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53화 (53/186)

< 5. SSS급 슈퍼스타 >

고주혁은 오늘 촬영하기에 앞서 팬들이 보낸 편지를 봤다. 고주혁의 자만심을 잡아주는 건 수한도 한몫하지만, 팬들도 한몫하였다. 저런 모습을 보면 타고난 연예인 같아서 수한은 고주혁이 손을 내밀었을 때 잡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수한은 그 모습을 촬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개인 SNS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나중에 일이었다. 게다가 SNS로 논란을 일으키는 연예인도 많았기에 수한은 되도록 늦게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수한은 오늘 고주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고주혁 씨."

"네. 형."

"이번 경연은 작곡가 에이치를 거치지 않아도 되죠?"

"네? 그래도 되긴 하는데 작곡가님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아니요. 다른 사람한테도 기회를 주고 싶어서요. 고주혁 씨가 허락한다면요."

"다른 사람이요?"

4강 전은 특별하게 두 번의 경연을 치르기 때문에 수한은 그 기회 중 하나를 이지훈에게 주고 싶었다. 수한의 제안에 고주혁은 오히려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안 그래도 실력자가 붙어서 잘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거든요."

"반응 안 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 가족들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럼 어떤 분이 이번에 해주시나요?"

"이지훈 씨 어떻습니까?"

여기서 이지훈의 이름이 나올 줄 몰랐기 때문에 고주혁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긍정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분이라면 저도 좋습니다."

"물론 아직 당사자의 허락을 받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받아올 거죠? 꼭 하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수한보다 더 간절해 보이는 모습에 수한은 고주혁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였다. 지난번에 이지훈의 곡을 훔치려고 했던 빚을 어떻게든 갚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네. 하지만 곡 퀄리티가 나쁘면 이지훈 씨라 해도 거절해주세요."

그래도 되냐는 얼굴에 수한은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지금이 고주혁에게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우승을 향해 쭉 달려야 했다. 그런 상황인데도 수한은 자신의 제안을 받아준 고주혁에게 고마워했다.

**

"네. 한소원 씨. 이번에는 그렇게 진행할 듯합니다."

수한이 두 번째로 양해를 구한 사람은 소원이었다. 소원은 고주혁보다 더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였다. 오히려 후련한 감정까지 느껴져서 수한은 그동안 자신이 무리하게 했나 싶었다.

[안 그래도 부담스러웠거든요. 매니저님이 도와주시긴 하지만, 그래도요.]

"하긴 그럴만하죠. 그렇다고 완전히 빠지는 건 아니니까 긴장 계속하고 계세요."

[네······.]

기운 없어지는 목소리에 수한이 웃으니 소원 또한 따라 웃었다. 소원의 자존감은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올라간 상태였다. 대중은 고주혁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이쪽 업계 사람들은 작곡가 에이치에 대해 궁금해했다.

"한소원 씨가 에이치라는 건 언제 밝히면 좋겠습니까?"

[저는 되도록 안 밝혔으면 좋겠어요.]

"왜요? 많이 부담스럽습니까?"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따로 유지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이건 온전히 제가 한 것도 아니니까요.]

수한의 능력치 보는 눈이 한몫하긴 했으나, 그래도 수한은 그 공은 오롯이 소원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장에 생각이 없다는데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이름이 언젠가 다른 용도로 필요할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한소원 씨의 뜻이 그렇다면 따르겠습니다."

존중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으로 소원과의 전화통화는 끝이 났다. 수한은 이제 막 도착한 건물에 차를 세워두고, 조여드는 긴장을 풀었다. 지훈과는 약속하고 오기는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거라서 조금 떨렸다. 수한이 전화를 걸기가 무섭게 건물 밖으로 나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어?'

생각한 것보다 더 수척해진 지훈의 모습이 보였다. 잘생긴 모습은 어디로 가고, 볼살이 싹 사라져서 깜짝 놀랐다.

"이지훈 씨."

"아! 매니저님. 먼 곳까지 어서 오세요."

지훈은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수한을 집안으로 이끌었다. 지훈의 집은 그냥 아담한 정도였다. 수한처럼 혼자 살기에 냉장고와 주변에 흩어져있는 종이 외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물론 그 종이 위에 그려져 있는 건 악보였다.

"그동안 작곡을 많이 하셨나 보네요."

"집에 있으니까 할 게 없더라고요. 뭐 마실 거 드릴까요?"

"네. 있으면 주세요."

"혹시 몰라서 주스를 사다 놨는데 다행이네요."

냉장고 안을 보니 반찬이나 이것, 저것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남들처럼 술에 의지하지는 않은 모양인지 그 흔한 맥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수한은 컵에 따라지는 주스를 보다가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기타를 발견했다.

"기타 관리 잘하셨네요."

"네. 제 목숨줄 같은 녀석이니까요. 그래서 오늘 무슨 일 때문에 오셨나요?"

"고주혁 씨가 나오는 슈퍼스타 챙겨보신다고 하셨죠?"

"네. 너무 멋있더라고요."

잠깐 언급만 한 것뿐인데도 지훈의 머릿속에는 벌써 공연하는 고주혁의 모습이 그려졌다. 화면으로만 봐도 그 열기가 전해지는데 실제로 그 현장을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안 되었다. 그러나 그 기분은 수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만약에 고주혁 씨가 이지훈 씨의 곡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네?"

"이번 라운드는 자유곡입니다. 새로운 곡을 받아도 되고, 기존에 있는 곡을 편곡해도 됩니다."

