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6. 평범하지 않은 일상
"이거 진짜 미쳤는데?"
"그렇죠?"
수한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쭉 펴자 성민이 고생했다는 의미로 어깨를 툭 쳤다. 수한이 봐도 소원의 노래 성적은 대단했다. 주간 1위를 차지했을 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실시간 1위였다. 이 정도면 첫 프로젝트가 성공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앨범도 잘 팔렸지?"
"네. 2만 장 이상 팔렸습니다."
아이돌 기준으로 보면 적으면 적다고 할 수 있는 수치였으나, 여자 솔로 가수가 그 정도 판 거면 잘 판 거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팬 사인회라는 미끼를 걸긴 했으나, 요즘은 오히려 팬 사인회를 안 하는 가수를 찾기가 힘들었다.
"한소원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팬 사인회를 한 게 효과적이었습니다."
팬 사인회가 열릴 때마다 안 우는 날이 없었다. 그러나 그만큼 소원의 상처가 치유되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더불어 소원의 팬 중에 수한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졌다. 심지어 공개 팬 사인회 때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카메라에 찍히면서 GIF 이미지 짤로 많이 돌게 되었다. 안 그래도 웃긴 짤로 수한의 사진이 많이 사용됐기에 특이하면서도 재치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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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한 – 스타성: E, 연기력: B, 가창력: C, 춤: B, 인지도: D, 기타: ???, 성장 가능성: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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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은 제 능력치를 보며 한 등급 올라간 인지도와 2% 올라간 성장 가능성을 보았다. 역시 연예인은 그에게 맞는 직업군이 아니었다.
"이번 주 음악 방송 유력한 1위 후보라지?"
"네, 그렇습니다. 이번 주까지만 활동하고 그만하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그래. 2주 정도면 충분하지."
소원의 팬이 안다면 아우성을 지를 이야기를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 마음 같아서는 소원이 원하는 대로 길게 활동하게 하고 싶지만, 우선은 소원의 상태를 먼저 살피고 보호하자는 게 회사의 입장이었다.
'돈만 벌려고 소원 씨를 이 회사에 데려온 건 아니니까.'
"그럼 곧 소고기 얻어먹겠네요."
성민이 인상을 구기든 말든 수한이 상관할 바 아니었다. 성민이 내기한 것을 지키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징그러운 놈."
"그래도 실장님이 가장 절 예뻐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인마. 너 잘났다."
수한은 자리에 앉아 메리블랙의 순위와 앨범 판매량을 확인했다. 앨범은 초기에 많이 사서 그런지 어느 정도 판매량은 떨어진 상태였고, 순위는 100권 밖이었다. 그런데도 수한이 긴장하는 이유는 투표 때문이었다.
'SSS급 슈퍼스타나 음악 방송이나 투표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똑같네.'
회사 내에서도 추측하고 있지만, 둘의 수치가 간당간당하였다. 앨범 판매량이 떨어지긴 했어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일 하는 투표가 소원에게 매우 불리했다. 열심히 투표해 주는 팬들이 있기는 하지만, 메리블랙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다. 1위 결과가 투표로 갈린다고 하니 수한은 괜히 긴장되었다.
그런 수한을 지켜보던 성민이 결국 한마디 했다.
"상 못 받으면 어떠냐. 1위인데."
"그래도 상 하나쯤은 안겨 주고 싶습니다."
메리블랙이 소원을 무시하던 게 아직도 눈에 선했다. 물론 상은 하늘이 내려 주는 거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 인간의 힘이 필요하기는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힘은 저쪽이 강했다. 그런데 믿기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이거 뭐냐?"
성민이 화가 난 얼굴로 게시글 하나를 가져와 수한에게 링크로 보내 주었다. 수한은 영문을 몰라 하며 링크를 눌렀다가 어디서 많이 본 앨범 표지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고 말았다.
"이거 소원 씨 앨범이네요."
정성스러운 사인과 함께 문구가 담겨 있는 앨범이었다. 그 앨범이 방송국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다는 게시글이었다. 처음에 부분적으로 올려졌을 때는 누가 저 앨범을 버렸냐고 화내는 댓글들이 달리다가 전체 샷이 올려졌을 때 다들 충격받았다.
"메리블랙 세형 씨에게."
수한은 제 입으로 읽으면서도 화가 올라왔다. 소원을 무시했던 건 둘째 치고, 설마 앨범까지 그 자리에서 버렸을 줄은 몰랐다.
"스타병 걸렸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생각보다 심하네."
성민도 화가 난 건 매한가지라 다 마신 종이컵을 와락 구겨 버렸다. 그 순간, 수한은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힘이 부족하면 다른 데서 그 힘을 빌려 오면 그만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감정을 저희만 알면 안 되겠네요."
"응? 뭘 하려고?"
"저 잠시 홍보팀 좀 다녀올게요."
수한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성민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입술을 다물었지만, 그러면서도 수한을 말리지는 않았다.
***
"안녕하세요. 저희는……."
"안녕하지 못하니까 가세요. 누구 인사 받을 기분 아니거든요."
"죄송합니다."
열심히 가수들이 인사하러 오지만, 하나같이 이런 방식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싸늘한 공기가 감도는 이 대기실 안에는 메리블랙 멤버들이 앉아 있었다. 다들 인터넷에서 도는 인성 논란을 봤기 때문에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기분을 인사하러 온 가수들에게 풀었다.
"표정 엄청 웃기지 않냐?"
"그러게 급도 안 되면서 왜 자꾸 인사하러 와."
이미 지난주에 1위 상을 받았기에 여유가 조금은 있었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한 명만은 굳은 얼굴이었다. 소원을 앨범을 짓밟고, 버린 세형이었다. 세형은 지난번에 소원에게 받은 앨범에 적힌 문구를 읽고 그 자리에서 버렸다.
