 함께 보였다. 유지아 작가는 그런 수한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불쑥 한마디를 뱉었다.

“소설 주인공 같다.”

“네?”

“아! 아니에요. 그냥 제가 생각한 주인공이랑 비슷해서요.”

수한이 유지영을 보자 좋은 의미라며 웃었다. 듣기에도 나쁘지 않은 어감이라서 수한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유지영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의자를 살짝 뒤로 밀었다.

“일 때문에 슬슬 일어나 봐야겠네요.”

“네. 그럼…….”

“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갑작스러운 유지아 작가의 말에 유지영은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혼자 있어도 괜찮을 거라 판단했는지 먼저 가 봐야겠다고 일어났다.

“지아야, 헤어지고 나서 연락해.”

“알겠어.”

유지아 작가는 막상 유지영이 사라지니 살짝 어색해했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수한의 미소에 겨우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그 여자 드라마는 결국 만들어지는 건가요?”

설마 했는데 수한은 예상이 틀리지 않아 잠시 망설이다가 원하는 답을 들려 주었다.

“네. 그렇습니다.”

“여자 주인공은… 박시은 씨요?”

“아니요. 다른 사람에게로 갔습니다.”

그 대답에 유지아 작가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수한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보여서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러나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오늘 만나자고 한 건 정말 사과만 하고 싶어서 찾아온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부담감을 안 느껴도…….”

유지아 작가가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 것 같아서 수한은 그녀의 말을 천천히 기다렸다. 그러나 이번에 하는 말은 수한의 예상한 범위 안에 있던 말이 아니었다.

“저 그 여자를 엿 먹일 방법을 찾고 싶어요.”

“네?”

“언니는 참고 넘기랬는데 저는 그럴 수 없어요. 그러니까 방법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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