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60화 (60/186)

< 6. 평범하지 않은 일상 >

수한은 안으로 들어오는 한 여자를 보고 반갑게 웃었다. 소원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여자의 소개에 일단 인사를 했다.

"이서영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소원입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소원이 의문을 그리며 수한을 보자 수한이 입 모양으로 보육원을 말했다. 그제야 소원은 서영을 알아봤다. 그에 관해서 수한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기는 했다.

"우연인지 그 자리에 기자가 있었는데 소원 씨를 알아본 모양입니다."

"그럼 그 기사에 나왔던 사진이······?"

"네. 그 기자가 찍은 겁니다. 어차피 알려질 거 기부도 할 겸해서 협의를 봤습니다."

소원은 그 협의가 이 인터뷰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원이 보는 것처럼 마냥 순진한 사람이었다면 서영을 경계했겠지만, 소원도 대충 연예계 돌아가는 사정을 다 아는 사람이었다. 전에 기획사에서도 버림받았던 게 소원이었다. 이런 기회 하나,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다.

수한이 커피를 내오자 서영이 감사하다며 한 모금 마셨다. 인터뷰는 처음부터 진행되지 않고, 소원의 경계심을 풀어놓는 작업부터 먼저 하였다. 그러면서 어떤 질문을 해서는 안 되는지 다시 되짚어냈다. 덕분에 인터뷰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요즘 소원 씨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요."

"아직 제게 관심을 보이고 계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노력한 덕분에 소원은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얼굴 상태로 돌아갔다. 따사로운 햇볕을 사람으로 형상화한다면 눈앞에 있는 소원일 것 같았다. 그와 함께 당장에라도 사라질 듯한 아련한 느낌도 들어서 서영은 만족스럽게 소원을 봤다.

"이번에 내신 하늘이라는 노래 들었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찾아보니까 직접 작곡한 노래라고 하던데 작곡은 언제부터 했어요?"

"혼자 취미로 하다가 수한 오빠한테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격적으로 해보게 됐어요."

"수한 오빠라면······."

수한이 자신 있게 옆에서 손을 들자 서영의 눈이 반짝였다. 수한은 그러나 서영이 할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없으므로 어서 인터뷰나 진행하라고 눈짓을 보냈다. 서영이 아무리 아쉬운 표정을 지어도 소용없었다.

"이러면 다음 곡도 기대가 되는데 다음 곡도 직접 작곡할 생각이신가요?"

"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면 다음에도 좋은 곡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영은 소원에게서 보이는 확신에 놀랍다는 듯이 쳐다봤다. 물론 인터뷰를 이런 식으로 자신감을 내보이는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소원은 정말로 그 말을 현실로 이루어낼 것 같았다. 그리고 수한을 보는 소원의 눈빛에서 보이는 강한 신뢰에 서영은 수한을 흥미롭게 봤다.

"앞으로도 좋은 활동 기대할게요.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영이 열심히 인터뷰한 내용을 적어놓은 수첩을 가방 안에 넣자 수한이 먼저 일어나 서영을 보낼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서영은 수한의 생각대로 바로 갈 생각이 없었다.

"소원 씨. 앞으로 그 보육원 봉사 활동 계속 가실 생각이에요?"

"네. 그러려고 하는데요. 그러면 안 되나요?"

소원이 수한을 쳐다보자 수한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소원이 하고 싶고, 그 보육원에서도 허락한다면 계속해서 봉사 활동을 해도 됐다. 적어도 회사에서는 소원의 봉사 활동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

"그럼 앞으로도 자주 보겠네요."

"아! 기자님도 하시려고요?"

"네. 소원 씨가 잊으셨나 본데 우리 봉사 활동하다가 만난 사이예요."

"아! 그렇네요!"

수한은 순진하게 서영에게 답해주는 소원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저리 말하지만, 수한은 알았다. 그날 서영이 소원을 본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수한이 봉사 활동 목격담을 본 것처럼 서영도 같은 글을 보았고, 혹시나 해서 찾아간 게 그날이었다. 수한은 다른 기자는 몰라도 연예부 기자는 쉽게 믿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제가 인터뷰 기사 쓰고 나서 따로 매니저님한테 원고 보낼게요."

"네. 알겠습니다."

수한이 문을 열어주자 서영이 묘하게 수한과 눈을 맞춰왔다. 수한이 이상하게 쳐다보자 서영이 매력적이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끼리는 조만간 한 번 더 보죠."

"그러죠."

기자를 쉽게 믿을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자와 친해지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거래를 할 수 있는 기자가 한 명쯤은 필요했다. 이서영 기자를 보내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원이 보였다. 담담하게 잘한 것 같았는데 아닌 척 열심히 했던 모양이다.

"저 잘했어요?"

"네. 잘했습니다. 침착하게 잘했습니다."

"다행이에요. 긴장 많이 했거든요. 기자분이 좋은 분 같아서 다행이에요."

수한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소원을 위해서도 좋았다.

"점심 안 먹었죠?"

"저 만날 때마다 맨날 밥 사주시는 거 알아요?"

"네. 당연하죠. 제 돈으로 사는 게 아니니까요."

연예계 생활만 해봤지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원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수한은 성민이 건네준 법인카드를 흔들었다. 딱 봐도 수한의 카드가 아니었기에 소원은 미소를 지었다.

"뭐 드시고 싶어요?"

