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50화 (50/186)

< 5. SSS급 슈퍼스타 >

"안녕하세요."

"왔어?"

이른 시간인데도 성민은 일찍 출근하여 자리를 지켰다. 늘 사무실에 있는 걸 보면 사무실에 사는 사람 같다. 그만큼 성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수한은 성민의 목에 걸려있는 목베개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거의 성민과 한 몸이었다.

"설마 집에 안 들어가신 겁니까?"

"아니. 그냥 할 일이 있어서 일찍 출근했지. 근데 너도 일찍 출근한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저는 고주혁 씨 때문에 일찍 출근한 거라서요."

곡을 받은 고주혁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방송 때문에 부담이 많이 되었는지 아침부터 연습실에 나와서 연습을 했다. 경연 당일 날 몸 상태를 생각하면 무리해서는 안 되는데도 고주혁이 웬일로 고집을 부렸다. 수한은 시간이 조금 있으므로 일단은 내버려 두기로 했다.

"곡은 잘 빠졌고?"

"네. 자신 있습니다."

"그래서 작곡가 에이치가 누구인데?"

"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는 말해줄 수도 있는 거잖아."

어서 말해달라고 간절하게 바라봤지만, 그래 봤자 수한의 눈에는 그냥 아저씨였다. 수한이 눈 버렸다는 듯이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자 성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 연예인들만 봐서 눈 높아졌다 이거지?"

"제 눈이 아무리 낮아도 실장님은 아닙니다."

"이거 뼈 때리네?"

수한이 손을 내리자 나름 서운하다는 얼굴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작곡가 에이치의 정체를 숨기는 건 소원을 위한 일이니까. 수한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소원이 고주혁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지난 방송 보니까 이재성 PD가 대놓고 이현우 밀어주던데 괜찮겠어? 뭐. 한 번 방송 정도로는 고주혁의 인기가 꺾이지는 않겠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 나오면 나중에 불리해질 텐데."

"저보다 더 걱정이 많으시네요."

"이건 네가 너무 걱정을 안 해서 그러는 거야."

"투표수 조작만 하지 않으면 괜찮을 겁니다."

"하긴 그래. 케이블이긴 해도 방송국인데 설마 유료 투표까지 조작하겠어?"

이게 일반인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수한은 그 선까지 건드리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말에 그저 웃기만 했다.

"오히려 그것보다 고주혁 씨의 분량이 없어질까 봐 걱정입니다."

"하긴 그것보다 심각한 건 없겠지. 그래서 대책은 세워봤어?"

"네. 일단은 생각나는 게 있긴 해서요."

열심히 고민해본 끝에 나온 해결책이었다. 고주혁에게도 이미 말을 전달해두었기 때문에 결과물만 기다리면 됐다. 그로도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그 방법이 뭔데?"

"그건 방송으로 확인하세요."

"김수한이. 너 많이 컸다?"

"실장님만큼 커야 많이 큰 게 아니겠습니까?"

생각한 것보다 더한 권력욕을 보이는 수한에 성민이 살짝 놀랐다. 물론 수한은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 적당히 크고 나갈 생각이므로 반쯤 농담이었다.

"근데 생각보다 이현우 씨가 속한 기획사의 힘이 큰 것 같습니다."

촬영장에서 이재성 PD를 대했던 걸 생각하면 그랬다. 이재성 PD가 귀찮게 여기면서도 무시 못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당연하지. 다른 곳도 아닌 엘 엔터테인먼트인데. 대형 마트가 동네 구멍가게까지 먹으려는 심산이야."

엘 엔터테인먼트. 배우 위주로 돌아가는 가온 엔터테인먼트와 다르게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는 대형 기획사였다. 세대별로 대표하는 남녀 아이돌 그룹을 소유한 대형 기획사이기 때문에 그 힘이 셌다.

처음에 성민에게 조사를 부탁했던 수한도 뜻밖에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으니까.

'애초에 거기는 여기에 관심도 없었는데 우연히 걸친 거랬지.'

처음 이현우가 주목을 받지 못한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다. 엘 엔터테인먼트도 스타로드에 큰 기대를 걸었으니까. 지금도 엘 엔터테인먼트의 기대주는 스타로드에서 활약 중이지만, 이미 그 프로그램은 망했다고 볼 수 있었다.

'뒤늦게라도 이쪽으로 튼 걸 보면 행동력은 빨라.'

대형 기획사가 아니면 방송 중간에 방송국과 이런 식으로 거래하는 게 쉽지 않았다. 수한은 그러면서도 뜨지 못한 이현우를 생각하자 연예인의 스타성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게 되었다.

"아! 맞아. 최명훈 소식이 들려와서 말이야."

"최명훈이요?"

"어. 나는 당연히 다른 업계로 갈 줄 알았는데 다른 기획사에 취직했더라고. 아는 사람이 어떠냐고 연락했길래 특별히 나쁜 말은 하지 않았어."

보통이라면 명훈에 대해 나쁘게도 말할 수 있겠지만, 성민의 성격이 좋은 탓이었다. 그보다 수한은 다른 게 더 궁금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더블에스 엔터테인먼트."

그 기획사라면 수한이 명훈과 함께 일했던 기획사의 이름이었다. 설마 그 이름이 이런 식으로 들릴 줄 몰랐기 때문에 수한은 깜짝 놀랐다.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피한 곳이었다. 결국, 명훈이 그 기획사로 들어가게 되자 수한은 소름이 돋았다.

'그래 봤자 예전과 다르게 관계가 완전히 뒤틀려졌으니까. 이미 과거와는 달라졌겠지만.'

"나중에 보게 되면 놀라지 말라고."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지훈 말인데 연락해봤어?"

