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56화 (56/186)

< 6. 평범하지 않은 일상 >

"오랜만입니다."

다시 오는 '댕댕이를 부탁해' 촬영 현장은 예전과 크게 다른 게 없었다. 강아지와 함께해서인지 훈훈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러나 수한을 보는 이태욱 PD의 눈이 살짝 달라졌다. 전에는 고마움이 많았다면 지금은 신기하다는 감정이 함께 느껴졌다.

"고주혁 씨가 말한 수한이 형이 매니저님이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수한의 말에 뒤에서 어색하게 헛기침하는 사람이 보였다. 재원이었다. 누가 그 연예인에, 그 매니저 아니랄까 봐 수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제가 능력자와 친분을 쌓은 건 아닌가 싶네요."

"그저 운이 좋은 것뿐입니다."

회사 내라면 모를까 잘 보여야 할 사람 앞에서는 수한도 겸손하게 굴었다. 수한은 이왕 이렇게 대화를 하게 된 거 고주혁에 대해서 살짝 말을 꺼내보기로 했다. 은근히 기대하는 시선도 있는 게 서로에게 나쁠 것 같지 않았다.

"고주혁 씨가 출연한다면 당연히 좋죠."

"그렇습니까?"

"되도록 고주혁 씨한테 맞추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슈퍼스타에서 나온 것과 다르게 알고 보니 까칠한 성격은 아니시죠?"

"아닙니다.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대부분 그대로 나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방송 이미지와 다르게 행동하는 연예인이 워낙 많다 보니 하는 걱정이었다. 수한이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웃어 보이자 이태욱 PD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이야기가 잘 풀렸으니 기분이 좋았다.

"자! 곧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준비해주세요!"

이태욱 PD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촬영 준비를 마쳤는지 시은과 예진이 대기하는 게 보였다. 순돌이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두 사람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래도 안 본 시간이 있다고 나한테 오지는 않네.'

그전에는 모습을 숨겨서라도 있어야 했지만, 수한이 SSS급 슈퍼스타에 시간을 쏟느라 많이 보지 못한 게 이런 식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수한은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촬영 현장을 지켜보다가 갑작스럽게 달려오는 순돌이 때문에 놀랐다.

"왜 갑자기?"

고개를 돌리니 화가 난 얼굴에 예진이 보였다. 그리고 주변에는 순돌이가 사고 친 흔적이 보였다. 예진과 시은이 순돌이 간식을 만드는 동안 순돌이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거실을 제대로 어질러 폈다. 수한이 순돌이를 안아 들자 꼬리가 빠르게 흔들렸다.

"김순돌! 너 정말 이럴래?"

수한은 순간 자기한테 하는 말인지 줄 알고 움찔했다가 어서 순돌이를 건네달라는 예진의 손짓에 순돌이를 건네주었다. 순돌이는 불쌍한 척했지만, 예진에게는 소용없었다. 그보다 수한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성이 김이지?'

둘 중에 성을 붙이라고 하면 성순돌보다는 김순돌이 어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이상했다. 시은은 이 상황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간식 만드는 동안 또 사고 칠 것 같으니까 오빠가 봐주세요."

"그래도 되나요?"

수한이 이태욱 PD를 보자 이태욱 PD가 깔끔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졸지에 재출연하게 되었다. 수한이 바닥에 앉자 순돌이가 그 주변을 돌아다녔다. 수한은 순돌이가 사고를 치려고 할 때마다 열심히 방어하였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빠. 이왕 이렇게 된 거 순돌이 옷 좀 갈아 입혀주세요."

"옷이요?"

수한은 제 앞에 놓인 강아지 옷을 신기하게 봤다. 종종 강아지 옷 입히는 사람들 보긴 했는데 자신이 이런 걸 해보게 될 줄은 몰랐다. 수한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순돌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돌이는 순순히 다가와 수한의 손바닥을 핥았다. 막상 입히면 예쁠 것도 같아서 수한은 빠르게 순돌이를 잡고,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순돌이가 발버둥을 치기도 전에 입혀서 그런지 순돌이는 크게 반항을 하지 않았다.

"아니, 무슨 강아지 옷 갈아입히기 달인이에요?"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시은이 황당하다는 듯이 수한을 봤다. 그리고 스태프들을 보니 하나같이 대단하다는 얼굴을 하였다. 알고 보니 순돌이는 옷 입는 걸 아주 싫어했다. 방송에서도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하여 편집도 많이 되었던 장면이라고 한다.

"순돌아! 예쁘다!"

순돌이는 마치 한 몸이었던 것처럼 수한이 입혀준 옷을 입고 잘 돌아다녔다. 그 귀여운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면서 수한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수한은 얼마 안 가 순돌이의 간식을 만들고 온 예진을 보고 풋- 소리를 내며 웃어버렸다.

대체 뭘 하고 온 건지 얼굴에 밀가루를 잔뜩 묻혔다. 수한은 적어도 예진이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도 최선을 다한 거거든요?"

개밥도 이런 개밥이 없었다. 물론 순돌이를 위해서 만든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방송용이니 다른 모습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진은 요리를 못하는 편이었다.

'예진 씨는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시은 씨까지 요리를 못할 줄이야.'

한 사람이라도 잘하면 그래도 어떻게든 덮을 수 있는데 결과물을 보니 두 사람 다 요리에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순돌이조차도 간식에 손을 대지 않아서 예능으로써는 재미있는 장면이 카메라 속에 담겼다.

**

"김수한이. 너 인기 많더라?"

"제가 뭘요?"

딱 봐도 무엇 때문에 그 말을 하는지 수한을 알아듣고는 모르는 척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성민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말이다.