'어디서 착한 척이야.'
메리블랙에서 드림즈 멤버와 연애한 사람은 바로 세형이었다. 소원이 수한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헤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세형의 과도한 집착 때문이었다.
남자와 함께 있기만 해도 온갖 야단법석을 다 떤 게 세형이었다. 그 이유로 두 사람의 연애를 모르는 연예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세형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집착하다 못해 연예인을 관두라고 강요까지 했다. 그 이유로 세형은 차였다.
'좋아하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니야?'
그 정도가 스토커 수준이었으나, 세형은 그저 애정에서 비롯된 행동일 뿐이라고 지금도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잊었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소원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와 연애했던 그 사람처럼 소원은 사인에다가 세형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그래도 여기다가 버리지는 말지 그랬냐."
"내가 그렇게 발견될 줄 알고 그랬냐?"
세형의 까칠한 목소리에 다들 세형의 눈치를 보았다. 분명 잘못은 세형이 했는데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세형이 다 귀찮다는 듯이 소파에 누워 버리자 한숨 소리가 났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와중에 메리블랙 나머지 멤버들은 다른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설마 우리가 지지는 않겠지?"
"지면 굴욕이지."
"그래. 다른 아이돌이면 몰라도 드림즈한테 지면 안 되지."
과거에 연연해하는 세형과 다르게 다른 멤버들은 이젠 드림즈와 왜 싸웠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제는 그냥 자존심 싸움이었다. 소원이 어떤 불행을 겪었든 그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가 이겨야 해."
인터넷 반응은 불안한 마음에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괜히 보면 안 좋은 결과만 나타날 것 같았다. 그러나 불안한 건 매한가지라서 저절로 다리가 떨렸다.
"우리 팬들을 믿자."
"풋-!"
이런 비슷한 소리를 안 한 지가 천 년은 넘은 것 같은 기분이라서 우스웠다. 언제부턴가 팬들을 감정 있는 ATM기로 본 지 오래였다. 그걸 모두가 아는데 그런 소리를 하니 너무 웃겼다. 그러나 마냥 웃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지금으로서 희망은 그들의 팬들밖에 없었다.
"그래. 네 말대로 우리 팬들을 믿자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또 어느 가수가 창피를 당하려고 온 걸까 벌써 비웃음이 입에 걸렸다. 그러나 대기실 문이 열리면서 메리블랙 멤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소원입니다."
이 정도면 정신력이 강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설마 오늘 인사하러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다들 멍한 상태로 소원을 봤다.
"이번 주가 마지막 방송이라서 인사하러 왔어요.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소원은 따뜻하게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 옆에서 수한은 잘했다는 듯이 소원을 보며 기특해했다. 소원이 나가려고 하자 누워 있던 세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멤버들은 세형이 또 사고 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착한 척하려고 왔냐?"
"네? 아니, 저는……."
소원이 대답하기도 전에 수한이 세형의 앞을 막아섰다. 왠지 모를 듬직함에 세형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죄송하지만, 예의를 갖춰 주시길 바랍니다."
웃고는 있는데 싸늘한 공기가 돌았다. 소원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위협적인 태도라서 소원에게 시비를 걸려고 했던 세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 괜찮아요. 오빠."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인사한 것 같습니다. 인사는 조금 있다가 1위 상을 받으면 다시 하도록 하죠. 그때는 진심으로 축하하길 바랍니다."
1위 수상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수한의 말에 메리블랙 멤버들은 화가 났지만, 그를 표현하기도 전에 나간 두 사람이라서 결국 그 화를 풀지 못했다.
세형은 두 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정신을 차린 건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저번부터 저놈 뭐야?"
"매니저라던데?"
"매니저? 매니저가 저런다고?"
세형이 메리블랙 매니저를 무섭게 쳐다보자 매니저는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솔직히 말해 그도 이 자리에 있는 게 죽을 맛이었다. 누구보다 여기서 탈출하고 싶은 게 그였다.
"별 같잖은 것들이 난리야."
꺼 두었던 모니터가 켜지면서 실시간 방송이 전달되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수한으로 인해 제대로 승부욕의 불이 댕겨졌다. 그들은 매서운 눈으로 방송 아래에 뜨는 실시간 투표를 지켜봤다. 정말 기가 막히게도 소원이 앞서는 중이라 다시 화가 났지만 말이다.
"야! 핸드폰 줘 봐!"
"직접 투표하게?"
"그럼 지려고?"
"아니, 아니지."
이제까지는 직접 하지 않아도 팬들이 알아서 다 해 줬기 때문에 걱정할 게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느새 문자 투표까지 마친 메리블랙 멤버들은 이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 함께 무대 위에 올라가게 되면서 듣게 되었다.
"이번 주 1위는……."
뜸 들이는 두 명의 MC 모습에 메리블랙 멤버들은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되었다. 적어도 소원만큼은 이기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당연히 그 주변에 있던 동료 가수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들이 오늘 보인 태도가 최악을 찍었다.
그들과 다르게 소원은 수한이 있는 무대 뒤를 생각하며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1위 상이야 수한이 소원에게 안겨 주고 싶은 거지, 소원이 욕심을 부린 게 아니었다.
그 결과…….
"이번 주 1위는 소원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펑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종이가 떨어졌다. 소원은 상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매우 놀란 얼굴을 하다가 뒤에서 축하한다고 손뼉을 치는 수한 때문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것과 별개로 어떤 사실이 생각나면서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이 상은 솔로 활동을 하는 소원의 첫 1위 상이면서도 드림즈가 받지 못했던 소원의 첫 1위 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소원은 이 상을 함께 고생한 드림즈에게 돌리며 다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