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67화 (67/186)

067   7. 진짜와 가짜

“여기서 시은 씨가 하고 싶은 작품이 로맨스 연대기인 거죠?”

“맞아. 그런데 만약에 작품에 문제가 있는 거라면 곤란하니까.”

수한의 능력과 별개로 작품 선택 하나는 잘했다. 그래서 문제이기도 했다. 만약 시은이 선택한 작품이 표절당한 작품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만약 표절한 작품이라면 배우의 입지는 좋아질지언정 계속해서 언급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물론 대중이야 재미있으면 표절 문제가 있어도 재미있게 보지만.’

“근데 네가 봐도 이게 괜찮은가 봐?”

“네. 남 주기에는 되게 아까운 작품이네요. 혹시 모르니까 다른 대본들도 볼 수 있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봐.”

성민이 잠시 어디론가 가더니 산처럼 쌓인 대본을 가져왔다. 수한이 놀라서 입을 쩍 벌리자 성민이 친히 대본을 수한의 자리에 쌓아 놓았다.

“놀라기는. 아직 더 있는데 잠시만 기다려 봐.”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러나 성민은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결국, 수한은 그 자리에서 들어온 대본들을 확인해 봐야 했다.

‘이 와중에도 전에 봤던 대본은 가져다 주지 않네.’

수한이 생각해도 조금 웃기는 점이었다. 수한은 쌓인 대본을 읽기 전 눈으로 먼저 능력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크게 실망하였다.

‘전에 봤던 것들이랑 크게 다를 게 없네.’

왜 시은이 ‘로맨스 연대기’를 고른 건지 이해가 되었다. 그보다 좋은 능력치를 가진 대본이 없다. 그러나 수한은 그 작품을 선택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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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없었다 – 대중성: B, 화제성: S, 관객 수: 80만, 손익 분기점: 100만, 성장 가능성: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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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성공한 영화라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화제성이 높다는 건 결국 표절 논란이 일어났다는 말이었다.

‘그래. 이걸 결코 무시할 수 없지.’

무엇보다 수한의 감이 표절 작품으로 ‘로맨스 연대기’를 가리키고 있어 곤란했다. 수한이 난처하다는 얼굴을 하자 성민이 다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

“이게 어느 것이 표절인지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밝혀지면 좋은데 말이야.”

“두 작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 모르고 있어. 두 작품이 동시에 들어온 경우가 흔치 않아서 말이야.”

두 작품 다 시은에게 들어온 거라 이 사태를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로맨스 연대기가 표절 작품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데.’

작품의 질이 더 좋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원작이 더 좋을 때도 있으니까. 이게 능력치만으로는 파악이 안 되니 조금 답답했다. 만약 ‘로맨스 연대기’가 표절당한 작품이라면 수한은 이 순간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를 내가 잘 기억해 놨어야 했는데.’

한 작가가 꾸준히 표절하는 경우는 알고 있으나, 이 작품은 그 작가의 것에 해당하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럼 작가들에게 언제 집필했는지 물어보는 게 어떻습니까?”

“역시 그냥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네.”

윤리적으로 좋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기획사에서부터 표절을 눈감으면 누가 표절당한 작가의 편이 되어 주겠는가? 성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고는 직접 작가와 연락을 해 보겠다고 말하였다.

“저는 그러면 가져다주지 않은 대본에서 괜찮은 게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한때 시은의 로드 매니저였기에 신경이 쓰였다. 수한은 시은에게 온 대본들을 확인한 후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로맨스 연대기’만 한 게 없었다.

“저, 실장님.”

“왜?”

“이 대본을 고른 게 실장님입니까?”

“아니야. 그 대본을 고른 건 시은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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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돌이 보러 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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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뜬금없이 온 문자에 수한은 문자를 보낸 이가 예진이라는 걸 깨닫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소원에게서 이미 예진이 강아지 옷을 실컷 사 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처음에 고르라고 하더니 결국은 다 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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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생기면 가겠습니다.]