"여기 봐봐."

직접 프린트까지 뽑아서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여주니 감읍할 따름이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특히나 그 방송에서 나온 지옥에서 온 간식이 레전드 에피소드로 뽑혔기에 수한이 언급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여기 네 표정 봐봐."

짤방감으로 쓰기 좋은 표정이 나왔다. 그래서 수한은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수한이 연예인이라면 이런 식으로 이미지를 소비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연예인이 아니라서 문제였다. 종종 지나가다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분이란······.

"그거 다 알고 놀리시는 거 아닙니까?"

"아니지. 그 밑에 내용을 봐봐."

수한은 성민의 말에 고개를 내렸다가 살짝 놀랐다. 고주혁이 말한 수한이 형이 자신이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지나가는 말로 한 거라지만, 이상하게 기뻤다.

"나중에 연예인 하고 싶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직접 돌봐준다."

"그 말,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수한이 진지한 표정을 지어도 성민은 절대 믿지 않았다. 성민이 봐도 수한은 나중에 기획사를 따로 차리면 차렸지, 스스로 연예인이 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고주혁 씨 데리고 가겠습니다."

"예진이 눈밖에 안 나게 조심하고."

"네. 알겠습니다."

같은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거지만, 오늘은 고주혁이 게스트로 나오기 때문에 수한은 살짝 긴장하였다. 고주혁의 성격이라면 예진에게 찍힐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했다. 수한만 해도 명훈이 그런 말실수를 예진의 앞에서 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형."

수한이 집 근처에 차를 세우기가 무섭게 고주혁이 차에 올라탔다. 고주혁이 밖을 향해 손을 흔들자 여자들의 즐거운 비명이 들렸다. 수한은 살짝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생각하지 못한 걱정이 올라왔다.

"혹시 사생팬이 생긴 겁니까?"

"아니요. 지나가는데 절 알아보길래 인사한 거예요."

그러고 보니 소원과 다르게 고주혁은 특별히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지 않았다. 워낙 SSS급 슈퍼스타의 파급력이 크다 보니 고주혁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왜 얼굴을 가리지 않습니까?"

"그게······. 감사해서요."

수한은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고는 웃었다. 수한이 만나는 사람마다 고주혁에게 투표했다고 말할 정도이니 당사자인 고주혁에게는 얼마나 그랬을까 싶었다. 고주혁의 행동을 보니 예의 있게 팬들을 상대한 것 같아서 수한도 나쁘게 보지는 않았다. 다만 걱정인 건 팬과의 거리였다.

"팬 중에 좋은 사람도 많겠지만, 그에 비례하여 나쁜 사람도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전혀 명심한 표정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장 일어난 일은 아니니 수한은 다시 한 번 기회가 있을 때 진지하게 대화하기로 했다.

고주혁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는지 몸을 들썩이면서 말했다.

"맞아! 저 형! 나오는 거 봤어요."

"보셨나요?"

하긴 자신이 나올 프로그램인데 예습하고 오는 게 좋기는 했다. 수한은 신나게 떠드는 고주혁을 보며 웃었다.

"가기 전에 고주혁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되도록 성예진 씨에게 다가가지는 마세요."

"네? 왜요? 방송 보니까 성격 좋아 보이던데요."

"말을 하게 되더라도 최대한 예의 갖춰서 이야기하면 괜찮을 겁니다."

"제가 언제 다른 사람 앞에서 버릇없게 행동한 적 있어요? 형.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얼마 안 가 고주혁은 자신의 말을 취소하였다. 현장에서 대놓고 고주혁을 노려보는 예진이 보였기 때문이다. 미리 말을 해두었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보는 예진 때문에 수한도 곤란해졌다. 수한은 재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늘 예진 씨 기분 안 좋습니까?"

"오늘 올 때부터 좀 좋지는 않았어."

하필 기분이 안 좋아도 이럴 때 안 좋을 줄은 수한도 몰랐다. 수한은 고주혁을 대기하게 하고, 예진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수한이 다가오자 예진의 표정이 조금은 부드럽게 풀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제 앞에 들이대진 핸드폰 화면에 수한은 눈을 깜빡였다. 화면 안에는 강아지 옷만 있었다. 수한의 고개를 돌리자 지나치게 눈을 반짝이는 예진이 보였다.

"어때?"

"뭐가 말입니까?"

"옷 갈아입힐 수 있겠어?"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강아지 옷이었다. 하나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옷이라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 예진은 대체 사진을 몇 장 골라온 건지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어서 수한은 최선의 답을 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왜? 아직 다 못 봤는데?"

수한이 재원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자 재원이 시간이 없다고 신호를 주는 게 보였다. 수한은 왠지 피곤해 보이는 예진의 모습에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핸드폰을 손에 쥐여주는 행동에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보고 괜찮은 거 다섯 개만 골라줘."

"네. 알겠습니다."

수한은 비밀번호 하나 걸리지 않은 핸드폰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겁도 없다. 그러면서도 핸드폰에 저장된 수많은 사진에 할 말을 잃었다.

'이거 찾느라 잠을 못 잤나 보네.'

이럴 거면 직접 링크를 건네주지, 뭐하러 핸드폰에 다 저장한 건지 모르겠다. 수한이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수한이 형."

수한이 고주혁을 쳐다보자 고주혁이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수한은 고주혁에게 미안해졌다. 아직 고주혁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지 않은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을 보니 하나같이 열렬하게 고주혁을 보고 있던 터라 수한은 서둘러 고주혁을 소개했다.

< 6. 평범하지 않은 일상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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