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SSS급 슈퍼스타 >
"마지막 탈락자는 임수연 씨입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도의 한숨 소리가 울려 퍼지는 스튜디오 안이었다. 고주혁이야 원래도 탈락 가능성이 작긴 했지만, 그래도 떨리는 건 매한가지였다. 수한은 여전히 불안하게 앉아있는 이현우를 보며 쓰게 웃었다. 스타로드와 다르게 이재성 PD의 편집 능력 덕분에 그는 무사히 살아남았다.
'게다가 점수만 본다면 2위다.'
초반에 화제성 몰이를 고주혁이 다했기 때문에 고주혁이 시청자 투표 1위인 건 아무도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이현우가 2위인 건 다 이재성 PD의 작품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살짝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걸 카메라 앞에서 표현하는 바보는 없었다. 어제 방송에서 이재성 PD가 고주혁에게 어떻게 했는지 봤기 때문이다.
'역시나 방송국이 갑이다.'
출연자가 열심히 해도 이재성 PD의 눈에 어긋나면 바로 추락할 수 있다. 그나마 그동안 호감도를 많이 쌓아둔 고주혁이니까 버텼지, 아니었으면 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번 편에서는 여덟 명이나 탈락했기 때문에 서로 안아주며 울었다. 함께 팀으로 고생한 사람들도 있었기에 서로 간의 정이 많이 들었다.
"주혁 형. 팬으로서 응원하겠습니다!"
"오빠. 다음에 뵈어요."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은 건 고주혁이었다. 놀랄 만한 가창력도 가창력이지만, 고주혁은 수한이 하는 것을 쭉 지켜본 사람이었다. 수한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지 봤기 때문에 그를 그대로 행동하였다. 그렇다고 가식적으로 행동한 것도 아니었다. 최대한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가식과 진심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았다.
"내가 따로 연락할게!"
고주혁은 글썽거리면서도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모습이 카메라 안에 담기니 인상적이었다. 물론 수한은 그 장면을 살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쓰게 웃었다.
"오늘도 오셨네요."
수한은 이런 현장까지 왜 오냐는 듯이 귀찮게 보는 이재성 PD의 눈길에 완전히 그의 마음이 고주혁에게서 떠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
어쩌면 이다음부터는 고주혁의 방송 분량이 확 줄어들 수도 있다. 악마의 편집보다 더 무서운 게 통편집이니까. 아예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그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
'역시 권력을 주면 무서워지는 타입이구나.'
그에 비해 다른 스태프들은 예전과 다를 것 없이 수한을 대했다. 그야 수한이 일을 도와주면 줬지, 방해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 한 사람도 빼먹지 않고 매일 와서 인사하니 호감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수한 씨. 이야기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요?"
"슈퍼스타 시즌2 확정됐대요."
유난히 현장 분위기가 좋다고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 시즌2의 메인까지 이재성 PD가 맡는다고 하니 더 두려울 게 없어졌다.
"축하드립니다."
"시즌2 하면 그때도 오실 거죠?"
"가능하면요."
물론 빈말이다. 저렇게 권력을 주면 달라지는 인간을 별로 상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그의 독재가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해지지는 않았으니까. 나중에는 그 점 때문에 까이는 게 일상이 된 사람이 바로 이재성 PD였다.
'게다가 노래를 잘 부르는 일반인 참가자들도 어느 정도 한계는 있는 법이니까.'
초반 시즌은 잘 될지 몰라도 뒤로 갈수록 참가자들의 노래 실력이 떨어졌다. 덕분에 화제성도 떨어지고, 시청률도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 결국, 하락세를 걷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그건 나중 일이지, 지금 당장에 일이 아니므로 수한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 때문인지 가까이에 있던 스태프 하나가 말문을 열었다.
"PD님이 지금 예민해진 상태라서 그래요. 그러니까 까칠하게 대한다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PD님이요? 시즌2 확정이면 기분 좋은 일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방송국으로 압박이 조금 들어오나 봐요."
수한은 무슨 소리인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수한처럼 이재성 PD에게 인사를 하러 온 한 사람의 모습에 이해하였다. 이재성 PD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알겠어요."
"어제 방송분 봤는데요. 현우가 왼쪽 얼굴이 더 잘 나오는 편이거든요. 앞으로 편집할 때······."
"알겠다니까요. 제가 알아서 합니다."
이현우의 사촌이라 불리는 그 남자였다. 어제 편집을 그렇게 잘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부탁하는 모습에 수한마저 인상이 찌푸려졌다. 어제 그 정도면 이재성 PD는 최선을 다한 거다. 그런데도 만족을 못 하는 걸 보면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보셨죠?"
"아! 네."
이재성 PD 외에 여러 스태프와도 친분을 쌓아둬서 다행이었다. 수한은 어쩌면 저것을 이용하면 재미있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도 촬영은 계속되었다. 열여섯 명에서 여덟 명으로 줄어드니 공간이 남아도는 느낌이었다.
"다음 경연곡은 다른 참가자들의 곡을 지목하는 것입니다."
