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72화 (72/186)

072    7. 진짜와 가짜

수한은 역에서 나와 한참 걸었다. 지도만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생각보다 역에서 먼 건물이었다. 그래도 외관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명함도 두툼하게 준비해 왔기에 수한은 긴장을 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어요?”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가온에서 왔다고 하면 알 겁니다.”

“네, 잠시만요. 확인해 드릴게요.”

그때 한 여자가 사무실 안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깔끔한 정장 차림인 게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으나, 만난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여자의 수한을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저 사람인가?’

“김수한 씨?”

“네, 제가 김수한입니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따라오세요.”

여자가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덕분에 수한은 어색한데도 따라 들어갔다. 회사의 규모는 가온 엔터테인먼트보다 작은 편이었다. 책상의 간격도 좁은 게 TV에서 보던 사무실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전에 일하던 곳도 이랬는데.’

가온 엔터테인먼트가 독특하다면 독특한 편이었다. 좁게 쓰지 말라고 간격을 넓게 주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성민이 있어서 그런가 했는데 다른 부서에 가 보니 비슷했다. 수한은 남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런 점에서는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죠.”

사무실 안에 작은 회의실이 딸려 있었다. 소수만 들어갈 정도여서 수한은 따라 들어가면서도 좁은 공간에 괜히 어색했다.

“뭐 드실래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저는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사람 싫어하는데요.”

“그럼 시원한 물 주시면 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봐요.”

손님으로 온 건데 확실히 불청객 취급이었다. 까칠한 말투에 수한은 주눅이 들 뻔했지만, 오히려 이럴 때 더 당당해야 했다. 수한이 출발하기 전에 성민이 당부한 말이었다. 얼마 안 가 문이 열리고 여자가 다시 들어왔다. 여자의 손에는 두 개의 유리컵이 들려 있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래요.”

수한이 한 모금 마시는 동안 여자는 마시지 않고 수한을 집요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수한은 부담스러웠지만,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그를 지적하였다.

“제 얼굴이 TV에서 나오던 거랑 비슷하죠?”

“네, 비슷하네요. 인상은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 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작가님한테는 왜 그랬어요?”

“네?”

갑작스럽게 본론으로 확 들어가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게 더 마음에 들어서 수한은 숨을 가지런히 내쉬고 말했다.

“유지아 작가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양쪽에서 압박을 줬다고 하던데요. 그때 저도 따라갈 걸 그랬다고 후회 중이에요.”

수한은 후회가 묻어나오는 말 속에서 여자가 유지아 작가와 사업적 관계로만 맺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러면 이제까지 수한에게 무례하게 대했던 게 이해가 되었다. 물론 이해했다고 해서 불쾌감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일단 오해가 있던 모양입니다.”

“오해요? 무슨 오해요?”

“우선 저희가 만나게 해 드린 건 작품이 만들어지기 전에 나중에 나올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최민희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처음 성민과 수한이 표절 작가로 생각한 사람은 최민희 작가였다. 유지아 작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정을 설명하는 건 옳지 않다고 여겨 수한은 물을 한 모금 더 마시는 거로 말을 삼켰다.

“그래서 정리가 된 게 작가님이 표절 작가가 된 건가요?”

“오히려 이쪽에서 묻고 싶습니다. 유지아 작가님은 그날 왜 도망친 겁니까?”

“그야 사방에서 압박해 오는데 자기편이 없으니까 그런 거죠.”

수한이 본 광경은 그와 달랐지만, 유지아 작가 처지에서는 그 광경이 다르게 보였나 보다. 그리 생각했다면 정말로 유감이었다.

‘사람을 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조금 억울했다. 거의 악당 취급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때 저희는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작가님께서 지레 겁먹고 도망치신 거였네요. 그래서 시간을 두고 연락을 드린 거였는데 그것도 오해하신 것 같고요.”

수한이 씁쓸하게 말하자 이쪽 이야기도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지 여자의 태도가 살짝 바뀌었다. 너무 한쪽 이야기만 들은 게 없지 않아 있으니까.

“그럼 그 이후로 연락한 게 압박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거예요?”

“네. 최민희 작가님께서 내놓은 증거로는 저희도 확정 짓지 못하거든요.”

수한이 직접 최민희 작가의 이름을 거론하자 여자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 얼마 전에 보았던 성민의 분노하던 눈빛과 비슷했다. 성민에게 들은 게 있어서 수한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좋은 기회라 여겼다.

“그 여자 악독한 여자예요. 얼마나 집요하게 지아한테 연락했는데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작가님이라 불렀던 호칭이 사라졌다. 여자와 유지아 작가는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사이였다.

“어떻게 연락을 했습니까? 아니, 애초에 어떻게 연락을 한 겁니까?”

“그러니까요. 우리도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이건 그냥 테러였어요.”

여자는 생각만으로도 화가 나는지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 반동이 전해져 와 유리컵 속에 담긴 물이 찰랑거렸다. 수한은 생각보다 센 여자의 힘에 놀랐다. 뺨이라도 맞으면 제대로 아플 것 같다.

“그래서 고소를 준비하려는데 그쪽에서 먼저 일을 터트릴 거라 협박을 하더라고요. 고소당할 준비하고 있으라면서요.”

“그 정도로는 고소가 안 됩니다.”

“그런데 지아가 흔들리더라고요. 제가 무시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말이에요.”

그 소심한 성격이라면 흔들릴 가능성이 크기는 했다. 생각보다 정신적 압박도 컸을 테고. 그 상황에서 계속해서 수한이 연락을 해 오니 오해할 만했다.

“대화는 주로 뭐로 했습니까?”

