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평범하지 않은 일상 >
["드림즈 소원" 따사로운 봉사 활동, 얼굴도 예쁘지만 마음도 천사]
수한은 수많은 기사 중에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한 기자의 이름에 웃었다. 이서영 기자. 지난번 봉사 활동할 때 만난 여자였다. 홍보팀에 넘겨준 사진은 서영이 찍은 사진이었다. 어떻게든 기사를 써주게 할 테니 넘기라는 조건에 서영은 순순히 사진을 넘겨주었다. 그와 더불어 소원이 기획사를 옮긴다는 기사도 함께 냈다.
"홍보팀에서 머리 좀 굴렸네."
"네. 잘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수한과 함께 찍힌 사진이 보이면서 가온 엔터테인먼트와는 봉사 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시나리오를 짰다.
"이제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려나?"
"글쎄요. 이런 기사가 떴으니 이번 주에 소원 씨와 봉사 활동 가야겠네요."
"안 그래도 그와 관련해서 생각해둔 게 있는데 말이야."
수한은 무슨 계획인지 뻔히 알고는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소원이 수한에게 제안한 적이 있던 계획이었다. 가온 엔터테인먼트 식구들 다 같이 봉사 활동하는 거 말이다.
"편히 할 수 있는 거로 하면 괜찮겠지?"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예진이 살짝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본인이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할 사람이다. 적어도 싫은 일을 억지로 할 사람은 아니라서 수한은 괜찮다고 여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일 한다고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도 좋았다.
"한소원 음원도 곧 낼 거지? 기사는 조금 있다고 나오나?"
"네. 그러기로 했습니다. 원래 나중에 내려고 했는데 일이 조금 꼬였네요."
"그래도 이미지 나빠지는 것보다는 낫지."
연예인만큼 이미지에 먹고 사는 직업도 없어서 수한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이미 소원으로부터 허락도 받았기 때문에 수한은 조금은 편하게 마음먹었다. 그러면서도 걱정은 되었다. 괜히 소원의 기획사에서 나서서 여론전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이었다.
"수한아. 이거 봐봐."
[드림즈 소원, 치료 기다렸더니 돌아온 건 배신]
예상과 다르지 않게 나온 기사에 수한은 씁쓸하게 웃었다. 기사 내용은 제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신적인 치료가 필요하여 최대한 배려해주었는데 갑자기 일방적으로 소속사를 바꾸겠다고 입장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한소원 핸드폰은 꺼놨어?"
"네. 이럴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미리 말해두었습니다."
그렇지만 상처를 안 받을 건 아니라서 수한도 속상하였다. 홍보팀에서도 당연히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런 일에 미리 대비했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컸다.
- 그래서 이 기사가 하고 싶은 말이 뭐임? 계약이 끝났으면 끝난 거지 배신은 또 뭐임?
ㄴ 좋게 놔주지 않겠다는 거지ㅋㅋㅋㅋㅋ
ㄴ ㅉㅉ이러니까 나가겠다는 거지
- 솔직히 드림즈 교통사고도 차 관리 못 한 기획사 책임 아닌가?
ㄴ 맞음. 욕받이로 놔둬 놓고 인제 와서 배신이란다ㅋㅋㅋㅋ
반응을 살펴본 결과 다행히도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소원의 이미지가 나빠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얼마 안 가 나간 새로운 기사 때문에 소원의 편이 더 많이 생겼다.
[소원, 다음 주 음원 공개 "음원 수익 모두 기부"]
다른 것도 아닌 기부를 하겠다는 내용이라서 반가워하는 눈치들이었다. 게다가 자작곡이라니까 응원하겠다는 반응이 쏟아져나오면서 수한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이런 일에는 역시 익숙하지 않았다. 수한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해가 지는 시간이었다.
"가서 커피 한 잔 어때?"
"사주시는 거죠?"
"그럼 사주니까 나가자고 하는 거지."
보통 이 시간에 커피를 잘 마시지 않지만, 수한은 이제는 커피 없으면 못 사는 몸이 되었다. 수한이 지친 몸을 이끌고 카페로 가자 카페 안에서는 고주혁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고주혁의 인기야 수한도 알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생활에서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언제 들어도 노래가 좋단 말이야."
"그렇죠?"
수한과 소원의 합작으로 이루어낸 노래였다. 고주혁의 사랑스런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히트곡이 되었다. 수한은 소원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혹시 몰라 핸드폰을 꺼두는 건 물론이고, 인터넷 반응도 보지 말라고 하였다.
"한소원 상태는 괜찮은 거지?"
"물론입니다. 본인의 의지도 있으니 괜찮습니다."
"그럼 어서 음원이 나오길 기다리자고. 나는 무조건 10위권 내에 건다."
"저는 1위에 걸겠습니다."
수한의 단호한 말에 성민이 놀란 눈을 하였다. 노래가 워낙 좋아서 10위 안은 예상되지만, 1위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수한은 그런 성민의 반응에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이기면 소고기 사주세요."
"그래 뭐! 그러지 뭐!"
"저는 이 약속 안 잊을 겁니다."
수한의 자신 있어 하는 모습에 성민은 살짝 불안해지기는 했지만, 그는 여기서 굽힐 수 없었다. 남일 앞이라면 모를까 수한의 앞에서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참에 도박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래라! 그래! 대신 네가 지면 너도 소고기다! 무조건 난 한우만 먹을 거야."
"네. 자신 있습니다. 한우 좋아요. 한우 먹을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수한은 씩 웃었다. 소고기를 공짜로 얻어먹을 기회가 생겼다.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입맛이 확 돌았다. 수한은 제 눈에 떴던 노래의 능력치를 떠올리며 기분 좋게 커피를 마셨다.