[지금 놀고 있는 거로 아는데? 소원이한테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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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의 앨범 활동이 끝났다고 해도 수한이 노는 건 아니었다. 수한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연예인이 매니저의 일을 어떻게 알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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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쁩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가겠습니다.]

[오기 싫으면 말아라. 순돌이도 너 안 보고 싶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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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간에 말을 밉게 하는 데 도가 텄다. 그런데도 예진이 밉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이미 예진에게 적응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진심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그 순간 수한의 시야에 성민이 이걸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서 있는 게 보였다. 물어보지 않아도 무슨 문제로 고민하는지 알겠다.

“아직 해결이 안 됐습니까?”

“두 사람에게 다 연락이 왔는데 비슷한 시기에 썼더라고.”

“네? 그렇다면 표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까?”

“그런 것 같은데 내 감은 아니야. 어떻게 이게 표절이 아닐 수가 있냐고? 누구 한 사람이 보고 베끼지 않는 한 이렇게 비슷할 수가 없는데?”

성민의 마음을 수한도 이해하였다. 이게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고전부터 내려오는 클리셰라도 된다면 이해라도 되는데 이 이야기는 클리셰도 아니니 논란의 여지가 컸다. 큰 줄기만 같으면 뭐라고 할 수 없는데 구체적인 에피소드까지 같으니 문제였다.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닙니까?”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게 문제지. 아는 사이였으면 보여 주다가 베꼈구나, 했을 거야.”

적어도 논란작에는 시은을 넣고 싶어 하지 않는 성민이 보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을 하지 않는 것이다.

“굳이 이 작품이 아니어도 작품은 계속 들어오니까 조금만 기다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시은이가 적극적으로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해 왔단 말이야.”

대형 기획사였다면 연예인의 의사를 무시할 수 있겠지만,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시은의 위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재계약을 앞에 두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면 시은은 재계약을 결코, 하지 않을 거다.

“결국에는 이 방법밖에 없네.”

“어떤 방법 말입니까?”

“삼자대면.”

돌려서도 안 된다면 직구로 날리는 편이 나았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나중에 논란이 되어서 일이 터지는 것보다 차라리 이게 나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하긴 그렇지?”

한쪽에서 작품이 시작되기도 전에 표절 논란을 일으킨다면 잘될 작품도 안 될 가능성이 컸다. 수한은 그리 생각하자 머리가 번뜩였다. 좋은 생각이 났다.

수한은 즐겁게 그 생각을 말하려다가 한 가지 사실이 떠올라 망설이게 되었다.

‘시은 씨가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고 했지?’

수한이 성민의 눈치를 보자 성민이 어서 말해 보라며 턱짓을 하였다. 수한은 고민하다가 역시 안 되겠다 싶었다.

“시은 씨한테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은이한테?”

“네. 잘하면 이 작품을 누구도 못 하게 만들 수도 있어서요.”

만약 표절한 작품이라면 충분히 그리 만들 수 있다. 수한이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그 정도로 하고 싶냐고 묻고 싶다는 거지?”

“네.”

만약 그런데도 하고 싶다고 말하면 수한의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이 작품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시은이니까.

“너 근데 연예인한테 그런 식으로 일일이 의사 물어보는 거 안 좋은 습관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말은 그리 했지만, 성민은 결국 허락했다. 그러면서도 성민은 누구도 못 하게 할 수도 있다는 수한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리겠다는 의지가 살짝 느껴졌다.

‘이놈 은근 대놓고 또라이란 말이야?’

물론 성민이 생각하는 또라이는 긍정적인 쪽이지만, 적으로 삼고 싶지 않은 타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명훈은 운이 없었다. 이런 또라이를 상대하려면 자기 자신도 또라이가 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걔는 거기서 잘 생활하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안면을 튼 사이라고 성민은 명훈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인맥을 통해 명훈의 소식을 물어보았다.

