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66화 (66/186)

066   7. 진짜와 가짜

수한은 오늘까지 1위를 달리고 있는 소원의 음원 성적을 보았다. 쟁쟁한 가수들이 나오지 않아서라고 하기에는 성적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점이 대단했다.

소원은 이번 앨범 활동을 하고 나니 지쳤는지 당분간 집에서 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어차피 소원의 상태를 봐 가면서 활동해야 했기에 회사에는 쉽게 소원을 놔주었다.

“김수한!”

“네! 실장님!”

수한은 겉옷을 입고 성민을 따라나섰다. 소원의 앨범 활동이 끝났으니 소고기를 얻어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수한은 몇몇 부러워 죽겠다는 동료 매니저들의 시선에 나중에 함께 술 마시자는 눈짓을 보내고 성민을 따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소고기 구이 집에 놀란 얼굴을 했다.

“생각보다 제대로 사 주시네요.”

“그럼 약속한 건 지켜야지.”

“네. 그러면 거절하지 않고 잘 먹겠습니다.”

우선 수한은 저렴한 부위부터 먼저 시켰다. 원래 비싼 건 나중에 먹어야 한다. 그 속셈을 알아챈 건지 성민은 어이없어하며 함께 소주를 시켰다.

“소주 드십니까?”

“왜? 너는 맥주파야?”

“네.”

소주 특유의 쓴맛이 있어서 수한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맥주를 좋아했다. 다행히 성민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강요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러면 원하는 거로 시키든가.”

“네. 근데 대리운전 번호는 아시는 거죠?”

“그렇지, 뭐.”

워낙 술과 친한 직장이다 보니 그런 건 기본이었다. 물론 연예인 중에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가온 엔터테인먼트를 그런 사고를 늘 조심하게 했다. 그런 게 쌓이다 보면 이미지를 좀먹는다.

“실장님께서 사 주시는 거니까 제가 굽겠습니다.”

“그래.”

성민이 소주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수한은 나온 소고기를 빠르게 구웠다. 예전부터 고기 굽는 담당이었기 때문에 수한은 고기를 잘 구웠다. 그래서 성민은 놀란 눈으로 수한을 봤다.

“넌 어째 못하는 게 없냐?”

“못하는 게 왜 없겠습니까? 많은데 안 보이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수한은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잘난 척을 제대로 해서 성민은 어이가 없다가도 수한이 구워 주는 고기를 얼른 먹었다. 무슨 고기 굽기 학원에라도 다닌 것처럼 기가 막히게 구워서 맛있었다.

“너 이쪽에 소질 있다.”

“그렇습니까?”

“이쪽 일이 잘 안 풀리면 나중에 고깃집이라도 해 봐.”

“생각해 보겠습니다. 더 드세요. 실장님이 사시는 거니까.”

성민은 너도 먹으라고 권하려다가 알아서 잘 먹는 수한을 발견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웃긴 놈이었다.

“대표님께서 이번에 널 좋게 평가하시더라.”

“정말요?”

“그래. 이제는 지난번처럼 그러지는 않을 거야.”

수한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견제를 당해서 남일에 대해서는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런 남일을 중화시키는 게 성민의 존재였다. 만약 성민이 없었다면 수한은 이 회사에서 진즉에 나가고도 남았다.

“늘 실장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하고 말해야 하는데 나도 널 보고 배우는 게 많아서 말이야.”

술이 들어가니 성민은 조금 더 자기감정에 솔직해졌다. 성민이 수한의 나이였을 때도 이렇게 앞으로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저 안정적인 자리만 탐냈을 뿐이었다. 그런데 수한을 만나면서 성민도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내면에 감춰져 있던 열정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오래가자.”

“누가 들으면 우리 둘이 사귀는 줄 알겠습니다.”

“어쭈? 그래서 내가 싫다는 거야?”

“전 여자가 좋거든요.”

“오- 한소원 같은 여자?”

“팬입니다. 제 팬심을 모독하지 마십시오.”

수한이 정색하고 말하는 탓에 성민은 웃겨 죽었다. 하긴 수한이 소원을 대하는 걸 보면 이성을 대하는 게 아니었다. 누가 봐도 팬의 모습이었다. 성민도 수한이 팬 사인회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봤기 때문에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웃기는 놈이야. 진짜.”