“처음에는 전화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문자로 보내더라고요. 지아한테 녹음한 걸 받았으니까 들려 줄 수 있어요.”

여자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음성 파일을 열었다. 그러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들렸다. 지난번에 만났던 최민희 작가의 목소리가 맞았다.

‘기가 차는군.’

이렇게 할 정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험한 말의 연속이었다. 수한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욕도 있어서 소름이 돋았다. 욕으로 따지면 예진도 못지않은데 그보다 한 수 위였다. 어떻게 말이 끝날 때마다 년이 붙는지 신기하였다. 그러면서도 화도 났다. 무슨 의도에서 이러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완전히 글을 못 쓰게 하려고 작정했군.’

저번 만남으로 유지아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공격한 것이다. 그로 인해 완전히 의지를 상실하게 해서 표절의 ‘표’ 자도 못 나오게 할 심산이었다. 성민이 표절을 확신한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번 일은 저희가 잘못한 게 맞습니다.”

설마 이런 식으로 파생되어 일이 만들어질 줄 몰랐기에 한 실수였다. 그동안 하는 일마다 너무 잘 풀려서 긴장을 늦춘 것도 한몫했다.

수한은 만난 당일 날 그렇게 지나친 것을 후회하였다. 시간을 두고 연락을 할 게 아니라 옆에서 위로라도 해야 했다. 수한은 진심으로 미안한 감정을 담으며 말했다.

“작가님께도 따로 사과하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여자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수한의 말을 들어 보니 의도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던 건 확실해 보이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한이 왜 이 자리에 왔는지도 알기에 여자는 완전히 마음을 풀지는 못했다.

“그런 이유로 이쪽에서 준비하던 드라마도 엎어졌어요. 더는 글을 못 쓰겠대요.”

“네, 이해합니다. 덕분에 회사 측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수한이 다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여자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수한의 말이 믿어지는 듯싶었다. 여자는 한결 풀어진 얼굴로 말했다.

“그래요. 그쪽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니까 지아도 이해할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 줄 게 있는데요. 지아한테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아서 지아는 말 안 하겠다고 했는데 저는 말해도 될 것 같아서요. 그쪽에서도 반성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말해 드릴게요. 그 커뮤니티에 올렸다는 글 말이에요. 그거에 관해서는 지아도 거짓말한 게 있어요.”

여자는 말로 하는 것보다 보여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핸드폰으로 그 커뮤니티 카페에 들어갔다. 그리고 보여 주는 글에 수한은 놀랐다.

“유지아 작가님도 연재한 적이 있네요?”

“네. 당일에는 너무 당황해서 기억이 안 났던 모양이에요. 뒤늦게 생각났는데 이미 그쪽을 그 여자 편이라고 생각해서 말 안 한 거예요.”

두 편만 올렸던 최민희 작가와 다르게 유지아 작가는 완결까지 연재하였다. 최민희 작가가 연재하던 시기에 비하면 늦기는 했지만, 완결까지 낸 작품이라면 조금 말이 달라졌다.

수한은 유지아 작가를 이해했다. 이쪽을 적이라 인식했으면 이런 정보는 안 알리는 게 옳았다. 그사이에 대처 방법을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수한은 이미 그쪽에서도 대처 방법을 준비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한 가온 엔터테인먼트의 손을 그런 식으로 놓지 않았을 거다.

“잠시만 읽어 봐도 되겠습니까?”

“읽어 보라고 준 거니까 읽어 보세요.”

수한은 신중하게 읽기 시작했다. 수한이 읽으면서 살짝 여자의 눈치를 보자 여자가 왜 그러냐는 듯이 수한을 봤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래도 유지아 작가는 영화 각본보다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영화에서는 시큰둥하게 느껴졌던 장면들이 소설로 만나니 활기를 찾았다. 영화는 시간의 한계가 있으니 다 잘라 낸 듯싶은데 소설은 그게 아니라서 개연성과 몰입감이 더 있었다.

‘특히 묘사에 재능이 있네.’

최민희 작가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글이다. 수한은 댓글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글을 보고 이해하였다. 잘 써도 너무 잘 썼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웃긴 건 이 글이 최민희 작가의 대본과 더 비슷하다는 거다.

‘어떻게 이렇게 간 큰 짓을 하지?’

물론 다른 게 있기는 하나, 그건 소설을 드라마 형식으로 바꾸면서 달라진 거다. 수한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이러니까 최민희 작가 쪽에서 강하게 나온 거다. 수한은 완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수한은 다 읽고 나서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좋은 작품 잘 읽었다.

“재미있죠?”

“네. 왜 훔쳐간 건지 이해가 될 정도로요.”

“그 글을 보고 영화 제안이 들어와서 영화 시나리오로 쓴 거예요.”

“이 내용은 영화보다는 드라마 쪽이 더 잘 어울려요.”

“그러니까 그랬겠죠.”

갑자기 훅 들어온 현실에 수한은 입 안이 썼다. 악마도 이런 악마가 없었다. 수한이 여자의 의견에 동의하자 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글을 그만둬도 그쪽에서 그만둬야 하는데 왜 지아가 그만두냐고요.”

“혹시 유지아 작가님을 제가 만나 봐도 되겠습니까?”

“왜요? 설득이라도 해 보려고요?”

“아니요. 제가 해야 할 건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사과 말입니다.”

그 말에 여자는 아- 소리를 내더니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소포 안에 들어 있던 명함과는 다른 이름이 적혀 있는 명함이었다. 그러나 이름은 누군가와 비슷해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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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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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여자는 유지아 작가와 자매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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