지훈의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수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런 식으로 계속 연락하는 게 좋은가 많은 생각도 들게 했다.

"하고는 있는데 제 전화도 안 받습니다."

"이러면 네가 계획하는 일에 이상 오는 거 아니야?"

"계획도 계획이지만, 지훈 씨 상태가 어떤지 걱정입니다."

연예인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연예인의 상태도 함께 살피는 게 매니저였다. 수한이 과거로 돌아와서 가장 후회하는 게 있다면 지훈을 최명훈에게 맡긴 거였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나서야겠네."

"실장님이 직접이요?"

"이런 일 하라고 상급자가 있는 거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 당연한 것을 지키지 않아 사회가 어지러운 게 아닌가 싶었다. 수한은 성민만 믿는다는 듯이 믹스커피를 타와 그의 앞에 대령하였다.

"맞다. 조금 있다가 대표실로 가봐. 대표님이 널 찾으시네."

"잘 되어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요?"

"아마도 그렇겠지? 대표님이 신경 안 쓰는 척해도 은근 방송 다 챙겨보거든. 자기가 한 말이 있으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겠지."

"역시 그렇겠군요."

어쩌면 이런 상황을 다 알고 그런 제안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 만약 성민이 그 제안을 했으면 의심을 안 했겠지만, 남일이기에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회사 대표를 못 믿어야 하는 상황이라니.'

애초에 시작부터 꼬인 관계이니 수한이 어찌 해보려고 해도 해볼 수가 없었다. 자기 위치에서 나름대로 발버둥을 칠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조금 있다가 찾아가 보겠습니다."

사무실 안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수한은 곧바로 자리에 앉아 일하기 시작했다.

**

"오랜만이네."

"네. 대표님."

수한은 대표실 안에서 부는 찬바람에 남일이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상 위에는 당장 결제해야 할 서류들이 쌓여있는 게 보였다.

"요즘 방송 잘 보고 있어."

"네. 실장님께 들었습니다."

"이 실장이 사람은 좋은데 입이 참 가볍단 말이야."

수한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그저 웃기만 할 뿐 동조하지 않았다. 이간질의 시작은 이런 데서 시작하는 거니까. 남일도 특별히 의미를 담고 말한 건 아니기에 순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그래. 힘든 건 없고?"

수한은 묘하게 간을 보는 듯한 남일의 태도에 역시나 싶었다. 남일이 노골적으로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눈빛을 보냈다.

'내정자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네.'

그러니까 고주혁을 우승하게 하라는 어려운 과제를 낸 것이다. 수한은 여기서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했다.

'대놓고 도움을 청하느냐. 아니면······.'

"현장 일이야 다 힘들죠."

수한의 대답에 남일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폈다. 기대했던 답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이 실장한테 들었어. 회사에서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지?"

"조금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나?"

수한은 바로 대답하려다가 머뭇거리게 되었다. 남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솔직히 말해 아직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 묻는 걸까? 이럴 때는 돌직구로 물어보는 게 답이 될 수 있다.

"만약 제가 도움을 청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야지."

당연한 걸 묻는다는 식으로 대답해서 수한은 정말 그런 것인가 하마터면 마음을 놓을 뻔했다. 그러나 남일은 냉정하게 웃으며 수한의 기대와 다른 것을 말했다.

"다만 이전에 약속했던 건 없던 거로 하겠네."

"가수 분야를 제게 맡긴다던 그 약속 말입니까?"

"그래."

성민이 들었다면 이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과제가 아니었느냐고 따졌을 내용이었다. 애초에 대형 기획사를 수한이 어떻게 이기겠는가?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과제를 던져준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도 수한의 승부욕을 불타는 건 남일의 저런 태도 때문이었다. 어떻게서든 수한을 짓눌러보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이래서 이유 없는 적의가 무섭다고 하는 건가?'

수한은 말끔히 회사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했다. 일단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게 답이었다.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끝까지 해보고 실패하는 게 나았다.

"그럼 회사의 도움을 받지 않겠습니다."

"그래?"

수한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남일을 보며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애써 태연하게 웃었다. 자신에게도 이런 승부욕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못 들 만큼 오기가 생겼다.

"네. 해보겠습니다."

"그래. 결과를 기대하지. 그럼 이만 가보게."

"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수한은 일부러 더 딱딱하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한은 대표실 문을 닫고 열정적으로 눈을 빛냈다.

'내가 이번 일 반드시 해내고 만다.'

든든한 조력자들이 함께 있는데 못 할 이유가 없다. 수한은 의지로 불타며 고주혁이 있는 연습실을 향해 걸어갔다. 고주혁의 열정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수한이 나가기가 무섭게 남일은 웃음기를 싹 지워냈다. 남일이 원하던 그림은 수한이 항복하며 남일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물론 수한의 그런 사람이었다면 이런 기회가 주어졌을 리가 없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현실에 수긍하며 살았을 것이다.

'역시 마음에 안 들어.'

남일의 기대와 다르게 이럴수록 의지에 불타는 것도 그렇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그랬다. 최명훈이 과거의 남일을 보는 것 같았다면 수한은 과거의 그자를 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승자는 남일이었지만, 그 방법이 깨끗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일은 수한을 볼 때마다 그자를 떠올리는 게 불쾌했다. 그자도 수한처럼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성품이었다.

'본인이 굳이 도움을 청하지 않겠다는데 도와줄 이유는 없겠지.'

남일은 자리에 앉다가 갑작스럽게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한 상대는 남일이 예상하지 못한 곳이었다. 이현우가 속해있는 대형 기획사, 엘 엔터테인먼트였다.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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