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7. 진짜와 가짜
“잠깐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수한이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확인하니 작가 지망생들이 모여서 만든 커뮤니티였다. 최민희 작가가 쓴 글은 연재 게시판에 쓴 글이었다. 대본과 다르게 소설 연재 형식으로 썼다. 수한은 첫 번째 글을 눌러 내용을 확인했다. 대본보다는 그리 많은 양도 아니기에 금방 읽혔다.
‘소재는 비슷하기는 한데…….’
내용도 다르고, 무엇보다 캐릭터의 성격이 지금의 대본을 떠올리게 하지 않아 모호했다. 오히려 대본의 강점은 이 소설에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 편이니까 그럴 수 있다. 다음 편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수한은 한 편을 다 읽고, 그다음 화를 봤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이것도 마찬가지인데?’
오히려 대본에서 멀어지면 멀어졌지,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수한이 다음 화를 보려고 하자 다음 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수한이 의문을 담아 최민희 작가를 보자 최민희 작가는 웃으면서 말했다.
“거기까지 쓴 게 다예요.”
“네?”
수한이 당황한 눈으로 성민을 보자 성민이 핸드폰을 받아서 수한과 마찬가지로 소설 형식으로 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흥미롭다는 식으로 읽던 그의 표정에 갈수록 의문이 더해졌다.
‘이걸 증거라고 말할 수 있나?’
수한과 성민의 반응에 안심한 건 유지아 작가였다. 그녀도 내심 불안했는지 두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성민은 다 보고 나서 핸드폰을 최민희 작가에게 돌려주었다. 최민희 작가는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 오히려 불안감이 생겼는지 급하게 말을 더했다.
“당연히 처음 쓴 걸 그대로 쓰지는 않았죠!”
“네?”
“조금 더 상업성 있게 가다듬었죠. 누가 초고를 그대로 사용해요?”
“장르가 달라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까?”
“네. 전체적으로 보면 로맨틱 코미디가 인기가 많잖아요. 저도 열심히 고민하다가 바꾼 거라고요. 이걸로 오해를 받는다면 억울해요. 진짜.”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럴듯했다. 하긴 이 커뮤니티에 적혀 있는 글은 소설 형식의 글이 아니었다. 드라마 대본은 대사 위주이므로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걸 증거라고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하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법적 자문을 들어봐야 확실하겠지만.’
아직은 법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검토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이 일로 문제가 생긴다면 두 작가 모두가 변호사를 찾아야 할지도 몰랐다.
“이 카페는 작가 지망생들이 많이 가입되어 있는 곳입니까?”
“네. 드라마든, 영화 각본이든, 소설이든 가리지 않아요.”
“왜 이런 곳에서 연재한 거죠?”
“그야 관심이 필요하니까요. 혼자 글 쓰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데요.”
수한은 글을 써 본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앞에 있는 유지아 작가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것 같았다. 표절 문제와 별개로 말이다. 다만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지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건가? 아니면…….’
“그런데 왜 관두신 겁니까?”
“작가끼리 오히려 소재나 글을 훔쳐 가는 경우가 많다고 주변에서 경고해서요. 설마 말로만 듣던 일을 제가 당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최민희 작가는 정확하게 유지아 작가를 저격했다. 당연히 유지아 작가는 발끈하였다. 그녀 또한 표절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지아 작가가 노려봐도 최민희 작가는 기가 찬다는 듯이 웃으면 웃었지, 똑같이 대응하지 않았다.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과 다르게 최민희 작가는 이게 증거가 된다고 확신하는 게 틀림이 없었다.
그 가운데 수한이 조심스럽게 유지아 작가에게 물었다. 확실히 되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다.
“작가님도 이 커뮤니티에 대해 아십니까?”
수한의 질문에 유지아 작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유지아 작가는 최민희 작가의 핸드폰 속에 보이는 화면에 불안하게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나 거짓말은 못 하겠는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가입되어 있는 곳이에요.”
“이걸로 됐네요.”
“하지만 전 저 글을 본 적이 없어요. 애초에 그 게시판 자체에 안 들어가요.”
