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평범하지 않은 일상 >
"안녕. 얘들아."
"아저씨는 누구예요?"
수한이 어색하게 소원을 보자 소원이 친절하게 아이들에게 수한을 소개했다. 물론 그 방법은 수한이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수한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진 자신의 사진을 보며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저 이거 본 적 있어요!"
"아저씨가 이 아저씨예요?"
아직 한창 젊은 20대인데 아이들에게 아저씨라 불리니 속이 아주 쓰렸다. 그러나 오빠라고 하기에는 나이 차이가 큰지라 수한은 양심대로 아저씨라 불리기로 했다.
"언니! 저 머리 묶어주세요!"
"알았어. 잠시만!"
소원이 주로 하는 일은 아이들이 놀 때 옆에서 열심히 보조하는 거였다. 수한은 자신과 다르게 언니라고 불리는 소원을 보다가 마주친 시선에 괜히 고개를 돌렸다. 소원은 아이의 머리를 묶어준 뒤 웃으면서 수한에게 다가왔다.
"수한 아저씨?"
수한은 이럴 때 눈치가 빠른 소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한이 한숨을 내쉬자 소원이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요. 오빠."
"솔직히 억울합니다."
"네에. 네에. 알겠어요."
전혀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별수 있겠는가? 수한이 함께 봉사하고 싶다고 따라나선 게 잘못이었다. 수한은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소원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과 함께 있어서 그런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옮아서 그런지 소원이 상큼해 보였다.
"아저씨. 저 누나 좋아해요?"
"응?"
수한이 고개를 돌리자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남자애가 보였다. 묘하게 경계하는 게 수한은 남자애가 왜 그러는지 알고 남자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아하긴 하지."
"진짜요?"
"인간적인 호감?"
전혀 알지 못하겠다는 얼굴에 수한은 피식 웃었다. 좋아한다 하는 말에 이성적인 호감이 들어갈 수도 있으나, 수한은 그런 호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냥 소원이 잘됐으면 한다는 마음이 있을 뿐이었다.
"수한 오빠!"
굳이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되는데 저리 부르는 건 수한을 놀리기 위해서가 틀림이 없었다. 그래도 아저씨라 부르는 것보다는 나아서 수한은 재빠르게 다가갔다.
"애들 간식 준비해야 하는데 도와주세요."
"네. 돕겠습니다."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수한은 잔뜩 각오하고 왔기 때문에 쉬운 일에 일을 척척 해냈다. 덕분에 수한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나쁘지 않았다. 그중에는 소원처럼 봉사 활동을 하러 온 사람도 있기에 수한은 소원과 다르게 그들과 자연스레 대화를 텄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김수한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서영입니다."
수한은 봉사 활동과 어울리지 않게 수첩을 든 서영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서영도 수한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이거요? 블로그에 소소하게 글 쓰려고요."
"그래서 사진도 찍으셨군요."
"네. 이런 일에 남는 건 결국, 글이랑 사진뿐이더라고요."
별로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대답하는 게 수상하긴 했지만, 수한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 순간 수한의 시야에 소원이 잡혔다. 아이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바깥에 나왔다고 모자로 얼굴을 가린 게 조금 신경 쓰였다.
'여기서까지 얼굴을 꼭 가려야 하나?'
그러나 그 의문을 해결해준 게 바로 서영이었다. 서영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에 있는 저분 얼굴 봤어요?"
"아니요. 제대로 못 봤는데요. 왜요?"
"소원이 아닌가 해서요."
수한은 사진을 찍으려는 서영의 앞을 막아섰다. 웃고는 있지만, 눈빛은 싸늘했다. 소원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이 제대로 발휘되었다.
"다 좋은 마음으로 온 건데 저 사람이 누구이든 어떻습니까?"
"아! 그렇죠."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소원에게 고정되어있는 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수한은 서영을 포함한 다른 봉사 활동자들을 데려가며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연예인은 봉사 활동도 마음대로 못하는구나.'
수한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봉사 활동하는 소원을 보니 씁쓸했다. 좋은 일을 하는데도 숨어야 한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수한은 안에서 챙겨주는 시원한 물을 받아서 소원을 찾아다녔다. 소원은 어느새 낮잠 자는 아이들 속에 섞여서 졸고 있었다. 왠지 그 장면이 예뻐 보여서 수한은 사진을 찍었다.
"어?"
찰칵 소리가 제법 선명하게 들렸기에 아래로 떨어지던 소원의 고개가 들렸다. 수한이 웃으면서 물을 건네주자 소원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해요. 근데 방금 저 찍은 거죠?"
"네. 너무 예뻐서요."
"네?"
수한은 지체하지 않고 찍은 사진을 소원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들 속에 있어서 그런지 따뜻한 느낌이 물씬 나는 포근한 감성의 사진이었다. 소원도 사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
"빨래요."
"아! 빨래!"
바깥에 날씨도 좋으니 빨래하기에 좋았다. 수한은 빨래를 받아다가 열심히 날랐다. 한 번에 크게 나르는 수한 덕분에 세탁기가 금세 돌아갔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수한은 소원이 한가득 들고 오는 이불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이런 건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인 줄 알았는데.'
이불 빨래는 수한의 몫이 되었다. 수한이 열심히 거품에 뒤덮인 이불을 밟자 이번에는 소원이 핸드폰을 들었다. 완전히 입장이 반대되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이래서 봉사 활동을 다니는 건가 했다. 이불을 밟을 때마다 스트레스 하나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수한은 옆에서 거드는 소원을 보다가 작게 들려오는 멜로디에 피식 웃었다.
"그것도 요즘 작곡하는 곡입니까?"