사회자의 말에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연기력이 좋지 않아서 과장되게 놀라는 참가자도 있었다. 다들 자기가 방송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알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반응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를 실천하였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경연 내용은 안 그래도 힘든 자갈길을 가시밭길로 만드는 것이었다.
"순위 순서대로 다른 참가자들에게 곡을 지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1위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지목한 곡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다만 가장 피하고 싶은 곡을 먼저 다른 참가자에게 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사회자가 불러주는 곡명들을 들으면서 참가자들의 안색이 붉어졌다가 하얘졌다가 반복하였다. 그중에서 고주혁은 담담하게 들었지만, 그에게도 어느 정도 부담감은 있었다.
"먼저 1위인 고주혁 씨부터 다른 참가자들의 곡을 지목해주시길 바랍니다."
"그전에 각자 하고 싶은 곡을 들었으면 합니다."
고주혁의 제안에 참가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수한은 그런 고주혁을 보며 잘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경우의 수를 대비해두기는 했다. 다행히 고주혁은 그를 기억했다.
'적어도 다른 참가자들의 의견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지.'
외국이면 모를까 한국은 능력이 좋을수록 겸손한 사람을 좋아했다. 어제 방송으로 고주혁이 오만하게 그려졌기 때문에 특히나 조심해야 했다. 고주혁의 말에 따라 각자 원하는 곡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고주혁은 그중에서 자기가 소화해내기 힘든 곡을 원하는 참가자에게 주었다.
스튜디오 안이 훈훈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을 때 수한은 이현우의 시선이 묘하게 다른 곳에 향해있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거군.'
수한이 이현우의 사람이라면 아마 똑같은 행동을 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야 고주혁의 선의가 묻힐 테니 말이다. 그러나 모두가 수한과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수한은 이현우를 향해 고개를 젓는 남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알아서 땅을 파고 들어가는데 말릴 생각은 없었다.
"저는 ‘사랑스런’을 고주혁 씨께 드리겠습니다."
가장 큰 경쟁자인 고주혁을 물리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이현우의 선택이었다. 다들 속으로 피했던 걸그룹 노래였기 때문에 반응이 컸다.
'이럴 줄 알았지.'
처음 곡명을 들을 때부터 왠지 고주혁에게 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고주혁도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웃으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다. 그 덕분에 대부분이 고주혁에 대해 생각이 바뀌었다.
'멘탈 장난 아니게 세다.'
카메라를 보고 있던 이재성 PD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흠- 소리를 내며 고주혁을 봤다. 그렇다고 고주혁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가 오늘 고주혁을 보고 마음에 안 들어 한 건 제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은 시청자들의 반응 때문이었지, 고주혁이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재성 PD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쪽은 이현우였다.
'이재성 PD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판단을 제대로 못 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를 이재성 PD가 배려해줄 필요는 없었다. 수한은 이재성 PD의 미간이 좁아지는 것을 보며 은근 통쾌해했다. 그렇다고 그를 티 내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촬영이 무사히 끝나고 고주혁은 차 안에 타서야 편안하게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고주혁은 오늘 하루 죽을 맛이었다. 아닌 척해도 어제 방송을 보고 나서 괜찮았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 걸린 곡 또한 고주혁이 피하고 싶은 곡 2위였기 때문에 표정 관리하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고주혁 씨. 다음에는 연기자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늘처럼만 잘 버티면 됩니다. 그 이상으로 하려고 노력하지는 마세요.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요."
"네. 매니저님."
수한은 제 말에 잘 따라주는 고주혁을 고맙게 생각했다. 처음에 좋지 않았던 시작이 이제는 흐려져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수한과 고주혁의 합은 한소원과 고주혁의 합보다 더 좋았다.
"사랑스런에 관해서는 에이치와 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근데 그분, 제가 만나볼 수는 없는 거죠?"
"네. 워낙 노출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에이치가 한소원이라는 건 고주혁에게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고주혁은 아쉬워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것 같기에 고주혁은 더 그 사람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수한이 안 된다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나중에 그쪽에서 만나고 싶다고 하면 생각해보겠습니다."
"네.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매니저님."
수한은 고주혁이 집에 무사히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야 차를 출발했다. 그러면서 소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 안에서도 작곡가 에이치가 누구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수한은 아무도 없는 차 안이나 집에서 소원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한소원 씨. 경연곡이 결정되었습니다."
[어떤 곡인데요?]
누가 들어도 들뜬 목소리라 수한의 기분까지 좋아졌다. 소원도 어제 방송을 보았으니 기분이 좋은 게 당연했다.
"사랑스런이라는 곡입니다."
[사랑스런이라면 걸그룹 노래요?]
당황한 소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워낙 상반된 스타일이라 당황하는 게 당연했다. 들떴던 소원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가라앉으면서 자신감을 잃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한소원 씨.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할 수 있을 겁니다."
[네? 그럼······.]
"우리가 늘 하던 것처럼 저와 함께하시죠."
수한이 제대로 음악을 배우고 있는지 실험해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능력치를 믿기는 하지만, 그래도 실제로 써본 적은 없으니 기대가 되었다.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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