유지아 작가가 억울하다고 거의 울먹이자 최민희 작가가 무섭게 유지아 작가를 봤다. 분노하다 못해 역겨워하는 얼굴이었다. 표절을 당한 게 맞는다면 그러한 감정의 변화가 자연스럽기에 수한은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질문했다.
“가입을 언제 하셨죠?”
“재작년에 했어요.”
“봤죠? 이 사람이 카페에서 제 글을 보고 베낀 게 틀림이 없어요.”
“아니에요! 저는 그냥 정보만 얻으려고 가입한 거라고요!”
그러나 그 말을 쉽게 믿어 주기도 모호했다. 수한이 성민을 보자 성민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확실한 게 나오지 않는 이상 저울은 최민희 작가 쪽으로 기울어졌다. 지금의 형태와 다르다고 해도 소재는 같으니까 그녀의 말에 개연성은 있었다.
수한은 억울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유지아 작가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로서도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수한은 일단 두 사람을 헤어지게 한 뒤 유지아 작가에게 따로 증거가 될 만한 게 없는지 찾아보라고 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커뮤니티에 쓴 글로는 부족했다.
‘여기서 말하기에는 서로 감정이 너무 격해진 것 같고.’
자리를 정리하는 건 성민의 몫이었다. 성민은 두 작가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일단 오늘 두 분 다 저희의 제안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이쪽에서도 마음의 결론이 났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유지아 작가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세 사람을 봤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더니 갑작스레 뛰쳐나가는 모습에 최민희 작가가 어이가 없어서 화를 냈다.
“내 글을 표절한 게 누구인데 지금 저러는 거죠?”
결국, 먼저 도망쳤기에 표절 작가가 유지아 작가로 되어 버렸다. 그리되자 성민은 빠르게 태세 전환을 했다. 수한은 너무 이른 판단이라 여겼지만, 그렇다고 최민희 작가에게 안 좋게 보일 필요는 없었다. 무게 추가 현재는 이쪽에 기울어져 있으니까.
“죄송합니다.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게 하려고 하지는 않았는데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하네요. 나중에 일이 터졌으면 저만 억울한 일을 당할 뻔했잖아요.”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여전한지 유지아 작가가 나간 카페 문을 무섭게 노려봤다. 그 감정을 이해하기에 성민은 최대한 최민희 작가에게 맞춰 주었다. 그 덕분인지 최민희 작가는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시은 씨가 제 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알겠어요.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면 감독님께 제가 말을 전할게요.”
최민희 작가의 긍정적인 반응에 성민이 감사하다며 웃었다. 약속이 따로 있다는 최민희 작가의 말에 두 사람은 다시 만나길 바란다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가고 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얼음 같았던 카페 안이 다시 평온한 분위기를 찾았다.
두 사람도 이제야 긴장이 풀려서 서로를 보며 힘없이 웃었다.
“뭐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시원하면서도 달달한 커피요.”
“나도 동감이야.”
수한이 계산대로 가서 주문하고 오자 성민이 거칠게 넥타이를 풀었다. 역시 편한 옷차림을 추구하는 그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신경 쓰이는 불편한 표정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마음에 걸려서.”
“역시 실장님도 그렇죠? 이대로 끝내기에는 찝찝합니다.”
“그렇지?”
정말로 유지아 작가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아니, 설사 그 글을 봤다고 해도 글이 이렇게 비슷하게 나온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제가 따로 연락해 볼까요?”
“뭐라고 연락하게? 그쪽이 표절한 것 같으니 사과하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보다 궁금한 건 왜 그 자리에서 유지아 작가가 도망갔냐는 것이다. 누가 봐도 표절 작가처럼 보이게 하는 행동이었다.
“그럼 그냥 왜 그렇게 갔는지만 물어봐 봐.”
“어려운 일은 제게 맡기시네요.”
“원래 직장 상사란 그런 존재야. 몰랐어?”
“아니요. 알고는 있었는데 실장님이 그러니까 무지 깨서요.”