"어? 어떻게 알았어요?"
당연히 이 눈 때문에 알게 되었다. 수한은 눈앞에 뜨는 능력치를 보며 몰라도 된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하늘- 대중성: A, 음악성: B, 최고 순위: 90, 성장 가능성: 85%]
"제목도 지었습니까?"
"네. 하늘이에요. 여기서 지낼 때 느꼈던 감정을 표현한 곡이에요."
듣기만 해도 몽글몽글한 기분이 드는 게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그리게 하는 곡이었다. 수한은 능력치와는 별개로 소원의 몽글몽글한 감성이 들어있는 노래를 좋아했다. 이건 개인적인 수한의 취향이었다.
"나중에 이것도 음원으로 내게 되면 수익을 전부 기부하고 싶어요."
"그런 기회가 머지않아 올 겁니다."
"제가 그때가 되어서 갑자기 다른 말 하면 오늘 일을 꼭 말해주세요. 말한 거 지키라고."
소원의 각오를 다지는 얼굴에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소원은 다른 말 할 사람으로 안 보이지만 말이다.
빨래를 다 하고 난 뒤 널기까지 마치자 슬슬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수한은 휴가를 이런 식으로 써도 되나 싶었지만, 그래도 이 뿌듯한 기분을 다른 데서는 못 느낄 것 같아 기지개를 쭉 켰다.
"이제 가요."
"애들과 인사는 안 하게요?"
"너무 오래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봐서요. 이미 충분히 오래 있기도 했고."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아까 봤던 이서영이라는 여자가 살짝 느낌이 안 좋았다. 블로그에 쓸 거라 했지만, 왠지 아닐 것 같다. 예상대로 수한이 소원과 함께 나오자 어딘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수한은 그 시선의 주인을 알 것 같았다.
"소원 씨."
"네?"
"먼저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혼자 갈 수 있죠?"
"네. 갈 수 있어요."
당연히 함께 돌아갈 거라 생각했기에 소원의 얼굴에 아쉬운 감정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수한은 깔끔하게 작별 인사를 전하였다.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리는 소원을 바라보다가 수한은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도망칠 틈도 없이 일어난 습격이라 사진기를 들고 있던 서영의 멍한 표정이 보였다. 수한은 서영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방금 한소원 씨 찍은 것 같은데 맞죠?"
**
성민은 불편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너무 쉽게 한소원을 넘긴다고 했다. 안 그래도 한소원의 앨범을 준비하고 있던 찰나에 들려온 소식이라 성민은 한숨부터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식을 수한에게 전달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성민은 기분 좋아 보이는 수한을 불렀다.
"네. 무슨 일이에요?"
"너 하루 쉬더니 상태가 좋은 모양이다?"
"그럼요. 역시 사람은 쉬어야 합니다."
"이 직업이 그런 의미에서 좋은 직업은 아니지."
수한뿐만이 아니라 매니저라면 다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오죽하면 늘 인력이 부족할까? 매니저 일을 할 때 학력을 보지 않는 데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한소원 관련해서 안 좋은 소식이 들어왔어."
"네?"
수한은 이야기를 듣고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어쩐지 그러고 나서 얌전히 있다 싶었다. 소원의 기획사는 소원이 기획사를 옮길 때 안 좋은 기사를 터트리려고 대기 중이었다. 나름대로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조율하려고 했으나, 이미 돈에 눈이 멀어서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에 대한 대비책은 세웠습니까?"
"그쪽에서 기사를 낸다면 우리 쪽에서도 기사를 내야지."
수한이 듣기로도 딱히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왜 싸울 때 먼저 공격을 하라고 하겠는가? 먼저 치고 빠지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처음 드림즈 교통사고가 났을 때만 해도 그랬다. 그때 얼마나 욕을 먹었으면 소원이 현재까지도 힘들어할까? 지금도 소원은 사람들 보기를 힘들어했다.
"그걸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다른 생각이라도 있는 거야?"
"제가 따로 홍보팀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고주혁의 팬카페 문제로 이미 홍보팀과 얼굴을 튼 적이 있었다. 처음 시작은 성민이 열어주었지만, 그 이후로는 수한이 계속해서 의견을 제시하며 거리를 가까이 두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굳이 성민을 걸칠 필요가 없었다.
"이러다가 단물만 쪽쪽 빨리고 나중에 나 버림받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실장님인데요."
"말만 실장이지, 상사에 대한 예우가 전혀 없잖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수한이 웃고만 있자 성민이 얄미워죽겠다는 듯이 수한을 보았다. 그러고는 어서 가서 일 보라고 턱짓하였다. 수한은 곧장 일어나서 홍보팀으로 걸음을 옮겼다. 말은 그렇게 해놓고 또 언제 홍보팀에 전화를 넣어준 건지 벌써 반기는 홍보팀 사람들의 모습에 수한은 씩 웃었다.
이번에는 어떤 아이디어를 줄 건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 보였다.
"제가 한 가지 사진을 드리고 싶은데 이걸로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겠습니까?"
"일단 보고 판단하죠."
수한이 핸드폰에 저장한 사진을 보여주자 호기심이 흥미로 바뀌었다. 사진 안에는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소원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다음으로 넘겨지는 화면에는 수한과 함께 빨래하는 소원이 있었다.
"좋은 시나리오 나오겠는데요?"
"무조건 우리가 빨리 내야겠네요."
벌써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는지 열정 있는 얼굴이 보였다. 수한은 그들이 어떤 결과물을 내줄지 기대하며 홍보팀 사무실에서 나왔다.
< 6. 평범하지 않은 일상 > 끝
ⓒ 엔다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