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47화 (47/186)

< 5. SSS급 슈퍼스타 >

이현우는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치고는 나쁘지 않게 무대를 마쳤다. 그러나 앞에 무대가 고주혁이어서 그의 무대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경연 순서가 좋지 못했다. 방청객들로부터 기계적인 환호성은 나왔지만, 무대를 마친 이현우도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내려왔다.

'일단 무대만 본다면 이현우가 유력한 탈락 후보인데.'

그러나 이현우에게도 어느 정도 팬이 붙었기 때문에 탈락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시청자 투표는 경연이 방송된 후에나 시작된다. 이재성 PD가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탈락자가 결정된다는 뜻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모든 무대가 끝나자 참가자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 고생했다고 다독였다. 경연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는 자유였다. 빡빡하게 달려온 만큼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물론 고주혁은 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매니저님. 동영상으로 촬영했나요?"

"네. 물론 했습니다."

"그럼 보여주세요."

"아니요. 오늘은 쉬는 게 낫겠습니다. 컨디션 유지 계속하려면요."

지금 당장 좋다고 해서 내일도 좋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컨디션이 좋을 때 더 관리해야 한다. 고주혁이 얼마나 들떠있는지 알기 때문에 수한은 고주혁을 조절했다.

"그러면 내일 연습실에서는 봐야겠네요."

"네. 그러면 우선 집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핸드폰으로 촬영한 거라 좋은 음질로 들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방송에서 보는 것보다는 빨리 볼 수 있어서 고주혁은 여전히 들뜬 상태였다. 수한은 그 열정이 마음에 들어 웃다가 무대 화장을 다 지우고 가는 이현우를 발견했다. 그 옆에는 화가 나 있는 사촌이라는 남자가 붙어있었다.

'컨디션 조절도 매니저가 챙겨야 할 부분인데······.'

기획사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그 정도도 모를까 싶었다. 그렇다고 괜히 오지랖을 피울 필요는 없어서 수한은 가볍게 목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그런데도 남자는 인상을 전혀 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럴수록 더 주눅이 드는 이현우가 보이면서 수한은 왠지 모르게 지훈을 떠올렸다.

'최명훈이 지훈 씨한테도 저랬을까?'

저것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다. 수한이 여전히 연락이 안 되는 지훈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졌다.

"살벌하네요."

두 사람을 지나치고 나서 고주혁이 꺼낸 말이었다. 수한 또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수한은 내심 안도하는 고주혁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생각하는 게 얼굴로 다 드러나서 웃겼다. 물론 수한의 앞이라서 저렇게 편하게 마음을 다 드러내는 거겠지만.

"집에 들어가시면 푹 쉬세요."

"네. 매니저님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지나치게 힘을 준 목소리에 수한이 눈을 가늘게 뜨자 고주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수한은 고주혁을 집에 보내자마자 곧장 차를 돌려 사무실로 돌아갔다. 정말로 매니저 일은 쉬는 날이 손에 꼽았다.

'SSS급 슈퍼스타가 끝나면 하루 정도는 쉰다고 해야지.'

아무리 평소 운동으로 체력관리를 한다고 해도 쉬는 날도 없이 일하면 몸에 무리가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수한은 목을 가볍게 움직이며 굳어진 목을 풀었다. 그러면서도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지훈에게 계속 전화를 거는 이유는 아직 지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역시 안 받네.'

수한은 한숨이 나오면서도 내일 다시 시간이 날 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이대로 지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김수한이!"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수한을 반겨준 건 성민이었다. 보나 마나 현장은 어땠냐고 물어볼 게 뻔해서 수한은 묻기도 전에 대답했다.

"1등 확신합니다."

"역시 그렇지? 방청객 후기도 고주혁이 가장 좋더라고."

언제 방청객 후기까지 찾아본 건지 보기 좋게 정리해둔 것을 보고 수한은 살짝 감탄하였다. 물론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한 거겠지만, 그래도 빨랐다. 그만큼 사무실 내에서도 고주혁의 우승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 다른 경연은 몰라도 이번 경연에서만큼은 고주혁이 최고였음.

ㄴ 고주혁이 언제 안 최고인 적 있음?

ㄴ 이현우는 어땠음?

ㄴ 이현우는 별로였음.

대체로 후기는 이와 비슷했다. 고주혁이 최고였고, 이현우는 별로였다는 평. 다른 참가자들에 관한 평도 좋은 거로 보아서 이번 방청객들은 고주혁의 팬도 많았지만, 대체로 공평하게 참가자들을 봤다.

"네가 생각한 내정자가 이현우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이거만 보면 강력한 탈락 후보자인데 어떻게 봐?"

"글쎄요. 방송하는 걸 직접 봐야겠죠."

이재성 PD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이번 편에서 잘 드러날 테니 말이다. 수한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성민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 오늘 수고했다며 믹스커피를 한 잔 타서 건네주었다.

**

SSS급 슈퍼스타 이번 주 방송은 고주혁과 함께 보게 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16강전이었다. 이 방송이 나오고 나서 내일 당장 촬영을 한다고 하니 마음이 살짝 무거웠다. 내일 촬영은 탈락자를 보여주기 위한 방송일 테니 말이다.

SSS급 슈퍼스타는 시즌1답게 빠르게 편집을 했다. 질질 끄는 거 없이 연습하는 순간들을 짧게 보여주고, 바로 무대를 보여주었다. 1회차 안에 모든 무대를 다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참가자들에게 있어서는 2회분으로 나누는 것보다 차라리 이게 나았다.