[하늘- 대중성: S, 음악성: A, 최고 순위: 1, 성장 가능성: 5%]
이번 내기는 무조건 이긴다.
**
수한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음원 1위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다. 첫 순위는 15위로 시작했으나, 여기저기서 좋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하자 금세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당연히 1위 한 기사는 곳곳에 퍼져서 축하를 받았다.
"너 진짜 신기 있는 거 아니냐?"
"너무 많이 듣는 이야기라 이제 신선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인간적으로 한우는 빼자."
"낙장불입(落張不入) 모르십니까?"
"모른다 인마."
말과 다르게 성민은 이번 달의 카드 명세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기분은 좋아 보였다. 음원 1위가 쉽지는 않으니까. 고주혁 이후로 나온 첫 성과여서 홍보팀이 더 열심히 움직였다.
"오늘 한소원 인터뷰 있지?"
"네. 간단하게 하기로 했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건가?"
"네.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서요. 어차피 기사로도 나간 사실이니 이제는 편하게 드나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소원에게 물 먹이려다가 되려 맞은 전 기획사였다. 서로 더러운 꼴을 봤으니 더는 소원을 건드리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리고 뜻밖에 남일의 자존심이 여기서 또다시 발휘되었다.
"대표님이 알아서 잘 이야기했다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수한은 출발하기 전에 약국에 들러서 청심환을 샀다. 소원에게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혹시 몰라 소화제라든가 이것, 저것을 산 뒤 소원의 집 앞으로 갔다.
오늘의 소원은 모자를 쓰지 않은 채 있었다. 옅게 화장도 했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수한은 소원이 차에 완전히 올라탄 것을 확인한 뒤 걱정하는 얼굴로 보는 소원의 어머니를 향해 인사를 했다.
"오늘 아무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 믿고 맡길게요."
수한이 그동안 쌓은 신뢰가 높았기에 소원의 어머니는 걱정하면서도 편하게 소원을 보냈다. 수한은 출발하면서도 소원의 상태를 섬세하게 살폈다.
"소원 씨. 오늘 기분은 괜찮으세요?"
"안녕하세요. 수한 오빠. 네. 괜찮아요. 좋아요."
이왕 오빠라고 부르기로 한 거 호칭을 고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수한도 딱딱하게 성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봉사 활동을 요즘 함께해서 그런 건지 전보다 더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긴장한 게 보여서 수한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터뷰만 하는 거니까 괜찮을 겁니다."
"네. 인터뷰 내용 봤으니까 괜찮아요."
너무 물가에 내놓은 애 취급하는 수한 때문에 소원의 입가에 옅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게 얼마 만인지 몰라 기분이 영 나쁘지는 않았다.
"예진 언니가 오늘 힘내라고 응원 문자 보냈어요."
"사이가 좋으시네요."
"오빠랑도 사이가 좋잖아요."
아니라고 하기에는 예진이 수한을 대하는 게 편하기는 했다. 수한이 긍정적인 끄덕임을 보이자 소원이 환하게 웃었다. 천진난만함이 돋보여서 귀여웠다.
수한이 청담에 있는 샵에 주차하자 소원은 수한이 내릴 때까지 함께 기다렸다.
"안에 현장 매니저도 있으니까 굳이 안 기다려도 되는데요."
수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려운 감정이 소원의 얼굴에 드러났다. 그래서 수한은 알게 되었다. 소원이 괜찮다고 한 건 수한이 옆에 있어서였다. 수한은 순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내색하지 않고 함께 샵 안으로 들어갔다.
"소원 씨! 오랜만이에요!"
소원과 처음 만났던 샵으로 갔기 때문에 소원을 반갑게 여기는 가게 직원들이 있었다. 소원도 자신을 환영해줄 줄 몰라서 매우 놀란 게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는 모습에 모두가 당황했다.
수한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라 놀랐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빠르게 주변에서 휴지를 받은 후에 소원의 시야를 그의 몸으로 가렸다.
"소원 씨."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에도 수한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소원을 똑바로 봤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원 씨. 우리 잠시 다른 데로 갈까요?"
소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한은 그대로 소원을 구석으로 데려갔다. 수한이 휴지를 건네주자 떨어지는 눈물을 휴지로 바로 닦아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여기에 무슨 이유로 온 건지 떠올렸는지 거칠게 닦아내지는 않았다.
"조금 진정이 된 후에 사람들 불러올게요. 괜찮죠?"
"네······."
소원은 몇 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진정하였다. 소원도 자기가 이럴 줄 전혀 몰랐는지 붉어진 눈시울로 수한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수한은 괜찮다며 웃었다. 다만 왜 울었는지가 궁금했다. 소원은 얼마 안 가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사람들이 저 안 미워해서 다행이에요."
그 말에 수한이 반대로 울컥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원의 보호자인 수한이 울어서는 안 됐다. 수한은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소원 씨는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 사람이 아니지만, 설사 다른 사람들이 다 미워한다고 해도 제가 곁에 있을 테니까 안심하세요. 저는 변하지 않을 거거든요. 누구보다 소원 씨를 가장 좋아하는 팬이니까요."
안심해도 좋다는 듯이 말하는 그 모습에 소원은 도리어 참았던 눈물을 다시 흘렸다. 이번에는 미안해서가 아니라 고마워서 눈물이 나왔다. 장례식 때처럼 수한은 소원을 안아주지 않고 그저 어깨만 토닥여주었다. 이게 수한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소원은 다 울고 나서 환하게 웃었다. 오히려 운 게 민망하다는 듯이 얼굴까지 붉혀서 소원을 담당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조용히 웃으면서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 6. 평범하지 않은 일상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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