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61화 (61/186)

< 6. 평범하지 않은 일상 >

수한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학교 주변을 살피는데 바빴다. 그런데 주말인데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있다. 뿐만이 아니라 촬영한다니까 호기심으로 학교 주변을 둘러보는 동네 사람들도 보였다.

"죄송합니다. 양해 좀 구하겠습니다."

"뭐 찍는데요?"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어서요."

소원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도와주는 스태프들에게 최대한 동네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고 주의한 게 어느 정도 통했다. 물론 그런데도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그 문제는 어쩔 수 없었다. 수한은 몇 번이나 조심해달라고 이야기한 뒤 현장에 함께 나온 성민에게 가서 물었다.

"주말인데 왜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거죠?"

"요즘에는 주말에도 학교 나와서 공부한다는데?"

"그럼 토요일에 쉬는 게 의미가 없네요."

"굳이 따지자면 그런 셈이지. 우리 때는 말이야. 토요일에도 학교에 꼭 나갔어야 했는데 말이야."

"저는 고등학교 때 번갈아 가며 쉬었던 것 같아요."

"아니, 이런 데서 세대 차이를 느낄 줄이야."

수한은 웃으면서 학교를 둘러보았다. 하필 촬영 장소로 빌린 학교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학교였다. 뮤직비디오 촬영은 중학교 건물에서 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신경이 쓰이는지 몇몇이 인상을 쓰면서 가는 게 보였다.

"최대한 빨리 촬영하고 가야겠네요."

"소원 씨는?"

"잠시만요."

수한은 탈의실로 지정한 교실의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유리창을 검은 천으로 덮어서 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안 가 들어 오라는 목소리에 옆으로 문을 여니 교복을 입은 채로 머리를 양쪽으로 땋은 소원이 보였다. 수한은 생각한 것보다 더 교복이 잘 어울려서 웃음이 나왔다.

"교복은 일부러 널찍한 옷으로 입혔어요."

"잘하셨습니다."

화장도 옅게 했지만, 학생 특유의 풋풋함이 보였다. 물론 실제 학생이 옆에 서 있으면 이 풋풋함이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소원과 잘 어울렸다. 수한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콘티를 알려주었다. 소원도 촬영 현장을 이해하고는 수한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주로 혼자 촬영하는 장면이 많네요?"

"네. 그렇습니다."

친구들이 등장하기는 해서 소원은 그들 곁에 자연스레 섞여들었다. 일부러 소원의 나잇대에 맞는 사람들을 섭외해서 그런지 학생 무리를 보는 기분이었다. 수한은 금세 친해진 사람들에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촬영하겠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컷 소리가 들리면서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수한은 몇 번이나 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한소원- 스타성: S, 연기력: F, 가창력: B, 춤: B, 인지도: C, 기타: S, 성장 가능성: 99%]

수한은 눈에 보이는 연기력 수치를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 능력치가 절대적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처럼 소원은 몇 번이나 발연기를 해서 NG 장면을 만들어냈다.

"소원 씨."

"네······."

웬만해서는 수한도 소원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만, 소원은 예진이 발연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연기를 못했다. 왜 전 기획사에서도 소원을 연기 쪽으로 보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런 연기면 분명 욕먹는다.'

"우리 조금만 쉬었다가 할까요?"

"죄송합니다."

소원은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말한 뒤 풀이 죽은 모습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수한도 몇 번이나 보고 웃은 사람 중 하나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처음으로 예진에게 개인적인 전화를 하게 되었다.

[여보세요? 김수한?]

전화를 걸자마자 까칠하게 말할 줄 알았던 예진은 생각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동시에 옆에서 순돌이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안녕하세요. 예진 씨.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전화 드렸는데 시간이 되시나요?"

[도움? 시간이야 당연히 안 되지.]

"그렇습니까? 실례했습니다. 그럼 전화 끊겠······."

[안 되는데 너니까 특별히 내줄게.]

수한은 이런 일에도 밀고 당기는 예진의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니 대략 소원의 일을 설명하였다. 소원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예진은 화를 냈지만 말이다.

[너 지금 나 발연기 했다고 까는 거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까? 하지만 결국 극복하셨잖아요."

수한의 말에 예진은 잠시 말을 하지 않더니 작은 한숨 소리를 냈다. 예진이 발연기를 했던 건 사실이라서 이건 예진도 쉽게 부정하지 못했다.

[내가 소원이한테 전화할 테니까 너는 가만히 있어.]

"감사합니다. 예진 씨."

[너 좋아하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일부러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수한도 잘 알아서 감사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수한은 이제 예진이 소원에게 무슨 조언을 해줄지 궁금해졌다. 소원에게는 잘해주는 것 같으니까 조금 전에 한 것처럼 까칠하게 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갑자기 예진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벌써 통화하신 겁니까?"

[그게 아니라 전화를 안 받아서. 근처에 있으면 전화 좀 받으라고 해.]

"아! 네. 알겠습니다."

촬영 중이라 핸드폰을 두고 간 것인지 소원의 핸드폰은 탈의실에 있었다. 수한은 소원의 핸드폰을 들고 소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간 건지 소원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멀리 가지는 않았을 텐데?'

수한은 소원을 찾으며 돌아다니다가 중학교 건물이 아닌 고등학교 건물에 소원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꽤 먼 거리에서 있어서 수한은 소원을 크게 부르려다가 말았다. 소원이 누군가를 피해서 숨어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이유로 그러는 건가 싶어 수한은 빠르게 다가가다가 들려오는 여학생들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소원 불쌍한 척하는 거 역겹지 않냐?"