수한은 그사이에 나온 커피를 받아다가 성민에게 건네주었다. 성민도 가슴이 갑갑했는지 단번에 커피를 들이켰다. 어쨌거나 조금이라도 유지아 작가와 시간을 보낸 수한이 연락하는 게 낫기는 했다.
“만약 표절이 맞는다면 사과를 받아 내야겠죠?”
“그럼 좋긴 한데 우리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배역은 따낸 거나 다름이 없는 겁니까?”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주면 이상한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사람 일은 몰랐다. 그러나 성민이 저렇게 말하는데 확실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시은은 산더미 같은 대본이 밀려들어 올 정도로 여러 작가가 탐내는 배우였다. 그만큼 연기를 잘하니까. 수한은 성민의 자신감을 이해했다.
수한은 성민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눈을 통해 대본을 확인했다. 사실 수한이 이런 식으로 자리를 마련하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한 작품이 표절작이라면 조금 전에 만남이 영향이 안 갈 수가 없을 테니까.’
우선 ‘로맨스 연대기’부터 확인했다. 수한의 눈이 반짝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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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연대기 – 대중성: S, 화제성: S, 평균 시청률: 21%, 성장 가능성: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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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이 없었다. 수한은 왠지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나머지 하나를 확인했다. 하나가 이상이 없으니 나머지 하나가 영향을 받을 게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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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없었다 – 대중성: B, 화제성: S, 관객 수: 80만, 손익 분기점: 100만, 성장 가능성: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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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수한은 기분 탓이라 생각하고 다시 눈을 깜빡이며 ‘로맨스는 없었다’ 대본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이제 혼란은 수한의 몫이 되었다.
‘왜 둘 다 하나도 바뀐 게 없지?’
수한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나 싶었다. 아니면 이 능력치를 볼 수 있는 눈을 잘못 활용할 건가 싶기도 했다. 당연히 변화가 바로 보일 거라 생각했기에 당황스러웠다.
“왜 그래?”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마셨으면 가자. 가서 할 일이 많아.”
“네. 돌아가야죠.”
수한은 허겁지겁 커피를 마시면서도 머리가 복잡해졌다. 왜 능력치가 바뀌지 않은 걸까? 진짜로 우연의 일치인 건가? 그게 아니라면…….
‘이미 표절한 대본이 다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건가?’
그렇다면 말은 되는데 아무래도 찝찝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어차피 유지아 작가 쪽에 증거가 될 만한 것이 없느냐고 물을 생각이기에 수한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심 차라리 표절했다면 ‘로맨스는 없었다’가 했기를 바랐다.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무래도 로맨스 연대기 쪽이 우리가 탐내는 작품이니까.’
돈으로 움직이는 방송계라서 냉정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 수한은 괜히 이 일에 나섰나 싶어 후회되었다.
“시은이한테 연락 왔네?”
“전화 받으세요. 제가 차 빼서 카페 앞에 세우겠습니다.”
“그래. 그럼 난 통화하고 있을게. 어! 시은아!”
그래도 어떻게든 한쪽으로 거의 결론이 났으니 성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성민도 수한처럼 새로운 증거가 없는 한 유지아 작가를 외면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수한은 주차장으로 가다가 걸음을 멈췄다.
‘멀리 가지는 않았네.’
근처 벤치에 앉아서 울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유지아 작가는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까맣게 적셨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소원을 떠올리게 해서 수한은 다가갈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가서 무슨 말을 하기에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귀에 안 들어올 테니 위로만 하다가 올 가능성이 컸다. 차라리 저대로 두고, 나중에 따로 연락하는 게 나아 보였다. 그러나 먼저 썼다는 증거가 없으면…….
‘저쪽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겠지.’
수한은 유지아 작가를 못 본 척하며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차에 타서 주차장에서 나오는 순간 눈물을 닦으며 걸어가는 유지아 작가를 발견했다. 드디어 다 울었는지 어깨를 축 늘인 채 가는 게 보였다. 어딘가 서러워 죽겠다는 얼굴이 신경 쓰게 했다. 그러나 수한은 고개를 저으며 성민이 있는 카페를 떠올렸다.
다른 생각을 하기 전에 얼른 사무실로 돌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