“뭐, 실장님을 웃겼으면 된 거죠.”

“나중에 개그맨 시험 치러 볼 생각은 없지?”

“개그맨이 얼마나 되기 힘든지 아십니까?”

TV로 볼 때는 안 웃겨 보여도 실제로 만나면 눈물 나게 웃기게 하는 사람이 개그맨이었다. 수한도 한때 몰락한 개그 시장 때문에 개그맨에 대해 선입견을 품었다가 실제로 만나 보고는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알았어, 인마. 저기 아주머니! 여기 꽃등심 주세요!”

술이 들어가서인지 고기를 시키는 성민의 모습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돈 걱정 하나 없는 모습에 수한은 내일 아침에 성민이 얼마나 후회할까 기대하면서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새 고기가 나오고, 수한은 다시 맛있게 굽기 시작했다. 수한이 봐도 입맛을 돋게 하는 비주얼이라서 침이 저절로 고였다.

“아! 맞아. 너한테 한 가지 이야기해 주는 걸 잊었다.”

“뭘 말입니까?”

“댕댕이를 부탁해, 그 프로그램 말이야.”

“네. 그 프로그램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두 사람 다 하차하기로 했어.”

수한은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하긴 배우로서 작품 활동도 해야 하는데 너무 오래 하기는 했다. 게다가 초반과 비교하면 화제성도 떨어져서 슬슬 하차할 때가 되었다.

“순돌이는 예진 씨가 키우는 거죠?”

“그렇지. 본인이 키우겠다고 하더라.”

“다행이네요.”

“그렇지? 순돌이 덕분에 예진이 성격이 꽤 부드러워졌어.”

수한은 할 말이 많았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수한이 막 구워 낸 소고기를 입에 넣자 바로 살살 녹는 게 이래서 비싼 고기를 먹는가 싶었다.

“그래서 이태욱 PD는 뭐라고 합니까?”

“그동안 고마웠다고 막 그런 인사 정도 했지. 근데 너 그 PD와 친한가 보다?”

“네? 조금요. 가끔 연락하는 정도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래서 임호경 PD가 더 잘해 준 것 같았다. 단순히 얼굴만 익힌 정도가 아니라 꾸준히 연락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럴 의도로 친해진 게 맞았지만, 이런 식으로 결과가 나타나면 뿌듯했다.

“그 정도면 친한 거지.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잘하고 있네.”

“이게 다 선배님들이 저를 잘 가르쳐서…….”

“내 앞이니까 굳이 겸손 피울 필요 없어.”

“네. 그러면 제가 알아서 잘한 거로 하겠습니다.”

성민이 얄미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어도 수한은 제 말을 거둘 생각이 없었다. 그보다 궁금해진 게 있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는 건 차기작을 결정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괜찮은 작품이 있습니까?”

“그게 말이야. 아직은 없어.”

수한이 의문을 그리며 성민을 봤다. 아직 없는데 하차를 먼저 결정했다고? 무언가 이상했다. 아니, 그전에 누구 때문에 하차하는지를 듣지 못했다.

“잠시만요. 누가 작품을 하는 겁니까?”

“시은이.”

“아! 박시은 씨, 요즘도 힘들어합니까?”

“그렇지는 않아. 그냥 작품 활동이 하고 싶은가 봐. 하긴 한창 연기하는 게 재미있을 때니까.”

수한은 이해하였다. 수한도 대학로에서 연기할 때 딱 그랬다.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면서도 연기하는 게 너무 좋아서 힘들게 버텼다. 수한은 그러면서 성민이 무엇을 부탁하고 싶은지도 알았다.

“혹시 그중에 고른 게 있나요?”

굳이 수한의 능력이 아니어도 대본을 보자마자 감이 오는 작품들이 있다. 배우들의 작품 운은 그 부분에서 주로 결정이 났다.

“있긴 한데 이게 참 모호해서 말이야.”

“뭐가 모호한데요?”

“비슷한 작품이 두 개가 들어왔거든. 하나는 영화고, 하나는 드라마야.”

“그렇게 말하니까 잘 모르겠네요. 일단 내일 사무실에서 주시는 작품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 직접 보면 너도 내가 무슨 소리 하는지 알게 될 거야.”