"지가 드림즈 죽여놓고 무슨 낯짝으로 활동하냐?"

"그러니까 말이야. 재수 없어."

수한은 주먹의 힘을 꽉 주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가졌지만, 저런 말을 듣고도 참아야 한다니. 수한은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불안하게 몸을 떠는 소원을 지켜봤다. 수한이 가까이 가자 수한의 인기척에 소원이 눈을 떴다. 그 가운데서도 여학생들의 뒷말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앨범 망했으면 좋겠다."

"솔직히 다들 불쌍해서 들어준 거지. 이번 노래도 별로였잖아."

소원이 가지 말라고 고개를 저었으나, 수한은 그대로 소원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러자 시야에 보인 건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둘이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수한의 등장에 여학생 둘은 크게 당황하였다. 수한은 그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러나 눈은 결코, 웃지 않았다.

"학생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는 말 알죠?"

불만이 많이 보이는 눈빛이 보였지만, 자기들도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수한의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가 한 말들 나중에는 결국 본인들한테 돌아올 겁니다."

"아저씨가 뭔데 우리한테 뭐라고 하는데요?"

자기들이 한 말은 생각도 못 하는지 뻔뻔하게 하는 말에 수한은 속상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소원 씨 팬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누군가를 과하게 미워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팬일 가능성이 컸다. 여학생들도 그 경우에 속했는지 서둘러 달려갔다. 수한은 마음 같아서는 너희들이 뭔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수한은 이 자리에 소원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소원 씨. 이제 나와도 됩니다."

수한이 고개를 돌리자 숨어있던 소원이 모습을 보였다. 불안하게 떨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소원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그에 수한이 의아해하자 소원이 여학생들이 사라진 건물을 보며 말했다.

"제 팬이 정말 든든하게 느껴져서요."

그 말을 하는 소원이 행복해 보여서 수한은 잠시 말을 잃었다. 왠지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오빠. 전화 왔어요."

"이건 제 전화가 아니라 소원 씨 전화입니다."

수한은 때마침 울리는 소원의 핸드폰을 소원에게 건네주었다. 예진에게서 온 전화였다. 소원은 전화를 받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수한이 예진에게 어떤 도움을 청했는지 들은 모양이다. 전화를 끊은 소원의 얼굴은 어느새 심통이 잔뜩 나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제 팬이 저 발연기 한다고, 친한 언니한테 뒷말해서요."

"그건 그러려고 한 게 아닌······."

"알아요."

장난친 거였는지 소원은 즐거워 보이는 얼굴을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됐든 소원이 좋으면 된 거라서 수한은 할 수 있다며 의지를 다지는 소원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면서도 소원의 안전을 위해 주변을 계속해서 열심히 살폈다.

"근데 예진 씨가 뭐라고 조언했습니까?"

"필요한 감정에 맞춰서 중요한 사람을 생각하면 된대요."

수한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였다. 예진만 해도 그런 식으로 발연기를 극복해냈으니까. 그런데 소원이 그 조언대로 잘 해낼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수한이 우려한 것과 별개로 소원은 어느새 연기를 잘하게 되었다. 물론 표정 연기만 말이다.

"소원 씨. 좋아요. 대사는 다 없애는 거로 합시다."

"네!"

그 이유 때문인지 소원의 능력치는 정말 미세하게 달라졌다. 물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싶을 정도였다.

[한소원- 스타성: S, 연기력: E, 가창력: B, 춤: B, 인지도: C, 기타: S, 성장 가능성: 99%]

연기력 F와 E의 차이는 표정 하나라는 걸 수한은 의도치 않게 알게 되었다. 수한은 컷 소리 나기가 무섭게 담요를 가지고 소원에게 달려갔다.

밝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 하복을 입혔는데 이게 상당히 추운 모양이다. 바르르 떠는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수한은 혹시 몰라 챙겨온 감기약부터 소원에게 먹였다.

"감사해요."

수한이 뮤직비디오 감독을 쳐다보자 감독은 오늘은 이만 마치자고 먼저 제안하였다. 스튜디오라면 밤새 촬영하면서라도 계획을 강행했겠지만, 학교가 주 무대였기 때문에 시간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일도 일찍 나와야 하죠?"

"네. 내일까지만 빌리기로 해서요. 그래도 감독님한테 들으니까 얼마 안 남았다고 하더군요."

"제 노래가 춤이 필요한 노래가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만약 춤을 춰야 했다면 몇 번이고 다시 추면서 시간이 많이 소비되었을 것이다. 수한은 새삼 소원이 걸그룹 출신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걸그룹은 다 춤추죠?"

"네. 칼군무 하는 그룹도 있지만, 오빠도 아시다시피 드림즈는 그런 그룹이 아니었어요."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못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였다. 어쩌면 그래서 성공을 못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소원이 씁쓸하게 웃자 수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 경험이 다 피가 살이 될 겁니다. 언젠가 댄스곡도 한 번 준비해보시죠."

"진짜 짓궂으시네요."

그러면서도 소원은 작게 음을 흩날렸다. 하늘과는 다르게 왠지 리듬감이 느껴지는 멜로디였다.

< 6. 평범하지 않은 일상 > 끝

ⓒ 엔다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