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49화 (49/186)

< 5. SSS급 슈퍼스타 >

'사랑스런'을 틀자 걸그룹 특유의 청순하면서도 상큼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듣기만 해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지 막막함이 찾아오는 멜로디였다.

[사랑스런- 대중성: A, 음악성: B, 최고 순위: 3, 성장 가능성: 50%]

수한이 소원을 보자 소원은 그와 다른 생각을 하는지 한껏 집중하는 표정이었다. 수한과 만나기 전부터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소원의 노트에서 발견되었다.

"어떻게 편곡할지 생각하셨습니까?"

"네. 조금은요."

대답은 했지만, 수한을 인식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다. 명훈이라면 기분 상했을 수도 있지만, 수한은 차분하게 소원과 마찬가지로 편곡 방향을 떠올렸다. 상큼한 느낌을 주는 멜로디인데 이상하게 눈앞에 그려지는 건 보름달이었다.

"보름달이라······."

"보름달이요?"

"네? 네."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말이라 수한이 얼떨결에 대답하니 소원의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 수한은 순식간에 까맣게 물들어져 가는 소원의 노트를 보며 소원이 어떤 식으로 방향을 잡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혹시 사극풍으로 바꿀 생각입니까?"

"네! 맞아요!"

소원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지훈이 기타로 작곡을 한다면 소원의 주 무기는 피아노였다. 피아노를 전공으로 살려 무언가를 할 실력은 안 되지만, 적어도 악보를 보면 기본은 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수한은 일부러 피아노가 있는 장소를 빌려서 만났다. 소원은 '사랑스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건 편곡 이전에 들었던 원곡이었다. 가벼우면서도 굉장히 빠른 박자였다.

"원래 이렇게 활기차잖아요?"

"네."

"그걸 이런 식으로 바꿀 생각이에요."

속도가 느려진 것뿐인데도 아련하게 들려오는 멜로디에 수한은 짧게 감탄했다. 게다가 조금씩 더해지는 변주가 '사랑스런'을 순식간에 사극풍으로 만들어버렸다. 수한은 고주혁의 목소리로 불린 노래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곡이 가장 어울리는 곡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소원이야 음악에 관해서는 기억력이 좋아서 굳이 적어놓을 필요는 없지만, 수한은 달랐기 때문에 소원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그대로 핸드폰에 녹음하였다. 더불어 '사랑스런'의 능력치가 변하기 시작했다.

[사랑스런- 대중성: A, 음악성: A, 최고 순위: 2, 성장 가능성: 60%]

음악성과 순위, 그리고 성장 가능성이 올라갔다. 성장 가능성이 올라갔다는 건 아직 더 어딘가를 건드리면 괜찮아진다는 뜻이었다. 수한은 다시 한 번 연주해달라고 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조금 더 극적으로 바꾸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요?"

수한이 지적하기가 무섭게 소원이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늘 작업해왔던 방식이기 때문에 특별히 기분 나빠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원도 수한의 말대로 하면 더 음악이 괜찮아진다는 걸 잘 알았다. 물론 수한과 다르게 소원은 소원의 음악 감각이 알려주는 거였다.

"한소원 씨는 정말 천재네요."

수한이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소원이 활짝 웃었다. 결국에는 저렇게 큰 칭찬으로 끝나니 기분이 안 좋을 리가 없었다. 물론 아직은 저런 칭찬이 낯설어서 부담감도 있긴 했지만, 수한은 무작정 칭찬만 해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 부분을 다시 손대볼까요?"

"네. 좋아요."

소원이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자 공간에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한은 바뀌는 능력치를 확인하며 이전 것이 더 나은 것 같다며 다시 해보자고 독려하였다. 몇십 번을 고치고 나자 수한도 소원도 어느새 지쳤다. 소원은 피아노 뚜껑을 슬쩍 닫으며 물었다.

"고주혁 씨한테는 안 가봐도 돼요?"

"이미 외부의 일이 있다고 말해둔 상태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배고프시죠? 제가 저녁 사드리겠습니다."

점심시간에 만나 벌써 해가 지고 있으니 소원이 지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그만큼 결과물은 훌륭했다.

[사랑스런- 대중성: S, 음악성: A, 최고 순위: 1, 성장 가능성: 10%]

수한의 능력치를 볼 수 있는 눈이 한몫하였다. 소원은 고개를 끄덕인 후 벗어두었던 모자를 썼다. 여전히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소원이 조금이라도 건강해진 건 작곡에 집중하고 있어서였다.

"뭐 드시고 싶으십니까?"

"저 돈가스요."

"돈가스요?"

"매운 돈가스요."

전혀 매운 걸 좋아하게 생기지 않아서 살짝 놀랐다. 그러고 보면 수한은 매운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매운 걸 먹는 사람들을 존중은 하나, 억지로 권하면 오히려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다른 거 고를까요?"

그러나 저렇게 소원이 눈치를 보며 말하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돈가스라면 매운 거 외에도 여러 가지를 팔 것이니 희망이 있었다.

수한은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며 매운 돈가스 맛집을 찾아봤다. 예전에 먹는 방송을 전문으로 하는 연예인의 매니저와 친분을 쌓아둔 적이 있어서 위치와 가게 이름만 봐도 어디가 맛집인지는 대충 알았다. 수한은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억지로 미소가 지어졌다.

'맞아. 이랬지······.'

처음에는 매운맛으로만 승부를 겨루겠다면서 매운 돈가스만 팔았다. 수한은 절망에 빠지며 소원을 곁눈질로 살폈다. 그러나 소원은 그 어느 때보다 기대하는 얼굴로 수한의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매워 보이는 사진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블로그에 올라와 있었다.