수한은 성민의 빈 소주잔을 발견하고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병을 보니 이미 소주 한 병을 다 비웠다. 수한이 더 마실 거냐고 쳐다보자 성민이 고개를 저었다. 하루하루가 출근이었다. 쉬는 날이 거의 없어 술을 많이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게 매니저였다.

“나중에 대표님께 말해서 함께 휴가라도 가자고 할까 봐.”

“그거 좋네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싫었으면 전혀 가고 싶지 않겠지만, 수한은 지금 일하는 동료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가면 재미있게 어울려서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한은 소고기를 한 번 더 시킨 후에 성민에게 실컷 먹였다. 내일 딴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수한이 더 많이 먹었다. 역시 고기는 남이 사 준 고기가 최고 맛있었다.

***

수한은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다시 문을 닫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멀리서 성민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수한을 봤기 때문이다.

“김수한!”

“네, 실장님!”

수한은 뇌물로 사 온 커피를 직접 성민의 앞에 대령하였다. 성민은 당장에라도 화를 낼 기세였다가 수한이 사 온 커피를 보고 살짝 누그러졌다. 함께 카페를 간 동지였기 때문에 수한은 성민의 커피 취향을 잘 알았다. 그래도 성민의 날카로운 눈매는 피할 수 없었다.

“너 내가 과도하게 많이 쓰면 말렸어야지.”

“말렸죠. 말렸는데도 실장님이 시키라고 했는데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말은 청산유수네.”

“제가 말 빼면 또 시체죠.”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는 수한의 모습에 성민이 빨대를 입에 물면서도 혀를 찼다. 애초에 내기하자고 한 게 잘못이었다. 수한이 그렇게 잘 먹는 줄 알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내기였다. 성민은 아침부터 문자로 날아온 카드 내용을 떠올리며 피눈물을 흘렸다.

“내가 딸린 식구가 없어서 다행이지 있었으면 마누라한테 죽었을 거야.”

“그러니까 제가 그렇게 먹은 겁니다.”

수한이 뻔뻔하게 나가자 성민이 답답하게 죽겠다는 듯 가슴을 텅텅 쳤다. 은근히 놀리는 재미가 있어서 수한이 자기 몫으로 사 온 커피를 마시자 성민이 가지고 있던 대본을 수한의 자리에 놓았다.

“어제 말한 게 이 두 개입니까?”

“그래.”

수한은 대본을 보기에 앞서 능력치 확인부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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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없었다 - 대중성: B, 화제성: S, 관객 수: 80만, 손익 분기점: 100만, 성장 가능성: 100%]

[로맨스 연대기 – 대중성: S, 화제성: S, 평균 시청률: 21%, 성장 가능성: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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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비슷하기는 했다. 그런데 극명하게 대중성과 성장 가능성에 수한은 어리둥절했다. 아니, 그보다 영화는 능력치가 다르게 나온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거 재미있네.’

영화와 드라마의 비교라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로맨스 연대기’의 능력치가 훨씬 나아서 수한은 우선 ‘로맨스 연대기’에 호감을 먼저 느꼈다.

‘그런데 굳이 이 두 작품을 보여 주는 건 뭔가 있다는 건데?’

수한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먼저 ‘로맨스는 없었다’를 읽기 시작했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추리 스릴러물이었다. 수한이 좋아하는 장르여서 흥미롭게 읽혔다.

처음 남편이 살해당하고 난 뒤 여자 주인공이 범인으로 몰린다. 범인을 찾고, 억울한 게 몰린 것을 풀기 위해 여자 주인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반전으로 남편은 살아 있었고, 다른 여자와 불륜이 나서 여자 주인공을 처리하기 위해 그런 일을 벌였다. 여자 주인공은 끝내 복수를 하고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수한도 동의하였다. 그런데 화제성이 S인 게 살짝 이해가 안 갔다. 그다음에는 ‘로맨스 연대기’를 읽었다. 수한은 처음 읽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잠깐만 이거……?’

말도 안 되게 초반부 내용이 같았다. 수한이 고개를 들어 성민을 보자 성민이 쓰게 웃었다. 수한은 대본을 쓴 사람의 이름이 다른 것을 확인하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정도면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었다.

두 작품 중 하나가 표절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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