'사전투표를 받는다면 고주혁 씨에게 유리하긴 했겠지만, 그래도 기회는 공평하게 주는 게 낫지.'

이 빠른 편집의 묘미 때문에 SSS급 슈퍼스타가 잘 나가는 것도 있었다. 시청자들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보다 수한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저거 순서가 조금 바뀐 것 같은데요?"

수한이 발견한 걸 직접 경연에 참여한 고주혁이 모를 리가 없었다. 수한은 계속해서 방송을 지켜보다가 고주혁보다 이현우가 더 먼저 나오는 것을 보고 기가 찼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순서를 바꿨네.'

게다가 최대한 이현우를 호감으로 그리려고 여러모로 이현우를 재조명하는 게 느껴졌다. 고주혁을 띄웠던 편집 기술로 이현우를 띄우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수한은 그로 인해 이재성 PD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알게 되었다.

'조작은 안 하지만, 편집으로 살려보겠다는 거네.'

특히나 나가기 전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까지 다 방영되었다. 그런데도 최선을 다해 무대를 꾸미는 모습에 없던 호감을 단번에 일으켰다. 악마의 편집으로 유명했지만, 악마가 천사로도 변할 수 있었다.

"저도 이런 식으로 편집이 됐던 거군요."

"고주혁 씨야 제 말대로 잘 따랐으니 더 좋았죠."

이어서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가 나왔지만, 현장에서 느꼈던 열기가 화면 안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현장과 방송은 다른 법이지만, 무대를 즐겁게 봤던 수한이라서 그 차이가 더 크게 다가왔다.

'편집으로 장난질을 해놨네.'

악마의 편집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장감까지 싹 죽여버리니 이현우가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수한은 새삼 카메라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그다음은 고주혁의 차례였다.

"어?"

묘하다. 정말 묘하게 편집 점을 잡아두었다. 수한은 방송을 보면서 이렇게 인상을 찌푸린 게 오랜만이었다. 고주혁마저 심각해질 정도이니 말 다 했다. 다행히 무대에는 편집으로 장난질을 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대 전에 보여줬던 장면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투표를 마감한다는 자막이 뜨고 수한은 입안이 썼다.

대놓고 밉상으로 그려지지는 않았으나, 고주혁이 예전과 다르게 오만해진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들었다. 오히려 대놓고 그러는 것보다 좋기만 했던 사람이 보이는 싸함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같은 행동을 해도 나쁜 짓을 원래 했던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타격이 다르다. 당연히 후자가 타격이 훨씬 컸다.

'슬슬 내려올 때가 됐단 얘기지?'

띄워졌으니 내려가는 것도 이재성 PD의 마음이라는 뜻이었다. 확실히 이태욱 PD와는 다른 타입의 인간이었다. 이래서 수한은 지훈을 데리고 SSS급 슈퍼스타에 나가려고 했으면서도 망설였다. 수한이 알던 이재성 PD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던 사람이라서.

"고주혁 씨."

"네?"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게 뭐였죠?"

"네? 아!"

카메라에 찍힌 모습은 수한이 보지 않았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악마의 편집은 없다고 말했던 말을 믿고 잠시 긴장이 풀려서 나온 모습.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오만함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끝내주는 무대를 보여줬다는 거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아니요. 제가 원하는 답은 그런 게 아닙니다."

"네?"

"조금 더 조심은 해야겠지만, 지금처럼만 무대에 서세요."

고주혁을 탓하기에는 고주혁의 무대가 엄청났다. 수한은 그 감동을 잊지 않았다. 고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살짝 감동한 얼굴이었다.

"매니저님이 제 매니저님이라서 다행이에요."

"아마 지금부터는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저쪽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지 이번 화로 보여줬으니까요."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로써 투표 조작 걱정은 잠시 뒤로 미룰 수 있었다. 수한은 고주혁을 돌려보내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와 시청자 반응을 확인하였다.

- 기껏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해서 뽑아주려고 했더니 오만해졌네

ㄴ 2222 초심 잃은 듯

ㄴ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함부로 거두는 게 아니랬음

예상했던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수한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다음 반응들은 호의적이었다.

- 주혁아 우승하자!

ㄴ 어우고! 어차피 우승은 고주혁!

- 무대 보는 내내 입을 벌리고 봄

- 무대 미쳤다

한편으로는 방청객으로 다녀온 사람인데 이현우가 제일 못했는데 방송에서 보정 엄청 한 것 같다는 그런 이야기도 보였다. 그건 수한도 공감하는 이야기라 쓰게 웃었다.

수한이 팬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어그로로 신고한 게시물을 확인하고 그 회원들을 탈퇴시켰다. 다행히 팬카페 분위기는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투표를 독려하며 기사 좌표를 쏴서 좋은 댓글을 먼저 달거나 그랬다.

'이러려고 만든 거긴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더 잘 돌아가서 신기했다. 괜히 아이돌들이 팬클럽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응을 쭉 보니 생각한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성민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성민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무대가 좋아서지. 가수는 무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까?"

"아!"

수한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너무 걱정하지 마. 회사 차원에서도 이야기해볼 테니까."

"아니요. 그러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어? 왜?"

"일단은 조금만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한이 보는 이재성 PD는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특히나 지금 한창 그걸 누리고 있었다. 오히려 회사 차원으로 접근하면 더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이 컸다. 이현우 쪽이 어떻게 이재성 PD에게 접근했는지 파악하고 나서 움직이는 게 나았다.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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