***

“오랜만입니다. 시은 씨.”

“네, 오랜만이에요. 오빠.”

모처럼 만에 만난 시은은 거의 화장기가 없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배우는 배우였다. 화장기가 없어도 수수하게 예뻤다. 수한이 만나고 하자 시은은 흔쾌히 허락하면서도 수한에게 예진의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차에서 이야기해도 괜찮은 겁니까?”

“네, 괜찮아요. 차만큼 조용하고 사적인 공간도 없잖아요.”

미리 작품에 대한 거라고 말해 뒀기에 회사나 조용한 카페로 장소를 정할 줄 알았다. 시은은 이런 점에서 은근 허를 찔렀다.

“오빠 드시라고 음료 싸 왔는데 드실래요?”

“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운전 중이 아니고 예진의 집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운 상태였기 때문에 음료를 마시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작품에 뭐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표절작이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시은도 들어온 작품을 다 읽은 건 아니라서 매우 놀랐다. 그리고 기획사에서 왜 고민을 하는지도 알았다. 하지만 시은은 성민도 아닌 수한이 나선 게 흥미로웠다.

“작품 재미있죠?”

“네. 그래서 시은 씨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요.”

“무슨 허락이요?”

“두 작가님을 만나게 해서 삼자대면을 할 생각입니다. 만약 그런 경우 작품을 시작하기도 전에 표절 이야기가 나와서 시끄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시은은 무슨 말인지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표절작일 수 있는 작품인데도 하고 싶냐는 뜻이었다. 물론 머리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은 아니었다. 이처럼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오빠는 이 작품 성공할 것 같아요?”

“특별한 경우의 수가 없다면 성공할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안 그랬으면 오빠가 이렇게 나서지 않았을 테니까.”

수한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시은 때문에 살짝 민망해졌다. 누가 보면 수한이 찍는 작품마다 잘되는 줄 알겠다. 물론 사실이지만, 드라마와 음악 외에는 수한도 까막눈이기에 이런 절대적인 신뢰가 어색했다.

“그 경우의 수가 두 작가님을 만나게 한다는 거죠?”

“네. 원래라면 작품이 드라마와 영화로 온전히 나왔을 때 일어났을 일이니까요.”

시은은 잠시 고민했다. 만약 수한이 말하는 대로 할 경우, 최악에는 작품이 엎어질지도 모른다.

“제게 어려운 선택을 하게 하네요.”

“그래도 시은 씨가 원하시니까 선택권을 드리는 겁니다.”

수한은 자기 연예인의 의사를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시은도 예진을 통해 들은 게 있기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수한은 천천히 고민해도 좋다며 시은이 건네준 음료를 마셨다. 달달하면서도 시원한 것이 머리를 맑게 해 주었다. 시은은 조금 더 고민하는 것 같더니 결국 결정을 내렸다.

“제가 하고 싶은 것과 별개로 이 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 걸 원치 않아요. 표절한 작품이라면 그까짓 거 그냥 엎어 버리라죠.”

“알겠습니다. 힘든 고민이었을 텐데 올바른 선택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 보십시오.”

“같이 안 들어가게요?”

“조금 있다가 들어가겠습니다. 실장님께 연락드려야 해서요.”

“네. 순돌이 보고 먼저 힐링할게요.”

시은의 말에 수한은 웃으면서 시은을 보내 주었다. 그리고 말한 대로 얼마 안 가 성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두 사람을 만나는 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지? 시은이가 그렇게 결정할 줄 알았어.]

“네. 조만간 연락해서 약속 잡아 주세요.”

[알았어. 되도록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네.]

“그런데 실장님, 그 자리에 저도 함께 나가도 되겠습니까?”

[네가?]

“네. 제가 직접 가서 만나고 싶습니다.”

남에게 직접 상황 설명을 듣는 것보다 직접 보면서 판단하는 게 나았다. 성민은 고민하는 것 같더니 흔쾌히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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