'아휴. 어쩔 수 없지.'

원래 매니저라는 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최대한 연예인이 불편함을 겪지 않게 맞춰주는 것. 다른 건 몰라도 수한이 이런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수한은 내일 난리가 날 위, 장에게 미리 명복을 빌어주며 소원과 함께 매운 돈가스 맛집으로 갔다.

"와."

다행히 오픈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았다. 모자챙을 내린 것만으로도 소원의 얼굴이 거의 가려졌다. 아무리 소원이 연예인치고는 평범하다고 해도 일반인에 비해서는 아니었다. 행복해 보이는 미소에 수한까지 웃음이 나왔다.

"맛있어 보여요."

"그렇죠? 얼른 드셔보십시오."

수한은 제 앞에 놓인 매운 돈가스를 애써 외면하며 소원이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많이 먹고 싶었는지 평소라면 수한 먼저 먹으라고 했을 소원이 먼저 먹음직스럽게 돈가스를 잘라낸 후에 돈가스를 한입에 넣었다. 매콤한 맛이 확 올라오는지 소원의 눈이 커지는데 오물거리는 입이 먹는 방송의 소질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성예진 씨도 그렇고, 한소원 씨도 그렇고. 나중에 너튜브에서 먹는 방송 하면 잘하겠네.'

소원은 한창 먹다가 수한이 아직 돈가스에 손대지 않은 걸 인식하고는 신나게 먹던 걸 멈췄다. 그리고 수한과 눈이 딱 마주치는데 누가 봐도 먹고 싶어 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수한은 소원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얼른 돈가스를 입에 넣었다. 동시에 매운맛이 올라왔지만, 수한은 전혀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맛있다는 듯이 돈가스를 먹었다.

'먹기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되는데······.'

수한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지만, 수한은 말하기도 뭐하게 끝까지 돈가스를 다 먹었다. 그래서 소원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수한이 그만큼 소원을 배려한다는 거니까. 큰 것보다는 오히려 이런 사소한 것이 더 감동을 주었다. 소원은 수한이 배려한 만큼 더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우리 개사는 안 해도 돼요?"

"개사요?"

"네. 아무래도 노래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굳이 개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대'라는 명칭이 나오긴 하지만, 그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쓸 수 있는 명칭이었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시를 생각하면 '임'이 나라가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를 잘 이용하면 굳이 개사할 필요는 없었다.

"맛은 어떠셨습니까?"

"나중에 매운 거 잘 드시게 되면 다시 와요."

"네?"

"매운 거 못 드시잖아요."

수한은 결국 자기가 그만큼 티를 내었구나 싶어 어색하게 웃었다. 연기력 B의 능력치가 매운맛 앞에서 굴복해버렸다.

"그럼 그때까지 매운맛 훈련을 미리 해두겠습니다."

자신의 연예인이 매운맛을 좋아한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원래 매운 것도 먹을수록 는다고 했다. 수한은 차근차근 매운 것을 늘리기로 하며 돌아가는 길에 우유를 사 마시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술 마시는 것보다 몸이 더 난리가 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불안하였다.

수한이 소원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자 소원이 걱정되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편곡한 곡 괜찮겠죠?"

재미있게 하긴 했는데 하루 만에 한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지난 방송에 나온 곡만 해도 거의 삼 일은 걸쳐서 나온 거였기 때문에 불안한 게 당연했다.

"저를 믿으십시오."

"믿기는 하는데 저를 못 믿어서요."

소원은 다 좋은데 자존감이 낮은 게 탈이었다. 가만히 보면 지훈도 그렇고, 소원도 그렇고 본인들의 능력이 뛰어남에도 자기 자신을 잘 못 믿었다. 그게 온전히 두 사람의 탓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그래도 수한은 소원의 자존감이 커졌으면 했다.

"그럼 저와 내기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만약 이번 곡으로 고주혁 씨가 1위를 하면 한소원 씨가 이기는 거고, 만약 1위를 못하면 제가 이기는 겁니다."

수한은 소원의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다. 확실히 귀엽기는 했다. 생각하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나서.

"이거 제가 불리한 거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소원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어도 수한은 이 내기를 무를 생각이 없었다. 수한이 나름 단호하게 표정을 짓자 소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내기에서 이기면 뭐할까요?"

"서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로 합시다."

"좋아요."

수한은 승부욕에 불타는 소원의 눈빛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이건 수한이 철저히 불리한 내기였다. 수한과 소원의 내기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소원과 고주혁이 한편이었다. 소원이 이 내기에 수락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럼 저는 제가 이기면 뭘 해야 할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저도요."

"서로 무리한 건 하지 않는 겁니다."

"그거야······ 이긴 사람 마음이죠."

자신감이 떨어졌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소원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게 수한이 보고 싶었던 모습이기에 수한은 조심히 들어가라고 인사했다.

"잠시만요!"

"네?"

소원이 집안에 급하게 들어가더니 안에서 1.5 리터 우유를 가지고 나왔다. 뜯지도 않은 새 우유라서 수한이 당황하기가 무섭게 소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매운 돈가스 같이 먹어주셔서 감사했어요. 들어가는 길에 드세요."

그러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수한은 황당해하며 제 품에 안긴 우유를 보았다. 생각한 것보다 소원의 손이 큰 것 같아서 수한은 아무 생각 없었던 내기 보상에 불길함을 느꼈다.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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