수한은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소원에게 말해봤자 답은 똑같았다. 음식의 종류는 달라도 그 매움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은 매운 떡볶이요. 저 아는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실래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법인카드가 있는데 소원의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어쨌거나 오늘의 점심은 매운 떡볶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소원이 아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수한이 따로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

수한은 소원이 말한 위치로 차를 몰고 가다가 의아하게 소원을 쳐다봤다. 여기는 브랜드 점이 아니었다. 물론 수한이 소원을 데려간 곳도 브랜드 점이 아니긴 했지만, 어느 정도 깔끔한 분위기가 흐르는 식당들이었다. 그에 비해 소원이 데려온 떡볶이 가게는 학생들이 자주 다녀가는 것으로 보이는 낙서가 많은 곳이었다.

수한은 떡볶이 가격을 보고 왜 소원이 사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1인분에 천 원하는 곳이었다. 수한은 근처에 학교가 있지 않을까 추측하며 구석 자리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왔네요."

"안녕하세요."

한두 번 와본 게 아닌지 떡볶이 가게 주인도 소원을 알아보았다. 수한은 다른 사람 앞에서 이렇게 편한 소원의 모습은 오랜만에 봐서 신기해했다.

"단골입니까?"

"예전에 단골이었어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눈빛에 수한은 드림즈 멤버들과 함께 한 장소라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떡볶이는 금세 나왔다. 수한은 이전처럼 강한 매운맛을 생각하며 떡볶이를 먹었다가 놀랐다. 하나도 안 맵다. 아니, 맵긴 한데 저번처럼 죽을 것 같이 매운맛은 아니었다.

"제가 맵다고 해서 엄청 매울 줄 알았죠?"

"네. 근데 이런 속임은 나쁘지 않네요."

"늘 저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여기로 온 거예요."

"덕분에 맛있게 잘 먹고 있습니다."

딱 좋은 정도로 매워서 많이 먹을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수한은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떡볶이 가게 안에 그려진 수많은 낙서를 구경하였다. 은근 시선을 빼앗는 낙서들이 많았다. 남녀 이름 사이에 하트가 그려져 있는 낙서가 있었고, 누군가를 놀리는 낙서도 있었다.

"소원 씨는 여기에다가 낙서 안 했습니까?"

"했어요. 이쯤 했던 것 같은데······?"

소원은 고개를 돌리다가 구석에 있는 낙서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곧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학교 친구들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 연락하는 친구들은 없습니까?"

"제가 연습생 생활을 하느라 학교에 잘 못 나가서 끊겼어요."

어느새 소원의 시야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잡혔다. 어딘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표정이어서 수한은 기분이 묘해졌다. 새삼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는 싸움을 좀 자주 했지.'

지금도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크지만, 고등학생 때는 더 그랬다. 뭐가 그렇게 다혈질이었는지 마음에 안 드는 광경이 보이면 화부터 내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그 화가 주로 반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진 무리에게 갔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찔했다. 거기서 애들이 조금 더 못되게 마음먹었으면 수한은 조폭까지 봤을지도 몰랐다.

'근데 만약 내가 이 나잇대가 아니라 고등학생 시기로 돌아갔다면 왠지 매니저는 안 했을 것 같네.'

물론 지금도 매니저를 관두고, 다른 직종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정이 든 연예인이 많기도 했고, 이루고 싶은 꿈도 있기에 이 일을 관두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한이 다행이라 여긴 건 수한이라는 변수 때문에 소원이 살아남은 것이다.

'그래서 이 애한테 자꾸 마음이 가는 건가?'

그 순간, 소원과 눈이 딱 마주쳤다. 소원이 짓는 미소에 수한도 따라 웃었다. 이상하게 소원이 웃으면 수한도 따라 웃게 되었다.

"떡볶이 맛있죠?"

"네. 가끔 와야겠습니다."

"올 때 저도 같이 와요. 그때도 제가 사드릴게요."

이런 가벼운 가격이면 소원에게도 부담이 없을 것 같아서 수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다만 이상하게 고등학생 시절을 그리워하는 소원의 눈빛만큼은 머릿속에 잊히지 않았다.

**

수한은 대략 짜인 앨범 리스트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다. 그중 몇 개는 대중성이나 음악성이 낮긴 했지만, 수록곡이라 생각하면 좋은 퀄리티의 곡이었다. 이제 문제는 앨범 컨셉이었다.

"일단 한소원이 나오는 게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저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배우를 쓰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요즘 추세는 가수 본인이 뮤직비디오에 많이 나왔다. 수한도 갈수록 예뻐지는 소원에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을 찬성하였다.

'그러고 보니 어떤 연예인이 이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시기마다 예쁜 모습이 다르니 그 모습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말이라 수한도 공감하였다.

"그럼 요정처럼 아련한 컨셉 어때요?"

"요정 좋죠."

"아니요. 원래 기획은 그게 아니었잖아요."

"그렇죠. 이번 곡으로 한소원에 대한 기대가 커졌으니까."

냉정하게도 사람들이 소원에게 원하는 건 한 가지였다. 홀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번에 음원으로 나온 '하늘'이 굉장히 밝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소원의 슬픔을 찾아냈다.

'그걸 이용하고자 데려온 건 맞지만······.'

수한은 그 모습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 슬픔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소원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요정이라는 컨셉은 맞지 않았다. 이를테면 지금 당장은 어른이 되고 싶지만, 막상 어른이 되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학생 같은······.

"어? 학생?"

"응? 학생?"

수한의 말을 따라 하는 성민의 모습에 수한은 확신이 섰다.

< 6. 평범하지 않은 일상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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