수한은 더 말하려고 했으나, 불안하게 떠는 지훈을 발견했다. 나아진 줄 알았더니 아직은 아닌 모양이다. 지훈은 고개를 필사적으로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못하겠어요."

"이지훈 씨."

"매니저님. 제가 나왔던 경연 안 보셨죠? 보셨으면 이런 제안하지 않았을 거예요."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벽으로 도망치는 모습이 딱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조금 나아진 정도였지 회복된 게 아니었다. 이런 상태에서 수한의 제안은 지훈에게 너무 큰 자극이 되었다. 그러나 수한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아니요. 봤습니다. 오히려 봤기 때문에 이런 제안 드리는 겁니다."

수한이 후회하는 순간이기에 오히려 제대로 보고 왔다. 무대 위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 지훈의 모습은 깊숙하게 수한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다시는 자신의 연예인에게 이런 순간을 줘서는 안 된다는 후회가 제대로 박혔다.

수한이 물러서지 않을 기세를 보이자 지훈은 서둘러 달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서 가라는 듯이 턱짓을 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하는 거로 할게요. 그러니까 이만 가주세요."

"지훈 씨."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이만 가주세요. 매니저님."

부탁을 넘어서서 거의 비는 목소리였기 때문에 수한은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이만 물러서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이야기는 하고 싶었다.

"고주혁 씨의 무대를 봤다면 이현우 씨의 무대도 봤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라면······."

"스타로드에서의 지훈 씨와 같은 조건에 있는 사람입니다."

"저와 같은 조건이라고요?"

지훈이 느끼기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지 어느새 떨던 것을 멈추고 의아하게 수한을 봤다. 수한은 그런 지훈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저는 그 사람보다 지훈 씨가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환경에 여전히 떠밀리는 중이거든요. 아마 끝까지 하차할 용기도 없을 겁니다."

수한이 제대로 지훈을 쳐다보자 지훈은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은 얼굴이었다. 수한은 이만하면 됐다고 판단하며 지훈의 집에서 나왔다. 지훈에게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훈은 늘 수한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지훈에게서 온 마지막 메시지에 수한은 무거운 한숨만 내쉬었다.

[죄송해요. 매니저님. 아무리 생각해도 못하겠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

"그런 상태라 이거지?"

"네. 제가 너무 조급하게 판단한 건 아닌가 싶어서요."

지훈과 마주했을 때는 이대로 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면 수한이 너무 밀어붙여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어 수한은 성민에게 상담을 요청하였다.

"이번에 네 욕심이 크긴 했어."

"역시 그런 겁니까?"

"그래. 나아지긴 했어도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래서 이 상황을 고주혁에게도 말했어?"

"아니요.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결정된 후에 말하는 게 고주혁 씨한테도 좋다고 판단했거든요."

"만약 끝까지 안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회사에 있는 팀에게 맡길 거야?"

회사 내에서는 그러길 바랐지만, 수한은 반대였다. 회사는 수한의 마음대로 수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지적해서 사이만 나빠질 수 있다. 회사 내에서 수한의 평판이 좋았기 때문에 수한은 알아서 사리는 법을 익혔다.

"그럼 다시 에이치?"

"네.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대표님도 에이치가 누구인지 궁금해하시던데······ 대표님한테도 누구인지 말 안 할 거지?"

"네.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래. 비밀로 할 거면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마. 여기는 입이 가벼운 사람투성이거든. 날 포함해서."

성민은 좋은 사람이었다. 나중에 이 회사에서 나가게 되어도 그 인연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수한은 성민의 대답으로 판단을 마쳤다. 마음 같아서는 지훈을 더 설득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남은 시간이 촉박했다. 수한은 할 수 없이 소원에게 연락했다.

[시간이 없긴 한데 괜찮아요. 매니저님이 도와주시면요.]

"물론 도와야죠. 그럼 고주혁 씨에게도 그렇게 말해두겠습니다."

수한은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고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고주혁은 뜻밖에도 회사 내 연습실에 와있었다. 그래서 수한은 얼굴을 직접 보기 위해 연습실로 직접 갔다.

고주혁은 성실을 사람으로 만들면 저렇게 생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모습에 수한이 수건을 건네주자 고주혁이 조심스레 얼굴을 닦았다. 거칠게 땀을 닦던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약간 연예인 티가 나네요."

"제 얼굴이 생명이라고 누가 편지에 썼더라고요."

고주혁은 민망하다는 듯이 웃으면서도 그 내용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지 어깨가 위로 솟았다. 수한은 훈훈한 분위기가 풍기는 가운데서 이런 말을 하려니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고주혁 씨. 지훈 씨가 거절했습니다."

"네? 왜요?"

"스타로드 이후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고주혁은 수한이 생각한 것보다 기대를 많이 했는지 예상한 것보다 더 크게 실망했다. 수한은 결정도 되기 전에 괜히 말했나 싶었다.

"작곡가 에이치가 다시 한다고 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분 상태가 많이 안 좋으세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 기운 넘치던 모습은 사라지고, 고주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한숨만 연신 내쉬었다. 그만큼 지훈에게 마음의 빚이 남아있는 게 보여서 수한 또한 생각이 많아졌다. 그 순간, 수한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미소를 지었다.

"고주혁 씨."

"네?"

"굳이 지훈 씨에게 곡을 따로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고주혁은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수한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눈치채 환하게 웃었다. 이지훈이 작곡한 곡이 있고, 이미 그 곡을 고주혁이 부른 적도 있다. 수한은 이번 라운드에 그 곡을 부르게 할 생각이었다.

[가을이 너라면- 대중성: A, 음악성: S, 최고 순위: 1, 성장 가능성: 76%]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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